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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群山群島 旅行
- 지금까지 정기산행일정에 반영하여 다녀온 섬들은 제주도, 울릉도, 강화도, 거제도, 백령도, 보길도, 거문도, 사량도, 흑산도, 홍도, 매물도, 선유도 등으로 기억된다. 앞으로 기회가 닫는 대로 1년에 한 두 번씩은 계절을 바꿔가면서 섬 여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산과 함께하며 산에서 느끼는 맛과 바다와 함께하며 섬에서 느끼는 맛이 서로 비교될 뿐 아니라 산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움을 체험하면서 섬 나름대로의 각별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오늘 여행 일상정리도 고군산군도의 지리적 특성과 주요볼거리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고 여행일정운영 중 있었던 특이동향 등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는 선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1. 일 시 : 2012. 11. 8. 06:00 ~
2. 장 소 : 古群山群島
3. 참석인원 : 35명 (새내기 3명)
4. 탐방코스 : 새만금방조제(야미도) - 고군산군도유람 - 선유도(무녀도,장자도,대 장도)일원 자유투어 - 새만금방조제(야미도)
5. 다녀온길 : 중앙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중부고속도로 -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당진.대전고속도로 - 서천.공주 - 서해안고 속도로 군산IC - 새만금방조제 - 야미도
6. 오늘활동 상황
○ 06:00 --- KBS앞 출발(안성휴게소)
○ 09:50 --- 새만금방조제기념관
○ 10:50 --- 신시휴게소
○ 11:15 --- 야미도유람선터미널 도착
○ 11:30 --- 선유도일원 유람선 유람
○ 12:20 --- 선유도유람선선착장 도착
○ 12:30 --- 점심식사(등대횟집)
○ 13:40 --- 명사십리해수욕장
○ 14:20 --- 장자도
○ 14:30 --- 대장도
○ 14:57 --- 무녀도
○ 15:40 --- 선유도유람선선착장 도착
○ 16:30 --- 선유도유람선 출항
○ 17:05 --- 야미도유람선선착장 출발
○ 17:10 --- 선유낙조 조망
○ 21:25 --- KBS앞 도착(부여.백제, 죽전휴게소 경유)
7. 고군산군도 살펴보기
□ 개관
- 고군산군도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에 속한 군도이다. 군산시청에서 남서쪽으로 약 50㎞ 떨어져 있다. 주위에는 선유도·신시도·무녀도·방축도·횡경도·관리도·장자도·대장도·말도·명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다. 대부분의 섬들은 높이 150m 이하의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기반암은 편암과 편마암으로 이루어졌다. 기후는 대체로 겨울에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눈이 많이 오며, 여름에는 온난하고 습하다. 1월평균기온 -1.5℃ 내외, 8월평균기온 27℃ 내외, 연평균강수량 1,100㎜ 정도이다. 식생은 온대낙엽수림과 상록활엽수림의 혼합림이 대부분이다. 주민은 어업과 농업을 겸하며, 농작물로는 쌀·보리·고구마·콩·마늘 등이 생산된다. 연안에서는 조기·갈치·민어·삼치 등이 잡히고, 김·굴 등이 양식된다. 신시도의 고군산염전, 무녀도의 무녀염전을 중심으로 소금 생산이 활발하다. 군산-선유도 간에 정기여객선이 운항되며, 각 도서들 간에는 어선으로 연결된다. 군도를 이루는 섬들 중 선유도는 해안의 기암절벽과 낙조 등 자연경관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명사십리해수욕장이 유명하고, 조선시대 수군절제사가 주둔한 유적지로서 해상관광지로도 개발될 전망이다. 말도에 등대가 있다.
□ 선유 8경
- 고군산군도는 유인도 16개와 무인도 47개로 구성된 천혜의 관광지이다. 군산에서 45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선유도를 중심으로 선유8경이 산재해 있으며 해수욕장 등 천혜의 비경과 갯벌을 간직하고 있다. 당일 일정으로 선유8경을 모두 둘러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선유8경 중 제1경인 선유낙조가 그리웠지만 현장에서 1박하지 않는 한 그림의 떡일 뿐이다. 말로만 듣던 명사십리는 반드시 거쳐야할 명소로 점지해 뒀었고 나머지는 선유도와 연결된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 등을 산책하면서 멀리서 나마 눈 팅 정도로 즐길 요량이었다.
▶ 선유낙조
서해바다 한가운데 점점이 떠 있는 조그만 섬과 섬 사이의 수평선으로 해가질 때 선유도의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불바다를 이루어 황홀한 광경을 연출하는데, 여름철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아름다움이 당신의 가슴에 파고들어 오래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해변에서 바라보는 선유도의 일몰, 섬과 섬 사이의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가 장관이다. 서쪽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의 감동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고 한다.
▶ 명사십리
선유도 해수욕장의 백사장 언덕에는 해당화가 만발하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투명하고 유리알처럼 고운 모래가 십리에 걸쳐 깔려 이는 모습을 달이 밝은 밤에 바라보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3km 길게 백사장이 펼쳐진 명사십리 해수욕장 선유도해수욕장의 둑에는 해당화가 만발하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졌다. 고운 모래밭이 십리에 걸쳐 펼쳐져 있었다.
모래밭에 달빛이 비치면 세상 시름을 잊을 만하다.
