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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문보기 글쓴이: Jack Peter Grealish
바르샤는 크루이프 이후에 가장 잘나갔던 시즌이 언제였을까. 펩이 부임하면서. 그렇다면 크루이프와 펩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팀의 철학을 공유하고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이 점은 무엇을 시사할까? 클롭이 마인츠에서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면서 그의 감독 경력에 정점을 찍고 비로소 세계적인 명장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도르트문트에 부임하고 2010 시즌부터 이다. 본격적으로 이 시즌에 그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프리시즌에 맨시티를 격파하고 다른 강팀들을 그의 방식으로 격파하면서부터이다.
대륙간 정식 컵을 치르기도 전에 이 감독의 센세이셔널한 게겐프레싱 전술은 딱히 새로운 전술이라 보기도 어렵다. 4-3-3 전술이 무리뉴를 통해 전파되면서 쓰리톱의 전방압박은 스리백 전술을 쓰는 팀들에게 늘상 있어왔던 일이다. 필연적으로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가 당시에 필요한 빌드업의 요건으로 부각된 것도 이와 결부되어 있다.
하지만 클롭의 전술에 수비형 미드필더는 꼭 패스 마스터일 필요는 없었다. 도르트문트를 맡든 리버풀에 있든, 그의 수비전략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개념이 충실하다.
- 트랜지션(공수전환) 1.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와 포어리베로의 개념 -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는 트랜지션 강화에 도움이 되었을까?
부스케츠, 피를로, 캐릭, 아르테타 같은 선수들이 당시 잘나가던 팀에서 이 후계자들을 키우기도 딱히 어려운 빌드업의 패스 마스터들이 존재했던 팀들은 있을 때 잘해라는 누군가의 명언처럼 이들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왔다.
이들을 썻던 감독들은 수비라인에 두면서 그들의 패스마스터적 능력치를 극대화시키며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 수비라인의 빌드업에 그들의 위치를 늘 동기화시켰다. 동기화란 의미는 어떤 것일까?
과거든 현재든 보통의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은 상대가 볼을 점유하고 아군 진영에서 공격을 전개할 때, 그 볼을 탈취하는 역할을 맡는다.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는 상대의 볼을 탈취하는 과정이 아닌 빌드업부터 볼에 관여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라 볼 수 있다. 볼 전개는 필수적이고, 상대의 압을 벗어나 자유롭게 볼을 전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과거 포어 리베로라 정의되는 베켄바워와 비슷한 개념이라 볼 수 있다.
리베로와 포어 리베로는 같은 리베로라는 개념을 쓰지만 그 의미는 많이 다르다. 포어 리베로는 현대적 개념의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을 볼 수 있는 최종수비수를 의미한다. 아마도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를 정의하는데 있어 포어 리베로라는 개념이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패스앤 무브로 정의되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는 공격 전개에 있어 그 효과는 눈에 띄게 보이지는 않는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공격의 전환이 매끄럽다고 해야 할까? 90년대 바르샤의 감독인 크루이프는 과르디올라를 늘 중용하면서 전술적인 수행과정을 늘 가르쳐왔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에 대해 전술적으로 크루이프 처럼 가르쳐서 탄생하는 롤이라 보기 어렵다.
독일의 베켄바워와 유사한 선수가 나오기 힘들고, 홍명보 이후의 후계자가 나오기 힘들고,로날드 쿠만의 후계자는 더욱 나오기 불가능하다.
데메트리 알베르티니의 후계자로 피를로가 나왔지만 이건 억지로 탄생한 것이 아닌 자연스런 흐름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크루이프처럼 스리백 전술에 연계 플레이를 하며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데 필요했던 과르디올라는 후에 부스케츠를 자신이 바르샤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바르샤 1군팀으로 올렸지만 당시에 크루이프가 펩을 쓰는 이런 패턴은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 트랜지션(공수전환) 2. 예외적인 경우에만 감독은 패스마스터를 딥라잉에 놓는다. -
2000년 대 중반 로이킨의 활동량이 떨어지면서 불가피하게 딥라잉에 위치했던 스콜스는 후방의 수비안정을 위해 불가피하게 후방에 머무르게 된다. 투미들이 주 전술이던 퍼거슨의 전술은 그 때만 해도 4-3-3으로의 전환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리뉴가 핫하게 올라오며 수비형 4-3-3 전술로 치고 올라올 때 로날두, 루니를 영입하며 포메이션과 팀 전술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지만 이 플랜의 완성은 0506시즌 박지성과 비디치, 에브라, 반데사르까지 영입하고 나서 포메이션 변화가 가능해졌다.
