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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은 대부분 백인들의 고향으로 유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운 연구가 보여 주는 것은, 유럽인들이 비교적 장신이라는 특성과 성인이 되어도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백인의 특징적인 하얗게 탈색된 피부는 생각보다 최근에 발생한 것이라는 것이 발표되었다.
2015년 2월 미국 생체 인류학 협회의 84 연례 회의(The American Association of Physical Anthropologists 84th annual meeting March 25 - 28, 2015)에서 발표된 내용으로는 이런 유럽인들의 힌색(옇은 색) 피부의 발생은 기껏해야 BC6천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보고되었다.
국제 연구 팀은, 유럽 전역에서 발굴된 BC6천년~BC1천년 사이의 83구의 고대 인골에서 추출된 게놈에서 DNA의 핵심 부분을 비교하여, 유럽인들이 적어도 BC6천년 이후에야 유럽에 각각 도래한 3가지의 ‘수렵 채집인’과 ‘농업인’으로 구성되었음을 규명하였다.
인도 유럽어를 보면, 분명히 하나의 언어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언어의 출발지인 그들의 본 고향이 어디인가에 대해 매우 궁금해 한다. 이 유럽인들의 본래 고향에 대한 가설로는, 터키의 '아나톨리아 기원설'과 우크라이나의 '흑해 북단 기원설'의 두 가지 가설이 가장 유력하게 주장되었다. 언어학적으로는 흑해 북단설이 대부분의 언어학자에 의해 지지되었지만, 문제는 이런 대규모 이동을 뒷 받침해 주는 고고학적 유물이 충분히 발견되지가 않아, 그 '흑해 북단 기원설'이 힘을 얻지 못하였다. 언어학적인 증명이 불 투명한 '아나톨리아 기원설'을 지지하는 주요한 이유는, 현재 유럽인들의 유전자 분포와 이 지역의 사람간에 유정자 분포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고인골을 조사하면서, 그 시대별로 분포된 유전 데이터가 확보되어, 이들 간에 각 시대별로 유전자 흐름을 추적할 수가 있게 되었고. 이런 추적 결과, 그 간 입증 자료가 부족한 흑해 북단설에 힘을 실어 주는 중요한 유전적 증거를 포착하였다는 점이다.
즉 현재 유럽인들의 형성은, 흑해 북쪽의 스텝 지역에서 목축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우크라이나의 얌나야(yamnaya) 목축인들이 대량으로 유럽 중부로 이주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고, BC2,500년경부터 이들의 언어인 인도 유럽어(Proto Indo Europe Language)도 인구 이동과 더불어 중부와 북부 유럽 지역에 확산으로 형성되었을 거라는 점이 주요한 시사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현재 유럽의 백인들 대다수가 바로 이때 이들의 확산의 결과로 형성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관련 기사 참조 링크: Mysterious Indo-European homeland may have been in the steppes of Ukraine and Russia)
또한 이 연구팀은 이런 '유목민들의 이동'에 앞서, 신석기 농업 혁명과 더불어 중동의 농경민들이 BC6천년 경에서 시작하여, 전 유럽에 어떤 이동과 확산 과정을 통해 먼저 형성이 되었으며, 또 이후 BC 2,500년경에 목축인들이 어떻게 확산되었는가에 대한 괄목할 만한 유전 데이터를 찾아 내었다고 발표하였다.
고대 유럽인들의 고인골에서 추출된 유전자와 최근에 하버드 대학교의 ‘1000 게놈 프로잭트’(population geneticist Iain Mathieson, a postdoc in the Harvard University lab of population geneticist David Reich,)에서 추출된 유전자와의 비교에서, '소화'와 '피부 색소'의 변화와 관련된 5개의 유전자를 발견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강력한 자연 선택에 의해 역사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관련 네이처 논문 참조: Massive migration from the steppe is a source for Indo-European languages in Europe. )
유당 부하 능력 유전자의 유럽 분포로 본 인구 이동
첫째로, BC6천년 이전에는 우유의 당 성분을 소화하는 능력이 유럽인들에게는 아예 없었다고 전한다. 이 얘기는 인류에게 우유를 제공해주는 목축이 그 이전에는 사실상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러한 우유의 소화 능력은 스텝지역에 발생한 야생 동물의 가축화(husbanding)에 따른 목축의 성립과 괘적을 같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기원전 1만년 이전의 빙하기 때에는, 유럽에는 무려 2~3km에 이르는 매우 두꺼운 빙하로 뒤덮혀, 인간의 거주가 거의 불가능하였고, 거주하였더라도 빙하 사이에서 현재 에스키모처럼 매우 소수만 거주했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비교적 따뜻한 스페인의 이베리아 반도는 그나마 따뜻하여, 사람이 살았겠지만, 이들 조차도 사실은 현생 인류가 아니라, 네안데르탈인들이 이 지역에서 3만년까지 살았기 때문에 현생 인류가 남부 유럽에 진입한 것은 3만년 이후로 매우 뒤늦게 이루워 졌고, 그나마 본격적인 이주는 빙하기가 종료된 뒤부터이다.
