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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장 1-11절. 부활의 역사성과 목격자 바울
1. 고린도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글로애의 집사람 편에 들은 소식(1:11)에 근거하여 교훈한 것(1-6장)과, 고린도교회의 질문 편지(7:1)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7-16장)으로 구분됩니다.
2. 그래서, 후반부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의 첫머리에는 “---에 대하여는”이란 어구가 붙어 있습니다(7:1, 8:1, 12:1, 16:1).
3. 그런데, 유독 부활의 문제에 관한 본 장의 서두에만은 ‘---에 대하여’란 어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 장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부활을 의문시하는 고린도 교인들의 의문에 관하여(15:12) 교훈(답변)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4. 고린도 교인들은, 앞에서도 살펴본 대로,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인해 2원론적이고, 현실 세계를 평가절하하는 영지주의적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후의 영적 세계의 존재는 믿었으나, 육체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현실 세계 속에서 ‘영적으로 실현된 종말 신앙’에 지나치게 편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차 ‘육체적으로 실현될 부활 세계’를 도외시했던 것입니다.
5. 본 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부분(1-34절)은 “육체적 부활이 어찌 있을 수 있느냐?”는 고린도 교인들의 의문(12절)에 대한 답변으로서 ‘부활의 확실성’을 논한 것입니다.
둘째 부분(35-38절)은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는 의문(35절)에 대한 답변으로서 ‘부활체의 성격’을 논한 것입니다.
6. 전반부를 다시 세분하면, ① 그리스도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1-11절), ② 부활이 없으면 모든 신앙생활이 헛됨(12-19절), ③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 부활의 첫 열매임(20-28절), ④ 부활 신앙이 현실 생활에 미치는 영향, 즉, 고난을 참고 견딤(29-38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7. 오늘은 첫째 부분으로서,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2절은 성경대로 믿으면, 틀림없이 구원을 받는다고 확언하시는 내용입니다.
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I make known to you, brethren, the gospel which I preached to you, which also you received, in which also you stand,
형제들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Γνωρίζω δὲ ὑμῖν, ἀδελφοί,
I make known now to you, brothers
‘알게 하노니’(Γνωρίζω)는 현재형입니다(I make known).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τὸ εὐαγγέλιον ὃ εὐηγγελισάμην ὑμῖν,
the gospel that I proclaimed to you
‘내가 전한’(εὐηγγελισάμην)은 부정과거로서(I proclaimed) 내가 확신을 가지고 전한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ὃ καὶ παρελάβετε,
which also you received
‘너희가 받은 것이요’(παρελάβε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received) 과거에 확실히 받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ἐν ᾧ καὶ ἑστήκατε,
in which also you have stood
동사(ἑστήκατε)는 완료형으로서(you have stood) 이미 서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2절.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y which also you are saved, if you hold fast the word which I preached to you, unless you believed in vain.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δι’ οὗ καὶ σῴζεσθε,
by which also you are saved
직역하면 ‘그로 말미암아 너희도 구원을 받는다’란 뜻입니다.
동사(σῴζεσθε)는 현재 수동태로서(you are saved) 구원받은 것을 지금 누리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한글 성경에 ‘받으리라’로 미래형으로 번역한 것은 현재형으로 번역해야 옳습니다. (영어 성경 참조)
내가 전한 그 말을
τίνι λόγῳ εὐηγγελισάμην ὑμῖν,
to the word I proclaimed to you
직역하면 ‘내가 너희에게 전한 그 말을’이란 뜻입니다.
‘전한’(εὐηγγελισάμην)은 부정과거로서(I proclaimed) 과거에 분명히 전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너희가 만일--굳게 지키고
εἰ κατέχετε,
if you hold fast
‘굳게 지키고’(κατέχετε)는 현재형으로서(you hold fast) 현재 굳게 붙잡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κατέχω)은 ‘굳게 붙잡다’(hold fast)란 뜻입니다.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ἐκτὸς εἰ μὴ εἰκῇ ἐπιστεύσατε.
unless if not in vain you believed
동사(ἐπιστεύσα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believed) 확실하고 굳게 믿는 것을 가리킵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파한 복음을 너희가 받았고 너희가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만일 내가 너희에게 전한 말을 너희가 굳게 붙들고 헛되이 믿지 않았으면 너희가 구원을 받은 것이라. (Now I make known to you, brethren, the gospel which I preached to you, which also you received, in which also you stand, by which also you are saved, if you hold fast the word which I preached to you, unless you believed in vain.)
