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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재산, 권력, 친구, 명예, 사랑 등 족쇄가 될 만한 요소들을 이미 모두 잃었거나 애초에 갖지 못했다. 혹은 있더라도 그런 것들을 잃는 걸 신경쓰지 않는다.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기초적인 윤리, 도덕, 법률, 규칙을 자주 어긴다.
가진 것이 없는 비루한 삶이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즉, 동귀어진, 자폭을 거리낌없이 할 준비가 되어있다.
갑을관계처럼 인간관계에서 아쉬운 입장의 사람이 굽히는 법인데, 아쉬울 게 없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굽신대지 않는다.
처절해 보이고 야성이 넘치는 캐릭터에게 자주 부여된다.
아니면 극도의 절망감에 빠져 모든 일에 냉소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3. 잃을 것이 없는 자 vs 지킬 것이 있는 자[편집]
토르: 이 이상 내가 잃을 게 뭐가 있겠어?
(What more could I lose?)
로켓: 난 잃을 게 많은데, 정말 많지...
(I could lose a lot. Me personally, I could lose a lot...)
잃을 것이 없어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자와 지킬 것이 있어 끈기와 목표의식을 갖는 자가 대립한다면 누가 승리할지에 관한 문제는 마치 사자 VS 호랑이처럼 종종 가십거리로 회자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황과 관점에 따라 매우 다르며 명확한 답변을 낼 수 없는 문제이다.
당장 그 싸움이 몸싸움이거나 단기적인 승부, 감정싸움 등을 말한다면 잃을 것이 없는 자가 유리하다. 악플러에게 져주는 유명인, 진상에게 혀를 내두르는 가게 주인, 양아치에게 주먹을 아끼는 격투기 선수 등이 그 예이다. 맨날 져주던 부하 직원이 조직을 떠나 스스로 '잃을 게 없는' 상태로 만든 뒤에 복수하는 클리셰도 있다. 복싱 챔피언이 타이틀을 잃을까 봐 몸을 사리다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무명의 도전자에게 패하는 록키 클리셰도 있다. '부자 몸조심'이라는 관용구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똑같이 가게에서 진상을 부려도 노숙자가 진상부린 사건은 노숙자에게 별다른 데미지가 없으나 공무원이 그랬다가 잃을 게 많았다. 네티즌들은 해당 공무원이 소속된 시청 홈페이지에 찾아가 항의했다. 마스크 착용 무시한 당진시 공무원 2명 직위해제...행안부도 감찰 착수
동양대 교수였던 진중권은 한동안 중단했던 논객 활동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일단 동양대에 사직서를 내고 나왔다고 한다. 교수직 그만둔 것은 나름의 ‘청야 전술’이라며, "들판을 비워버리는 것처럼 나를 공격할 요소를 아예 없애버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흔한 클리셰가 잃을 게 없는 악당이 주인공의 애인을 인질로 잡고 협박할 때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며 리드해 나가다가 결국 주인공에게 패하는 것이다. 그냥 악당이 적당히 요구할 거 얻고 풀어주면 되는데, 굳이 선을 넘어 애인을 해하려다가 주인공이 달려들며 싸움이 벌어지고 장렬히 패배한다. 이 싸움에선 주인공에게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명분과 동기부여가 강한 반면, 악당은 굳이 모든 것을 바쳐 주인공을 물리쳐야 할 명분이 떨어지기에 위기에 몰리면 허무하게 자멸하곤 한다. 어차피 악착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거나 자폭을 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은 쓰러지기 직전에 영화 '클레멘타인'의 명대사인 "아빠! 일어나!!"와 같은 버프를 받고 마지막 힘을 짜내 올인하여 악당을 물리치곤 한다.