이 빙하기가 물러가고, BC1만년경부터는 지중해 연안에서, 그리고 흑해지역에서, 그리고 툰드라 지역에서 유럽에 1차 진입한 사람들은 '수렵 채집인'이었을 것이고, 그 뒤를 따라, BC6,000~BC5,000경에는 메소포타미아 근방에서 기원하는 농경민들이 농업의 확산과 더불어 유럽으로 2차 확산하여 들어 왔음이 독일,헝가리, 스페인에서 발굴된 고인골 유전자 분석에서 밝혀졌다. 이런 신석기 농업 혁명에 따른 농경의 확산은 유럽 유전자 기층을 형성한다.
이 고인골의 유전자 분석으로는, 2차 도래한 농경민들의 유전자가 이 당시의 인골에서도 검출이 되어, 예상대로 이 농경민의 이주가 중동 지역을 기원으로 이루어짐이 입증되었지만, 이들은 또한 우유를 소화할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 또한 반전으로 밝혀졌다. 즉 이 2차로 도래한 이들은, 비록 신석기 농업 혁명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럽으로 확산하였으나, 이들이 오늘날과 같은 현재 유럽인들이 아니라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반면에 동유럽인 우크라이나는 오히려 기존의 빙하기 시대에 BC22,000년까지 소급이 되는 시베리아 수렵 채집인들의 유전자를, 볼가강 북단의 시베리아로부터 상당수 물려 받고 있음도 당시의 인골 조사로 밝혀졌다. 즉 동유럽과 서유럽의 인구 변동은 상당히 그 형성 과정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석기 농업 혁명에 따른 BC5,800에 근동(near east)에서부터 2차 도래한 농경민들의 일부 영향과 이후에 북해 지방의 스텝 지역에서 시베리아에 거주하던 수렵채집인들의 후예로 형성된 흑해 북단의 얌나야(yamnaye)에 자생적으로 출현한 3차 목축인들도, 처음에는 우유의 당성분을 소화할 수 있는 유전자인 LCT 게놈이 없었기 때문에, 유당부하(lactose tolerance) 능력이 유럽을 통틀어 BC2,300년 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BC3,000년 이전의 유럽 중부 지역에 광범위하게 발달한 '줄무늬토기문화(liner pottery)'의 2차 정착한 농경정착민들에게는 이런 유당 능력 유전자가 없다.
참고로 최근에 부산의 가덕도 공항 공사중에 발굴된 48개 인골에서도, 유전자 추출이 가능한 인골 중에서, 지금은 우리나라에 없는, 이런 '줄무늬토기문명(liner pottery)'의 특징적인 유전자인 미토콘드리아 H 유전자가 상당한 비율로 발견이 되고, 이에 상응하는 굴장방식, 토기, 조개 장신구, 도구등의 유물들이 '줄무늬토기문화(liner pottery)'와 상당히 일치한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이보다도 5000년전인 기원전 1만5경에 아무르강 하류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이미 인류 최초의 토기 문명이 일어나고, 이 토기 문명이 빗살 무늬(comb ceramic) 토기 형태로, 홀로세 최적기의 시베리아의 온난화를 배경으로, 아무르강에서 핀란드에 이르기까지, 매우 고위도로 확산되어 스칸다나비아 반도에 까지도 이른다. 이런 빗살 무늬(comb ceramic)은 기원전 6천년경에 불가강 유역을 통해, 이 얌나나에도 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즉 토기 문명은 중동에서도 일찍이 등장하므로, 이 시베리아와 중동 양측에서 영향을 받아 토기 문명이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즉 BC4,000~BC3,000년 사이에 시베리아의 수렵 채집인들과 근동에서 이주한 농경민들이 일부 들어와 복합화되어 일어난 얌나나(yamnaya) 스텝 문화권에서, 3차 목축 문명이 이 스텝 지역에서 BC2,800년 이전에 발생하고, 이 목축 과정을 통해, 유당부하 유전 능력을 획득한 사람들이 BC2,300년 이후에 전 유럽으로 '3차 확산'하였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BC2,500년경에 목축 문화의 동유럽인과 눙경 문화의 서유럽이 서로 조우하게 되면서,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얌나야(yamnaye)인들이 대거 이주하여 형성된 것이 '새김무늬토기(corded ware ceramic)'가 되는데, 이 시기의 독일의 인골의 분포중 3/4이 얌나나(yamnaya) 스텝 지역의 유전자로 재구성이 되어, 대량 이주가 이 지역으로부터 중부 유럽으로 이루어졌슴을 보여 준다.