▶ 망주폭포
망주봉은 바위로만 이루어진2개의 산봉우리가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북쪽을 향해 서 있다. 젊은 부부가 임금님을 기다리다 그만 굳어져 바위산이 되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해발 152m 의 이 봉우리에 여름철에 큰 비가 내리면 큰 망주봉에서 7~8 개의 불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장관을 이룬다.
▶ 평사낙안
선유도 마을 뒷산에서 망주봉을 바라보면 은빛의 모래사장인 모래톱의 모양이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내려앉은 기러기 형상과 같다 하여 평사낙안이라 불려 졌고 선유 8경중의 하나가 되었다.
▶ 삼도귀범
섬 주민들에게 항상 만선의 꿈과 기대를 안겨주는 것은 물론 세 섬이 줄지어 있어 모습마저 아름답다. 세 섬은 무인도로 무녀도에 속해 있으나 선유도 앞마을을 돌아서는 어귀에 서 있고 갈매기와 물오리 등 바닷새의 천국이다.
▶ 장자어화
장자어화는 고군산도민의 자랑이었고 이곳이 황금어장이었다는 표징이다. 과거에는 선유도 본 마을 뒤에 있는 장자도를 중심으로 이곳에서 많이 나던 조기를 잡기 위해 수백 척의 고깃배들이 밤에 불을 켜고 작업을 하면 주변의 바다는 온통 불빛에 일렁거려 장관을 이룬 다해서 장자어화 라 불렸다.
▶ 월영단풍
신시도에는 해발 199m 의 월영봉이 있어 또 하나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가을철에 신시도 앞바다를 지날 때면 월영봉의 단풍이 한국 병풍을 보는 듯 하다. 특히 월영봉은 신라시대의 대학자 최치원 선생이 절경에 반하여 바다를 건너와 이곳에 머물며 글을 읽으며 잠시 살았다는 곳이다.
<최치원 전설>
- 고군산 군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섬으로 신라초기에 본 신시도 주변에 풍성한 청어를 잡기 위하여 김해김씨가 처음으로 입주하여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신시도는 신라시대의 대학자로 명성을 떨친 최치원선생이 일시나마 살았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선생이 신시도를 찾게 된 연유는 옥구군 옥구면에서 한동안 서원을 차렸을 때 해변인 하제에서 서해를 바라보다 신시도의 우뚝 솟아있는 월영봉을 쳐다보고 곧바로 명산이라고 칭찬을 하면서 뗏목 같은 풍선(風船)을 타고 신시도에 도착 월영봉에 올랐다는 것이다. 최치원선생의 자는 고운 또는 해운이라고 부른다. 월영봉에 오른 고운은 그곳을 월영대라 칭하고 돌담을 쳐 거처를 만들어 놓고 때로는 생식을 하며 글을 읽었다고 한다. 해발 199m 인 월영봉은 선유8경의 하나로 가을이면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단풍은 장관을 이룬다. 주민들은 너나없이 한 폭의 동양화를 대표한다고 한다. 신시도 주민들이 이월영대를 찾아 글을 읽은 최치원선생의 자가 고운이었음에도 해운이라는 자하나를 지어 부르게 하여 신시도를 영원히 연상케 했다고 한다. 최치원 선생의 글 읽는 소리가 중국 남경까지 들렸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올 만큼 큰 소리로 글을 읽기도 하였지만 주변의 공기가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고독과 외로움을 잊어버리고 자연을 벗삼아 생활하였음을 의미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때는 신시도 마을 청년들이 고운의 뜻을 기리고 지키기 위하여 고운이 글 읽었던 곳에 흔적이 남아 있는 돌담을 손질 보존하고 있을 정도로 고운이 이 섬에 살았던 것을 마을사람들은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 무산십이봉
고군산의 방벽 역할을 하는 방축도와 말도 등 12개 섬의 산봉우리가 마치 투구를 쓴 병사들이 도열하여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무산십이봉이라 했으며 선유봉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면 하나의 병풍 또는 쩍을 막기 위해 배치된 무사들로 보인다.
8. 여행기
□ 여행안내준비
<선유도관광안내도>
- 旅行이란 무엇인가? 가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보았다.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산이든, 강이든, 바다든, 섬이든 구분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다만 그 목적이 유람의 범주 내에 포함되느냐? 아니 되느냐? 가 관점인 것이다. 비록 산을 위주로 모두산악회 모든 일정이 짜였다고 하더라도 그 산을 중심으로 한 역사, 문화, 지리적 특성, 주요볼거리 등을 산행 후 일상정리를 통하여 두루 다뤄왔기에 매주 이어지는 정기산행이 여행의 범주에 당연히 포함된다고 보고 싶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 정기산행을 준비하고 운영함에 있어 여행을 떠나는 심정으로 임해온 것이 본인의 변함없는 입장이었다.
- 오늘 고군산군도 여행에서 당일일정으로 선유도 일원의 모든 것을 둘러보는 데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선유도 일원 여행을 떠나면서 신선처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일정안내 시간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 첫째 : 선유도일원 섬들 둘러보기
- 선유도와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는 섬끼리 다리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걸어서 다녀올 수 있다. 배를 타고 들어온 섬에서 또 다른 섬들을 걸어서 다녀오는 일이 조금은 색다르다. 자전거로 선유도를 한 바퀴 둘러보고 장자도를 거쳐 대장도 까지 다녀오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고, 무녀도를 다녀오는 데도 1시간이면 넉넉하다. 이런저런 구경을 한다 해도 3시간이면 여유 있게 네 개의 섬을 모두 둘러볼 수 있다.