1.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한다”는 말씀은 이미 복음을 듣고 믿어서 구원을 받은 성도일지라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다시 일깨움을 받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내용이라는 뜻입니다.
2.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는 말씀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이미 복음을 믿었고, 이 복음 신앙 가운데 굳게 서서 천국을 향해서 전진해가고 있는 올바른 성도들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아무리 서로 싸우고, 음행하고, 돈을 사기하여 재판까지 하고, 신령파 여성도들이 예배조차도 무질서하게 만들고, 심지어 주의 성찬까지도 모독하는 문제 많은 교인들이었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복음 신앙에는 흔들림이 없이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3.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아무리 죄를 많이 지은 이방인들일지라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대신 죄를 지시고 죽으셨으니, 예수님만 믿으면 죄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전도한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를 굳게 믿으면, 구원을 확실히 얻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 바울 사도가 이 말씀을 하는 것은 당시에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고 영적인 부활, 이념적 부활을 주장하는 영지주의 이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헬라철학자들은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세계의 것은 소중하고 선한 것이지만,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나 인간의 육신은 천하고 악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장에서 말씀한 대로, 영지주의 이단들은 예수님께서 더럽고 악한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고, 육체적으로 부활하신 것도 아니라고 잘못된 주장을 했습니다.
(2) 그리고, 영지주의 이단들은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의 눈에 부활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가현설(docetism)을 주장하면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마음에 간직하고 사는 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라는 이념적 부활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본받는 도덕주의 신앙은 인본주의 사상이고, 올바른 기독교 복음 신앙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본 절에서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 신앙을 가지면, 참된 구원을 받은 것이고,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불신하면, 헛되이 믿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3) 오늘날 일부 신학대학 교수들중에는 영지주의자처럼 예수님의 도덕적 부활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 교단과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다행히도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믿는 올바른 신앙인들이 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3-4절에서, 바울 사도는 성경적인 전통 신앙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 delivered to you as of first importance what I also received, that Christ died for our sins according to the Scriptures,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παρέδωκα γὰρ ὑμῖν ἐν πρώτοις,
I delivered for to you in first
직역하면 ‘왜냐하면 먼저 너희에게 내가 전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전하였노니’(παρέδωκα)는 부정과거로서(I delivered) 과거에 확실히 전한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내가 받은 것을
ὃ καὶ παρέλαβον,
what also I received
‘받은’(παρέλαβον)은 부정과거로서(I received) 내가 과거에 받은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ὅτι Χριστὸς ἀπέθανεν ὑπὲρ τῶν ἁμαρτιῶν ἡμῶν κατὰ τὰς γραφάς,
that Christ died for the sins of us according to the scripture
‘죽으시고’(ἀπέθανεν)는 부정과거로서(died)는 부정과거로서(died) 그리스도께서 과거에 틀림없이 죽으신 역사적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4절.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at He was buried, and that He was raised on the third day according to the Scriptures,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καὶ ὅτι ἐτάφη,
and that He was buried
동사(ἐτάφ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He was buried) 역사적으로 확실히 장사된 과거의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καὶ ὅτι ἐγήγερται τῇ ἡμέρᾳ τῇ τρίτῃ κατὰ τὰς γραφάς,
and that He has been raised the day the third according to the Scriptures,
‘다시 살아나사’(ἐγήγερται)는 완료 수동태로서(He has been raised) 역사적으로 확실히 부활하신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이며 나에게 전해준 것을 너희에게 전했다. 즉 성경에서 말씀한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리고 그는 장사되었다가 성경에 말씀한 그대로 제 삼일에 부활하셨다. ( I passed on to you what was most important and what had also been passed on to me. Christ died for our sins, just as the Scriptures said. He was buried, and he was raised from the dead on the third day, just as the Scriptures said)
1. 3-4절의 말씀은 바울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앙의 전승으로서,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처럼 고백되어져 왔던 것입니다.