이 포메이션의 전환을 서두를 때, 로날도와 반니 사이의 갈등은 유명한 일화다. 결국 일찌기 퍼거슨은 반니스텔루이를 레알로 보내 버린다. 레알에서 두, 세시즌 더 전성기를 보내며 득점왕에 오른 반니를 생각해 보자. 꽤 이른 시기에 퍼거슨은 그를 보내버린 것이다. 팀 성적과 무관하게 갈등 요소를 제거 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사실 그의 리빌딩 전략에서 반니스텔루이 또한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과 무관하게 팀의 갈등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었을까 싶다. 야프스탐을 보내고 후회했다는 퍼거슨이 왜 반니스텔루이를 보내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2000년대 후반은 반니가 없어도 팀의 강력해졌다는 의미라 볼 수 있다.
어쨋든 2000년대 중반 퍼거슨은 패스마스터 스콜스를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내려 앉힌다. 패스가 되는 선수들이 후방에 머문다는 것은 선수의 능력치를 낭비하고 있다고 본다. 만약 브루노를 마티치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내는 선택을 솔샤르가 한다면 어떻게 보일까? 필요에 의해 스콜스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를 하게 되었지만 놀랍게도 그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더 이상 액티브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편하게 그 자리를 소화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0607시즌 중앙 미드필더에 가까운 캐릭을 영입하며 중원의 패스 마스터 두명이 함께했던 0607시즌 맨유는 리그 우승을 하게 된다.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를 쓰며 패서 러너의 침투 전략을 사용한 퍼거슨.. 그런데 이 전환의 과정에서 트랜지션의 강화는 아이러니하게 제로톱 전술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다. 중원에 패스에 대한 루트를 확보한다는 것은 미드필더로서 마스터의 길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다. 패스 마스터 두명을 필드에서 운용할 때, 상대의 압박을 이겨내려면 전방의 움직임이 탁월해야 했다. 이미 호날두, 루니, 사하 체제가 굳혀진 0607시즌이 그러했고, 테베즈가 맨유로 오기전인 이 때의 제로톱 전술은 후에 루니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호날두에게 득점이 몰빵대는 기현상이 일어난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당시의 퍼거슨이 아닌 일반적인 감독이라면 마케렐레나 캉테같은 선수를 영입해서 쓰지 왜 이런 선수를 공미로 쓰지 않는가라는 의식을 했을지 모른다. 지금도 패스 마스터를 3선에 중용하는 일보다는 공미로 쓰는 전략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위에 언급했지만 브루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쓴다는 것은 지금 봐도 재능낭비다.
따라서 필자가 낼 수 있는 결론은 지금도 수비형 미드필더에 딥라잉플레이 메이커가 쉽사리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단 감독의 입장에서 볼 때, 쟤는 공격적 능력이 탁월한데, 왜 수비형으로 내려야만 하는가? 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런 생각 자체도 하기 전에 이미 공미 포지션에 놓았을 것이다.
딥라잉 포지션에 패스마스터를 두는 경우는 몇가지 존재한다. 공미 자리에 부담스러워했던 피를로를 포지션 변경해 주거나 스콜스처럼 한시적으로라도 한시즌 내내 공미 자리를 맡고 나서 그 압박을 정말 싫어하는 선수들에게 감독이 임시적으로 그 자리로 보직을 변경할 때나 가능한 시나리오다. 애초에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는 펩을 가르쳤던 크루이프가 아닌한 나오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예나 지금이나 후방에서 도모하는 선수들에 대한 가치는 득점과 무관하기에 저평가 포지션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중위권 팀에서 10골 이상 넘은 에이스들은 모든 팀들이 탐을 내지만 안타깝게도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는 그 팀에서나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집나가면 개고생하듯, 밖에서는 평가가 박할 수 밖에 없다. 어쨌듯, 축구는 득점으로 승리가 갈리는 게임이니 말이다.
- 트랜지션(공수전환) 3. 전형적인 파괴형(박투박)수비형 미드필더가 공수전환에 더 도움이 된다. -
2000년대 후반까지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의미는 스위퍼의 개념이 강했다. 리베로라는 의미는 자유도가 높은 선수라는 의미지만 적어도 수비형 미드필더는 자유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출현은 200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나오긴 했어도 2000년대 초반 4-2-3-1 포메이션이 잠깐 반짝이다가 운용 방법에 제약이 심해서 대부분의 팀들이 포기했듯, 이 포메이션 또한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이쯤에서 전제를 두고 시작해 보자. 1차적으로 미드필더에서 상대 공격을 막아내는 개념으로 출발한 것이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그 자리에 패스 마스터를 두고 전략을 짠다는 것은 꿩대신 닭이라는 개념처럼 소잡는 칼에 닭잡는다는 말처럼 들리는 것과 동의어다.
2021 시즌 브루노가 패스를 잘한다고 마티치처럼 수비형 미드필더에 두는 감독이 있을까? 2000년대 초반 스콜스를 2선 공격수와 공미로 썻던 퍼거슨이 불과 두시즌이 지나고 그를 3선에 둔 것을 묘수인양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전략이니, 브루노가 그렇게 될 일은 희박하다.
