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에서 두 번째 아침을 맞이한다. 느긋하게 일어나는 아이들과 달리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한다. 도심에 숙소를 정한 탓인지 밤새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이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이룬다.
멜버른은 생동감 있는 도시다. 주말이라 그런지 파티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특히 여자들끼리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옷차림은 흰색 또는 검은색이다. 옷은 각자 개성대로 디자인하여 입고 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흥겹게 노래하고 춤을 추며 다닌다. 아이돌을 꿈꾸는 여자 댄서 네 명과 그들의 춤추는 모습을 촬영하는 팀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여자 아이돌인 블랙핑크의 노래에 맞추어 춤추는 모습이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데 멜버른 거리에서 우리나라 음악이 들려오는 것이 신기해 내 귀를 의심했다.
도시는 오래된 건축물을 그대로 살려 예스러운 멋을 이어가는가 하면 새로운 건축물은 똑같은 양식이 없고 건물마다 멋과 예술미를 최대한 살려 독창적인 구조이다. 시드니보다 추운 날씨라고 하여 철저히 준비해 왔는데 우리가 머무는 동안 하늘은 푸르고 따뜻한 날씨였다. 날씨마저 우리의 여행을 도왔다.
오후에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 들렀다. 호주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큰 규모라고는 들었지만, 외관부터 엄청난 규모와 멋스러운 건축미는 창의적인 도시 멜버른답게 멋짐을 뽐내고 있다. 마침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기에 갔는데 여러 화가의 작품과 동시에 전시되고 있었다. 피카소와 친하게 지낸 화가들의 작품과 비슷한 화풍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기회였다. 우리가 알던 피카소의 그림과 전혀 다른 그림도 많았다. 여인의 초상화는 다른 화가의 그림인 줄 알았다. 사진으로 착각될 정도로 세밀한 그림부터 일그러진 여인의 그림도 있다. 피카소의 파란만장한 삶만큼이나 초상화에는 여러 여인의 초상화가 등장한다.
피카소는 전쟁을 겪으며 상처받은 도시와 상처 입은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나는 <게르니카>와 <한국에서의 학살>을 대표적으로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마침<한국에서의 학살>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그곳에 더 머무르며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아픔이 없기를 소망해 보았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 전시된 곳이 특히 인기가 많아 정체 구간이 되기도 했다. 다양한 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이해는 다 못 했지만, 그 장소와 여러 가지 경험이 더해져서 그냥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피카소의 그림을 아주 조금 손톱만큼 알게 된 시간이었다. 나는 피카소의 여러 작품 중에 <눈물 흘리는 여인>과 <키스>를 사진으로 샀다. 비록 사진이지만 괜찮다. 내가 마음으로 받아들였기에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전시회를 자주 찾아 마음의 방을 더 넓게 꾸미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퍼핑빌리 기차여행과 피카소 전시회로 만난 멜버른, 우리 가족의 특별했던 여행이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