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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묘 앞에서, 시간을 줍다
운곡 조이무
서울 광장시장에서 발걸음을 옮기면 불과 십여 분 남짓한 거리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흘러가는 도심 한가운데인데도, 동묘에 가까워질수록 도시의 시간은 조금씩 속도를 늦춘다. 마치 오래 달려온 사람이 길가에 멈춰 서서 가쁜 숨을 고르는 것 같다.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동묘앞역에 내리면 사람들은 먼저 벼룩시장을 떠올린다.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낡은 물건들이 길가에 펼쳐져 있다. 손때 묻은 군복, 빛바랜 모자, 녹슨 자물쇠, 주인을 잃은 안경, 멈춰 버린 손목시계, 이름 모를 시인의 시집, 바늘이 닳은 축음기와 오래된 사진기까지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쓸모를 다한 물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제 막 사연이 시작되는 물건이다. 동묘에서는 버려졌다는 말보다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물건들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사람들은 잊고 살았던 자신의 기억을 기다린다.
나는 천천히 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입구에는 옷가지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겨울 외투와 여름 셔츠가 계절도 잊은 채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제 몸에 맞지도 않을 것 같은 재킷을 거울 앞에 대보며 값을 물었다.
“이거 얼마예요?”
“오천 원.”
“조금 깎아 주시면 안 돼요?”
“그 옷이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을 많이 했어요. 더 깎으면 섭섭하지.”
상인의 말에 손님들이 웃었다. 옷의 고생까지 값에 보태는 곳, 그것이 동묘였다. 대형 상점에서는 상품의 생산 연도와 상표가 값을 결정하지만, 이곳에서는 먼지를 얼마나 뒤집어썼는지, 몇 사람의 어깨를 거쳤는지, 어떤 세월을 견디고 여기까지 흘러왔는지가 값의 일부가 된다.
새것은 편리하고 고급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오래된 것은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새 물건의 표면에는 흠집이 없지만, 헌 물건의 흠집에는 사람의 생활이 묻어 있다. 사람들은 물건을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물건 속에 숨어 있던 자신의 기억을 찾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좌판 앞에서 오래된 주전자가 눈에 들어왔다. 찌그러진 몸통과 검게 그을린 밑바닥을 보니 고향집 부엌이 떠올랐다.
나는 주전자를 집어 들었다. 손잡이의 나무는 오래 닳아 반질거렸다.
“이 주전자, 아직도 쓸 수 있습니까?”
주인은 나를 한번 바라보고 주전자를 한번 바라보더니 웃었다.
“물은 끓일 수 있지요. 그런데 추억까지 끓을지는 모르겠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주전자를 내려다보았다. 동묘는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라 시간을 사고파는 조금 허술한 장터처럼 보였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물건들은 더 뒤섞였다. 오래된 라디오 옆에 휴대전화 충전기가 놓여 있고, 놋그릇 옆에는 플라스틱 장난감이 누워 있었다. 세월의 순서가 무너진 자리였다. 조선 시대를 흉내 낸 병풍과 1970년대 달력, 카세트테이프와 젊은이들이 찾는 구제 청바지가 한 좌판 위에서 이웃이 되어 있었다.
한쪽에서는 오래된 가요가 흘러나왔다. 바늘이 낡은 음반의 골을 더듬을 때마다 노랫소리가 조금씩 흔들렸다. 그러나 그 흔들림이 오히려 정겨웠다. 완벽하게 정제된 디지털 음향보다 잡음 섞인 노래가 사람의 가슴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음반의 흠집은 노래를 망친 것이 아니라, 지나온 세월을 증명하고 있었다.
백발의 노인이 음반 한 장을 들고 상인에게 물었다.
“이 노래, 옛날 그 노래 맞지?”
“맞아요. 선생님 젊으실 때 많이 들으셨겠네.”
노인은 대답 대신 음반 표지를 손바닥으로 몇 번 쓸어보았다. 그 손길은 물건을 확인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떠난 누군가의 얼굴을 더듬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 노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앞에 놓인 시간보다 뒤에 남겨 둔 시간이 많아진다. 같은 음반을 보면서도 누군가는 장식품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첫사랑과 함께 걷던 골목을 떠올린다.