굳이 공미에 둬도 될 선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을 바꾼다는 것은 2000년대 초반 맨유로 이적한 세바스티안 베론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긴 퍼거슨의 선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과거 반할이 후안 로만 리켈메를 공미가 아닌 왼쪽 미드필더에 두는 것처럼 맡지 않는 옷을 입혔을 때, 선수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필드에서 드러난다.
곧 첼시로 이적한 베론은 다시 세리에로 돌아온다. 그리고 폼을 회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을 들이게 된다. 세계 4대 미드필더의 이피엘 저니 생활은 이렇게 마감된다.
패스마스터에게 있어 수비형 미드필더로의 보직 변경은 그 선수에게 모욕적인 대우와 의욕 저하를 동시에 줄 수도 있다. 반면 그자리에서 가장 편하다고 느꼈던 스콜스나 캐릭에게는 보이지 않아도 팀의 핵심이 되고 일반적인 파괴형 미드필더보다 롱런하는데 훨씬 유리했던 것도 사실이다.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시작해 유벤투스에서 자유도가 극대화되었던 피를로는 선수 말년까지 그 폼을 그대로 유지한다. 미드필더의 리베로처럼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자유도를 극한으로 올리며 높은 수준으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를 만들어낸 그를 정말 영입하고 싶어했던 펩은 과거 부스케츠를 바르샤 주전으로 올리기 전에 그를 영입하고 싶어했다.
흥미로운 점은 브레시아 칼초에서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한 피를로가 그 팀에 임대되었다가 떠났을 때, 대체자로 데려온 것이 선수 황혼기에 접어든 펩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과르디올라는 자신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1순위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피를로를 공격수로는 즐라탄을 원했었다.
어쩌면 자유도가 높은 피를로가 딥라잉에서 활동했다면 바르샤의 플레이의 중심은 메시와 피르롤로 양분되었을지 모른다. 피를로는 펩의 제안을 거절했고, 그렇게 그는 유벤투스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간다.
- 트랜지션(공수전환) 4.
오프사이드 트랩과 측면을 파괴하는 전략으로 트랜지션이 강화된 수비에서 시작되는 현대축구 이론 -
90년대 중반으로 넘어가보자.
밀란 감독으로 부임하고 크루이프의 바르샤를 상대로 4대 0으로 대파하며 레알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사키가 시도하지 않은 수비형 미드필더를 레이카르트를 통해 최종 수비수라는 개념으로 스위퍼 대신 수비라인 위에 두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둔 카펠로라는 감독이 있었다.
이 감독이 사키의 플랫 4-4-2를 신봉하지 않은 까닭은 다분히 1대 1 대인마크를 배제한 수비 전략이라는 점이었다. 다소 사키의 액티브한 공격전환론 전술이 밀란의 성공을 가져온 것은 그도 부정하지 않았다. 사키의 수석 코치로서 이러한 변화를 눈으로 보고 실감했기에 사키의 후임으로 감독이 된 그 또한 사키의 전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수비 뒷공간에 대한 위험성은 존재했기에 그는 수비 뒷공간이 아닌 수비라인 앞에서 상대의 공격 전환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수비방법론을 개편한다. 플랫한 대형은 유지하면서 4-4-2와 4-1-4-1의 혼용의 전술로 그는 바꾸었고, 여기에 레이카르트라는 수비형 미드필더에 대한 역할 극대화한다. 그리고 이렇게 트랜지션을 보다 더 강화시킨 그의 전략은 크게 성공한다.
바르샤를 상대로 4대0으로 대파하면서 그는 레알 감독으로 부임한다. 그리고 부임시즌에 레알은 리그우승을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전략은 지극히 수비적이라 우승을 했음에도 그는 경질을 당하게 된다. 아쉽게도 말이다. 수비에 지독하게 구는 무리뉴는 2010년 이후로 3시즌을 버텼는데, 카펠로는 불과 한시즌만에 경질된 건 아이러니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닐까?
대인 방어가 없이 수비하는 전술은 현대 전술에서 충분히 공간압박의 의미가 보편화 되었으니, 모든 감독들이 쓰는 전술의 기본이지만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는 대인방어 없이 이러한 전략을 내민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사키의 수석코치 카펠로도 그러했고, 토털축구 신봉자들 대부분도 대인 방어의 중요성을 더 위에 두고 있었다.
당시로선 이해하긴 힘든 전술이었다. 카펠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키 대신 밀란의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는 리베로라는 포지션 대신 수비라인 앞에 리베로롤을 두는 방식으로 사키의 4인 공간압박과 리베로의 역할을 혼용해서 쓰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과도기는 항상 그렇듯,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의 전환을 서두를 때, 이전의 모델을 완전히 버리고 가기는 어렵다.
퍼거슨도 4-3-3 포메이션의 전환을 서두를 때, 0607시즌 만큼은 변형 4-4-2를 쓰며 제로톱 전술로 중간 단계를 거쳐갔다.