▶ 둘째 : 명사십리 산책
- 선유도는 옛날엔 3개의 섬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파도에 쓸려온 모래가 오랜 세월 쌓여 언덕을 만들면서 지금처럼 하나로 연결됐다. 바로 '선유 8경'의 하나인 명사십리 해안이다. 십리라 하지만 실제 길이는 1.5km쯤 된다. 그러나 백사장의 폭이 200m이고 수심은 어지간히 멀리 나가도 2m 정도에 불과하니 가족 피서지로는 더 없이 좋다.
▶ 세 번째 : 갯벌 체험
- 썰물 때 갯벌에서 소금으로 맛 조개를 잡을 수 있다. 갯벌의 구멍에 소금을 조금씩 뿌려놓으면 맛 조개가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반쯤 올라왔을 때 잽싸게 잡아채면 된다. 또 바지락, 모시조개 등을 캐고 소라를 줍거나 농게, 달랑게를 잡을 수 있다. 그러니 취사도구와 양념을 준비할 일이다. 해수욕장 양쪽 끄트머리 근처의 갯벌이 이런 갖가지 갯것을 손쉽게 잡을 수 있는 포인트이다.
- 선유도 갯벌은 일반적으로 조류(潮流)로 운반되는 모래나 점토의 미세입자가 파도가 잔잔한 해역에 오랫동안 쌓여 생기는 평탄한 지형을 말한다. 이러한 지역은 만조 때에는 물속에 잠기나 간조 때에는 공기 중에 노출되는 것이 특징이며 퇴적물질이 운반되어 점점 쌓이게 된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조차는 해안선의 출입이 심하고 긴 만(灣)이라는 지형적 특성에 의해 조차가 매우 크다. 국내 총 개펄 면적의 83%가 서해안 지역에 분포하며 캐나다 동부 해안, 미국 동부 해안과 북해 연안, 아마존 강 유역과 더불어 세계의 5대 갯벌로 한반도와 중국의 요동. 산둥반도로 둘러싸인 서해 바다 연안에 포함되는 갯벌중의 한 곳이다. 개벌은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져 1980년대 후반부터 '서해안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간척·매립사업의 대상이 되었으나, 최근 하천과 해수의 정화, 홍수 조절, 생태적 가치 등이 밝혀지면서 보전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새만금간척 사업으로 갯벌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변화에 힘입어 관광객이 늘고 있는 여행 포인트이다. 바지락, 생합, 가무락, 맛조개 등의 조개잡이 갯벌 동물체험의 장소로 선유도와 무녀도에서 갯벌체험 관광의 재미를 맛 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즉석해서 잡아 올린 해산물로 요리를 즐겨 보는 것도 선유도 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한 부분이다
□ 여행안내
<단체기념사진>
- 야미도항 조수간만의 영향으로 물때가 맞지 않아 출항시간이 당초예정보다 한 시간 상당 지체될 것이라는 야미도유람선터미널의 통보에 따라 그 시간대에 맞춰 춘천 출발시간을 조정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당초예정대로 출발하여 새만금방조제 인근에서 소요하는 방안도 검토해 보았지만 이른 아침시간대 한 시간을 아무리 효용성 있게 쓴다고 하더라도 기대했던 만큼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어 차라리 한 시간 순연하여 서두르지 아니하고 여유 있게 출발하기에 이르렀다.
- 금주 주간날씨예보에 따르면 군산일원 날씨는 3~11℃ 분포를 보이면서 구름이 조금 끼는 것으로 예보하였었고, 오늘 03:00 기준 현장의 날씨예보는 3~9℃ 분포를 보이고 오전 구름조금, 오후 맑음이었다. 또한, 한낮 활동시간대에는 7~9℃ 분포를 보였기 때문에 오늘도 여행하기 좋은 환경을 예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주 내내 아침 기온이 영하권을 오르내리는 바람에 초겨울에 대비한 복장을 갖춰야만 했다.
- 빠른 길 찾기 안내에 따르면 춘천에서 야미도까지 가는데 중앙고속 - 서울.춘천고속 - 서울외곽순환고속 - 경부고속 - 천안.논산고속 - 당진.대전고속 - 서천.공주고속 - 서해안고속도로를 숨 가쁘게 번갈아 타며 장장 330,9km / 4시간31분 소요되는 것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 11~12월 정기 산행 일정이 홍보되면서 선유도 여행일정에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800여건이 넘는 조회 수와 더불어 초기 참가신청률이 의외로 높았기 때문에 버스 한 대 정원 확보는 무난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김장철과 맞아 떨어진 것이 주부님들 발목을 잡고 말았다. 주초에 35명 신청을 고비로 한두 명씩 들락날락하면서 35명 선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 10:30경 목적지 도착을 예상했었는데 예상보다 40여분 상당 빨리 도착하였다. 새만금기념관은 원래 오후 귀로에 잠시 시간을 할애하여 들려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야미도유람선선착장에서 11:30 출항 유람선이 예약되어있기 때문에 여유 있는 시간대에 맞춰 새만금기념관을 앞당겨 방문하면서 일상을 열었다.
