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설날에도 장애인은 버스표를 구입하고도 버스를 탈 수 없었다. 버스를 타지 못하고 입구에 기다리고 있는 장애인을 뒤로 하고 한 비장애인 승객이 유유히 버스를 타고 있는 모습. |
어김없이 또 설날이 돌아왔다. 올해에는 주말이 낀 덕분에 연휴가 5일이나 되니 예년보다 좀 더 여유롭게 가족과 친지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연휴가 아무리 길어졌어도,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외로운 시간만 늘어난 사람들도 있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7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모여든 장애인 활동가들이 시민들에게 나눠준 “버스도 못타는 장애인들의 귀향 인사”라는 제목의 유인물은 이런 문구로 시작했다.
“까치까치 설날은 버스 타고 고향 가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떡국 한 그릇 못 먹고...”
추석이나 설 명절, 장애인들은 고향에 가고 싶어도 대중교통으론 웬만해선 갈 수가 없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기차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시내버스 중 휠체어 탑승 장비를 갖춘 저상버스 비율은 부족하나마 점차 늘어가는 추세이지만, 시외·고속버스 중 저상버스는 단 한 대도 없다.
이를 개선하고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는 지난해 설날부터 “장애인도 명절에 고향 가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고속버스 타기’ 투쟁을 지속했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에 명시된 대로 시내버스뿐만 아니라 시외 및 고속버스에도 저상버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이들의 요구는 해를 넘겨 두 번째 설날에도 계속됐지만, 여전히 버스를 타고 고향에 갈 수 없었다. 전장연은 17일 오후 1시 40분 서울에서 세종시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했지만, 버스 출입구 계단 앞에서 휴짓조각이 되고 말았다.
▲1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승차홈에서 장애인 시외 이동권 확보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인천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임수철 소장은 “장애인이 탑승 가능한 버스 도입 비용은 1억8천만 원이고, 일반 버스는 1억 5천만 원이다. 고작 3천만 원 차이가 날 뿐”이라며 “가격과 유지비용 때문에 저상버스를 도입할 수 없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양유진 활동가도 “최근 시외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한 것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 재판부는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기보다는 조정을 통해 합의할 것을 제안했다”며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에 시외 저상버스 도입계획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조정안조차 받을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양 활동가는 “재판부조차 국토교통부에 ‘법리를 떠나 인권의 관점에서 판단하라’고 말할 정도”라며 “정부가 이제는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 저상버스 도입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장연은 이날 배포된 보도자료를 통해 “1981년 미국에서 데니즈 메크에이드라는 휠체어 이용 장애여성은 맨하탄행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리프트 열쇠가 없다는 이유로 버스기사가 승차거부를 하자 7시간 넘게 버스를 점거하였고, 이를 계기로 교통약자가 편리하고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기 위한 변화가 일어났다”며, 이후 지속해서 시외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운동을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버스를 타지 못하고 계단 앞에 가로막힌 장애인 활동가들. |
▲"저상버스 도입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플랑을 한 장애인 활동가가 휠체어에 걸어놓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