90년대 중반 이후로 비로소 플랜 4-4-2 는 전세계에 제대로 퍼지게 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까지 대한민국 국대는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전환을 하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팀들은 트랜지션을 제대로 강화한 전술을 통해 중앙을 통제하며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측면이 아닌 중원에서 해결해 나갔다.
- 트랜지션(공수전환) 5. 90년대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스리백은 왜 자취를 감췄나? -
당시 대한민국이 쓰는 스리백 전술이라는 것이 윙백의 활동량을 극대화한 것이기에 중앙 미드필더의 경기 장악력은 점차적으로 그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90년대 말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네덜란드를 상대로 5대 0의 대패를 거두고 프랑스와의 친선전에서도 5대 0 대패를 거둔 전례는 우연이 아니다.
9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바뀌어진 현대 축구의 트렌드에서 멀어진 산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크루이프의 바르샤 또한 그런 위기의 순간이 존재했을 법 한데 다행스럽게도 펩이 바르샤에 있음으로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되는 연계가 가능했다. 요컨대 펩이 있을 때까지만 말이다.
스리백에서 패스를 통해 공격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점유율이 중요한 크루이프의 축구가 가장 취약한 단점으로 거론되는 트랜지션의 강화 전략은 투쟁적인 미드필더의 영입이 아니라 펩과 같은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였다.
지금도 바르샤의 티키타카를 보면 공격 템포가 빠르지 않다. 그리고 선수들이 볼을 오래도록 점유하면서 필요하면 2선에서 침투하는 볼들이 죄다 패스패스를 통해 골리에게까지 전달되는 일들이 잦았다. 골리는 아군 중앙의 서클 라인 근처까지 올라왔는데, 펩의 티키타카로 인해 골리의 스위퍼 역할론까지 대두되었다.
과거 김병지가 이러다가 김운재에게 주전 자리를 뺏긴 기억이 나네. ㅋㅋㅋㅋ
바르샤의 몰락의 시작은 볼을 운반하고 연계 플레이의 정점에 있던 펩이 바르샤를 떠나며 수비와 공격의 전환에 매끄럽지 않게 되면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후계자는 2000년대 후반 부스케츠였는데, 펩이 떠나고 나서 8시즌 지나서 그의 후계자가 나타났다. 펩의 의해서 말이다. 펩이 아니었다면 부스케츠의 1군 데뷔는 지극히 늦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 트랜지션(공수전환) 6. 다시 박투박으로 선회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
일반적인 미드필더의 역할로 보기에 부스케츠는 파괴형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마케렐레와 레이카르트, 뱅상 콤파니, 야야 투레는 어느 시대든 그에 필적하는 선수들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지금 캐릭이나 부스케츠, 피를로의 후계자가 해당 팀에서 나왔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맨유에서는 로이킨의 후계자로 하그리브스를 영입했었고, 이후 이 선수가 병원행을 몇시즌 지속했을 때는 다크 플레쳐가 환상의 플레쳐로 그 후계자가 되었고, 그 이후에는 좀 기간이 길었긴 했으나 맥토미니가 유스에서 올라와 2018 시즌부터 지금까지 박투박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게다가 프레드까지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패스 마스터로 키운다는 전략이 정말 힘든 이유... 그것은 위에 언급했듯 수비를 안정화시키는 전략이 상대의 볼을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패스 마스터가 굳이 후방에 머문다는 것은 재능낭비이기 때문이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딱히 점유율을 위한 플레이를 쓰는 것이 아니라면 사키의 플랫 4-4-2 처럼 강팀들을 상대로 약팀들의 역습 위주로 개편된 90년대 중반의 컨셉들로 세계 축구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크루이프의 점유율 축구는 세계 축구에서 유니크한 전술로 배제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맨시티에 부임한 과르디올라는 이미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않고 있다. 그 역시 그 자리에 필요한 선수를 캉테와 마케렐레 같은 유형의 선수들로 채우고 있다.
90녀대 중반 축구 전술을 재편할 수 있는 전략이 사키의 4-4-2로부터 나와 충족되면서 가난한 구두쟁이는 일약 현대 축구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역습의 속도전이 제일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 속도전에 참여하지 못한 바르샤의 점유율 전술은 현대 축구와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네덜란드 아약스에서 뮌헨을 상대로 5대 2로 대파하며 챔스 우승을 이룬 반할이 오고도 2년 동안 죽 우승레이스를 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 펩이 은퇴하고 부터 이러한 패턴은 많이 망가지게 된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트랜지션은 이 때즘 바르샤에서 펩의 대체자가 절실히 필요했던 이유를 알지 못하고, 바르샤는 수비와 공격의 전환에서 해답을 찾지 못했다.
