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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3주일 [예수의 말씀이 최후에 심판한다]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요한복음 12:44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요한복음 12: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요한복음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요한복음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한복음 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요한복음 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순종은 구원받았다는 증거]
주 예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를 살리시려는 것이다.
계명을 주셔서, 말씀을 듣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신 것은 그렇게 하므로, 우리를 영원한 심판에 처하지 않도록 하려 하심이다.
사람이 예수를 믿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수 있게 된다.
순종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의 표다.
영적 대사건에 대한 진실을 외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생활은 속죄받은 사실 때문에 이어져 간다.
믿음생활은, 구원받은 사실로 인해서 살아났으며, 그리스도에게 속해있다는 증거를 평생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드러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
드러나는 증거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법적 보호를 받게 된다.
보호를 받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한 공격에 노출된다.
그래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절대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될까.
원래 인간은 한번의 죄를 범해도 심판에 처해지는 존재였다.
그런데, 죄를 범하지 않을 자가 없다.
죄를 범하지 않기가 그렇게 힘들다면, 사실 기회를 주어도 구원받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계명을 주셨다.
우리가 주께서 주신 계명을 순종할 때,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인간은 다 약점이 있다.
죄를 피하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이지만, 예수를 영접한 자는 일단 엄청난 사건을 겪었다. 영적 변화다.
이 사건을 통하여, 영적 신분으로는 하늘에 속한 자가 되었다.
엄청난 내적 변화다.
신분도 변하고, 법적 의미도 변했지만, 그 속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아서, 못느낄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변화된 신분에 맞도록 친히 가까이 도우신다.
순종하게 하신다.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역사한다.
순종하는 행위 자체가 진짜 중요하기 보다는 그 행위를 하는 진실한 자세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순종하는 사람은 예수를 자기가 영접했다는 사실에 대해, 외적으로 표를 낸다.
그래서, 순종은 그 사람의 영적 신분이 달라진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순종 자체가 그 사람의 믿음을 지켜준다.
그 사람의 믿음을 지키는 방법이 순종을 계속 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므로, 원수 마귀가 그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부분을 막아낸다.
그래서, 순종하는 자와 속죄받은 사실이 분리될 수 없다.
순종과 속죄받은 사실이 함께 가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순종하지 않는 자들도 있다.
세상의 불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순종하기 어려운 자도 있다.
더러는 순종하고, 더러는 하지 않는 선택적으로 하는 자도 있다.
이런 자에게는 속죄받은 증거가 뚜렷히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앙도 가짜로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가짜로 믿는 척, 열심히 하는 척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 전체가 말하는 것은 믿으면서, 순종치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믿는 자가 순종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믿는다고 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의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교회 바깥의 것이다.
순종하지 않는 자, 순종이 순탄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순종하는 삶의 진실을 주님은 기억하시고 지키신다]
모든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범하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방인도 마찬가지다.
율법이 없어도, 의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
그래서, 살아날 사람이 없는데, 주님이 모두가 받을 심판과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다.
그래서, 살아나게 되었다.
예수 십자가의 은혜로 자기가 살아났다는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는 명령을 주셔서, 그 때부터는 순종하게 하신다.
예수 믿는 자는 그 때부터 순종하기 시작한다.
믿기 때문에 순종한다.
순종은 예수에게 속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 이 사람의 그런 모습을 지키게 하는 원칙이 있다.
원래 영원히 형벌받을 사람인데,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형벌을 받을 죄의 책임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살아났으니, 다시는 범죄치 말아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시 죄를 또 저지르면, 죽으니까.
그런데, 한번 더 죄를 범하면 죽는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죄를 범하면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마음의 결단을 갖는 것이다.
주님은 원래 부실했던 율법을 십자가를 거쳐서 명쾌하게 하셨다.
이제는 주님의 말씀이 율법이 되었다.
믿는 자라도 죄를 범할 수 있다.
육체를 가진 자가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없다.
진짜 죄를 범했을 때, 이제 예수 믿으니까, 죄의 책임을 지지 않을까.
우리는 죄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설령 죄를 범해도, 주님은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갖는 자에 대해서는 심판에 처해지지 않도록 그가 속죄하신 사실의 효력을 적용시키신다.
그래서, 불완전한 사람의 회복이 이루어 진다.