물론 주인공이 잃을 게 없는 포지션이라면 '주인공 버프'를 받아 대개 주인공이 이긴다. 이때 '오늘만 사는 사람'인 주인공은 비록 악당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긴 하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저 놈은 반드시 죽인다"는 목표 하나만큼은 너무 강하고 몰빵한 상태인지라 잃을 게 많아 몸을 사리는 악당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마치 이순신 장군의 명언처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만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주인공이 처음엔 잃을 게 많아 괴물에게 양보하며 끌려다니다 괴물에 의해 다 잃은 후 폭주하여 물불 안가리고 달려들기 시작하는데, 결국 타고난 체급차와 능력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차피 괴물도 잃을 게 없는 자였으니 쌤쌤이라서 '잃을 게 없는 버프'가 상쇄되어 버린 것이다. 괴물도 자신을 창조한 주인공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주인공의 고통이 유일한 행복'이었기에 '잃을 게 없는 자 vs 잃을 게 없는 자'였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이 "꼭 너 하나는 잡는다"는 목표가 있어야 무서워지는데 아베 신조 피살 사건을 보면 집요할 정도로 집착하며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니 상대 입장에선 다소 무서울 수 있다. 지킬 게 있는 사람 역시 "꼭 너 하나는 지킨다"는 목표가 생기면 수단과 방법을 안가릴 수 있다. 미국 철학자 스티븐 아스마는 한 윤리학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의 목을 졸라야 제 아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겁니다.” 그래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 역시 마치 잃을 게 없는 사람처럼 달려드니 충분히 무섭다. 직장인들은 사표를 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다가도 딸린 식솔들을 생각하며 참는 클리셰가 있는데(충동을 제어하는 안전장치 역할), 딱히 얽매인 것이 없는 솔로들은 욱하면 그냥 과감히 사표를 내던지고 떠나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군대나 직장에서는 가정이 있는 사람을 안정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2]
장기적으로 보면 잃을 게 있는 사람들이 실적이 더 좋다.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사람이 좀 더 책임감 있게 맡은 바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과 같은 조직에서는 혼자 사는 사람보다 가족이 있는 사람을 더 대우하고 승진시키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사랑하던 가족이나 애인을 잃은 사람들이 현실을 잊으려 일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은 오래 가지 못하고 몸이 망가진다. 사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되도록 몸을 사리려고 하는 경향이 더 크다. 다만 주로 집에 빚, 자녀의 학자금 등으로 과도한 지출이 있거나 회사가 과로 아니면 퇴사를 강요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의 경우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은 빨리 발을 빼는 것에 비해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일하다 못해 과로사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과연 무엇이 승리인지를 판가름하는 관점에 따라서도 결론이 제각각이다. 예컨대 앞선 악플러와 유명인의 예시에서 갑갑하지만 풍족한 인생을 사는 유명인, 지켜야 할 가족이 있기에 악플을 쓰고 싶어도 자제력을 발휘하는 일반인, 집도 차도 직업도 가족도 없어서 인터넷에서 내키는대로 악플을 쓰고 다니는 악플러가 있다면 당장 자기 하고싶은 대로 행동하고 남을 일방적으로 모욕하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악플러는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의 행동을 통해 얻고 있는 인생의 만족도 면에서 보면 그 행동과 결과는 승리와는 거리가 멀다.
군인의 경우에도 목숨 걸고 지킬 것이 있는 군인이 더 강한 능력을 발휘한다.[3] 특히 전쟁이란 것은 군인 개인의 사적인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니므로 '지킬 것'이 큰 동기부여가 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명분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잃을 게 없는 막장 인생이라면 책임질 것도 없기 때문에 제멋대로 돌출 행동을 벌이며 약탈과 민간인 및 포로 학살 등 범죄 유혹에도 취약하다.[4] 가족과 명예 등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장병들이 자발적으로 기강을 바로 세우고 통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실제로 지휘관들도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지켜야 할 가족의 가치에 대해 강조한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고 나서 국가가 대신해서 가족들을 지켜준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이 국가를 위한 방향으로 표출되지 않고 당장 목숨을 부지하는 방향으로 표출될 것이다.
스파르타쿠스 2004년작에서는 잃을 게 없는 자에서 지킬 게 있는 자로 변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처음엔 노예 검투사이니 그냥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무기력한 모습에 가까웠다. 검투사들의 싸움에 열광하는 광란의 현장에서 동료가 신을 믿냐고 물어보자 "이 세상에 신이 있다고 해도 여기엔 없군"이라고 냉소적으로 답한다. 종교와 정치에 부정적이고 싸움에 큰 의욕도 없었다. 그는 동료인 드라바에게 패했고 그냥 순순히 포기하며 드라바가 최후의 일격을 꽂길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드라바가 높으신 분들에게 달려들다 비참하게 죽고 본보기로 전시된다. 이후 드라바에 대한 복수를 맹세하고, 사랑하는 노예 연인에겐 신에게 사랑을 맹세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피에 맹세한 후 로마군과 용맹하게 싸워 영웅이 된다. 일단 사람이 옳든 그르든 신념이 생기면 무서워지기 때문에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란 말도 있다.
한편 스토리 구조로 보았을 때 잃을 것이 없는 자는 극적인 연출을 주기 좋다. "단지 잃을 게 없는 것"이면 밋밋하지만 "원래는 이것저것 많았지만 타의에 의해 전부 제거당하고, 반드시 이뤄야 할 단 한가지의 목표, 그것을 이룰 강한 의지 또는 수단만이 남겨진 상태"는 만들기도 쉽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이라도 이런 심리 상태가 될 수는 있지만, 미디어적으로는 아무래도 전부 잃어버린 쪽에 비하면 비장한 미학이 떨어지는 편이다.