- 트랜지션(공수전환) 7. 결국 바르샤는 트랜지션 전략을 정립하기 위해 사키의 전술을 수용하기에 이른다. -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트랜지션의 패턴을 정립하는데 있어 바르샤로서는 늘 부족분이 존재했다. 드는 건 몰라도 나갈 때, 그 공백이 크듯, 펩이 떠나고 2000년대 초반의 바르샤는 발렌시아와 디포르티보에게 우승을 내주고, 심심치 않게 4위를 찍는 시즌도 드물지 않았다. 한번 4위권 밖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결국 바르샤는 해답을 찾았다. 뒤늦게 나마 사키의 축구를 이식시킨다. 트랜지션의 강화는 점유율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니까..
바르샤는 레이카르트 감독의 영입을 통해 그 부족분을 데쿠를 영입하며 해결한다. 당시로서는 리켈메처럼 공격의 템포를 느리게 가져가는 선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결국 레이카르트는 일반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의 파괴력 있는 볼 탈취를 통해 미드필더의 박투박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호나우지뉴, 에투를 통해 그의 전략을 완성시켰다.
이후 성적 부진과 선수들의 동기의식 결여로 경기력이 하강되고, 데쿠의 활동량도 급격하게 둔화되면서 레이카르트의 후임으로 펩이 들어온다.
당시 크루이프의 입김이 아니었다면 펩대신에 무리뉴가 되었을 공산이 크다. 트랜지션 강화 전략으로 이미 큰 효과를 본 무리뉴가 바르샤에 갔다면 어떠했을까? 호나우지뉴, 즐라탄, 에투, 앙리를 한꺼번에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 나오지 않았을까?
- 트랜지션(공수전환) 8. 트랜지션에 대항마가 된 티키타카의 점유율
(8,90%의 점유율을 가져가는 팀을 상대로 트랜지션 강화 전략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
펩이 들어온 당시의 정말 이 감독이 금수저와 같다고 여겨지는 것은 바르샤의 아약스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는데 필요한 시간을 지나 이 감독이 때마침 들어왔다는 점이다.
88년도에 부임한 그가 96시즌을 마지막으로 반할에게 후임자리를 건네준 이후에 반할은 충실히 그의 전술을 이식시키고, 2007시즌 이후부터 펩이 바르샤 감독으로 부임한 그 시기까지 크루이프가 이식시킨 아약스 시스템은 19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동안 그 시스템으로 길러진 세대는 성인이 되었다.
앙리, 에투, 호나우지뉴가 있는 상황에 그는 굳이 유스들을 올려 자신의 전술을 시험할 필요가 없었다. 딱히 그의 티키타카 전술이 아니더라도 이 팀은 그의 입맛에 맞게 서서히 변화시키면 될일이었다. 감독으로서 1군을 유스로 전부 대체 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또한 새가슴이라 앙리, 에투, 호나우지뉴를 벤치에 앉히면서도 자신의 전술이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에 그들과 대화를 하지않고 그 의도를 감추며 감독 생활을 유지한다.
왜 그들과 말을 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의 플랜에 그 선수들이 없다는 말을 해서 이적을 시켜야 한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그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성격으로 S급 공격수들을 썩힌다는 그의 전략은 어쩌면 너무 잔인하고 비겁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 트랜지션(공수전환) 9. 2000년대 초반에 식어진 4-2-3-1 포메이션 -
2000년대 초반에는 4-2-3-1 포메이션에 대한 시도가 늘상 있어왔지만 2선 중앙에 해당하는 공미의 플레이에서 항상 문제가 되었던 것은 공미에 상대 압박이 심화되면서 공을 오래 간수할 선수들 포메이션 이동이 늘 문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플랫 4-4-2의 사키가 내세운 포메이션의 방향성을 생각해 보건대, 이는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마라도나를 막기위한 전략으로 중앙의 미드필더 두명과 중앙수비수 2명이 공간압박을 하며 4명이 한명을 둘러싸는 행위 자체는 공미 방어를 위한 공미 방어에 의한 공미 방어의 포메이션이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공미를 쓰는 전략으로 회귀하면서 투 미들을 투볼란치로 쓰는 형태는 모양만 좋아보이지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다. 공미의 성향에 따라 투볼란치에 대한 수비의 가중치는 더 늘어날지 모른다.
애초에 투볼란치는 중앙의 공미를 막는 전략으로 사용되었는데, 상대 팀에서 플랫 4-4-2로 나오거나 스리백 전술을 쓸 경우 측면의 과부하를 일으켜 투볼란치의 효용성이 사라진다. 투미들을 플랜 4-4-2의 개념처럼 중앙 수비수와의 수비 공조를 통해 측면의 트랜지션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출발했던 사키의 4-4-2를 상대로 트랜지션강화에 제약이 걸리는 투볼란치는 볼 탈취가 애초부터 중앙수비와 공조하는 것이 아니라 두명의 미드필더가 중원을 통과하는 볼을 탈취하는 전략이기 때문에 수적우위와 커버하는 수비 범위가 좁을 수 밖에 없다.