이후 BC1,500년까지는 남부 유럽 전역에서까지도 이 유당 유전자가 인골에서 검출이 되어, 이 시기에 이르면 전 유럽에 걸쳐 이목축인들이 확산되었음이 입증이 된다. 이들 목축인들 유전자 비율은 남 유럽은 약 20% 정도 차지한다.
유럽의 흰색 피부색 유전자
피부 색깔로는, BC6,500년 전에, 도래한 독일, 스페인, 헝가리의 수렵 채집인과 초기 농경민들은 아프리카인처럼 검은색(darker) 피부였고, 피부색은 유럽 지역마다 여기저기서 다양하게 진화하였음을 알아냈다.
밝은 피부색을 만드는 독립된 3가지 유전자는 어떻게 유럽인들의 피부 색깔이 BC6천년 이후로 매우 복잡하게 진행되었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검은 피부의 현생인류가 7만년전에 아프리카에서 탈출 후에 유럽에 현생 인류가 거주하게 된 것은 4만년전으로 추정된다지만, 네안데르탈인들의 유럽 거주로 인해, 현생 인류는 실제로는 약 2만년 이내일 것이다..
BC6,500경의 스페인과 룩셈부르크, 헝가리 등지의 초기에 도래한 수렵 채집인들 인골에는 탈색 피부 색소 유전자 SLC24A5 and SLC45A2가 없다. 즉 이들은 피부 색깔이 검은색 피부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유전자로 인해, 피부가 탈색되어, 오늘날 유럽인들의 피부의 주요한 특징이 된다. 그러나 북극으로 갈수록 이런 옇은 색 탈색 피부가 선호되는 데, 이는 태양빛이 적은 지역에서도 비타민 D 합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팀이 발견한 것은, 스칸다나비아는 대서양의 대류로 인해, 태양빛이 희소한 매우 고위도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온난하였던 BC5,700년경에 이미 스웨덴 남부 지역인 Motala 유적에서 발굴된 7구의 수렵 채집인들 중에서는 옇은 색 피부 유전자의 SLC24A5, SLC45A2 변이를 갖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탈색 유전자와 더불어, 푸른색 눈동자와 금발 머리색 유전자인 HERC2/OCA2 도 함께 갖고 있어 이들 유전자는 일찍이 북극에 가까운 고 위도 지역에서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를보면, 북극 근처의 고 위도 고대 수렵 채집인들은, 이 당시에만도 남부 유럽과는 달리 벌써 ‘힌색 피부'와 '푸른 눈', '금발'이었다는 점을 시사하지만, 그러나 유럽 북부가 아닌 지역인 유럽 중부와 남부 유럽은 이 당시에도 아프리카처럼 검은색 피부였다는 것을 거꾸로 시사한다. 2차 농업혁병과 더불어 확산된 농경민 들에게도 이런 SLC24A5, SLC45A2 유전자가 발견이 되는데, 이는 이런 유전자를 획득한 토착 수렵 채집인과의 혼혈로 획득된 것으로 보인다.
즉 신석기 농경 시대부터 옇은 색으로 바뀌기 시작했지만, BC3,800년 이전에는 SLC45A2 유전자가 메우 미미하게 발견이 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비록 흰색 피부가 농경과 더불어 확산이 시작은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등장했다고 보기 어렵다.