<새만금기념관>
- 지금까지 새만금방조제 탐방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가 드리어 오늘 자연스럽게 기회를 잡았다. 다른 모임을 통한 탐방기회는 공교롭게도 중복되는 일상이 허락하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새만금기념관에서 새만금방조제 공사 개요 등을 대충 살펴본 다음 전망대로 발길을 돌렸다. 과연 듣던 대로 장관이었다. 전망대 앞으로 눈이 모자라게 펼쳐진 방조제의 위용에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각종 매스컴을 통하여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그저 그러려니 했었는데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다. 바다를 두 동강낸 우리나라 토목기술의 현주소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백문이 불여일견 (百聞而不如一見)이란 성어를 실감케 한 순간이었다.
- 새만금기념관을 출발하여 방조제로 접어들면서 실감이 났다. 방조제 양안으로 전개된 바다와 호수가 명확히 구분은 되었지만 그 물이 그 물이기에 호수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호수규모가 11,800ha라고 소개되었지만 실제로 감이 잡히지를 않았었는데 현장에서 보고 느낀 규모에 다시 헌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호수 건너편으로 군산시 일원이 가물가물 하였기에 현해탄 건너 다른 나라 다른 세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 여기서 새만금방조제사업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넘어간다. 새만금 방조제를 건설하기 위한 새만금사업(새萬金事業)은 전라북도 서해안에 방조제를 세워 갯벌과 바다를 땅으로 전환하는 간척 사업이다. 2007년 11월 22일 국회에서 '새만금 사업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새만금 방조제는 기존에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알려졌던 네덜란드의 자위더르 방조제(32.5km)보다 1.4km 긴 33.9km의 길이로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 새만금방조제는 전라북도 군산, 김제, 부안 앞바다를 연결하는 방조제 33.9km를 세우고, 그 안에 땅 28,300 ha, 호수 11,800 ha를 만들었다. 사업 자체는 전북 옥구군 옥서면을 중심으로 한금강, 만경강, 동진강 하구를 둘러싼 갯벌을 개발하려는 옥서지구농업개발계획에서 출발하여 나중에 새만금사업으로 바뀌었다.
- ‘새만금’이란 명칭에는 김제·만경 방조제를 더 크고 새롭게 확장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예부터 김제·만경평야를 ‘금만평야’로 불렀는데, 여기서 ‘금만’이라는 말을 ‘만금’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새롭다는 뜻의 ‘새’를 덧붙여 만든 신조어이다. 오래전부터 옥토로 유명한 만경·김제평야와 같은 옥토를 새로이 일구어 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야미도유람선선착장>
- 출항예약시간 15분 전에 야미도유람선선착장에 도착하였다. 평일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유람선주차장은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단체행락객은 우리 모두와 춘천시의회에서 오신 분들이 유일하였다. 아마도 그만큼 경기가 침체되었다는 것으로 풀이하고 싶었다.
- 오늘 출항지인 야미도(夜味島)에 대해 살펴보고 넘어간다. 야미도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야미도리에 속한 섬이다. 전라북도 군산시 남서쪽에 있는 신시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2.5㎞ 지점에 있다. 원래 밤나무가 많아 밤섬이라 불렸으며 계속 밤섬으로 불러오는 동안 차츰 밤이 뱀으로 변하여 뱀 섬이라고 불려오다가 밤의 첫 자를 따라 夜하고 밤이 맛있다하여 味붙여 야미도 라고 불린다. 야미도는 새만금사업으로 육지 화된 곳으로 새롭게 떠오른 일출일몰 명소이기도 하다. 서쪽으로 무인도인 소야미도(최고높이 55m)와 마주하고 있으며, 선유도·무녀도·신시도·대장도·장자도 등과 함께 고군산군도를 이룬다. 최고지점은 156m로 섬 중앙에 있으며, 대체로 경사가 급한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해안은 대부분 사빈해안이다. 농산물로는 무·고구마·파 등이 소량씩 생산될 뿐이며, 주민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연근해에서는 멸치를 비롯한 잡어들이 잡히며, 해삼 채취와 함께 최근 김 양식이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취락은 남쪽 해안의 배미섬마을에 집중 분포한다. 군산에서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면적 0.41㎢, 해안선 길이 3.5㎞에 이른다. 고군산군도 섬 중에서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섬으로 군산에서 남서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져 있고, 서해안의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며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는 고즈넉한 섬마을이었으나 새만금 사업으로 육지화 되어 새롭게 떠오른 일출과 일몰의 명소가 되었다.
<선유도유람선선착장>
- 야미도유람선선착장을 출발한 유람선은 선유도일원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등을 한 바퀴 돌아 선유도유람선선착장에 도착하였다. 야미도에서 부터 50여분 남짓 소요되었다. 선장님께서 선유도 일원 자랑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선장 따로 승객 따로 따로국밥 분위기에 휩쓸려 마냥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오늘은 섬 산행일정이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주 준비하듯 배낭마다 담근주가 쏟아져 나왔다. 밥시도 아니요, 술시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선상 파티가 거하게 벌어졌다. 시큼한 넘, 달콤한 넘, 씁쓸한 넘, 찝찔한 넘 할 것 없이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부어라! 마셔라! 꺽어 댔더니 오전부터 삐리리 소식이 왔다. 아마도 유람선에서는 선상 주님 파티가 허용이 되는 듯 제재를 받지 않는 바람에 선유도유람선선착장이 코앞에 다을 때 까지 이어졌다.