반할이 4-2-3-1 포메이션으로의 전환을 부임2년차에 시도하면서 이러한 전략이 계속 먹히지 않은 까닭은 애초부터 이 포메이션 자체에 대한 맨유의 전술 이해도가 지극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볼을 오래 간수할 수 있는 공미의 부재, 그리고 투볼란치가 중앙 수비수와의 공조 없이 라인을 일찍 올려버리고, 중앙 수비수는 미드필더의 도움 없이 후방을 담당하는 전략은 2000년대 초반 시도한 퍼거슨의 전략과 다를 바 없었다.
과거 만치니가 부임하면서 맨시티의 4-2-3-1이 성공할 수 있었던 전략은 다비드 실바의 영입과 콤파니, 야야투레의 영입, 아구에로의 영입이 있었고, 나스리가 영입된 이후에 공미 한명의 의존도를 줄이며 패스 플레이를 통해 상대 문전에서 마무리하는 패턴 때문이다. 애초에 이 전략은 벵거가 아스널에서 꾸준히 밀던 철학인데, 어찌된 게 맨시티는 아스널의 전략을 답습한 것일까?
- 트랜지션(공수전환) 9. 4-2-3-1을 통한 트랜지션 강화의 선결 조건
첫째, 선수들의 멀티 포지션 소화와 포지션 체인지
두번째, 볼점유를 지양, 볼운반에 초점을 맞춰 상대 파이널 써드 지역까지 궁지에 몰아넣어야 한다. -
이 포메이션을 쓰는데 예외적으로 성공한 클럽들은 존재한다. 벵거의 아스날, 90년대 말 네덜란드 감독의 히딩크, 베니테즈의 발렌시아, 그리고 오늘 언급했던 클롭의 도르트문트이다.
이 네팀들은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전술들이 있다. 공미의 포지션 체인지 방식이다.
벵거는 2선의 모든 자원들이 윙어와 공미 포지션을 소화하는 선수들로 늘 구성해왔다. 선수들이 볼을 점유하면서 계속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오피 더 볼 움직임을 활용했고, 아름다운 역습을 추구하는 그의 전략에서 플레이를 만드는 공격형 미드필더는 한명에 의존하지 않고 두, 세명의 플레이 메이커를 경기 내내 늘 기용해왔다는 점이다.
로시츠키는 도르트문트에서 데려오고, 카솔라, 외질, 램지, 윌셔, 나스리 이런 선수들을 계속 기용했던 벵거는 시오 윌컷도 2선의 스위칭 플레이에 특화된 공격수로 성장시켰다.
미헬스 리누스 시절 이후부터 아약스의 4-3-3 포메이션이 곧 네덜란드의 국대 포메이션으로 고착화된 이 포메이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던 히딩크는 어떻게 하면 볼을 이른 시간에 잃지 않고, 상대 공간에 가두고 팰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다 윙포워드 포지션에 뛰는 선수를 공미 포지션에 두는 4-2-3-1 포메이션을 구상하며 경기 중에 4-3-3 포메이션과 4-2-3-1 포메이션을 변용해서 쓰는 전략을 쓰며 네덜란드 축구사상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구축하게 된다.
윙포워드 위치에서 이탈해 공미 자리로 빈번히 포지션을 바꾸는 전략을 쓰며 상대의 대인 마크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도를 높이는 4-2-3-1 포메이션의 전략은 네덜란드의 기본 포메이션이 4-3-3 이었기 때문에 이 전략이 유효하게 먹혔다. 달리 말하면 히딩크가 쓴 4-2-3-1 포메이션의 전략은 4-2-3-1이라기 보다는 4-3-3에 기반해 단기적인 전술로 유용하게 먹힌 전략이다. 이 전략이 기본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98년 월드컵 이후 퍼거슨 뿐만 아니라 레알마드리드까지 당시에 핫하게 떠오른 히딩크의 4-2-3-1에 대한 연구로 진행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포메이션에 대한 문제는 포지션 체인지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당시로서는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는 선수가 드물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네덜란드는 이 포메이션을 주축으로 쓰지 않는다. 당시에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전략일 뿐이다.
따라서 벵거식의 전술이나 히딩크 식의 국대 전술은 상황이 주는 일시성이거나 그에 필요한 선수들의 영입이 선결 과제였으므로 실제로는 다른 클럽에 이식하기 어려운 전술이었다.
사키의 플랫 4-4-2처럼 중앙 공미를 막기위해 중앙 수비수와 중앙 미드필더 4명의 공간압박이란 단순한 전술로 출발했다면 모를까 2선의 포지션 체인지가 중요한 4-2-3-1 포메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미의 클래스와 윙어의 전술 수행 능력인데 그에 해당하는 선수의 영입이 쉬이 이루어 질까.