탈색 유전자 SLC45A2 유전자 변이는 전 유럽에 걸처 BC3,800년 이후 급격히 확산되었고, 이는 BC2,800년부터 시작된 3차 목축인들의 확산인 얌나나(Yamnaya) 대이동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천연 비타민 D를 우유에서 획득하기 시작한 후에 흰색 피부가 본격 등장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Yamnaya 대이동을 아리안의 대이동 이라고 한다. )
Yamnaya인들은 장신 유전자적 잠재성이 가장 큰데, 이는 고대 발굴된 신체와 부합한다. 반면에 이탈리아나 스페인서는 상대적으로 보다 작은 사람들로, BC6천년경부터 자연선택되었다. BC4,000 경부터는 빙하기이후로 북반구가 매우 온난하였던, 홀로세 최적기가 끝나면서, 몰려든 더 추운 기후와 영양 부족에 적응하다보니, 더욱 키가 줄어 들었다.
또한 놀라운 것은, 자연선택에 결정적이라 할수 있는 농경과 함께 발생되었을 거라고 보는 질병에 대항하는 면역 유전자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고정 관념으로는 질병이 자연 선택의 주요한 원인으로 생각이 되겠지만. 이 유전자 분석 결과로는, 자연선택이 적어도 질병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질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이들 유전자가 자연 선택이 되었다고 보여지지만, 그러나 왜 옇은 색으로 강하게 자연 선택되었지를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추정컨데 아마도 비타민 D 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옇은 색이 필요하다는 가설 때문일 거라고 본다.”고 Nina Jablonski (펜실바니아 주립대 교수)는 설명한다. 즉 자외선이 비타민 D이 합성에 절대 필요한데, 햇볕이 모자라는 북극 지방의 고위도 지역에서는, 옇은 색이 절대 유리하고, 또 만약 우유의 락토스를 소화시킬 수 있다면, 우유에서 이 천연 비타민 D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Jablonski 교수는 ‘옇은 색’ 피부의 출현은 간단한 이슈 같지만, 이는 유럽의 복잡한 인류 이동의 조각을 맞출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이슈이라고 언급하면서, 더욱 특이한 것은 이러한 진화가 생각보다 최근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고 유전학자인 George Perry는 개개인의 유전자 잠재력이 소화에 구조화가 되어, 생활 습관으로 도입되었는가를 보여 준다는 점이고, 이는 이 과정에서 어떻게 자연 선택이 이루어졌냐를 보다 자세하게 보여 준다는 점이다.
필자의 견해:
필자는 산스크리트어를 연구하면서, 왜 산스크리트의 근본 룰이 우리말의 근본 룰 위에 서 있는지 매우 의아하였다.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아리안 언어들은 언어 구조를 비교해 보면, 어느 시기에 한 곳에서 기원하였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 인도 유럽어의 고향을 'Ur-Heimat(본 고향)'이라고 한다. (참고로 아리안이라는 용어는 원래 유럽에는 없던 용어이고, 유럽인들이 산스크리트와 아베스타어에 쓰이던 것을 19세기에 가져 가서 자기네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고 있다.) 이들 언어들의 고향은 위의 내용으로 보면, 초원 스텝의 목축인들에서 비롯하는데, 이들의 유전자의 기원은 서 유럽과는 달리 시베리아 수렵 채집인들을 뿌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현대 유럽인들의 조상은 남부 농경민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바로 시베리아 수렵 채집인들의 후예라는 것을 뜻한다.
시베리아는 빙하기때 수 만년간 툰드라 지역에서 유전자가 분기되고 언어가 분기한다. 빙하가 물러 가면서, 시베리아는 '홀로세 최적기(BC8,000~BC4,000)'를 맞아, 이 지역만 온난화 시대에 접어 들면서, 지금보다 평균 온도가 겨울에는 4도, 여름에는 1정도 상승하게 된다. 이 당시에 지구 전체로는 이 기간중에 1~2밖에 상승되지 않지만, 그린란드 빙하를 시추하여 아이스코아를 분석하여 보면, 시베리아처럼 국지적으로는 겨울은 지금보다 휠씬 따뜻하고, 여름은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지역의 퇴적물을 측정한 바로는, 겨울에 9도까지도 상승한다고 한다.
