빙하기 (마지막회 / 김채형)
아내가 그의 핸드폰에 문자를 보내
왔다.
삼 백 만원 입금 확인함. 고마워요.
그녀는 평소에 하는 대로 최소한의
단어를 사용해서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다. 그가 카드놀이 팀원 중 한사람으로부터 삼 백 만원을
받아 즉시 아내의 계좌로 입금한 것이다. 삼 백 만원을 끝으로 팀원들한테 꾸어준 돈은 모두 회수한 셈이다. 도합 천만 원을 아내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핸드폰으로 고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제 사라진 방배동을 찾아내서 오백만을 받을 수만 있다면 나머지도 어찌어찌 해결 될
거 같은데, 그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또 한다.
그는 수소문 끝에 거여동의 한 아파트에
방배동의 누나가 살고 있다는 정보를 얻고 찾아간다. 혹시 그곳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소재 정도라도 알게 되겠지, 그는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본다.
사업이 부도나서 기흥 공장도 방배동
집도 다 은행에 넘어갔어요. 그리곤 나도 어디 있는지 확실히 몰라요.
M시로 간 거 같은데…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예요.
그 정도의 내용은 그도 알고 있다. 벼룩의 간을 내먹지 오죽했으면 나 같은 놈의 돈을 떼어먹고 도망치겠나, 그는
오히려 방배동을 동정하는 심정이 된다.
M시 어딘지 아세요?
그는 다시 묻는다.
나도 모르죠. 알고 있으면 내가 먼저 찾았지요. 나도 그 동생한테 수천을 투자했는데…
그녀는 말끝을 흐리고 만다. 물론 그곳에서 방배동을 쉽게 찾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망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속에서
부글부글 울화가 치밀어 올라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걸어서 계단을 내려간다. 에이,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법이라고 그는 자신에게 화가 나서 철제 난간을 발로 찬다. 텅, 난간의 둔중한 울림이 삽시간에 아래위로 퍼져 간다. 발가락이 으스러지듯 아프다. 차라리 발가락이라도 부러져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는 중얼거린다. 다시 한 번, 이번에는 좀 더 세게 찬다. 아아, 그는 구두를 신은 발끝을 손바닥으로 감싸고 주저앉는다.
아내가 요구한 금액 전부를 마련해
주지 못하면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그녀가 남편이라고 자신에게 무얼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는 답답할 정도로 쓰다 달다 말이 없는 사람이다. 이사 날짜는
며칠 남지 않았다. 천만 원만 주고 얼버무리면 내게 어찌 나올까. 그녀가
‘마지막’이란 말에 힘을 주어 말하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의 의미는 무얼까.
아파트를 나온 그는 천천히 걷는다. 이천 만원도 만들 수 없게 된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피로에
지친 그의 몸과 마음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문정동 로데오 거리로 접어들어 가락시장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PC방이 눈에 띈다. 그리로 무작정 들어간다.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넓은 공간에 오십 여대의 PC가 가로 세로
줄지어 놓여있다. 맨 뒷줄의 빈자리로 가서 앉는다. 마우스를
움직여 검색어를 친다. ‘불감증 치료법’
‘불감증 치료법’에 관한 목록을 찾았습니다.
화면은 ‘불감증 치료법’에 대한 설명을
보여준다.
그는 아내를 전문 상담사에게 데려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누구와 의논해 본 적도 없었다. 당사자인
아내와 그 문제에 대해서 터놓고 대화해 본 일도 없었다.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긋나버린 걸 깨달았을
때, 아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자책했을 땐 이미 그들 사이에 깊은 골이 생긴 뒤였다. 그의 아내 역시 그와의 부부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불감증을 치료해 보겠다는 의사는 전혀 없는 것 같다. 바로 그것이 불감증 자체보다도 더 큰 문제점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정신적인
불감증, 서로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닫힌 마음. 어쩌면
그의 마음에는 애초에 아내를 향한 사랑의 불씨조차도 없었는지 모른다. 아내의 불감증보다도 더 지독한
불감증이 자신 안에 똬리를 틀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다. 늘 빚을 진 듯한 마음의 실체가 바로 자신
안에 들어앉아 있는 그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아내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늦게나마 꼬인 매듭을 풀고 마주 앉아 웃을 수 있는 가정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도.
그는 PC방을 나와 지하철을 탄다.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찍는다.
나머지 천만 원을 마련해 주지 못해
미안하게 생각함. 나중에 마련되면 보내 주겠음. 이해해 주기
바람.