포지션 체인지 전략은 멀티 포지션 소화가 관건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한 포지션에서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두개의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액티브한 전술로 볼을 운반하는 역습의 전술을 2선에서 수행하려면 선수의 능력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트랜지션(공수전환) 10. 투 볼란치와 사키의 투미들의 차이 -
투볼란치 전략에 대해서도 고찰해보자.
사키의 플랫 4-4-2에서 쓰는 투미들은 2명의 중앙 수비수와 2선과 3선 사이의 침투하는 공미를 막기 위한 전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미드필더는 상대의 볼 탈취를 가능한한 자신이 맡은 포지션을 이탈하지 않고, 4명이서 공간을 압박해 공간을 제약하는 단순한 전술이지만 그 효과는 4명이서 한명을 다구리치는 전략이라 상대의 자유도를 좁히는 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볼 배급을 하는 미드필더라는 개념의 볼란치는 시야가 넓어야 하고, 탈압박이 가능한 미드필더의 수준의 있어야 한다. 또한 활동량이 왕성한 박투박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이 필요하다. 사키의 플랫 4-4-2에서 말하는 투 미들의 역할과 투볼란치의 역할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투볼란치 개념이 쉽게 구현되는 미드필더의 요건이라면 애초에 이 롤 자체가 6,70년대 브라질이나 남미에서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일찌기 유럽 축구에서 유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당시의 남미 축구를 상대하는 서유럽 국가들은 매번 이들 국가에게 항상 발리곤 했다.
결론을 내보자.
토털 축구의 수비적인 방법론에서 벗어난 4-2-3-1 표메이션의 변환은 이처럼 큰 제약이 따르기에 2000년대 초반 해보고 끝나는 포메이션이 되었다.
그리고 티키타카의 영향을 볼 점유에 대한 선수들의 능력치가 올라온 지금에 와서 볼 포제션에 상당부분 발전을 이룬 지금은 이 포메이션을 대부분의 팀들이주축으로 쓰고 있다. 어쩌면 티키타카의 영향이 4-2-3-1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는 과도기적 전술이 아니었을까 싶다.
토털축구로부터 시작한 네덜란드처럼 모든 선수들이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는 훈련을 유스 때부터 소화하는 시스템과 비슷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축구에 대한 전술적 개편이 쉽게 이뤄지진 않은 상태에서 사키의 4-4-2 개념은 혁명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그에 버금가는 포메이션 정의는 출현하지 않았따.
바르샤의 유스 시스템도 크루이프가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바르샤는 없었을지 모르고, 펩 또한 그러한 전술로 발전 승화하기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지금의 바르샤의 철학은 크루이프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 전술에 대한 전략적인 대응은 어떤 것이 있을까? 최근 선수들의 볼 간수와 볼 점유율에 대한 전략이 극대화 되면서 스리백으로 대응하는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 하프 스페이스 전술이 발전하면서 포백을 쓰는 팀들은 빌드업을 할 때, 네명을 수비라인에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쉽게 키우기 어려운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를 중앙 수비수 앞에 놓는 전략을 쓰지도 않는다.
풀백중 한명을 일찌기 보내버리는 이탈리아 카테나치오 식의공격 전환 방법을 쓰고 있다.
선수들 간 볼 간수와 탈압박에 대한 전략적 빌드업 전술이 발전하면서 굳이 공미에 두고 써야할 플레이 메이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두지 않는다.
전략은 이렇게 발전하고 있다.
- 트랜지션(공수전환) 11. 트랜지션 강화를 위해 무리뉴는 불가피하게 공격 축구로 선회하고 있다. -
최근 베르캄프와 앙리의 조합처럼 4-2-3-1의 형태에서 공미가 빠진 형태의 공격수 개념이 도입된 4-2-3-1 포메이션 운용이 토트넘에서 자주 보여지고 있다.
과거 레알마드리의 라울이 공미와 섀도우 공격수의 롤을 소화했듯 에릭센은 떠나고, 델리알리는 헤롱헤롱 거리는 토트넘에게 있어 두명의 공격수중 한명은 공미를 맡고 전형적인 공격수가 아닌 윙포워드 포지션을 소화하는 손흥민은 중앙 공격수처럼 측면 드리블을 하는 패턴과 병용하면서 중앙으로 침투하는 전략을 무리뉴는 쓰고 있다.
전형적인 9번에 해당하는 케인이 다소 쳐진 위치에서 스프린트를 내는 손흥민의 침투를 돕는 패스가 빈번할 수 밖에 없다. 토트넘은 과거처럼 에릭센 같은 포지션을 소화하는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손흥민이 있으니 토트넘은 전력 누수에도 불구하고 지금 문제가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손흥민이 빠지면 공격의 다양한 루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리뉴로서는 토트넘의 트랜지션 강화 전략을 사용함에 있어 케인과 손흥민 조합외에 다른 조합을 들고 나올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 전략은 한 시즌 내내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토트넘은 승리는 고사하고 패배를 자주 맞보게 될테니 말이다.