<그린란드의 GRIP 지역의 빙하를 300m 정도 시추하여 O18 동위 원소 함량으로 얻은 온도 변화표. 15도 정도 차이 남. >
따라서 이 기간 중에 시베리아와 몽고 고비 사막, 타클라마칸 사막등은 현재와 같이 춥거나 사막이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여름처럼 몬순이 있는 아열대에 가까은 매우 살기 좋은 곳이었다. 따라서 빙하기중에 빙하 사이에서 생존에 성공한 사람, 혹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쪽 해안가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이 대거 이 시베리아 지역에 유입되거나, 빙하기 이후로 이 시베리아 지역에서 풍요한 환경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인구 성장을 하게 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5만년 이전에 한반도 지역 해안을 경유해서, 빙하기 때 툰드라로 진입한 사람이거나, 빙하기 동안 먹고 살기 좋은 동해안가에서 밀집 성장한 후에 빙하기 후에 이 해안 지역에서 내륙으로 이동한 사람이기 때문에, 모두 태평양 동해안을 거친 사람들의 후예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언어 구조는 우리말과 같은 언어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전자와 언어 분석에서의 상관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시베리아 수렵 채집인들은 '홀로세 최적기'가 끝나면서, 지금처럼 온도가 낮아 지면서, 기후 변동에 의해 대거 남하를 하는데, 이들이 흑해 북단의 스텝 지역에 Yamnaya인처럼 목축등으로 남하하여 정착하게 된다. 물론 이들은 중동 지역에서 올라온 농경인들과도 조우를 하게 된다.
유럽 초기 농경인들은, 이들 보다 먼저 기원전 BC7,000부터 흑해에서 1,500km나 되는 도나우강을 따라, 헝가리. 독일, 네델란드에 이르기까지, 비옥한 토지를 골라 정착하여, 라인강과 엘베강에 까지 이른다. 이른바 Linear pottery(선형토기, 줄무늬 토기) 문화를 이룬다. 이때까지도 이들은 피부가 검으스레한 피부였다.
한편 시베리아쪽인 볼가강쪽에서 내려온 이들은 목축에 성공을 하면서, 성인이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유당 능력을 얻게 된다. 이들은 '홀로세 최적기'가 끝나는 BC4,000년경 시점부터 본격 등장하는데, 최초로 말 사육의 흔적을 보이는 데리이프카 유적등 많은 유적을 흑해 북단에 남겨 놓았다. 이들의 특징적인 유물은 쿠르간의 무덤이라는 적석 목곽분의 거대한 본분 형태의 매장 문화가 그 특징인데, 이를 '쿠르간(kurgan) 문화'라고도 한다. 이들 쿠르간 문화는 흑해 북단에서 기원전 4천년경부터 시작하여, 뒤에 중앙 아시아 전역에 확산이 되는 데, 기원전 5세기에 스키타이에서 멈추게 된다. 이후 이런 묘제 방식은 흑해 북단에서는 거의 사라지지만, 변방 지역인 켈트인, 스칸다나비아 지역, 카자스탄 등 지역 등에 남겨지고, 특이하게도 AD5세기경 경주에 이 무덤과 그리고 관련된 여러 관련 유물들이 다량으로 출토된다. 예를들면 유명한 신라금관이 출토된 서봉총은 1926년 스웨덴의 왕자인 스타브 공작 공작이 발굴하였는데, 그 이유는 스웨덴에도 규모는 작지만 이런 무덤이 수천기가 널려 있지만, 그 유래를 자신들도 잘 모르고 있었고, 이런 게 반대편인 동쪽 끝에도 있으니, 그가 얼마나 궁금했겠으면 교통도 안 좋은 시절에 굳이 본인이 직접 와서 파 보았겠는가?
아무튼 BC3,000년부터는 전 지구상에 기후 변화가 찾아 오게 되고, 이때부터 이 yamnaya인들은 서유럽으로 확산하여, 2차 농경민들의 특징인 '줄 무늬 토기(Linear pottery)문화'에서 3차 목축민들의 이주로 'corded pottery(새김무늬토기)' 문화로 바꾸어 놓는다. 이때 독일의 75%가 이들 유전자(R1b)를 보유한 사람들로 바뀌게 된다. 즉 흰색 피부 사람들로 바뀌게 된다. 현재 서 유럽 유전자의 특징인 Y-염색체 R1b는 이런 과정을 통해 중,북부유럽에 확산이 된다. 이는 중부와 북부 유럽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이후 BC2,300부터는 소위 말해 아리안의 대 이동이라고 일컬어 지는 이동이 인도와 이란, 그리이스, 아탈리아등지로 이루어 진다. 이 과정을 통해, 이들 유전자가 남부 유럽에까지 확산이 되어 현재 남유럽의 경우 약 20%가 이렇게 하여 형성된다.