아내의 핸드폰을 향해 문자를 날린
그는 눈을 감고 피로를 견디느라 안간힘을 쓴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는 자신의 속옷과 양말을 챙겨 가방에
넣는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티셔츠와 면바지도 되는 대로 둘둘 말아서 가방에 집어넣는다. 그는 아내의 성격을 잘 알기에 긴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아들이
옆에서 그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아빠, 가면 안 돼. 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 엄마한테 잘 얘기해봐.
다급해진 아이는 발까지 동동 구르다가
어찌할 바를 몰라 그의 바지가랑이를 붙잡는다. 입을 꼭 다문 채 짐을 꾸리던 그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아들을 돌아본다. 아들을 끌어당겨 안는다. 아이는 줄곧 양손으로 눈을 비벼댄다.
지수야, 엄마가 집에 다시 들어오게 하려는 것뿐이야. 아빠는 항상 너 가까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보고 싶을 땐 언제든 볼 수 있어.
그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들의
눈물을 닦아준다.
아침 일찍 그는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
언제부터?
어제 집을 나가면서 아빠한테 전하라고
했어. 아빠가 짐을 다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집에 들어오지 않겠대.
아내는 네 번째 가출을 했다. 그녀는 그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가출은 그녀만의 의사표현 방식이다. 불만이 있어도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가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집을 나가버리는 식. 그는 그녀의 방식에 넌덜머리를 내면서도 이젠 아주 익숙하게 대처방안을 모색하고 그대로 실행한다. 그도 그녀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첫 번째 가출에서 돌아왔을 적엔
화를 냈고 손찌검까지 했었다. 젖먹이 어린 아들이 배가 고파 우는 것을 보고는 그만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해서 앞뒤 가릴 여유마저 없었다. 그가 자신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시위를
한 셈이었다. 그도 그 점에선 할 말이 없었다. 세 번째
가출은 바로 H와 연관이 있었다. 두 번째 가출에서 돌아온
뒤로 그녀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애인을 따로 두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막상 H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얘기가 달랐다. 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옛말처럼 그녀 역시 눈이 뒤집히는지, 이혼서류를
들고 나타났었다. 그는 그녀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어미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들 부부가 어렵사리 합치고 나서
아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들은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둘 사이의 말없는 대화를 대신하기도 했다. 더
이상 부부생활에 대한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 아들이
원하고 좋아하니까, 그 애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곧 입증되었다.
아내의 네 번째 가출의 요구 조건은
그가 집에서 나가는 것이다. 이번에도 아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장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한 셈이다. 첫 번째 가출 때만 해도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두 번째
가출이 있고부터 그의 사업은 기울기 시작했다. IMF 직전이었다. 결국
일 년을 버티지 못하고 뿌리째 뽑혀 넘어졌다. 아내의 가출은 그가 사업에만 몰두할 수 없도록 그를 흔들어댔다.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세 번째로 가출할 당시 그는 아내에게 의존해야
하는 실업자였다. 계속되는 아내의 가출은 재기의 희망마저 앗아갔다. 무엇인가가
앞을 캄캄하게 가로막는 느낌이 들었다. 흔히 가정이 화목해야 하는 일도 순조롭게 풀린다는 말이 괜스레
하는 말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된 세상 돌아가는 섭리였다.
그는 아들을 끌어안고 그 애의 어깨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북극의 설원을 바라본다. 저곳은 결코 슬퍼하거나 한탄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그는 아들로부터 들은 말을 떠올렸다. 얼마나 적절한 말인가. 길을 가다가, 또는 사냥을 나갔다가 죽게 되면 바로 그 죽은 자리가
묘지가 된다는 이뉴이트들은 또 얼마나 슬기로운가. 그야말로 험난한 자연조건에 순응하는 삶인 것이다. 거대한 빙하와 빙산. 끝없는 설원과 사철 변함없이 쌓여있는 만년설. 그런 대자연 앞에 힘없는 인간이야말로 자연의 일부로 살다가 그대로 자연의 품에 안겨 티끌처럼 사라질 뿐이라는
엄숙한 선언.
지수야, 엄마한테 연락해라. 이모집에 있을 게다. 아빠가 없으니까 마음 놓고 들어오라고 그래라.
그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온다. 팔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아들을 달래고 다독거려서 일단은 안심을 시킨 뒤였다. 그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집에서 곧장 버스 정류장으로 나와 잠시
머뭇거린다. 거리에는 가로등이 켜지고 건물들도 창문을 통해 전등 불빛이 새어 나온다. 그는 일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뿐이다.
