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동에서 상류암을 거쳐 영랑대까지(200110~12)
▣ 일 시 : 2020년 01월 10일(금)~01월 12일(일)
▣ 코 스 : 새재-상류암지-청이당터-행랑굴-영랑대(원점회귀)
▣ 인 원 : 6명[두발로팀 3명(홍운님, 如鳥님, 마래엔님), 산님, 도원님]
▣ 날 씨 : 최저 기온(영하 12도)
홍운(弘雲) 송창준(宋昌浚) 선생의 초대를 받아 지리산 600회 기념 산행에 참석하였다. 연초에 一丁 선생이 알려준 대원사 앞 석각도 확인할 겸, 금요일 출발하여 상류암 지에서 일박(一泊)을 하고, 토요일 아침 일행들과 합류하여 청이당을 거쳐 영랑대에 올라갔다. 600회라는 숫자의 의미는 집념과 열정 그리고 건강과 성실의 상징이기도 하다. 약관의 나이에 공무원에 투신하여 진주시청 과장, 동장, 면장을 10년 넘게 두루 역임하시고, 정년 퇴임 이후에는 시인, 수필가로 활동하시면서, 현재는 법무부 법사랑 위원 진주지역연합회 운영실장(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 203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분이다.
영랑대에 오르니 송선생님의 號와 같이 반야봉 위로 홍운(弘雲)의 파노라마가 펼쳐졌고, 600회 기념 산행 축하 이벤트로 홍운(弘雲) 선생 앞에서 강호언님이 거풍(擧風?) 공연을 하였고, 산님은 웃통을 벗어젖히고 반의지희(斑衣之戱) 대신 알몸 공연을 펼쳤다. 아침에 일출을 보면서 그동안 무엇을 해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였고, 저녁에 일몰을 보면서 반야의 붉은 구름처럼 아름답게 정년을 마무리할 것을 다짐하였다. 새벽의 기온은 영하 12도이고 체감 온도는 영하 18도이다. 삭풍(朔風)이 거세게 몰아치는 영랑대는 弘雲 선생께 태양의 붉은빛이 곧추선 일출과 반야의 운해를 선물하였다. 배낭을 패킹하는데 홀연 운무가 영랑대를 감싸고 사위를 분간할 수 없었다. 청이당을 지나 두발로팀은 감수재 박여량처럼 계곡으로 내려갔고, 우리는 제 길을 따라 키 큰 산죽밭으로 천천히 하산하였다. 덕산에 내려와 주민들이 운영하는 덕산 목욕탕에서 사워를 하고, 산청 덕산의 맛집 '권수경 황칠천국'에서 점심을 먹은 뒤 작별을 하고 각자 출발한 곳으로 돌아갔다,
산행을 하고 돌아와 장항동 석각 인물들을 검색하니 대원교 직전 석각 성명 도사(都事) 강재순(姜在淳)은 한말 지방 관료로 1919년 3월 18일 진주 정촌에서 3.1운동을 주도했고, 유석근(劉錫謹)은 1921년 남천 이도묵(李道默 ; 1843~1916)의『남천집』을 간행한 기록이 있고, 대원사 앞 바위 석각의 박응종(朴膺鍾,1893~1919)은 字가 경우(景愚) 號는 이당(易堂), 면우(俛宇) 곽종석과 회봉(晦峰) 하겸진先生의 門生이고, 파리장서운동의 숨은 협력자로 논문(2,000)에 나와 있어. 남사 마을 분으로 판단하고, 이사재 주인 박우근 선생께 연락을 하여, 밀양 박씨 세보에서 동일인임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나머지 네 사람은 아직 밝히지 못했다.
장항령(장항치) 추정지
贈貞夫人 密陽朴氏有功碑丙午四月/都事姜在淳 夫人南平文氏有功碑丙寅三月[위치 : 대원교 직전]
☞ 都事 姜在淳 : 진주 정촌 사람. 한말 지방 관료. 1919년 3월 18일의 진주군 정촌면(晋州郡井村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추정.[丙午:1906년.丙寅:1926년]
우로부터 유석근(劉錫謹), 유석정(劉錫鼎), 박규삼(朴奎參)[위치 : 대원교 직전]
☞ 유석근(劉錫謹) : 남천 이도묵(李道默 ; 1843~1916)의 제자로 추정. 1921년 유석근(劉錫謹)이『남천집』을 간행함, 유석정(劉錫鼎), 박규삼(朴奎參[미상]
우로부터 권건용(權鍵容), 박응종(朴膺鍾), 양화용(梁華容) [위치: 대원사 앞 계곡 바위]
☞ 박응종(朴膺鍾) : 字 경우(景愚) 號는 이당(易堂), 곽면우(郭俛宇, 곽종석)와 하회봉(河晦峰, 하겸진) 先生의 門生으로 한말 유학자. 파리장서운동의 숨은 협력자 논문에 나옴.
* [密陽朴氏世譜] 字景愚號易堂。一八九三癸巳生。郭俛宇河晦峰先生門生。文學夙就。不幸短命。世皆惜之。有文集二卷行干世。河晦峰先生序。一九一九年己未四月三日卒。享年二十七。○墓望椒亭後谷巳坐。有石物。碣濟南河經洛撰。行狀滄溪金銖撰。墓碣銘重齋金榥撰。<자료제공 : 남사마을 이사재 박우근님>
김병석(金炳錫) [위치 : 대원사 앞 石杠(석강 : 돌다리) 직전 도로변]
고종 15년 무인(1878)1월 25일(을해) 서원을 복구해 설립하라는 명을 내려 주기를 청하는 경상도 유생 유학 박주종(朴周鍾, 1813년∼1887) 등의 상소에 이름이 보이나 동일인인지 불분명하다. 다만 장항동을 유람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상우도 사림 유생들로 동일인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건물 석축
맷돌
장항령에 멈추어 다시 한번 옛길의 흔적을 확인하고 대원교와 대원사 주차장 앞 석각을 살펴보았다. 대원교 앞 석각 都事 姜在淳은 진주 정촌 사람으로 한말 지방 관료이다. 1919년 3월 18일의 진주군 정촌면(晋州郡井村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추정되고 석각의 시기는 1926년이다. 그 옆에 세 명의 성명 석각이 있는데, 유석근(劉錫謹)은 남천 이도묵(李道默, 1843~1916)의 제자로 보이며, 1921년 劉錫이『남천집』을 간행한 인물이다. 유석정(劉錫鼎)은 유석근의 형제로 추정, 박규삼(朴奎參)은 남사 마을의 밀양 박씨 문중의 인물인 듯하다.(미확인)
첫댓글 산 걸음이 의미심장하군요.
영랑대 웃퉁벗어제킨 산이도 건강해보이고요.
600회 지리산행은 의미가 있습니다.
새해에도 사업 번창하시고 안전산행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