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너더리통신 40/170920]Simple Life, High Thinking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
잠언(箴言)같은 이 말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H.D. Thoreau)의 ‘월든’(WALDEN)에 나온다. 소로는 누구인가? 1817년에 나서 1862년에 죽은 초절주의자(Transentalism) 에머슨의 친구. 하버드대학 법대를 나오고도 문명이 싫어 월든 호숫가에 2평 남짓한 작은 통나무집을 제 손으로 짓고 2년2개월 동안 직접 농사지어 자급자족하며 ‘노예의 삶’을 근원적으로 거부한 ‘자유로운 영혼’. 정부의 세금 내기를 거부하여 감옥행을 자청하기도 했다. 에게해의 또다른 자유인 ‘희랍인 조르바’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긴 하지만, 생명을 성찰하고 사랑하는 인물이라는 점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월든‘은 그때의 생활을 기록한 주옥같은 명상록이다. 그는 끊임없이 ’간소하게 살라‘고 외치고 있다. 소로는 ‘장자’(莊子) 등 동양고전에도 해박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 책을 발견하고 ‘나홀로’ 얼마나 기뻐했던지 지금도 기억이 새롭다. 영문도 모르고 영어영문과를 진학했지만, 학과 선택하는데 조금은 영향을 미친 고전(古典), 대학 진학 후 맨 처음 샀던 영어 원서가 포켓북 ‘월든’이었다. 아무렇게나 다녀버린 대학생활, 그래도 진작부터 ‘월든에 비친 장자의 사상에 대하여’라는 졸업논문 제목을 일찌감치 정해놓았건만, 시간에 쫓겨 ‘윌리엄 워즈워드의 자연시’라는 제목으로 이쪽저쪽 논문을 짜깁기해, 오래도록 후회했던 기억도 새롭다.
아무튼 직장동료 중에 유난히 논리적이고 부지런한, 최소한 문사철(文史哲)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건전한 가치관과 생활관이 뚜렷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입에 달고 사는 좌우명이 ‘심플 라이프 하이 싱킹(Simple Life, High Thinking)’이다. 뜻이야 글자 그대로 심플하다. ‘생활(삶)은 간단하게(심플이라고 말해야 개념이 더 명확해지는 것이 문제이다), 생각은 고결(高潔) 고상(高尙)하게’이지 않는가. 참 똑부러진 조어(造語)인 것같아 탄복, 박수를 쳤다. 우리 도시인이자 샐러리맨들은 너무 바쁘고 복잡하게 산다. 솔직히 하루하루를 되돌아보며 성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거나 가족사랑을 실천하는 가장이 몇 명이나 될까? 문득문득 우리의 내일을 위하여,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 현주소를 점검해볼 필요는 없을까? 한 달에, 아니 일년에 마음의 양식(糧食)이 될 양서(良書)를 몇 권이나 읽을까? 그러니 마음이 헛헛하여 때때로 정신적인 고갈(枯渴)을 느끼지 않을까?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 친구가 이런 심플한 좌우명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제대로 실천만 하면 생활이 윤택해지며 마음이 한없이 ‘부자(富者)’가 될 것이고, 시쳇말로 ‘대박의 삶’이 아닐까.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은 잘 알 것이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악착같이 약속을 하지 않으려 해도 두세 번은 피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술도 마셔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지만, 직장일도 충실해야 하고 자식사랑, 아내사랑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바쁘게 살다가는 혹시 ‘생활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일말의 불안을 안고 사는 우리는 언제까지 ‘회색인간’일 것인가.
하여 나도 덩달아 외쳐 본다. “뜻은 높게, 생각은 깊게, 영혼은 맑게, 삶은 소박하게” 언제나 정답은 소로의 ‘일은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이고,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이다. 마침맞게 올해 3월 12일은 소로의 탄생 200주년의 생일이었다. 국내 출판사들도 소로를 재조명한다며 ‘월든’ ‘소로의 야생화일기’ ‘소로의 일기’ ‘시민불복종’ 등을 잇달아 펴냈다. 그가 왜 이 시대에 생태주의자로 각광을 받는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최재천 교수는 최근 신문칼럼에서 국립생태원에 '제인 구달의 길'과 '다윈-그랜트의 길'에 이어 ‘소로의 길’을 추진하려다 무산되어 아쉽다고도 했다.
아무튼, ‘심플 라이프, 하이 싱킹’은 법정스님이 생전에 펼친 ‘맑고 향기롭게’ 시민운동의 뜻과 부합되리라. 늘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날마다 새로운 날을 이루어가며 ‘맑고 향기로운’ 삶을 위하여, 우리의 '심플 라이프, 하이 싱킹'을 위하여, 북한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미치도록 청명하고 쾌청한 가을하늘 아래에서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