- 선착장 출항 전 권 희 성 기사님께서 유람선 뒤에 따라다니는 갈매기 사진 한 장만 찍어다 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용도가 무엇이냐는 반문에 그냥 두고 본다면서 정색을 하고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거야 누워 식은 죽 먹기 보다 더 쉬운 일 아닌가? 흠쾌히 허락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노릇이었다. 유람선 2층 선실로 올라가 후미에 자리 잡고 기회를 엿보아도 이상스러울 정도로 갈매기 한 마리 볼 수 없었다. 갈매기를 보고 죽을라고. 해도 갈매기가 없었다. 아니? 이럴 수가 없는데! 그러나 눈을 닦고 보고 또 봐도 갈매기는 없었다. 그냥 허공에 대고 빈 셔터 한 컷을 눌렀다. 귀로 버스에 승차해서 사진을 달라고 하면 그 장면을 내놓고 갈매기를 찾아보라고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갈매기 얘기는 없었기에 없던 일로 넘어갔다. 사실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날 거기서 갈매기 보신 분계시면 댓글 남겨주시기 바란다. 고군산군도에 갈매기가 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권 희 성 기사님께 넌지시 귀띔해 줬던 것이다. 아마도 오늘은 바다에 가서 갈매기를 보지 못한 날 중 하루로 기억되리라 본다.
- 유람선을 타고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한껏 업되어 있는 순간 홍00여사가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걸어왔다. 대장님! 제가 있잖아요. 대장님 산행후기 빠짐없이 다 읽고 있답니다. 댓글을 달지 않아서 그렇지 동행하지 않은 산의 후기까지도 몽땅 읽고 있답니다. 아! 그러세요? 보잘 것 없는 후기 관심 갖고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열혈 팬을 만난 필자의 감정이 한껏 고무되어 흥분의 도가니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에 휩싸였었다. 짧은 시간 내에 정리하다 보니 제대로 편집하지 못하여 부끄럽습니다. 다만 훗날 그날의 일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미력이나마 심혈을 기울이고 있사오니 앞으로도 변함없이 많은 관심과 성원 있으시기를 기원해 마지않았다. 홍여사님 고맙습니다.
- 선착장에서 내리면서 섬 여행안내를 마치자마자 시급한 민생고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점심식사를 준비해 온 팀과 현장에서 해결해야할 팀으로 구분하여 야미도 새만금유람선 사장님으로부터 소개 받은 선유등대식당으로 향했다. 때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방장 없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현장에서 눈을 떴다! 감았다! 하고, 드러누웠다! 앉았다! 하는 싱싱한 회는 일찌감치 물 건너가고 말았다. 매운탕 시켜놓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죄 없는 이슬이만 죽이며 아까운 시간을 함께 죽였다. 점심 해결하는데 무려 장장 한 시간 정도 까먹었다. 여행에서 먹는 즐거움 역시 보는 즐거움 못지않게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항이지만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면서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고군산군도 중에서 선유도가 본섬이 셈이다. 선유도를 중심으로 오늘 둘러봐야 할 섬들이 이어졌다. 자전거를 임대하여 순환해도 되고, 보행에 불편을 느끼시는 분들은 일인당 5,000원씩 내고 4인승 내지 6인승 관광용 차량 신세를 질 수도 있다. 도보에 비하여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각별함을 맛볼 수 있다.
- 선유도는 본래 군산도라 불렸으나 섬의 북단 해발 100여m의 봉 정상의 형태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선유도라 불리게 되었다. 2.13km의 면적에 500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선유도는 신시도, 무녀도, 방축도, 말도 등과 더불어 고군산군도를 이루며 군도의 중심 섬이다. 선유도는 고군산열도의 중심지로서 서해의 중요한 요충지이다. 조선시대 수군의 본부로서 기지역할을 다했던 선유도는 수군절제사가 통제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여/송 무역로의 기항지였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 승리 후 선유도에서 열하루동안 머물며 전열을 재정비하는 등 임진왜란 때는 함선의 정박기지로 해상요지였다.
- 고군산군도에서 8경이라는 명소가 있는데 고군산 8경의 중심부를 이루는 곳이 선유도의 진말이다. 선유도에는 이씨, 김씨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박씨, 임씨, 고씨 등도 고루 살고 있다. 민간신앙으로서 오룡묘제, 장생제, 수신제, 부락제 등이 있었으나 전통이 단절된 상태이며, 유물 유적으로는 패총과 수군절제사 선정비의 비석군이 있다. 남서쪽에 있는 장자도와는 장자교로 연결돼 있어 쉽게 왕래할 수 있으며 군산에서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여기서 충무공 이순신과 선유도에 얽힌 전설 하나를 살펴본다.
<충무공 이순신과 선유도>
충무공과의 인연은 임진왜란이 막바지로 치닫던 선조 30년 (1597) 9월 21일 충무공은 명량해협의 울돌목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후 지친 몸을 선유도에 닻을 내렸던 것을 말한다. 왜적이 명량해협으로 돌진해 왔는데 적 함대 133척 중 31척을 침몰시키는 큰 승리를 거두게 된 충무공은 12척 이라는 수적 열세 때문에 적의 추적을 피해 북상하여 위도 를 거쳐 선유도에 도착한 것은 해전 6일 후인 9월 21일 이었다.「난중일기」를 보면 장군이 선유도에 도착한 후 몸살로 몹시 앓았으며 가을 태풍으로 선박의 이동이 용이치 않았다. 선유도에서 12일간의 휴식을 취한 장군은 선유도를 떠난 지 14개월 후 선조 31년(1598) 11월 19일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이라 할 수 있는 노량해전에서 54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명사십리해수욕장>
- 선유도유람선선착장에서 10여분 남짓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인터넷에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치고 들어가면 완도, 비금도, 동해안 망상에도 명사십리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오늘 섬 여행은 명사십리해수욕장 산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시즌이 지난 해수욕장의 을씨년스러움은 간과 하더라도 드넓은 모래사장 구석구석을 가득 메운 생활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육지에서 흘러들어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흠으로 남아 기분을 잡쳤다.
