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건 틀니가 아니었다
박 현 옥
1)전화기 너머 시어머니 목소리가 힘이 없다. 틀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이 지났다고 했다. 식사 후 빼놓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집안 구석구석을 다 뒤졌단다.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샅샅이 살펴봤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고 했다.
2)“내가 요즘 정신이 없다. 조금 전 일도 생각이 안 나고...” 그 말속에 자책과 미안함이 배어 있었다. 어머님은 이십년 전 부터 부분 틀니를 사용하셨다. 일 년 전 오래 사용한 틀니가 불편해서 새로 맞춰드린 것이었다. 혹시나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며칠 더 기다려보았지만 아무래도 다시 제작해야 할 것 같았다.
3)“예약만 좀 해주면 내가 택시 불러서 타고 갈란다. 너거는 바쁜데 신경 쓰지 마라.”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치과는 우리 가족이 삼십년 넘게 다니는 곳이다.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예약을 잡았다. 동행을 만류하는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 남은 치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를 찍었다. 사랑니가 좋지 않아 치료 후 틀니를 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 간격으로 세 번 정도는 더 내원해야 마무리된다고 했다.
4)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 며칠째 식사도 제대로 못한 데다, 한 달 연금을 고스란히 틀니 비용으로 써야 하니 마음이 편치 않으신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옆집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올해 아흔이 넘은 치매 할머니를 가족들이 집에서 돌보고 있는데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아 가족들이 매일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사는 건 사는 사는것도 아니지….” 어머님은 말 끝을 흐리셨다.
5)아버님 역시 루이소체 치매로 오랜 시간을 힘들게 보내시다 돌아가셨다. 병원에 입원해 수면제를 처방받아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침대에서 앉았다 눕기를 반복했다. 자꾸만 침대 아래로 내려오려 해 병실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매일 밤 병실 밖 복도에 침대를 꺼내놓고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휠체어를 타고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해 일어서다 넘어지기도 했다.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간병사들 조차 이삼 일을 넘기지 못하고 두 손을 들었다. 위험군 환자로 소문이 퍼지면서 간병사를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6)그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어머님이기에 치매에 대한 두려움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팔십대 후반의 연세로 무릎 수술로 인한 생활의 불편함은 다소 있지만 복용 중인 약 이름까지 다 외우실 만큼 정신은 또렷하다. 그럼에도 틀니를 잃어버린 사건은 어머님의 정신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듯 했다.
7) 젊은 사람들도 흔히 하는 실수라고, 치매와는 상관없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어머님은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한다. 틀니를 잊어버리고 자존감마저 잃어버린 듯 했다. 외출을 할 때면 ‘멋쟁이 할머니’라는 말을 자주 들을 만큼 단정하던 분이 요즘은 외출조차 꺼린다.
8)이제 우리 사회는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치매는 더 이상 개인이나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 본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가족 간의 갈등과 해체로 이어지기도 한다. 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의학의 발달로 사람의 전체 평균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아직 치매의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9)나 역시 생의 반환점을 돌아 건강을 염려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머님의 불안과 두려움이 더 이상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안전장치가 될 순 없지만, 자식들의 미래에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최소한의 대비책으로 치매보험과 간병보험을 가입해 두고 있다. 늙어간다는 것은 몸이 쇠약해짐과 동시에 어느 날 문득 손안의 모래처럼, 자신의 소중한 기억들이 서서히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함께 염려해야 하는 일 인 것 같다.
10)어머님을 힘들게 하는 것은 단순히 틀니의 분실이 아니라, 노화의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다가오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삼 주 후면 새 틀니가 완성된다. 그 날, 어머님의 잃어버린 자신감과 자존감도 되찾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첫댓글 시모님을 모시고 치과병원에 다니시면서 본인의 미래도 염려하시는 심정도 공감이 됩니다.
년세가 들어가면, 어찌할 수가 없는 모양이지요.
계실동안 잘 모셔 드리시고, 본인 건강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_()_
치매를 걱정하는 글이군요.
치매도 '예쁜 치매, 귀여운 치매'가 있다네요. 평소 성격 관리를 잘 해야겠지요.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