부족한 것은 주님이 채우신다.
그래서,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가진 자는 중요한 변화는 있다.
죄를 적어도 범치 않으려고 한다.
그 범치 않으려는 사실 자체가 대속받은 사실을 증거한다.
또, 본의아니게 죄를 범해도 회개한다.
더 순종하므로, 그런 부족함을 채우려고 한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죄의 책임이 물어지지 않도록 주께서 역사하신다.
법적으로 막아주시는 것이다.
죄를 범한 자에게는 마귀가 임의로 공격한다.
그러나, 공격을 막아주신다.
주님이 보호하시는 자를 마귀가 참소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보호가 된다.
인간은 그리스도에게 한시도 붙어있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
인간은 마귀의 손쉬운 먹잇감이다.
주께서 대속할 뿐 아니라, 오늘 말씀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당장 약점이 노출되어, 마귀에게 무방비 상태로 틀림없이 당한다.
너무나 쉽게 당한다. 잘 속는 것이 인간이고, 마귀의 하수인이 되어 잘 속이기도 한다.
그러나, 순종하는 삶으로 달려가는 자는 주님이 속죄하신 효력을 적용시켜 주신다.
그런데, 때로는 이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죄를 범했는데도, 어차피 용서받으니까 상관이 없는 것 같으니, 죄를 마음껏 범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양심의 수준이 회개한 자로서 도저히 합당히 여겨질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보호하시고, 심판을 받지 않게 하시려는 자로 포함되지 않는다.
양심의 수준이 안되는 것이다.
우리는 원죄로 인해서, 완전히 망했던 자들이다.
원죄는 가까이 보면, 양심의 타락의 죄다.
양심을 속인 것이 하나님을 배반한 죄가 된 것이다.
본래 우리가 짊어지고 있었던 최고의 약점은 양심적 타락이다.
그런데, 양심이 필요없다고 하면, 본격적으로 죄를 범하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죄를 범해도, 죄인지도 모르고, 계속 범하겠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
선택적으로 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다.
주님은 이제 범죄치 말고, 선한 행위를 가지라 하신다.
건전한 양심의 회복을 원하시는 것이다.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자기의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을 주님은 원치 않으신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알고 있는 자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니다.
이제부터 마지막날까지 회개하는 삶, 죄와 싸우는 견고한 주의 용사로서 견뎌나가겠다고 하는 자는 진실한 순종을 할 것이다.
내게 남은 시간동안, 내 대신 죄를 짊어주신 분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 죄와 싸우겠다.
이런 동기가 마음을 지배할 때, 영생이 그 속에 있음을 충만히 증거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고, 또 목회자를 진심으로 위한다.
하나님이 순종하게 하시고, 이끄시는 교회를 오늘 내 세대에 사랑하므로, 내게 영생이 있음을 증거한다.
진정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평생 깊은 마음이 하나님의 의를 닮으려고 하는 노력이다.
행실로는 견딜 수 없다.
내게 계속 다가오는 죄의 유혹을 견딜 수 없지만, 심령의 성질은 죄없는 의를 닮은 성질이다.
영생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와서, 증명서처럼 있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이 요소가 내속에 들어와서, 내가 변화되어, 영생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갖는 것이다.
예수님의 약속이 영생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 사람이 어디에 있던지, 기억하고, 추적하신다.
그 사람의 한 일을 기억하고, 축복하신다.
오늘 과연 하나님이 내 삶속에서 역사하실까.
[오늘도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신다]
예수께서 당시 사람들 속에 역사하셨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게 오늘도 역사하신다.
당시 사람들 가까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깊은 심령속에서 계신다.
가장 중심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또한 주의 종들을 통해 인도하신다.
영혼에 대한 가장 중심을 붙들어, 감동감화하시고, 외적으로는 주의 종들을 통해 인도하신다.
그렇게 하므로,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순종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의 계명을 순종케 하셨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그의 계명을 순종하게 하셨다.
사도들은 계속 주님의 계명을 순종하도록 가르쳤다.
쭈욱 이어져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르렀다.
주의 종들을 통해서, 순종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종들을 부르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반드시 목자를 통해서 부르신다.
각 세대마다 그가 부르시는 많은 영혼들을 책임지시려고 하신다.
