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사순절이 시작되는 오늘
자작나무가 빛으로 전하는 침묵의 말을 배우게 하소서.
큰딸이 오고 집사람이 볼 일이 있어서 한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러
서둘러 전주에 왔다.
날씨는 춥고 비인가 눈인가? 오는가 마는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산을
접었다 폈다.
막내와 나는 괜히 차안에 갇혀 있다.
하원이에게 말을 거는데 짜증이 묻어있다.
날씨탓인가?
아, 빛으로 전하는 침묵의 말을 배우라고 입을 다물어야지 살풋
입술을 물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기다림에 지쳐서, 추워서, 난 그만 입을 열고 말았다.
"언니에게 전화를 해봐?"
"왜 벌써 몇 번째야 언니가 싫어해."
"그래도 해봐 어디까지 왔는지?
그래야 엄마를 재촉해서 마중을 가지."
"알았어."
마지못해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어디야 언니?"
"나도 몰라 도착하면 전화 할께 그만해."
"거봐, 아빠!"
"그런데 말투가 그게 뭐냐?"
"나도 몰라."
체면이 구겨지고 있었다.
평소 두 시간 반 거리를 다섯 시간 반을 채우고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큰딸이 지쳤다고 빨리 오라고 재촉한다.
집사람이 일을 마무리하고 가는데 차들은 꿈 뜨고 길이 아직 멀다.
어찌어찌 시간을 당겨 딸을 태우고 집으로 오는 길,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다.
길 건너 순두부집을 보고 유턴, 문 닫았다.
바로 그 윗집 손님이 너무 많다.
다시 유턴 집으로 오는길 모두 배가 고프다.
순대국을 먹고 가자는 집사람의 제안에 딸들이 좋다고 평소 고기를 잘 소화
못하는 나만 말을 못하고 있다.
집사람이 순대국밥 집에 전화를 해보더니 오늘부터 명절까지 쉰단다.
속으로 좋을씨고 하는데 집사람 왈,
그럼 시내 어디서 밥을 먹고 장을 보고 가자고
지름길로 들어선 나는 그냥 집에 가서 먹자니까 큰딸이 그렇게 하자고......
운전대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빛나는 침묵이 기회를 잃고 어깨가 축쳐저 있는데
집사람은 '나야 돈을 안 써도 되고 좋지'.
점심을 라면으로 때웠다.
함부로 입을 놀린 결과가 나를 보고 있다.
아궁이 앞에서 넋두리처럼
"오늘 하루가 이게 뭡니까?"
닭이 날개를 치듯 요란하게 제 일만 바쁘다는 듯
후다닥 타고 있는 장작불은 대답이 없다.
"주님!"
"......"
대답이 없으시다.
침묵이 아궁이 속에서도 빛나고 있다.
저녁을 먹고 돌아앉은 자리
가만히 있어도 되는 얘기를 식구들이 둘러앉은 자리에 펴놨다가
난도질을 당한 채 하루가 어둠으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주님이 끝까지 대답을 안 하신 이유를 알듯하다.
가르쳐 준 그대로 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설날을 어떻게 지내고 싶냐?"
"잘요."
그러면 빛나는 자작나무의 침묵을 물고 있어라.
산골짜기 눈에 잠이 가득 들었다.
그 때부터 자작나무는 빛을 내기 시작했고
나무들의 운명을 빛의 침묵으로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