창작물에서는 잃을 것이 없는 자가 도리어 강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어차피 잃을 게 없다 보니 강자에게 오히려 막 나가고 약자에겐 동병상련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킬 게 있는 자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점차 조직에 물들어가는 때가 많다. 이러다보니 강자들이라면 잃을 것이 없는 자를 매우 무서워하지만 반대로 약자들이라면 오히려 이상적인 영웅으로 추앙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는 주로 가상 속의 영웅들에게서나 볼 수 있고 정작 현실에서 잃을 것 없는 자들은 약자를 공격할 때가 더 많다. 인생에 마땅한 가치가 없다고 느껴 막 살기로 한 묻지마 살인범들이 주로 노리는 것은 언제나 육체적 약자인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인 노숙자들 등이다. 제멋대로 살 수 있다는 마지막 남은 쾌감을 빨리 빼앗기기 싫어서 강자들을 슬슬 피하며 타겟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의거로 칭송받는 부당한 강자들에 대한 테러는 아이러니하게도 되려 지킬 것이 있는 자들이 가진 걸 스스로 버리고 행한 경우가 훨씬 많다.
국가 대 국가에서는 남한과 북한이 이런 구도이다. 북한은 상대적으로 잃을 게 적다는 점을 이용해 벼랑 끝 전술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북한은 북중관계, 북러관계에서는 잃을 게 무척 많은 지라 '을'의 입장이지만 남북관계에서는 이미 다 깨진 남북관계이니 우리에겐 아무런 손해 없다며 서울불바다를 언급했다. ## 이에 대해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남북 관계 끊어져도 우리는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이라며 관계를 끊으면 손해라는 걸 인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점점 북한 주민들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져 심신 다 지쳐가는 상황인 데다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으로 더 먹고 살기가 힘어져 북한 지도자의 한마디에 벌벌 기던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저항한 것과 중국에 일하는 북한 노동자가 임금체불로 먹고 살기 어려웠는데 전쟁준비라는 허울뿐인 명분으로 생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북한 본국에 송금시킴으로 인해 버티기 힘들어져 지린성 북한 노동자 폭동 사건을 일으키는 등 오히려 북한이 제대로 돌려받고 있다.[5]
역사적으로 오스만 제국과 사우드 가문이 이런 구도였다. 사우드 가문은 잃을 것이 없었는지라 아라비아 반도 내의 수많은 사우드 가문에 적대적인 부족들을 조져버리고 오스만의 영향력까지 제거해 버려 사우드 가문의 왕국을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동맹국 소속이었는데 결국 줄을 잘못 서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종합해보자면 실패하여 잃을 게 없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하여 얻을 것도 있어야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지킬 게 있더라도 그것이 본인의 직책과 일치하지 않거나 상충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보기도 한다.
4.1.1.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편집]
대개 본인의 삶에 지분이 컸던 것을 잃으면 다 잃은 것처럼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주관적인 감정에 가깝다. 가령 본인이 애인을 사귈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느꼈다면 반대로 애인과 헤어졌을 때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6] 행복은 목적지로 가는 여정에 있다는 한양대 교수의 칼럼을 보면, 반대로 불행은 가진 것을 잃는 과정에서 크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씨스타19의 타이틀곡인 '있다 없으니까'에서도 이런 심정을 잘 묘사했다. 많은 작품에서 악당에게 애인이나 자녀를 잃은 주인공은 극도의 절망감과 분노를 느끼며 모든 것을 걸고 복수하는데 '있다 없으니까'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다. 솔로들은 자녀가 '원래 없으니까' 없어도 그러려니 하지만, 자녀를 잃은 부모들은 '있다 없으니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정말로 잃을 게 없는지의 기준은 사회적인 기준, 즉 남들과의 비교에 의해서도 달라진다. 예컨대 실업자가 된 현대인은 종종 "난 이제 잃을 게 없는 놈이야!" 라고 비관하고는 하지만 대한민국 수준의 국가의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사회적인 권리, 보장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질은 근대 이전의 평민 관점에서 본다면 결코 적지 않음에도 현대 기준으로 보자면 기본권 외에는 다 잃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보장된다고 여겨지는 권리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박탈당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서는 이런 인물들은 정말 밑바닥을 모르는 것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꼭 극단적으로 근대 이전과 비교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보기엔 여전히 가진 것이 많은데 자신은 잃을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현실에 많다.[7]
창작물 등에서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아 자신을 '잃을 게 없는 놈' 이라고 말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신변의 자유와 사지 멀쩡한 건강한 육체 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행동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충분히 가진게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영화 아저씨의 주인공 차태식도 사실은 이런 쪽이다. 진정으로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 본다면 가소로울지도 모를 일이다.
god의 '거짓말' 가사에서 애인에게 갑작스럽게 이별 통보를 하면 멘붕에 빠질 수 있으니 대비할 수 있도록 일부러 모질게 대하는 등 점점 마음이 떠나도록 한다. 똑같이 애인과 헤어져도 예방주사를 맞듯 점점 소원해지며 잃는 게 데미지가 덜하다.