조금 더 걸어가니 오래된 농기구가 몇 점 놓여 있었다. 낫과 호미, 작은 괭이와 녹슨 전지가위였다. 손잡이는 땀에 절어 검게 변했고, 날에는 흙빛 녹이 앉아 있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만난 호미는 고향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나는 호미 한 자루를 들었다. 나무 손잡이의 매끄러운 부분이 손바닥에 닿았다. 그것은 오랜 노동이 만든 윤기였다. 밭에서 흘린 땀은 땅속으로만 스며든 것이 아니었다. 농부의 손이 닿던 연장에도 남아 있었다.
농기구는 말을 하지 않지만, 농사꾼은 그 침묵을 알아듣는다. 낫의 무딘 날에는 여러 해 동안 벼를 베어 낸 가을이 들어 있고, 호미의 닳은 끝에는 잡초와 씨름한 여름이 들어 있다. 괭이 손잡이의 금 간 자국에는 돌밭을 일구던 누군가의 힘겨운 오후가 박혀 있다.
“누가 쓰던 겁니까?”
“그건 모르지요. 물건이 여기 올 때 자기 주인 이름까지 달고 오는 건 아니니까.”
그 말이 이상하게 쓸쓸했다.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지만, 사람이 떠난 뒤 남은 물건에는 이름이 없다. 살아 있을 때는 ‘아버지의 호미’, ‘어머니의 바구니’, ‘할아버지의 지팡이’였을 물건이 어느 날부터는 그저 ‘허름한 물건’이 된다.
그러나 이름이 사라졌다고 삶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호미 손잡이에 밴 땀과 장롱 모서리의 흠집, 책갈피에 끼워진 마른 꽃잎은 한 사람이 이 세상을 통과했다는 작은 증거다.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만 기록하지만, 생활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물건 속에 남는다.
동묘의 좌판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박물관이었다. 입장권도 없고 유리 진열장도 없다. 물건을 만져볼 수 있고, 값을 흥정할 수도 있다. 왕이 쓰던 칼은 없어도 노동자가 메고 다니던 가방이 있고, 유명 화가의 그림은 없어도 어느 아이가 서툴게 그린 가족 그림이 있다. 국가가 보존하지 못한 생활의 역사를 동묘의 상인들이 길바닥에 펼쳐 놓고 있었다.
붉은 담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묘의 본래 이름은 동관왕묘다. 임진왜란 이후인 1601년에 세워진 관우의 사당으로, 장수 관우의 충의와 의리를 기리던 장소다. 지금은 서울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관왕묘로 긴 세월을 지켜보고 있다.
사당 밖은 값을 흥정하는 목소리로 가득하지만, 담장 안은 놀랄 만큼 고요했다. 몇 걸음 사이에 세상이 달라졌다. 밖에서는 오천 원짜리 외투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지고, 안에서는 붉은 얼굴의 관우가 긴 수염을 내린 채 세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문득 시장의 분위기와 사당의 조화를 생각했다. 관우는 의리를 상징하고, 시장은 이익을 좇는 곳이다. 얼핏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장사에도 의리가 필요하다. 물건의 흠을 속이지 않고, 약속한 값을 고수한다. 때론 어려운 이웃에게 자리를 조금 내어 주는 마음이 없다면 시장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칼을 든 관우와 저울을 든 장사꾼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둘 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마음을 지키려 한다. 관우의 칼이 옳고 그름을 가르는 상징이라면, 장사꾼의 저울은 물건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재는 도구다.
동묘가 오랫동안 살아남은 까닭도 그 믿음 때문일 것이다. 시장에서 오가는 것은 돈과 물건만이 아니다. 인사와 농담, 사정과 양보가 함께 오간다. 물건값을 천 원 깎아 주면서도 상인은 손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얹어 준다.
시장 모퉁이에서 한 할머니가 낡은 신발을 팔고 있었다. 신발은 몇 켤레 되지 않았다. 오래 신은 운동화와 고무신, 어린아이의 작은 장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아이 장화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 작은 장화도 파시는 겁니까?
그럼요. 우리 손자가 신던 건데, 이제 발이 커서 못 신어요.
“버리지 않고 가지고 나오셨네요.”