자기 종을 두어, 매 세대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신다.
유대인들은 에수님을 배척하고 무시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엄청 무서워했다.
만약 그들이 아버지의 심판을 무서워하는 자라면, 아들의 심판도 무서워했어야 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심판권을 가지고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게 나타난 주님을 무시했다.
하나님은 아무도 볼 수 없다.
너무나 크셔서, 사람이 눈으로 보게 되면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 엄청 큰 신으로 알고 있다.
이 세상에 크고 작은 신들이 많지만, 그들은 먼지 같은 존재일 것이다.
하나님은 너무 크신 분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를 내려다 보았다.
그 때, 주님을 사람들이 눈으로 봤기 때문에, 자기의 의견으로 봤기 때문에, 자기 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무시했다.
오늘도 이천년전처럼 똑같은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오늘 그 때처럼 그를 무시하면 안된다.
오늘 그가 십자가에서 애쓰신 것처럼 오늘도 애쓰신다.
그 때, 주님은 괴로우셨고, 우셨고, 슬퍼하셨고, 모든 고통을 당하시고, 찢어지는 심령으로 자기의 희생을 당하셨다.
오늘 주님이 무성의한 주님으로 변하지 않으셨다.
시대를 불문하고, 오늘도 주님은 역사하고 계시다.’
그 때, 주님은 고난의 주로 오셨다.
슬픔의 사람, 섬기러 오셨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끝이 온다. 그 때는 심판이 온다.
그 때 심판을 행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그는 하나님처럼 두려워 해야 할 분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두려워하듯, 주님을 두려워했어야 했다.
예수께서 하신 것은 아버지의 심판을 전제로 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해소해야할 책임을 짊어지고 계셨다.
오늘도 유대땅에 오신 주님을 만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당시 대부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다.
자기들 생각과 주님이 맞지 않았다.
당시 소수만 구원받았다.
오늘 우리 상황도 같다.
오늘도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무시할 것이다.
오늘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을 무시할지 모른다.
소수만 구원받을지 모른다.
오늘 우리는 유대인처럼 하지 말자.
영생으로 인도하는 주님의 확실한 인도에 순종하여, 주님과 함께 걷는 성공된 자들 되자.
하나님의 살리려는 긍휼과 열정의 혜택을 받는 자들 되자.
하나님의 게획 속에 온전히 들어가, 주님 달리실 때, 같이 달리는 자들 되자.
본문의 말씀은 주께서 유대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는 설교다.
진짜 진지하고, 간절하게 하셨다.
십자가 죽음을 불과 삼일정도 남겼을 때, 하신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믿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예수께서 이 때, 그동안 하신 말씀을 종합해서 하셨다.
[나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온 자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셔야 할 일을 간단명료하게 하신 것이다.
너희가 나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알려주셨다.
요한복음 12:44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이 말씀은 성경 다른 곳에도 있다.
보내심을 받은 자는 보낸 자와 같다.
하나님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주가 세우신 자는 주님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거기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셔서, 그를 순종하는 것은 아버지를 순종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2: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그리고, 나를 믿는 자라 하지 않고, 나를 보는 자라 하셨다.
믿는 것은 보는 것이다.
믿음으로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일체이시며, 동등하시다.
[아직은 구원에만 집중하나 심판은 들이닥친다]
요한복음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빛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 본질이 죄로 물든 사실도 밝힌다.
주께서 비추실 때, 죄를 드러낸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를 피하려고 한다.
요한복음 1장을 함축해서 말한 것이다.
요한복음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영원히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순종하지 않아도, 지금 심판하지 않는다.
내 말을 지킨다는 것은 계속 지킨다는 것을 말한다.
삶을 말씀으로 사는 것을 하지 않아도 지금은 심판하지 않는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예수를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불신자다.
요한복음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순종하지 않으니, 구원하지 않고 놔둔다.
우리가 불신자였을 때, 우리 성격은 불순종이었다.
마귀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한다.
신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그 여부는 순종이 말해준다.
디도서 1: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더 깊이 말하면, 순종하는 자세를 말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행위가 따르지 않는다.
복종치 않고,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
로마서 2: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또, 자기들이 추구하는 바를 무리하게 한다. 그러다보니 진리를 따르지 않는다.
베드로전서 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신자라도 형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주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는 구원하러 오셨다.