2000년대 초반에 공격수를 공미롤과 겸업해 쓰는 4-2-3-1 전술은 토트넘에서 이렇게 강제로 탄생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이런 전략을 쓰는 토트넘에게 데브라이너가 있었다면 이런 전술이 필요했을까? 아님 그들이 돈을 아끼다가 놓친 브루노가 왔다면 저렇게 울며 겨자먹기식의 전술이 탄생했을까?
지금의 맨시티는 토트넘이 쓰는 전략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을까? 필자가 감독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선수들을 폭넓게 사용할 수 있는데 굳이 저렇게 쓸 이유는 없으니까.
맨시티는 르로이 사네도 보내고, 산쵸도 보내버린 상황이다. 만약 토트넘이었다면 사네는 물론 산쵸도 계속 지켰을 것이다.
이미 맨시티는 고주급으로 계약한 선수들을 안 쓸 수 없는 그런 위치에 서 있다. 혹 첼시의 전철을 밟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데브라이너와 루카쿠를 보내며 유스 장사를 짭짭히 하던 첼시의 추억을 벗어날 수 있을까?
당시 첼시에 이끌려 들어왔던 이 두선수는 첼시에 없다. 이 유스들을 끝까지 이끌고 사용했더라면 어떠했을까마는 첼시 또한 완성형 선수의 활용을 포기할 수 없었듯, 맨시티 또한 유스들을 기용함에 있어 더블 스쿼드로 포화된 현 스쿼드 유지로 인해 유스가 들어갈 기회가 없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어찌되었듯 트랜지션 강화로 지금은 선회하고 있는 상황이다. 티키카타로 바르샤에서 6년을 보낸 과르디 올라 또한 맨시티에서 롱볼 전술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볼 포제션이 70% 이상이라도 심심치 않게 패배하는 패턴이 자주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패에서 4패로 작년에는 9패로 늘어났다. 올시즌 패배의 빈도는 얼마나 될까?
듣기로 맨시티에서 펩에 대한 재계약 소식이 없다. 이유는 뭘까? 이미 펩의 전략은 범용적으로 모든 팀들이 구사가능한 수준에 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클롭을 상대할 때나 레스터처럼 역습에 최적화된 축구를 구사하는 팀들을 상대로 버로우타는 경기력을 종종 보였으며, 토트넘을 상대로도 슈팅이 30회가 넘고 유효슈팅이 18회가 넘음에도 고작 토트넘은 3번의 유효슈팅으로도 2대 0 패배와 3실점 패배했던 패턴이 존재한다.
지금은 점유율의강화만으로 트랜지션이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레스터 시티에게 5대 2로 패한 전철을 봐도 그렇듯 깊게 수비하고, 기회를 포착해 역습을 빠르게 진행하는 팀들을 상대로 제어한다는 것이 여간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피엘이다.
- 트랜지션(공수전환) 11.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를 필요로 하는 팀은 거의 없다. -
따라서 현재는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를 모든 팀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제는 볼 간수와 볼 전개를 굳이 수비형 미드필더가 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4-2-3-1로의 전환이 과거 4-3-3에서 필요했던 피보테롤의 발전의 정체가 일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을까 싶다. 수동적인 빌드업 전략은 이제 한계를 본것이 아닐까?
90년대 2000년대 후반까지 유용했던 클래식 윙어도 사라지고 몇 시즌 내내 아자르처럼 반대발 윙어를 통한 하프스페이스 전략도 결국 공미의 도움 없이는 플레이를 만드는데 제약이 있는 상황이다.
현재의 맨시티를 이끄는 과르디올라도 반대발 윙어를 윙포워드에 놓고, 메잘러 또한 반대발 미드필더를 놓는 전략을 맨유를 상대로 점유율 강화를 위해 썻지만 결국 패배했다. 이는 이미 그의 전략이 눈에 띄게 파훼법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어쩌면 트랜지션의 강화가 과거처럼 사키의 4-4-2 수준에서 단순하게 측면을 허무는 전략이 아니라 패스앤 무브 전략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키는 전략으로 모든 팀들이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단적으로 사리의 볼포제션 방식이 이피엘에서 한시즌의 천하로 끝났고, 결국 우승도 하지 못했다. 콘테는 다이나믹 스리백으로 부임시즌 우승을 하지만 이내 다음 시즌 그의 전략이 파훼되고 말았다. 과르디올라는 1718시즌과 1819시즌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이다. 완만한 내리막이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어쩌면 지금은 트랜지션의 강화의 선택이 여러 단계와 수순을 지나 7,80년대 마라도나처럼 공격형 미드필더가 각광받는 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단적으로 올시즌 브루노 페르난데스의 득점페이스를 보면 공격수보다 높은 득점을 내고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