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赤旗
휴일, 아내와 우에노 공원에 놀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시마 역에서 지요다선 전철을 타고, 아야세 역에 내려, 역 앞 이자까야에서 저녁 겸 술 한잔하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 오는 길.
" 여보! 살려줘!"
내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아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아내에게 달려 갔더니, 아내는 자전거에서 내려 주저앉아 있었다.
발가벗은 남자가 육교 기둥에 숨어 있다가 도망을 갔다. 나는 뒤쫒으며 오랜만에 한국말로 마음껏 욕을 했다. 돌을 던지며......
남자는 너무 빨라 잡을 수 없었다. 남자의 알몸뚱이 하얀 색이 어둠 속에서 멀리까지 희미하게 사라졌다. 괜히 아내에게 미안했다. 변태의 나라에, 순진한 시골처녀를 데리고 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아내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수 없이 변태들에게 당했다고 했다. 상상을 초월한 아내의 이야기에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일본에서 와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학교 앞, 내 방 앞 문에 꽂혀 있는 공산당 기관지 '적기(赤旗)' 였다. 그리고 여자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
처음 느낌은, 공산당이란 빨갱이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겁이 났다. 반공법이 강하게 버티고 있던 시절이었다. 한참을 무시하다가, 우연히 적기를 읽다가, 서서히 흥미를 갖게 되었다. 전혀 정치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반 신문 보다 덜 정치적이고, 사회에 대한 신선한 시각과 정보를 많이 주고 있었다. 서서히 독자가 되어가다가 한달에 600엔을 내는 정식 독자가 되었고, 그것은 곧 일본 공산당원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난 그래서 반공법을 위반한 범법자가 되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그 후, 선거 철, 오까야마 대학 학회에 갔다가, 신선항 광경을 목격했다. 자전거를 타고 선거운동 하는 주부, 공산당 후보였다. 그 후보 이름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확인해 보았더니, 1등으로 당선이었다. 혼란스러웠던 내 머릿속은 새로운 감동으로 채워졌다.
자전거와 赤旗가, 결혼을 결심하고 아내를 일본으로 데리고 온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물론, 외로움이 더 컸겠지만. 맞선을 보고 네번 만나고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 설악산 하루 다녀오고 아내와 일본에 왔다. 처음에는 아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학교에 가서, 외국인 유학생 가족을 위한 일본어 교실에 태워주다가, 아내의 자전거를 사서 직접 가르쳐서, 아내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내 뒤를 따라 오다가 육교 기둥 뒤에 발가벗고 있다가 여자만 지나가면 나타나는 변태를 만난 것이다.
일본은 자전거 관리에 철저했다. 등록증이 있어야 하고 둘이 타면 경찰이 단속했다. 단속까지는 참을 수 있었는데, 외국인 등록증을 보여줘야 했던 수모를 받으며 반말을 지껄이는 경찰에 대해서는 아내가 자전거를 홀로 타야했고 변태를 만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일본 공산당은, 일본 정치에서 제일 오래된 정당이다. 1922년 창당이 되었고. 제국주의 일본에 반대했고,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이 많은 영향을 받고 도움도 주었다. 지금은, 북한과 중국 공산당과는 교류가 별로 없다. 그들의 노선에 대해서는 오히려 일본 자민당 보다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의회에서는, 공산당의 영향이 상당히 크다. 내가 선거운동 하는 자전거 탄 주부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은, 공산당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일본 중앙정치는 극우세력 자민당이 장악을 하고 있지만,지방의회에서는 공산당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모범이 되고 있다.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원동력이 자전거 탄 주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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