지금은 구원에 총력을 다하시기 때문에, 심판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심판은 반드시 있다.
로마서 2: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겉으로 감춘 것도 다 드러내어 심판하시는 날이 온다.
아무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행한대로 갚으신다.
예수께서 처음 오셨을 때는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다.
[내가 전해준 말이 최후심판의 기준]
요한복음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내 말이 오늘 그 말을 순종하지 않는 자를 심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순종치 않는 자는 자기 스스로 정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구원을 거절하는 것은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예수의 말씀은 구원하기 위해 주신 것이다.
구원키 위해 순종하게 주셨는데, 거절하는 자는 심판받을 것이다.
여기 중요한 사실이 있다.
원래 인간은 다 망한다.
그냥 놔두면 다 죽는다.
원래 죄로 인해 죽는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예수를 순종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심판이 기다린다고 하신다.
심판의 기준이 발생했다.
예수를 순종하느냐, 아니냐로 심판한다.
그런데, 지금은 하지 않는다. 마지막날로 유보되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최후에 심판하신다.
말이 나타나서, 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것을 무시했다면,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심판이 없으니까, 계속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심판은 미루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주께 순종해야 할 중요한 이유는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다.
요한복음 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모든 것을 다 아들에게 주셔서, 아들에게 그의 행실과 말로 계시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예수님에 대한 거절은 아버지에 대한 거절이다.
그렇다면 심판을 면할 수 없다.
[계명을 준 것은 순종하여 심판받지 않게 하기 위한 것]
예수에게 발언된 말씀은 원래 주셨던 분의 심판의 기준이 된다.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려고 말씀을 주셨는데, 그것을 거절한 자에게는 심판이 이른다.
요한복음 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내가 말한 것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내 말을 거절하면, 아버지를 거절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유대인에게는 충격적인 부분이다.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앞으로 모세 같은 선지자 하나를 보내주실 것인데, 그의 입에 하나님이 자기 말씀을 넣어주실 것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 예언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신다.
아버지의 뜻을 대언하여 그렇게 하신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의 말씀을 거절하면 안된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동등하면서도, 오직 아버지께 순종하고, 철저히 아버지의 것만 주셨다.
예수께서 주신 것은 아버지가 살리려고 주신 것이다.
요한복음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한복음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통하여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영생에 이르는 성도가 되자.
주님은 2천년전에만 크게 역사하시고, 나머지 시대는 버리시는 것이 아니다.
소망이 없지만, 예수 앞에 다가와서, 영생을 소원하는 자들에게 힘을 다하신다.
그 때 십자가에 오르시고, 열심을 다하셨던 주님은 오늘도 똑같은 열심으로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 되자.
그래서, 아버지의 진노가 아니라, 사랑이 쏟아지는 자들 되자.
우리를 받아주소서.
주님을 영접하고, 순종하겠습니다.
영생의 말씀으로 계속 우리를 명하여주시고, 보호하여 주소서.
설교요지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를
본 자가 없고 오직 아들만이 그를 보셨다
그 아들은
하나님의 본체시요(빌 2:6)
그가 하늘의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요 12:46)
빛은 생명이요(요 1:4)
생명은 말씀이시다(요 6:63)
그가 오심은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다(요 12:47)
예수의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는 자는 심판할 자가
따로 있으니 곧
그가 하신 그 말씀이 그를 심판한다(요 12:48)
그가 하신 말씀은 자의로 하신 말씀이 아니요
하나님 아버지가 친히 하신 말씀이요(요 12:49)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과 일과 능력과 그 몸이
하나님의 말씀이시다(요 14:10~11)
그러므로
예수를 거부할 수가 없으니 이는 생명을 거부함이요
하나님과 영생을 거부한 것이다(요 8:47)
하나님의 명령은 곧 영생이다(요 12:50)
○ 정죄는 곧 말씀을 거역한 것이다
성령의 증거하시는 말씀은 진리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곧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영생이다
○ 말씀은 우리 눈앞에 계시고 더 가까이 계신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니 영생을 얻는다
※ 말씀을 믿으면 진리가 보이고 진리가 보이면
성령이 보이고 그가 보이면
예수 그리스도가 보인다 그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다 (視無言)
빌립보서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요한복음 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한복음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