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한 골목
卍瞛 조 성 복
비탈진 골목에 푸른 볕이 내려앉았다
가끔은 파란색 위생 차가 시커먼 숨을 토하고 또 가끔은 새벽잠 깨우는
콩두부 손수레가 힘에 겨운 듯 껌벅이는 가로등 아래서 쪽잠드는 골목
무릎 시린 겨울밤 윙윙거리는 싸리울 너머로 찹쌀떡 소리가 들려오면
뒤미쳐 메밀묵 소리가 아련해지는 골목
그곳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 사금파리 줍는 구레나룻 광수아비가 살고
근동에선 만나기 어렵다는 용하디용한 처녀보살이 산다
바람 부는 날 삐걱이는 문설주를 잡다가도 오월 훈풍이 가슴을 열어주면 모가지에 힘줄 튕기며 비석 치기 하는 아이들이 살고
소반에 팥 한 줌 흩뿌리며 남 팔자 일러줘도 내 팔자 모르는 계룡도사 외팔이가 콜록대는 몸으로 처녀보살 집 넘나드는 골목엔
사흘이 멀다고 멱살잡이하다가도 돈 벌어 나가는 이웃 등 토닥이며 눈물 훔치는 맨발들이 산다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홑이불 뒤집어쓰는 주정뱅이 용철네가 세상에 대고 울화통 내질러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다가도
연두색 향이 온 골목에 퍼지는 단옷날이면 느티고목 아래선 티 없이 환한 얼굴들이 그네를 탄다
어떤 날엔 굶고 어떤 날엔 배 터져도 부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이 너나 모두 헐벗고 사는 비루한 골목엔
눈이 선하고 가슴이 덜 식은 사람들이 어제 같은 볕이 다시 들어오기만을 기다려 비질을 한다. 1974.산19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