멀쩡한데 왜 버려요. 비 오는 날 다른 아이 발이라도 젖지 않게 하면 그만이지.
할머니의 말 앞에서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건을 다시 쓴다는 것은 가난의 표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몫을 다한 물건에게 또 한 번 살아갈 기회를 주는 일이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벗어 둔 장화가 다른 아이의 발을 감싸 준다면, 그 장화는 한 집안의 추억을 넘어 낯선 사람의 생활로 건너간다.
밭에서도 씨앗 하나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지난해 거둔 씨앗이 이듬해 밭으로 돌아와 다시 싹을 틔운다. 낙엽은 썩어 거름이 되고, 볏짚은 가축의 먹이와 잠자리가 되었다가 다시 땅으로 돌아온다. 농촌의 생활은 본래 버리는 것보다 되돌려 쓰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버린다. 유행이 지나면 옷을 버리고, 신제품이 나오면 멀쩡한 기계를 밀어낸다. 사람마저 쓸모와 속도로 평가한다. 빠르게 걷지 못하면 뒤처진 사람이라 하고, 새로운 기계를 다루지 못하면 세상과 멀어진 사람처럼 여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물건보다 사람을 더 빨리 낡았다고 판정하는지 모른다.
동묘에 나온 노인들도 그런 세속의 판단을 견디며 살아왔을 것이다. 젊은 날에는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고,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고, 시장에서 좌판을 지켰다. 자녀를 키우고 부모를 모시느라 자기 이름으로 된 시간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 이제 몸이 느려지자 세상은 그들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한다.
하지만 동묘에서는 느린 사람이 이 거리의 주인이다. 허리가 굽은 노인은 오래된 책을 천천히 넘겨 보고,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단추 하나까지 살펴본다. 누구도 그들에게 빨리 고르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두르는 사람이 이곳에서는 풍경을 놓친다.
한 젊은이가 낡은 군용 외투를 입어 보고 있었다. 거울 앞에서 소매를 걷어 올리며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그 외투는 한때 누군가에게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한 방한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에게는 개성을 드러내는 구제 의상이 되었다. 같은 옷이 한 세대에게는 고생의 기억이고, 다음 세대에게는 새로운 유행이 된다.
세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동묘에서는 한 벌의 옷을 사이에 두고 자연스럽게 만난다. 늙은이는 젊은이의 옷차림을 바라보고, 젊은이는 늙은이가 내놓은 물건 속에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한다. 동묘의 진짜 주인은 물건도 상인도 아니었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이 서로 손을 맞잡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이 시장의 주인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조금씩 기울자 좌판 위로 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상인들은 팔리지 않은 물건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산처럼 높았던 옷더미가 커다란 보따리 속으로 들어갔다. 책과 그릇은 종이에 둘둘싸였고, 시계와 안경은 작은 상자에 담겼다.
하루의 시장이 천천히 접히고 있으나 세월까지 접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 팔리지 않은 물건은 내일 다시 길 위에 펼쳐질 것이다. 오늘 주인을 만나지 못한 물건은 또 다른 발걸음을 기다릴 것이다.
나는 처음 보았던 낡은 주전자 앞으로 다시 돌아갔다. 주인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까 그 주전자,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주인은 주전자의 먼지를 헝겊으로 닦아 주었다.
“물을 끓여 드시려고요?”
“물도 끓이고, 지나간 생각도 한번 끓여 보려고 합니다.”
그가 웃으며 주전자를 건넸다.
“너무 오래 끓이지는 마세요. 추억은 오래 끓이면 쓴맛이 납니다.”
나는 주전자를 들고 시장을 빠져나왔다. 손에는 낡은 주전자 하나뿐이었지만 마음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가 불을 지피던 고향집 부엌, 겨울 새벽의 아궁이, 밭일을 마치고 둘러앉아 마시던 숭늉,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주전자 안에서 흔들렸다.
동묘에 오기 전 나는 헌 물건이란 쓰임이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을 걸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물건의 쓰임은 끝날 수 있어도, 그것이 품은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젊은 날이 지나갔다고 해서 인생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몸이 느려지고 기억이 흐릿해져도, 살아온 세월은 그 사람 안에 층층이 쌓인다.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가 숲의 가뭄과 장마를 기억하듯, 사람의 주름도 견뎌 온 계절을 기록한다.