- 때마침 물때가 좋아 산책하는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모래사장 깊숙이 파고드는 파도 결을 따라 쉼 없이 뜀박질하는가 하면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에 빠진 듯 한 재롱이 연출되는 바람에 웃음보가 터지기도 하였고 무리지어 산토끼처럼 깡충대며 노니는 모습을 추억으로 남기려는 찍사들의 몸놀림 또한 분주하였다.
- 선유도 해수욕장의 백사장 언덕에는 봄이면 해당화가 만발하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또한 물이 빠지면 투명하고 유리알처럼 고운 모래가 십리에 걸쳐 깔려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명사십리이다. 인근에 몽돌해수욕장이 있지만 오늘 그곳까지는 시간을 할애할 겨를이 없어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난해 백령도 섬 여행에서 체험한 백사장이나 육지에 접한 해수욕장 모래사장과 비교되었다. 선유도에 천혜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장자도>
- 명사십리해수욕장을 벗어나면서 갈림길이 나왔다. 진행방향 왼쪽으로 가면 무녀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장자도를 거쳐 대장도로 가는 길이다. 먼저 장자도와 대장도를 보고 이 지점까지 되돌아와서 무녀도로 진로를 잡기로 의견을 모았다. 명사십리해수욕장 끝점에서 10여분 남짓 산책을 하다모면 장자교에 이른다. 장자교 위에는 새로운 교각이 세워지고 있었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대단위 공사가 역사되고 있는 현장에 우리 모두가 있었던 것이다. 장자교에서 건너다보이는 포구와 해변을 따라 형성된 취락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 건너편으로 장자도의 수호신이라도 되는 듯 대장도가 그림처럼 우뚝하게 자리 잡고 있다. 장자교에서 장자도와 대장도가 한 눈에 조망되기 때문에 굳이 대장도까지 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지만 그래도 발도장을 콱 눌러놓고 오는 것과 멀리서 조망하는 것과는 성에 차지 않는 구석지가 있기 때문에 장자도를 관통하여 대장도로 향했다. 때마침 늦가을 살가운 햇살을 즐기시는 할머니를 만나는 바람에 자문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뉘시여 하는 표정이 역역하였다. 저 건너 우뚝한 바위 봉우리가 대장도가 맞나요? 어! 대장도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장자도라고 해! 네! 감사합니다. 사실 물어보나 마나 대장도 임이 틀림없는 것이 현장의 상황이었다. 그 섬이 마지막 섬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농담 따먹기 하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었다. 할머니 앞을 건방지게 그냥 지나치자니 죄스런 생각이 들어 인사와 자문을 겸한 숙달된 확인 작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멀쩡한 돌다리 두들겨 보고 건너는 바보는 없다! 가 요즘 시세에 부합되는 얘기다. 그러나 산을 접하면서부터 알면서도 기회만 되면 확인 작업하는 습관이 처방전을 뗄 수 없는 고질병이 되었다.
- 이 섬은 힘이 센 장사가 나왔다 하여 장자섬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장자할머니바위』와 『장자할아버지바위』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장자도는 인위적인 대피항이 아니 천연적인 대피항으로 유명하며 6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풍요로운 섬으로서 고군산열도를 대표하는 섬이었다. 장자도는 말의 형국을 하고 있으며 바다 건너 선유도의 맥을 이룬 큰 산이 감싸주고 있어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전해진다. 장자할머니 설화가 전해지며, 거무타령, 어름마타령 등의 민요가 전해진다. 힘이 센 장사가 나왔다 하여 장자섬이라 불리게 되었으며,『장자할머니바위』와『횡경도할아버지바위』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면적으로 보면 신시도(1등), 방축도(2등), 선유도(3등)에서 제일 작은 장자도 순이다. 고군산군도의 유인도 중 가장 작은 장자도는 몽돌해안과 기암이 어우러진 해안 산책로가 마치 수석 전시관을 보는 듯하다. 장자도 쪽은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장자대교는 차는 다닐 수 없고 사람만 건널 수 있는 다리이다. 장자도는 예전엔 멸치포구로 유명했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포구에 젓갈통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지금은 예전 같은 멸치어장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한다.
- 장자도의 장자할머니 전설을 소개한다. 옛날 장자도에 선비 한사람이 부인과 아들 하나를 두고 살았는데 어느 해 서울로 과거를 보러 선비가 떠나자 그 부인이 매일 산에 올라가 금의환향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 하루는 남편이 장원급제하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은 등에 업은 채 산마루로 달려 올라가 남편이 타고 오는 배가 빨리 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터에 드디어 남편이 나타났지만 그 남편은 등과도 하지 못하고 그 사이 새 부인 까지 맞아 아들까지 낳아서 데리고 왔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크게 상심하여 돌아서는 순간 등에 업고 있던 아기가 힘을 쓰는 바람에 선채로 돌로 변했다고 한다. 지금도 장자할머니 바위에 새끼줄이나 흰 천이 둘러져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대장도>
- 대장교 직전 오른쪽으로 전망 좋은 바위암반이 있다.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행 분들 발걸음이 자동적으로 전망대로 향했다. 아마도 그동안 산행을 하면서 쌓인 노하우가 작용하였을 것으로 본다. 꾀가 졸졸 흐르는 일행 분들께서는 그 자리에서 대장도 여행을 마무리할 기세들이었다. 그곳에 서면 선유도와 명사십리해수욕장은 물론이고 대장도가 코앞에 다가서기 때문이다.