오랫동안 낯익은 그 골목을 떠올린다. 봄이면 서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진달래가 손바닥만한 빈터에 한 무더기 만발하고, 여름엔 누가 심었는지 키 큰 해바라기가 골목 초입에 서서 해를 따라 골목 안을 한 바퀴 맴돌아보는 곳, 또 가을엔 코스모스가 골목길에 늘어선 단칸방 셋집들의 공동변소 앞을 화려하게 장식해 주던… 그곳은 발가벗은
어린 아기가 고추를 달랑이며 여기저기 헤집고 뒹굴며 논다. 때론 아이를 매질하며 다잡는 소리가 온 골목을
뒤흔들어 놓고, 바람기 있는 남편을 다그치는 아낙의 악다구니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왜 그 골목이 이토록 그리운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버스에 오른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그 골목으로 들어선다. 바로 H가 사는 곳이다. 그녀가
사는 낡은 다가구 주택은 그 골목 끝에 서있다. 골목 양쪽에 사는 사람들이 조금 여유가 생기면 그 주택에
옮겨 살다가 방 두 칸짜리 작은 아파트를 분양 받아 떠나는 그런 정류장 같은 집이다. 골목 안으로 성큼
들어서던 그는 그 다가구 주택을 몇 걸음 남겨놓고 걸음을 멈춘다. 건물을 살펴본 그는 그제야 정신이
들면서 소스라쳐 놀란다. 정류장에서 아무 버스나 올라타고 어딘가에서 내려 포장마차로 들어가 나무의자에
걸터앉은 기억은 나는데, 어떻게 자신이 여기에 와 서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자리에 서서 담배를 빼어 물고 불을 붙인다. H의 방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온다. 불빛을 조용히 응시하면서 담배를 한 개비 다 피우고 난 그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휘적휘적 골목 밖으로 나온다.
그 다음 날 그는 종일 숙소로 정한
고시원에 누워있었다. 저녁에 출근해서 새벽에 돌아왔다. 밤 12시가 넘어 손님들이 야식으로 시킨 김밥을 몇 덩이 얻어먹은 게 그가 먹은 유일한 식사였다. 그가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북극을 생각했다. 막연한 상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사람들을 한 폭의 그림같이 떠올렸다.
주말 아침, 그는 일찍 집으로 가서 아들의 소지품들을 꾸려 이삿짐 차에 싣는다. 가져가지
못해 남겨진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짐들도 아들의 짐과 함께 차에 올려놓는다. 그것들은 새 집에 가서도
잠시 동안 자신이 살았던 모습대로 아들 방 한 구석에 빌붙어 있을 것이다. 비록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일지라도.
그가 마련하지 못한 나머지 돈을 아내가
여기저기 사정한 끝에 만든 모양이었다. 처음 이사 날짜를 잡았던 날보다 열흘 늦춰진 날이다. 그는 돈을 모두 맞춰주지 못한 사정 때문에 아내의 얼굴을 마주 보기가 미안하다.
아빠, 이번 주말에 우리 이사간대. 그런데 나는 학교에서 극기 훈련 가서
하룻밤 자고 올 거야. 아빠, 언제 올 거야?
극기 훈련 갔다 오면 너 보러 갈게. 잘 갔다 와.
그들 부자는 이렇게 전화로 얘기를
나눴었다. 짐을 다 싣고 나서 그는 잠깐 아내와 얘기를 나눈다.
빠른 시일 안에 정리했으면 좋겠어요. 지수는 제가 키울 게요.
역시 짐작한 대로 그의 아내는 이혼하자는
얘기를 꺼낸다.
아내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가라앉아 있다. 그는 가슴 한구석이 시큰해 옴을 느낀다.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돈다. 그의 아내도 몸을 돌리고 시선을 멀리 던진다.
울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그녀가 미운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
그럴 거 뭐 있어? 이혼을 하든 안 하든, 그런 건 이제 아무 의미가 없어. 상관없어.
무엇이 상관없다는 말인지, 의미가 불분명한 말을 무심코 던진다. 그의 눈에선 기어이 눈물이
넘쳐 볼로 흘러내리고 만다. 제기랄, 그는 중얼거리면서 손으로
눈물을 훔친다. 아내가 너무나 측은하게 보인 나머지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그러나 끝내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이삿짐 차가 출발하기 전에 그가 먼저 새벽에 들고 온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아들과 함께 잠시 머물렀던 그 집을 떠난다. 목적지는 없어도, 발길 닿는 대로, 그곳이 북극이든 어디든 떠날 것이다. 혹시 가다가 PC방이 보이면 들어가 컴퓨터에게 물어볼 지도 모른다. 북극으로 가는 길은 어디냐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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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혼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우리(?) 시대만해도 참고 사는 걸 미덕으로 처주었지만 요즘 젊은 부부들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이혼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회피라고 생각됩니다. 살기로 마음먹고 부딪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에 자존심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닐텐데요. 자식의 불행은 누가 책임지나요? 사람살이가 다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여기까지 살아온 사람의 허세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작품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