나는 조금 늦은 나이에 글을 쓴다. 어떤 이들은 늦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부에게 씨 뿌리는 때는 달력으로만 정해지지 않는다. 밭의 온도와 바람, 흙의 습기를 살펴야 한다. 인생의 씨앗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늦었다고 해도 내 마음의 밭이 씨앗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그때가 바로 파종할 시기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더 많은 계절을 받아들이고, 쉽게 버릴 수 없는 사연을 품었다는 뜻이다. 새것이 빛으로 자신을 드러낸다면 오래된 것은 침묵으로 깊이를 보여 준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주전자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맞은편에 앉은 젊은이가 주전자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고물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한나절 동안 주워 담은 시간이었고, 잊고 살았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작은 문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사람을 잃고, 장소를 잃고, 젊음을 잃고, 한때 소중했던 마음까지 잃어버린다. 잃어버린 것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낡은 물건 속으로 숨어든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시장 모퉁이에서, 헌책의 밑줄에서, 멈춘 시계의 바늘에서 다시 우리를 부른다. 동묘에서는 과거가 죽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누군가 손을 내밀어 다시 이름을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묘앞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시장의 소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물건값을 부르는 목소리, 웃음소리, 오래된 가요와 손수레 끄는 소리가 한데 섞여 저녁 공기 속으로 흘러갔다.
잊었던 노래 한 곡을 만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물건을 샀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물건이 사람을 골랐는지도 모른다. 기억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 오래된 상처를 함부로 흉이라 부르지 않을 사람을 기다렸다가 조용히 그의 손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동묘는 버려진 것들에게 다시 한번 살아갈 자리를 내어 주는 곳이다. 빠르게 늙고 빠르게 버려지는 도시에서, 아직 쓸모가 남아 있다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사람들은 물건을 고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건 사이에 떨어져 있는 시간을 줍고 있다. 누구의 것이었는지 알 수 없는 기억 한 조각을 주워 자신의 삶에 잇고 있다.
나도 그날 동묘 앞에서 시간을 주웠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나의 시간을.
그리고 아직 써 내려가야 할, 남은 시간까지.
| 제목 동묘에서(시)) 운곡 조이무 광장시장을 지나 십오 분쯤 걸었을까 동묘의 낡은 골목에 한쪽 무릎을 내려놓았다. 햇볕에 바랜 군복 한 벌, 멈춘 지 오래된 손목시계, 귀를 떠난 축음기 등 주인을 잃고도 세상을 또렷이 바라보는 안경 하나 이곳에서는 버려진 것들이 먼저 말을 건넨다. 낡은 중절모와 반짇고리와 보릿고개를 넘던 짚신의 숨결 막걸리 한 사발로 서러움을 삼키던 농부의 저녁까지 모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천 원짜리 가격표를 달고 있다 세월은 참 염치도 없다 사람의 한평생을 흔들어 놓고. 관우의 붉은 얼굴은 오래된 사당 안에서 충의라는 칼을 내려놓지 못하고 사당 밖 사람들은 녹슨 칼보다 무딘 하루의 좌판 사이를 건너간다 왕조는 사라졌으나 장터는 남았고, 장수의 이름은 높이 걸렸으나 백성의 이름은 헌 옷 주머니에 영수증처럼 구겨저 있다.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단추 하나를 주었다. 누구의 가슴을 여미던 것이었을까? 사랑을 붙잡았을까? 아니면 떠나는 옷깃에서 마지막으로 떨어졌을까? 이름없이 수 많은 사람의 저녁이 지나간다 세상에 왔다고 믿었지만 살다보니 석양이 지척이다 인생은 자꾸 낡아가는 일이 아니라 낡은 것 속에 숨어 있다 골동품이라 부르고, 고물이라 부르지만 시간을 버려본 생각이 없다. 해 질 무렵 상인들은 천막을 접고 비둘기들은 처마 밑으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사지 않았는데 주머니가 묵직하다 새것을 향해 서둘러 달려가지만, 거꾸로 걸으며 버려진 어제를 다시 줍는다. 어쩌면 시간이 사람을 조금씩 내려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바닥에 떨어진 기억 하나를 주워 가슴에 달아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