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빈이의 촐싹거림: 공룡 다리를 잃어버리다.

선빈이의 촐싹거림: 공룡 다리를 잃어버리다.   그저께(2003. 6.13.) 저녁 오랜만에 가족 외식을 하고 서점에 들렀다.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책을 한 권씩 사라고 했더니, 선빈이만 책이 아니라 ‘공룡 뼈 조립하는 장난감’을 샀다. ‘벨로시 랩터’라는 공룡인데 플라스틱 조각 몇 개 들어있는 것이 9500원이나 했다. 속으로는 못마땅했지만 좋은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서점을 나와 차를 타러 가는 동안 선우와 선형이는 자기가 산 책을 읽으며 걸어갔다. 선빈이도 비닐 봉지에서 공룡뼈를 꺼내려고 하기에 조각이 작고 수가 많아 잃어버릴 염려가 있으니 집에 가서 조립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빈이는 몇 걸음 가지 않아 기어코 봉지를 뜯고 말았다. 그리고 차 속에 들어가자마자 시트 위에 모두 쏟아놓고 본격적으로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 날 우리는 바로 귀가하지 않고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 들렀는데, 그곳에서도 선빈이는 다른 놀이를 하지 않고 어두운 벤취 위에 혼자 엎드려 계속 공룡 뼈 조립만 하였다. 한참 후 내가 선우와 배드민턴을 하고 있는데 선빈이가 주춤주춤 다가오더니, “에이씨, 공룡 뒷다리 두 개가 없네.” 하며 투덜거리는 것이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집에 가서 조립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아무데서나 꺼내더니 결국 그 짓을 해 놓았네. 그래도 화를 참으면서, “어디서 잃어버렸어? 선우야, 같이 찾아보자”  하고 모두 찾기에 나섰다. 곧 선우가 벤취 밑에서 뼈 조각 하나를 찾았다. 그러나, 나머지 하나는 벤취 근처와 차 속까지 샅샅이 훑어도 영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아까 길거리를 걸으며 봉투를 뜯을 때 떨어진 듯 했다. 내 표정이 좋지 않자, 아내가 옆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뭘 그래요. 제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샀는데 당장 안 뜯어보고 어떻게 한참을 기다려요? 그게 애들이지요.”   정말 애들은 다 그런가? 그래서 애들인가? 인내 혹은 ‘만족의 지연’이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어려운가? 그래서 또 발달심리학 책을 찾아보았다.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Mischel과 Ebbesen(1970)은 3 ～ 5세의 유아들을 대상으로, 두 종류의 먹을 것을 보여주면서 15 분을 기다리면 더 맛있는 것을 주고, 기다리지 못하고 그 전에 먹는다면 맛없는 것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두 가지 먹을 것을 유아들 눈앞 놓아두었더니, 대부분의 유아들은 1 ～ 2분 이상을 기다리지 못하고 기어코 맛없는 것이라도 달라고 요구했다. 극히 소수의 유아들만 15 분을 기다려 더 맛있는 것을 얻게 되었는데, 그 아이들은 눈을 감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눈앞의 유혹을 이겨냈다고 한다.   Mischel과 Mischel(1983)의 후속연구에서는 6 ～ 8세 아동들은 대부분 스스로 눈을 감거나 유혹적인 물건으로부터 시선을 돌림으로써 유혹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11 ～ 12세가 되면 상상을 통해 눈앞의 물건을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실제로는 매우 좋아하면서도 ‘나는 저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자기 암시를 하는 방법으로 유혹을 물리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외의 많은 연구를 통하여 ‘만족의 지연(delay of gratification)’을 포함한 유아의 ‘자아통제력’은 청소년기의 ‘충동 억제력’은 물론 성인기의 직업적 성공 및 전반적인 생의 만족도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어릴 때 눈앞의 유혹을 이겨내는 힘이 강했던 아이가 청소년이 되어서도 순간적인 충동을 잘 참는 등 인내심이 더 강했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직업에서 성공을 거두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유아기 때 엄마가 무심하거나 무섭게 하지 않고 아이의 요구를 민감하게 알아차려 부드럽게 응해주는 것이 아이의 자아통제력을 높이는 비결이라고 한다. 내용을 보니 이게 바로 감성지능(EQ)이요, 또 EQ를 높이는 방법인 듯하다.   이론대로라면 초등학교 3 학년이나 된 선빈이가 이렇게 자제력이 부족한 것은 결국 아내가 애를 너무 두들겨 패며 키워서 그리 됐다는 말이 아닌가? 내가 그렇게 애들 때리지 말라고 말했었건만......   (2003. 6.15.) (경남대 김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