참고로 슬라브족의 특징적인 유전자 R1a는 이 당시에 미미하였다고 보여지며, 이들의 확산은 역사 시대에 들어 와서 주로 이루어 진다. 실제로 동 유럽은 러시아 국가 성립 이전에는 그다지 사람들이 철 마다 모피 사냥이나하러 가던 곳으로, 사람이 거의 거주하지 않던 곳으로 AD10세기에 들어와서 러시아를 필두로 국가가 형성되면서, 주로 촌락이 형성된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피부가 백색인 유럽인들은 시베리아의 수렵 채집인들의 유산이라는 점이다. 특히 위도가 매우 높은 스칸다나비아 빈도의 경우에, 지금과는 달리 대서양의 대류로 인해 매우 따듯한 지역이었고, 매우 고위도에 비해, 지금과 달리 매우 살기가 좋았다. 태양이 적게 비치는 지역에서부터 탈색된 백색 피부와 파란 눈, 금발 머리들이 유전적으로는 언제 발생하였는지는 알지 못하나, 이 지역에서 빙하기 이후에 대거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기후 변화에 따른 이들의 남하 과정과 더불어, 스텝 지역에서 목축의 성립이 되고, 이후에 홀로세 최적기가 끝나면서, 기후 변화로 유럽 중부에 농사가 어려워지면서, 이 목축인들이 유럽중부로 3차 확산을 한다. 특징적인 우유의 섭취는 여기에 일조를 하여, 키가 코고 피부가 탈색된 유럽인들의 특징이 보편화 된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은, 멀리로는 모두가 이전에 빙하기때 툰드라 지역에서 유전자 분기가 이루어져, 그리고 빙하기 이후에는 비옥한 시베리아에서 성장한 이들의 후예들이 만든 결과이므로, 이들의 언어의 토대는 우리말과 근본적으로 같게 된다. 참고로 빙하기때 툰드라에서 유전자 분기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전자 분기와 분기된 정도가 괘를 같이 한다. (이와 관련한 기존의 포스팅 참조, "언어와 Y-염색체 DNA의 상관 관계 요약 ")
아무튼 위의 유전자 분석 뉴스를 보면, 그간 필자가 하였던 언어 분석을 뒷받침해 주는 흥미로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예를들면, 왜 기원 전후의 산스크리트어와 비슷한 구조의 라틴어가, 기원후 5세기이후로는 로망스어에 보이듯이, 어순이 S-V-O로 우리말의 어순 구조와는 달리 뒤집어지고, 격어미가 전치사로 대체가 되는 언어 현상을 만들어 내는 이유를 바로 알 수 있다.
BC2,300경부터 시작된 흑해 북단에서 목축인들이 대거 남하 이동하여, 그리스, 이탈리아등의 유럽 남부에는 비롯 정치적으로는 새로 북방에서 도래한 집단에의해 장악되었지만, 근동지역의 농경인들의 후예인 원주민들의 구성 비율이 매우 높다.
로마의 멸망과 더불어 이들 북방인들의 정치적 지배가 끝나면서, 정치적 언어 지배도 끝나고, 도리어 상당수 3차 목축인 확산 이전에 도달한 2차 농경민 원주민 언어 성향으로 다시 되돌아갔다고 보여 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발생한 언어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어등의 로망스어 계열과, 독일어, 영어등의 게르만어 게열등의 언어이다. 물론 이렇게 혼란해지 과정은, 잘못 정의된 인위적인 희랍어 문법 정의를 그들 언어에 가하는 둥, 더 많은 온갖 사연을 가지겠지만, 큰 틀에서는 이렇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들 유전자인들의 언어의 근본 기반은, 크게 보면, 바로 우리말의 근본 토대와 상당 부분 그 기반을 같이 한다. 언어적으로 보면, 이 점이 시사하는 것은 현재 유럽 언어들은 매우 혼란하여져 스스로는 그 근본을 알 수가 없지만, 우리말이 바로 이들 언어의 근본 언어인 자연어 형태에 가깝기 때문에, 이를 복원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지난 3천년간 인류가 저지른 오류중에, 언어에 관한 한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 인도 유럽어의 근본적인 언어의 모습은 오로지 유일하게 우리말을 통해서만 그들 유럽어들의 본래 모습을 복구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말이 그들의 언어의 문제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게이트웨이가 되는 것이다. 문자와 문법을 도입하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 이후로 비틀린 인류 언어 역사가 비로소 바로 서게 된다.
[출처] 백인의 하얀 피부의 출현과 인도 유럽어의 발생|작성자 가을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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