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다니지 마라
우리나라에서는 ‘인간관계’라는 단어가 대충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상이한 의미로 사용되는 듯하다. 첫째는, ‘저는 너무 내성적이라서 친구를 사귀지 못합니다. 대학에서는 스스로 인간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데 저는 지금까지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했습니다’ 하는 경우의 인간관계와 둘째는, ‘교수들이 학회에 공부하러 가나? 인간관계 넓히려 가는 거지’ 할 때의 인간관계이다. 전자가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적 욕구에 의해 추구되는 인간관계라면, 후자는 생활상의 문제를 쉽게 해결하거나 출세를 위해 주로 힘 있는 자에게 접근하여 인연을 엮는 처세술 차원의 인간관계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퇴니스의 사회 분류에 따르자면, 전자는 게마인샤프트(감정 공유의 공동집단)를, 후자의 경우는 게젤샤프트(이해타산으로 맺어진 이익집단)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후자의 경우도 속으로는 명백히 게젤샤프트이면서 겉으로는 게마인샤프트인 척 위장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외형적으로는 정과 친분으로 맺어진 듯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각자 자신의 이익 추구가 목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퇴니스의 분류 상에도 없는 이런 집단은 도대체 무엇인가? 뭐긴 뭔가, 그런 것이 바로 결탁에 의해 눈먼 돈을 주워먹거나, 원칙을 무시하면서 출세하려는 부정부패 집단이지! 그렇다면 그런 썩은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첫 번째 의미의 인간관계, 즉 외로움을 이기기 위한 인간관계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러한 이유로 타인을 가장 강렬하게 원하는 시기는 아마 청소년기일 것이다. 청소년들은 아동 시절의 부모에 대한 기대와 의존은 사라졌으되, 그 대신 든든한 개인으로의 ‘홀로서기’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으므로, 과도기의 불안한 상태를 또래 집단에 철저히 소속됨으로써, 즉 집단정체감(group-identity)을 차용함으로써 버텨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시기에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못한 소위 왕따(집단따돌림의 대상)는 내적 불안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까지도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깟 일로 목숨까지 버리느냐고 성인들은 탓할지 모르겠으나, 그들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아니 그러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절체절명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청소년들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성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대학생은 물론 나이가 30, 40이 되었으면서도 혼자는 영화도 못 보고, 심지어 밥도 못 먹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들은 나이값을 못하는 미성숙자들이다. 왜 그런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일까? 그 원인으로서는 자녀를 과보호하여 의존적 성격으로 키운 부모들의 양육방식, 혼자서는 살아내기 어렵게 되어있는 우리 사회의 패거리 풍토, 혼자 즐기는 방법을 모르는 척박한 여가 문화 등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직업이 상담가인만큼 심리적 측면에서도 한 가지 원인을 찾고 싶은데, ‘인간관계에 대한 비합리적 가치 부여와 과도한 기대’가 바로 그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혼자’는 곧 ‘죽는 것’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혼자 있지 않으려고, 상대방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말이 통하든 안 통하든, 항시 누군가의 곁에 붙어 있으려 드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조언하고 싶은 것은, ‘한번쯤 혼자 있어 보라’는 것이다. 혼자 영화도 봐 보고, 혼자 식당에도 가 보고, 혼자 여행도 떠나 보라. 그래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히려 자유로움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고립’을 택하라는 것은 아니다. 내 뜻은 애정과 인정을 구걸하는 수준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자아 실현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참고로 매슬로우라는 심리학자는 창조적 업적과 인격적 성숙을 통해 자아실현을 이룬 세계적인 위인들의 삶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그들의 인간관계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으니 눈여겨보기 바란다.
자아실현자들은 공통적으로 타인과의 깊은 우정과 사랑, 동료애, 가족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대인관계의 폭이 꼭 넓었던 것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교제의 범위가 매우 좁고 가까이 하는 사람도 적었으나, 그들의 인간관계는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갈망하고 구걸하듯 한 결핍 욕구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애정 결핍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애정을 갈구하지도 않았다. 타인에 대한 이들의 관심과 사랑은 자신과 타인의 성장과 발달을 함께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으로서 결핍 동기보다는 성장 동기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재미와 기쁨, 즐거움과 웃음, 위로와 지지를 함께 나누는 관계로 발전되었다.
또한 그들은 사회계층이나 교육수준, 정치적 의견, 학연과 지연, 인종과 피부색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고 수용적이며 차별 없이 대하는, 참된 의미의 민주적 성격구조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 자기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듣고 배우려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학문 수준이 매우 높았던 어떤 자아실현인은 자신이 갖지 못한 기술과 지식을 갖고 있는 노동자와 목수도 진정으로 존중하고 존경하였던 것이다.
끝으로 그들은 고독한 존재로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 대하여, 그리고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때로 즐거워하고 때로 고통 받는 모든 인류에 대하여, 같은 운명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의 공감과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즉 만인에 대한 인류애와 형제애를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고 잔인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조차도 적개심과 공격성을 보이기보다는 이해와 용서를 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의 바탕이 되었다.
어떤가? 멋지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다 같이 겉으로나마 그들을 흉내내 보자. 혹시 그런 식으로 사는데 도움이 될까하여, 펄스(Perls)라는 심리학자가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으로 제시한 문구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 짓는다. 제목은 ‘게스탈트 기도문’이라 하는데, 자신이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연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가까이에 붙여두고 늘 암송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게스탈트 기도문
나는 나의 일을 할 것이다.
너는 너의 일을 하라.
내 삶은 너의 기대에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다.
너 역시 나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너는 너,
나는 나.
만약 우연히도 우리의 마음이 서로 맞는다면 참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Gestalt Prayer
I do my thing and you do your thing.
I am not in this world to live up to your expectations
And you are not in this world to live up to mine.
You are you, and I am I,
And if by chance, we find each other, it's beautiful.
If not, it can't be helped.
(경남대 김원중)
첫댓글 교수님,, 저도 혼자는 외로워요.쇼핑하는 것도, 식당에서 혼자 밥먹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은 더더욱이....
그래서 아예 안가고 그냥 집에서 자요. 그게 견디기 어려워 결혼을 했나봐요. ㅋㅋ
근데 운전을 배운 이후에는 혼자 바람을 쐬러 다녀도, 차 안에서 혼자 햄버거를 먹어도, 혼자 운전을 하며 돌아다녀도 외롭지가 않아요. 때로는 혼자 일때가 더 행복하지요^^ 어쩜 귀찮을수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자유로움과 안정감이 찾아오겠지요
교수님...자아실현인이 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죠?
저는 영화나 쇼핑은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같이라서 좋지만 때로는 혼자가 편할 때도 있더라구요.
하지만 밥 먹는 것은 혼자가 어렵더라구요. 이상하게 먹고 사는 건 당연한 이치이거늘 늘 혼자 밥 먹기가 왠지 창피스러워요.
다른 건 다 할 수 있겠는데...혼자와 함께...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삶이 필요한 것 같아요.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소견으로는 경지에 도달한 기도문 입니다. *^^*
결혼을 해보니 더 절실히 공감하게 됩니다.
만약 우연히도 우리의 마음이 서로 맞는다면 참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