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하남 사국치, 임종에 말을 잃었으나 조념으로 왕생하다
3년 전, 나의 아버지 사국치(謝國治)가 왕생한 일은 온 마을에 큰 화제가 되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그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삼보에 귀의하여 염불을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평생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어떤 고생도 묵묵히 감내하셨으며, 생활은 검소하고 성품은 충직하고 선량하여 우리 마을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훌륭한 분이셨다.
1998년 여름 어느 날 오후, 나는 갑자기 몹시 졸음이 쏟아져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매우 또렷하게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을 뵈었다. 당시 나는 아직 불교를 믿지 않았고, 그분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였다. 잠에서 깬 뒤 몹시 이상하게 여겨 이웃들에게 그 일을 물어보았다.
이웃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이 꿈에서 뵌 분은 관세음보살님이오. 당신은 분명 관세음보살님과 인연이 있는 사람인데, 어째서 관세음보살님을 공경하지 않소?”
이웃이 나에게 불교 서적 몇 권을 빌려주었다. 나는 책을 손에서 놓을 새도 없이 단숨에 모두 읽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염불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구나! 임종에 이르면 아미타불께서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는구나.”
그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큰 기쁨이 솟아올랐다.
염불의 공덕을 알게 된 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께 염불을 권해 드려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당시 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아 아홉 차례나 검사를 받고도 병명을 밝혀내지 못하였다. 나는 아버지께 염불기 하나를 드리며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염불하시라고 권하였고, 불법에 대해서도 자주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아버지는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으셨다.
“나는 공산당원이야. 평생 어떤 종교도 믿어 본 적이 없어.”
아버지는 비록 염불은 하셨지만, 아직은 굳게 믿지는 않으셨다. 그러던 중 1999년 1월, 병세가 악화되어 검사를 받은 결과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날마다 불상 앞에서 아미타불께 기도드렸다.
“만일 아버지의 수명이 다하였다면 서방극락세계로 접인해 주시고, 아직 수명이 남아 있다면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날마다 이렇게 기도하며, 부처님의 가지(加持)로 아버지께서 염불하여 왕생하는 일을 진실로 믿게 되시기를 간절히 빌었다.
1999년 11월, 아버지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었다. 나는 인근 화피진(華皮鎭)의 청련(清蓮) 법사와 몇몇 연우들을 모셔 와 아버지를 위해 조념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병이 이렇게 심한데, 무슨 정신으로 염불을 하겠느냐?”
결국 법사와 연우들은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속으로는 이렇게 다짐하였다.
“아버지께서 임종에 이르시면, 반드시 사람들을 모셔 와 조념을 해 드려야겠다.”
24일 오전, 아버지의 병세는 더욱 위중해져 이미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하였다. 형제자매 여섯은 모두 마당 밖에서 울고 있었다. 나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약 아버지께서 염불하여 왕생하지 못하시면 어떻게 하지?”
나는 두 오빠에게 거사들을 모셔 와 염불해 달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큰오빠는 반대하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 불교를 믿고 염불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 남들이 알면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느냐?”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들이 불교를 믿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복이 없기 때문이에요.”
큰오빠도 더는 말리지 못하겠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럼 네가 알아서 해라.”
나는 기쁜 마음을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참으로 불보살님의 가지(加持)에 감사드린다. 나는 울면서 청련 법사와 몇몇 연우들에게 전화를 걸어 서둘러 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들은 곧 아버지의 병상 앞에서 염불을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말없이 누워 계셨는데, 이미 말씀을 하실 수 없는 상태였다.
내가 말씀드렸다.
“아버지! 저희가 아미타불을 불러 드릴 테니, 잘 들으셔야 합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가 다시 말씀드렸다.
“아버지,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말고 잘 들으셔야 합니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셨다.
다음 날 새벽 0시 35분, 아버지는 숨을 거두셨다. 새벽 1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기적이 나타났다. 막내여동생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오셨어요! 오셨어요!”
모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하였고,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무릎을 꿇었다. 어떤 이는 향내를 맡았고, 또 어떤 이는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였다.
가장 먼저 서상을 본 이는 막내여동생이었다. 여동생은 먼저 아버지의 정수리에서 한 줄기 연기 같은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속으로 ‘믿을 수 없어! 그래도 믿을 수 없어!’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곧이어 당승(唐僧)을 닮은 한 분을 보았고,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계신 관세음보살님도 뵈었으며, 이어 불광(佛光)을 보고 아미타불을 친견하였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 둘째 여동생은 아버지의 시신이 이미 다라니 이불(陀羅尼被)로 덮여 있는 것을 보자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였다. 막내여동생은 삼성상(三聖像) 속에서 보이던 아버지의 표정이 갑자기 매우 좋지 않게 변한 것을 보고, 급히 둘째 언니에게 울음을 그치고 어서 아미타불을 부르라고 한 뒤 다시 삼성상을 바라보니, 아버지는 이미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막내여동생이 말하였다.
“정말 불가사의해! 이제는 정말 믿게 되었어. 누가 믿지 않는다 해도 나는 이제 아미타불을 진심으로 믿게 되었어!”
아버지의 얼굴은 아직도 따뜻하였고, 손도 여전히 부드러웠다. 나는 조금도 슬프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없이 기뻤다.
아미타불의 크신 은혜는 이 한평생 다 갚을 수가 없다. 지금은 우리 가족 모두는 물론, 우리 마을의 많은 사람들까지도 불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남성(河南省) 상채현(上蔡縣) 사당촌(謝堂村) 사화영(謝華榮) 기록)
생각건대:
임종을 맞이하는 데에는 요결이 있으니,
오로지 염불하고 울지 말아야 하네.
염불하면 망자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울음소리를 들으면 망자의 안색이 변하네.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일향전칭(一向專稱)일향전념(一向專念)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念佛真好)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조념염불을 반대하는분도
있었지만 기필코 부친의
왕생을 위해 염불하려는
절절한 마음을 저도 경험하여
알듯합니다 전화드리면 오시는
연우님들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저도 아미타부처님
친견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수희찬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합장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숨이 끊어진 뒤에 아미타부처님께서 오셨다는 건 왕생발원이나 믿음없이 임종에 이르러서야 조념을 통해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시고 구제를 받아들인게 아닌가 싶습니다.
형제들의 반대에도 결국 거사단을 모셔와 조념으로 부친을 왕생할 수 있도록 마지막 효를 다한 따님 수희찬탄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