(1) 즉, 3절에서 ‘받은’이라는 말과 ‘전하였다’는 말은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의 전승(傳承)을 나타내는 전문 용어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절에서는, 주님이 제정하시고 전달시키신 성찬 예식에 대해서 이 전승 용어가 쓰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2) 3절의 ‘내가 받은 것’(ὃ καὶ παρέλαβον)은 ‘나 역시 받은 것’이란 뜻으로서, 바울이 받아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하여 준 복음의 전승은 바울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바울도 받아 전달한 것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복음의 창시자가 아니요, 복음의 매개자(전달자)였습니다.
바울은 부활 신앙의 전승을 예수님에게서 직접 전해 받은 것이 아니고, 다른 선배 신앙인에게 전해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전승된 복음의 동질성을 가지고, 자신의 사도성을 입증하고 있는 셈입니다.
(3) 구원 사건의 내용은 ① 죽으심, ② 장사지내심, ③ 사흘 만에 다시 사심, ④ 나타내 보이심입니다.
이 네 번의 역사적인 사건은 ὅτι(호티)로 시작되는 4개의 소절로써 연속적으로 나타납니다.
6절에서 ‘나타나셨다’(ὤφθη, he appeared, 우리말 성경에는 ‘보이셨나니’)고 했습니다.
즉, 사도적 전승에 나타난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적 사건은 4가지 단어로 압축됩니다: 죽었다, 장사지냈다, 다시 살았다, 나타났다.
이것을 둘로 요약하면, ‘그리스도가 죽었다, 살아나셨다’입니다.
시제가 ‘죽었다’는 부정과거형(ἀπέθανεν)으로서, 역사적으로 일회적인 사건임을 나타냅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성경대로’ 일어난 사건임을 말씀함으로써, 예수님의 구원 사건이 구약의 성취임을 입증합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은 ‘성경대로’ (κατὰ τὰς γραφάς) 죽으심으로써, 예수님의 죽으심이 개인적인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특별한 죽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다가 사흘만에 살아난 것에서 예표되었습니다. (마태 12:40)
시편 16편에는 주님이 썩음을 당치 않겠다고 하셨는데,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이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부활이 성경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증명했습니다.
로마서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5)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 ὑπὲρ τῶν ἁμαρτιῶν ἡμῶν) 단번에 죽으신 사건입니다.
히브리서에서 말씀한 대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는 단번에 영원히 속죄되었습니다.
히브리서 9:12.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즉, 창조와 종말 사이에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임을 나타냅니다.
(6)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를 믿고, 부활의 새 생명을 믿는 성도는 영생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늘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나온 말씀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를 믿으시고, 부활의 새 생명을 믿으셔서, 영생을 얻으시고, 영원토록 감사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의 원초복음이나, 출애굽기 13장에 나타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사건이나, 이사야 53장에 말씀한 대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자신의 죄악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를 따른 우리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신 대속적 죽음(redemptive death)입니다.
이 대속적 죽음을 죽으신 예수님은 단순히 위대한 위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배반하고 마귀의 종이 된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서 우리 죄인을 대신하여 죽게 하신 위대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5-8절은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여러 증인들을 나열함으로써 입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5절.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at He appeared to Cephas, then to the twelve.
게바에게 보이시고
καὶ ὅτι ὤφθη Κηφᾷ,
and that He was seen to Cephas,
‘보이시고’(ὤφ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He was seen) 과거에 나타나 보이신 틀림없는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εἶτα τοῖς δώδεκα·
then to the twelve.