- 대장교를 한 컷 담기위해 발길을 서둘렀다. 뒤따르는 분들이 한 분도 없었다. 나 홀로 공략에 들어갔다. 대장교를 한 컷 담고 발길을 돌리자니 대장도가 울 것 같아 대장교를 단숨에 건넜다. 대장교를 건너자마자 발소리도 요란하게 쿵하고 발도장을 힘차게 찍고 보무도 당당하게 대장교를 되돌아 건넜다. 전망대 위에 계시던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일행 분들께서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아마도 원맨쇼부리는 모습이 안쓰러웠거나 아니면 웃음을 줬던 모양이다. 암튼 아직도 그날 그 함성이 귓전을 맴돌았다.
- 옛날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섬을 한 바퀴 돌아보고 훗날에 크고 긴 다리가 생길 것이라고 말한 후 사라져 버렸는데 그 말을 믿고 주민들이 대장도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현수교가 놓여 편리하게 장자도와 오간다. 산 중턱에는 아기를 업고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서린 할매바위가 있다. 한 개인이 수십 년 간 채집한 각양각색의 분재와 수석을 전시하는 곳도 가 볼만하다. 일출과 일몰 광경은 장자도로 이어지는 다리 앞 언덕이 최고로 아름답다. 0.34km 의 아주 조그만 섬으로 한 폭의 그림과 같고 평화롭고 조용한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선유도, 장자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걷거나 자전거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선유도까지는 걸으면 30분 정도가 걸린다.
- 장자할매바위는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 등에 업은 아들과 함께 돌이 되어 버렸다는 슬픈 전설이 어려 있는 바위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 바위를 보면서 사랑을 약속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가마우지섬은 대장도의 북동쪽에 있는 작은 바위섬이다. 여기는 세계적인 희귀 새인 천연기념물 제326호 검은머리물떼새와 가마우지 서식지가 있다.
<무녀도>
- 장자도와 대장도를 찍고 명사십리해수욕장갈림길까지 되돌아 나와 무녀도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장자교에서 부너 상당한 거리이기 때문에 시간대가 촉박하였기 때문이다. 대장교 벗어나면서 6인승 순환차량을 만났다. 두당 5천원이 정가인데 단돈 1만원에 흥정이 성사되었다. 차량을 이용하여 무녀도까지 가기로 합의하였던 것이다. 정원이 6명인데도 불구하고 정원을 무려 4명이나 초과하여 10명이 탑승하였으니 정원초과 딱지감이었다. 인심 후한 기사님 덕분에 편하고 여유 있게 무녀도 인근까지 접근하였다. 사실은 편한 것이 아니라 곤혹을 치룬 순간이었다. 겨우 발만 들여놓고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였으므로 불안하기 그 없었다. 낙상을 막고자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위기를 넘기는 촌극이 벌어졌는가 하면 한 분의 무릎에 포개 앉는 바람에 세 다리 두 동강 나는 줄 알았다.
- 선유도여객선선착장에서 무녀교 까지 10여분 남짓 걸린다. 무녀교 주변에도 대장교와 마찬가지로 교량공사가 한창 시공 중이었다. 대장도로 이어지는 공사로 보였다. 이 순환공사가 준공된 후에는 유람선이 아니라 승용차로도 관광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였다.
- 무녀교를 배경으로 기념을 남기는 순간 여기서도 잔꾀가 발동하였다. 무녀교를 건너지 않고 그냥 건너다보며 눈 팅으로 만족한 듯 되돌아갈 낌새가 보였다. 유람선선착장 까지 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시간대로 봐서 서둘러야하는 상황은 맞았지만 그래도 무녀도에 족젹은 남겨야하지 않겠는가?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무녀교를 건너는데 합의가 쉽게 이뤄졌다. 무녀교 건너 무녀도 초입에서 무녀교를 배경으로 기념을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시간이 허락했다면 좀 더 해변을 거닐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무리수든 거둬들였다. 시속 5~6km 정도의 보행속도를 유지하면서 명사십리해수욕장에 다다랐다. 만조시간이 가까워진 듯 수위가 높아지면서 얼굴을 조금 내밀었던 갯벌은 간곳없고 시멘트포장길 양안으로 바닷물이 넘실댔다. 조금만 더 높아지면 도로가 넘칠 정도였다. 낮은 파도에도 불구하고 도로까지 바닷물이 범람하였다.
- 16:30 출항시간 50여분을 앞두고 여유 있게 선유도유람선선착장에 홈인하였다. 인원점검결과 100% 도착이었다. 부두 횟집마당에 진을 치고 금방 건져 올린 싱싱한 낙지회를 안주로 이슬이를 기울이는 쫑 파티가 열렸다. 살아 꿈틀대는 낙지의 별미가 입맛을 돋우는 바람에 순식간에 이슬이 몇 병을 해치웠다. 모두님들 식성이야 익히 알고 있는 터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돋보인 점은 입천장에 쩍쩍 달라붙는 산 낙지 해치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착장 쫑 파티를 끝으로 고군산군도 섬 여행의 막을 내렸다.
