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그러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행2:21)
21 And then, whoever calls out to the Lord for help will be saved.’
사람은 본래 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하찮은 흙을 빚어서 사람의 형상을 만드셨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에덴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이 죄를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일장춘몽이라고 합니다.
봄이 오지 않습니까?
봄에는 의자에 앉아서 잠깐씩 졸기 일쑤인데 우리 인생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졸다가 깨고 보니 우리 인생이 다 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을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 인생이 봄날의 꿈 같다니 얼마나 슬픕니까!
나와 상관이 없는 저기 부산이나 서울 사람 말고 내 아들이나 딸에게 그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사랑하는 이가 봄의 꿈처럼 사라진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인생의 어머니 아버지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늘상 슬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죽음에서 구하시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본래 우리가 살던 에덴으로 회복하실 계획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 일을 두고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구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암이라도 걸렸다고 합시다.
그 암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이 병의 위험을 모르고 지냅니다.
그러다가 다음 달이나 내 달에 죽을 것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사실 전 인류가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당연히 죽음입니다.
그것은 전인류가 알고 있는 병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신 앞에 이 병이 없는 듯이 사는 것입니다.
일장춘몽처럼 사라질 자신의 삶인데.......
동시에 모든 사람이 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 죽음을 피한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도사라도 죽고 맙니다.
내가 사람이 된 것은 내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해서 우리가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태초에 조물주가 우리를 우리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 분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께서 또다시 계획을 하셨던 것입니다.
죽을 사람을 다시 살리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감기약을 먹습니다.
소화가 되지 않을 때는 소화제를 먹을 것입니다.
배가 아픈데 배에 머큐롬을 바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주님은 사람이 겪고 있는 죽음이라는 병을 고치러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세상 출세시켜 주시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 출세는 무당에게 가면 됩니다.
또 묘 자리를 잘 쓰면 후손들이 출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일을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로 죽어도 다시 사는 영생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이라는 병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영생의 나라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이르지만 그 나라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어느 종교는 사람이 돼지로 태어났다가 원숭이로 태어났다가 운이 좋으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그렇게 윤회를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끝입니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얻고 싶은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갓난아기는 전적으로 제 부모를 의지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 어머니의 젖을 빨아야 삽니다.
하나님의 눈에 우리 사람들은 갓난아기에 불과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학비를 달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스스로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벌써 한 30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저에게는 연년생인 두 아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네댓 살이었습니다.
둘이 함께 놀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기 스텐드를 넘어뜨린 것입니다.
전구 유리가 깨져서 방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둘째 아기 울음 소리에 거기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제가 방으로 뛰어왔더니 겨우 한 살 위의 형이 깨진 유리 조각들을 손으로 쓸어 담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동생을 위해 이 일의 뒤처리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큰아들의 손에서는 피가 흘렀습니다.
그 일은 다섯 살짜리 아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가자마자 소리쳤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둘째 아이는 울고 있었습니다.
둘째가 더 큰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 울음으로 저를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 여린 손으로 유리 조각을 치웠다가는 큰 일이 납니다.
발이라도 움직이는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저는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홀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도를 닦는 일은 기독교에는 없습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부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어서 아빠 오라고 우는 일 뿐입니다.
오늘 성경의 본문입니다.
21. 그러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행2:21)
21 And then, whoever calls out to the Lord for help will be saved.’
자녀를 기르는 사람들은 모두 그럴 것입니다.
모두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촉각을 세우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동생을 위해서 유리 조각을 치우겠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비난하는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제 힘으로 하지 노상 도와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주체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질문합니다.
이 세상이 여러분 뜻하는 대로 되었습니까?
세상에서 사업에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들 자신을 보세요.
나는 뛰어다니고 싶은데 이제는 팔에 힘이 없어서 지팡이를 의지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졸다가 깜빡 깼더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이를 역행할 수 있습니까?
의자에 가만 앉아 있기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신문에서 본 내용입니다.
손자의 눈에 작은 하루살이가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치료한다고 눈에 오줌을 집어 넣었습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마침내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그 할머니가 손자를 실명시킨 것입니다.
저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눈에서 계속 눈꼽이 나는 것입니다.
통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로 눈알을 씻어 내기도 했습니다.
별짓을 다 해도 그것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치료한다면서 그 짓을 계속했더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별수 없이 안과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의사가 내 눈을 뒤집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핀셋으로 작은 흙가루를 끄집어냈습니다.
제가 어설프게 밭일을 하다가 눈에 흙이 튀어 들어갔던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치료가 끝났습니다.
의사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 일을 결정적이었습니다.
의사는 그것을 알지만 저는 그 간단한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의사이신 하나님께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부르라는 것입니다.
네 하던 일도 멈추라는 것입니다.
그냥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다섯 살 주제에 일을 처리한다고 깨진 유리를 손으로 쓸어 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포기하는 일입니다.
더욱이 구원의 일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21. 그러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행2:21)
21 And then, whoever calls out to the Lord for help will be saved.’
하나님을 부르는 일은 너무 간단한 일입니다.
그보다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갓난아기에게 우는 일보다 쉬운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울어야 젖을 먹고 또 사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하나님을 부르는 일이 그를 살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길을 여실 것입니다.
죽음의 위기에 있는 여러분을 영생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슨 보이지 않은 하나님이 계시냐고 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공(空)이지!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를 여러분의 눈에 보이게 하실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의 영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살리시려는 첫 번째 계획으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두 번째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보내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 입구에 갔다고 합시다.
그 입구를 지키는 천사들이 여러분 길을 막고 무엇을 할 것 같습니까?
여러분 마음 안에 죄가 있나 없나 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는 사람의 껍데기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의 음란한 생각을 다 보는 것입니다.
탐욕이 있는지 우리 속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그 천사들을 지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신이 있습니까?
제주도라도 가시려면 비행기 타기 전에 바로 그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주머니에 망치라도 들어있으면 그것이 삑하고 경보음을 울릴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주머니 속에 있는 것까지 찾아내는 것입니다.
천사는 여러분의 마음 속도 훤히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오셔야 내 속의 죄도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영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불로 태우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먼저 보내시고 성령님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을 죽어도 사는 나라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주 작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작은 아들의 울음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달려가셔서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