6절.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fter that He appeared to more than five hundred brethren at one time, most of whom remain until now, but some have fallen asleep;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ἔπειτα ὤφθη ἐπάνω πεντακοσίοις ἀδελφοῖς ἐφάπαξ,
thereafter He was seen to more than five hundred brethren at once
‘보이셨나니’(ὤφ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He was seen) 과거에 나타나 보이신 틀림없는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ἐξ ὧν οἱ πλείονες μένουσιν ἕως ἄρτι,
of whom the greater part remain until now,
‘살아있고’(μένουσιν)는 현재형으로서(remain) 현재 살아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τινὲς δὲ ἐκοιμήθησαν·
some but fell asleep
직역하면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잠들었다’는 뜻입니다.
‘잠들었으며’(fell asleep)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fell asleep) 과거에 이미 잠들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7절.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n He appeared to James, then to all the apostles;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ἔπειτα ὤφθη Ἰακώβῳ,
then He was seen to James,
‘보이셨으며’(ὤφ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He was seen) 과거에 나타나 보이신 틀림없는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εἶτα τοῖς ἀποστόλοις πᾶσιν·
then to the apostles all
8절.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last of all, as to one untimely born, He appeared to me also.
맨 나중에
ἔσχατον δὲ πάντων,
last then of all,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ὡσπερεὶ τῷ ἐκτρώματι, ὤφθη κἀμοί.
as the untimely birth, He was seen also to me
직역하면 ‘날 수를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자 같은 나에게도 그가 보이셨다’는 뜻입니다.
‘보이셨느니라’(ὤφ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He was seen) 과거에 나타나 보이신 틀림없는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1. 게바(베드로)에게는 부활하신 주일날 보이셨습니다. (눅 24:34)
2. 열두 제자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도 이렇게 호칭했음)에게 주일 저녁에 보이셨습니다. (눅 24:36-43, 요 20:19-23)
3.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신 것은 갈릴리에서였습니다. (마 28:10, 16-20).
그중에 대다수가 당시까지 살아 있다는 것은 적어도 250명 이상이 산 증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 어떤 이들은 잠들었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당시의 상투적인 표현입니다.
사도행전 7장 60절에는 스데반도 잠들었다고 했습니다.
4. 7절의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인데(마 13:55), 그리스도의 부활 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나(요 7:5), 부활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고(행 1:14), 후에는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적 인물이 되었습니다(행 15:33).
성경 상에는 그가 언제 어디서, 부활의 주님을 보았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5. 8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에게 보이신 것은 부활 사건 이후 약 3년이 지난 AD 33년경, 사도행전 9장의 다메섹 사건에서였습니다.
6. 바울 사도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기독교를 심히 핍박하다가 극적으로 신자가 되고,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가 된, 그의 비정상적인 입교 경험을 가리킵니다.
7. 성경에는 이렇게 많은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들이 있지만,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1) 요한복음 20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도마가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도마에게 말하니까, 도마가 “나는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 하겠노라”고 했습니다.
(2) 그런데, 도마도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손으로 만져보고, 손가락을 넣어보고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고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부활을 믿습니까?
예, 부활하신 예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고, 손으로 만져보거나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도, 믿으시니 참으로 복되십니다!
성경 말씀과 복음 전도자의 말을 듣고 믿지 못하는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보이셔도 믿지 못할 사람입니다.
아무쪼록 육신의 눈으로, 손과 손가락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져보지 않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는 성도님들은 크게 복된 분들이십니다!