- 무녀도에는 고려말엽에 이 씨가 입도하여 촌가를 이루고 살게 되었으며, 그 부근 일대에 많은 수산자원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고, 섬의 형태가 장구모양의 섬과 그 옆에 술잔처럼 생긴 섬 하나가 붙어 있어 무당이 상을 차려놓고 춤을 추는 모양이라고 하여 무녀도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무녀도에는 논밭이 많다. 섬에는 18만평에 달하는 염전이 있었지만 지금은 일부에서만 소금을 만들고 있다. 예전의 염전은 이제 습지로 변해가고 있다. 선유도와 대장도, 장자도, 무녀도는 모두 다리로 연결되었고, 주변에 장구도가 위치해 있다. 입도 시기는 고려 말 이 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섬 이름은 원래 '서들이'라고 하였고, 바쁜 일손을 놀려 서두르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렵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부지런히 움직이기만 하면 잘 살 수 있는 섬이라 하여 '서들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1950년대 초에 조성된 16만평의 간척지는 이 섬사람들의 부지런함을 알 수 있게 한다. 이후에 섬의 생김새가 무당이 춤을 추는 모습과 같다 하여 무녀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서남쪽의 무녀봉(131m) 외에는 높은 산이 없으며 해안선은 드나듦이 심하다. 북쪽 해안에는 간척지가 넓게 펼쳐져 제염업을 한다. 김과 멸치가 많이 생산되며 바지락 양식이 이루어진다. 무녀1구의 산 구릉에는 패총이 있다.
- 무녀도가 한때 최고의 번성기를 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완양염전은 작고한 군산 출신의 최현칠 옹이 1951년에 300여명의 인부들과 함께 1년간 방조제를 쌓아 총 16만평의 간척지를 만들어 그 틀을 만들고 1961년 12월 염전매법이 폐지되고 1962년 1월1일부터 염전사업이 완전 민영화되자 염전사업을 시작한 곳으로 당시 군산에는 8개소의 염전이 있었는데 섬 중에서는 이곳 완양염전의 규모가 큰 편이었다고 한다.
- 모감주나무 군락지 열매가 비누대용이나 염주의 주재료가 되어 금강자라고도 불리는 모감주나무는 세계적으로 희귀종이며 해안과 인접한 곳에서 주로 자라며 무녀도에 4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갯벌체험 부드러운 감촉의 갯벌에서 조개와 게 등을 잡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선유낙조>
- 선유도유람선선착장에서 야미도유람선선착장 까지는 빤히 건너다보이면서도 20분 남짓 소요된다. 야미도유람선선착장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귀로에 올랐다. 현장에서 하산행사 형식으로 자리를 펼까도 망설였지만 갈 길이 330km가 넘는 상황이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별 수 없이 버스 내 행사로 갈음하기로 하였다.
- 새만금방조제에 접어들면서 의외의 보너스를 얻었다. 선유8경 중 제1경인 선유낙조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여행안내준비를 하면서 선유낙조는 아예 엄두도내지 못했었는데 의외의 상황을 맞이하면서 버스 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새만금방조제가 준공되면서 육지화 된 이후 야미도 일출과 일몰이 새롭게 각광 받고 있는 볼거리이기 때문에 더욱 값진 보너스로 여겨졌다.
- 서해바다 한가운데 점점이 떠 있는 조그만 섬과 섬 사이의 수평선으로 해가질 때 선유도의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불바다를 이루어 황홀한 광경을 연출한다. 해변이나 방조제에서 바라보는 선유도의 일몰, 섬과 섬 사이의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가 감동 그 자체였다. 오는 고군산군도 섬 여행에서 해맑은 날씨와 더불어 또 하나의 축복을 받은 셈이다.
❊ 자료출처 : 군산시청
□ 여행을 마치고
- 모두에서 열거한 섬들을 두루 섭렵해 나가면서 또 하나의 가보고 싶은 섬 이름 하나를 지웠다. 매주 정기산행을 통하여 일상의 시름을 잊으며 새로움을 만끽하고 있지만 가끔씩 바다와 함께 섬 여행을 즐기는 맛 또한 쏠쏠한 재미가 있다. 광활한 바다와 마주하면 내가 바다가 된 듯 일상의 시름을 한 방에 확 날려 보낼 수 있어 더욱 좋다. 점점이 이어지는 섬을 대하면 수반에 산수경정석을 연출한 듯한 착각에 빠져들면서 수석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어 또한 좋다. 맞아! 바로 저거야! 를 속으로 뇌까리는 순간 가슴 벅찬 희열을 맛볼 수 있어 바다가 좋다. 섬 여행이 늘어나면서 언제부터인가 이 섬은 어떻고, 저 섬은 어떻고 비교나 평가 대상으로 삼는 버릇이 사라졌다. 섬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 특성을 눈여겨보고 즐기면 그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바다가 있어 좋았고 섬이 있어 마냥 좋았다. 무엇이 그리도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좋았다고 대답한 것이다.
-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 시간까지 빠듯한 일정 소화해내시느라 분주한 일상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고군산군도 섬 자유투어를 통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는지에 대하여는 객관적인 평가 없이 각자의 몫으로 넘긴다. 짜인 일정을 원만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고 도움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고, 선유8경 중 제1경인 선유낙조 조망과 제2경인 명사십리해수옥장 산책을 확실하게 누릴 수 있도록 축복주심에 감사드리면서 고군산군도 섬 여행 일상정리를 여기서 마칩니다. 수고 많으셨슴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