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성金井山城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 길이 1만 8845m, 성벽 높이 1.5~3m, 총면적 약 8.2㎢로,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처음 산성을 쌓은 시기는 문헌상으로는 확실하지 않으나,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했다는 사실로 미뤄 신라 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1667년(현종8)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산성의 기초는 1703년(숙종29)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의 건의로 동래부사 박태항朴泰恒이 성을 쌓았고, 1707년(숙종33)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중성中城을 새로 쌓았으며, 1808년(순조8)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무너지고 없어진 성을 고쳐 쌓았다. 산성의 보수 정비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인 1972년부터 복원과 함께 시작됐고, 금정산성 정비계획에 따라 연차적,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금정산성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에 대비하기 편리한 낙동강 하구와 동래 지방이 내려다보이는 요충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 후기 부산 지방의 국방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금정산성 동문
금정산성 네 개 문루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전망이 뛰어난 동문은 금정산 주 능선의 해발 415m의 고개에 위치한다. 주민들이 근접하기 쉬운 편이라 금정산성의 으뜸 관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 동문은 1703년(숙종 29) 금정산성을 축조하면서 함께 설치됐다. 1806년(순조 6) 동래부사 오한원이 동래읍성의 배후 성지로서 금정산성의 경영을 요청해 1807년 가을에 완성됐다.
'금정산성 부설비'의 기록에 의하면, 1807년(순조 7년) 늦가을에 토목공사를 일으켜 한 달 만에 동문이 완성됐다고 전해진다. 동문은 홍예식虹霓式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단층 문루이며, 문 폭은 3m, 홍예의 높이는 3.4m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동문이 허물어져 육축陸築(성문 축조를 위해 무사석 등 큰 돌로 축조한 성벽)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197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부분적인 보수와 해체 보수가 이뤄졌다.
금정산성 동문의 창건 유래와 관련해서는, 동래부사 정현덕(1867~1874)이 동문과 서문의 재건에 힘쓰고 있을 때의 이야기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래부사는 두 성문을 아주 완벽하게 세우기 위해 이름난 석공을 수소문한 끝에 사제지간인 두 석공을 찾아 스승에게는 동문을, 제자에게는 서문을 짓게 하였다. 동문을 맡은 스승은 야욕과 욕심이 많아 웅대하게만 짓고자 했으나 서문을 맡은 제자는 기술이 앞서 정교한 아름다움을 살려 스승보다 먼저 짓게 되었다고 한다. 스승은 제자의 뛰어난 기술을 시기하고 질투해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스승을 미워하고 제자의 기술을 칭송했다. 그러나 이들 사제는 동문과 서문 공사가 끝난 뒤에는 힘을 합쳐 밀양 영남루 공사를 했다.
금정산성 서문
낙동강에서 부산 북구 화명동 대천천을 따라 올라가면 산성마을이 나오는데, 금정산성 서문은 산성마을 입구의 북쪽 구릉지 해발 230m에 위치한다. 1824년(순조 24) 금정산성 서문의 문루를 만들었는데, 성문 중에서 유일하게 계곡에 세워졌다. 그 이전에는 육축과 성문만 축조되고 성문에는 문루가 없었다. 성문 위에 지은 초루와 'ㄷ' 자 모양으로 조성한 성곽은 그 모습이 견고하고 아름다웠다. 금정산성 서문을 통해 낙동강과 구포·김해 방면으로 왕래했다.
금정산성 남문
남문에서는 북쪽으로 고당봉이 정면으로 올려다보이고, 남쪽으로는 백양산이 보인다. 백양산과 남문 사이는 만덕고개와 만덕동이 자리한다. 그리고 금강공원에서 출발하는 케이블카 종점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금정산성 부설비'의 기록에는 '1808년 초봄에 기둥과 들보를 100리 밖에서 옮겨오고, 벼랑 끝에서 험준한 바위를 깎아내어 메고 끌어당기는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들어서 만萬 사람이 일제히 힘을 쓰니 149일 만에 남문의 초루譙樓가 완성됐다'고 전한다. 남문은 평거식平居式으로 문의 상부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익공계 팔작지붕의 단층 문루이며, 문 폭은 290cm, 높이는 280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