9-10절에서 바울 사도는 자기가 지극히 작은 사도이지만, 자기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9절.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 am the least of the apostles, and not fit to be called an apostle, because I persecuted the church of God.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Ἐγὼ γάρ εἰμι ὁ ἐλάχιστος τῶν ἀποστόλων,
I for I am the least of the apostles
‘나는’(Ἐγὼ: I)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동사(εἰμι)는 현재형입니다(I am).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ὃς οὐκ εἰμὶ ἱκανὸς καλεῖσθαι ἀπόστολος,
who not am fit to be called apostle
직역하면 ‘사도라고 칭함 받기에 적당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칭함 받기에’(καλεῖσθαι)는 현재 부정사형 수동태로서(to be called) 칭함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적당하지 못하다’에서 동사(εἰμὶ)는 현재형입니다(am).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διότι ἐδίωξα τὴν ἐκκλησίαν τοῦ Θεοῦ·
because I persecuted the church of the God
동사(ἐδίωξα)는 부정과거로서(I persecuted) 과거에 박해한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10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ward me did not prove vain; but I labored even more than all of them, 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with me.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χάριτι δὲ Θεοῦ, εἰμι ὅ εἰμι,
grace but of God, I am what I am
두 개의 동사(εἰμι)는 현재형입니다(I am).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καὶ ἡ χάρις αὐτοῦ ἡ εἰς ἐμὲ οὐ κενὴ ἐγενήθη,
and the grace of Him which to me not vain was
직역하면 ‘나에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주신’이란 동사는 번역상 첨가한 것이고, ‘헛되지 아니 하여’에서 동사(ἐγενήθη)는 부정과서 수동태로서(was) 확실히 헛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ἀλλὰ περισσότερον αὐτῶν πάντων ἐκοπίασα,
but more abundantly than them all I toiled
직역하면 ‘그러나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내가 수고하였다’는 뜻입니다.
동사(ἐκοπίασα)는 부정과거로서(ἐκοπίασα) 과거에 수고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οὐκ ἐγὼ δὲ, ἀλλὰ ἡ χάρις τοῦ Θεοῦ σὺν ἐμοί.
not I however, but the grace of the God with me
동사는 없으나 좋은 번역입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이고,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에 사도라고 일컬음 받기에 적당치 않도다. 그러나 현재 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 것이로다.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욱 일했으나,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For I am the least of the apostles, and not fit to be called an apostle, because I persecuted the church of God.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ward me did not prove vain; but I labored even more than all of them, 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with me.)
1.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당시의 일부 신자들은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 이처럼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한 것은 두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처음 열두 사도들의 복음과 일치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둘째는, 바울이 처음 열두 사도와 같은 반열에 서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2) 첫째 문제에 대해서, 바울은 분명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복음이 전적으로 첫 사도들의 복음과 일치한다고 말합니다.
3절에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은 그의 복음이 전승에 기초한 것임을 말합니다.
(3) 그리고, 4절에서는, 이 전승에 기초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즉, 전해져 내려오는 복음의 내용은 우리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지냄과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4)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반열에 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8절은 부활의 목격자들을 열거했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러면서, 바울은 자기도 이 부활의 증인들 가운데서 마지막에 끼어 있다고 밝힙니다.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이처럼, 바울은 자신도 부활의 목격자 된 사도들과 동일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음을 주장합니다.
이와같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게바에게서 시작되어 바울에게서 끝납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게바는 시간적인 차이는 있을지라도 질적인 차이는 없는 부활의 목격자 된 사도들입니다.
즉,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도록 위탁을 받은 자격을 갖춘 사도였습니다.
(5) 복음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구원 사건에 대한 진술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그의 장사지냄으로써 확인되었고, 예수님의 부활은 게바와 열 두 제자와 바울의 목격에 의해서 확인되었습니다.
즉, 십자가에 달리신 분과 부활하신 분은 동일한 예수님이심을 확증해주고 있습니다.
2. 이처럼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인이 되었고, 특히 다른 사도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 받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믿기 전에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에, 자기를 지극히 작은 자이고, 사도라고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부활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고, 이방인의 사도로까지 세움을 입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9-10절.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절.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ther then it was I or they, so we preach and so you believed.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εἴτε οὖν ἐγὼ εἴτε ἐκεῖνοι,
whether therefore I or they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οὕτως κηρύσσομεν, καὶ οὕτως ἐπιστεύσατε.
so we preach, and so you believed.
직역하면 ‘이렇게 우리가 전파하매 그렇게 너희가 믿었다’는 뜻입니다.
앞의 동사(κηρύσσο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preach) 현재 전파하고 있는 모습이고, 뒤의 동사(ἐπιστεύσα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believed) 너희가 과거에 확실히 믿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하나님의 교회에서 직분을 맡게 해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하시고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