처음엔 충격을 받지만 '위대한 체념'으로 한 단계 성숙해지거나 타타타의 가사처럼 달관의 자세를 보여주기도 한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 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이 때문에 창작물에서 등장인물의 불행은 시작 설정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주인공이 처음부터 모태솔로인 맨발의 기봉이에서 딱히 비극적인 느낌은 없으나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의 주인공은 '여신' 코마츠 나나와 헤어질 위기에 처하자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둘 다 애인이 없다고 똑같은 상황은 절대 아니고 '최근 무엇을 잃었는가' 여부가 심경 변화에 핵심이다.
다 잃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소중한 게 남아있던 케이스도 존재한다. 일상에서 정전이나 단수가 되고 나면 새삼 전기나 수도의 소중함을 느끼는 케이스처럼, 잃어봐야 소중함을 아는 격이다.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압니다'라는 말이 유명하다. 보탬이 되는 것은 잘 의식되지 않아도 손해되는 일은 잘 의식되기 마련이다.
이 경우 집착에 매달리다 사실은 남아있던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 케이스가 제법 많다. 파멸 직전에 겨우 소중한 것을 깨닫고 멈추는 해피엔딩도, 기어코 파멸에 이르러 그것마저 잃은 후에야 그걸 깨닫고 망연자실하는 새드엔딩도 존재한다.
어느 작품에서는 집에 놀러온 여주인공이 실수로 컵을 깨자 새삼 이 컵이 추억이 있는 소중한 컵이란 것을 깨닫고 애인에게 격하게 화를 내지만 애인이 삐져서 나가버리자 이번엔 애인이 새삼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애인에게 쉬즈곤의 가사처럼 용서해달라고 간절히 사정하기도 한다. 컵이든 애인이든 평소엔 그냥 숨을 쉬듯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1990)에서는 평소 가족의 모든 행동이 못마땅하여 항상 불평하고 잔소리하며 불편해하던 꼰대 아버지가, 건강검진 결과 병원의 오진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자 스크루지 영감처럼 뒤늦게 후회하며 가족에게 살갑게 대해주기도 한다.
슈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는 부와 명예 등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1995년 낙마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후 횡경막에 전극을 이식했다. 비록 거동은 여전히 불가능하지만 신체 중 70%의 감각을 되찾자 “나를 안아주는 가족들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게 가장 행복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1976년작 택시 드라이버에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온 후 방황하며 애인도 없이 홀로 고독하게 살던 20대 청년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에게 중년의 선배 택시기사가 "난 너의 젊음이 부럽다"고 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탈모인들의 명언처럼, 2024년 기준으로 80세인 로버트 드 니로는 부와 명예를 가졌으나 트래비스와 중년 아재의 젊음이 부러울 수도 있다. 극 중 트래비스는 특히 구애하던 여성에게 차인 후 느닷없이 대통령 후보 암살을 시도하거나 갱들과 전쟁을 벌이는 등 잃을 게 없다는 듯이 제멋대로 막나가며 각종 기행을 저지르지만, 젊음이 있었기에 그런 일탈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드래곤볼의 크리링은 인조인간 18호에게 차여 낙담하고 있을 때 손오반이 "힘내! 친구라면 우리가 있잖아!"라고 위로해 주자 "시끄러" 한마디 하며 죽을상이다. 18호에 마음이 꽂혀 그녀가 전부처럼 느껴지다 보니, 소중한 동료들이 있음에도 전부를 잃은 것처럼 절망스럽게 느껴진 것이다.
어느 인기 아이돌은 20대의 나이에 좋은 집, 멋진 차, 수많은 여성 팬 등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여 남자들에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정작 본인은 현타가 온 듯 세상에 나만큼 괴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란 유서를 써놓고 자살하기도 했다. 반면 태사자의 김형준은 택배 기사를 하며 만족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 심리를 묘사한 박카스 광고가 당신의 뭔가는 누군가 간절히 원하는 대상이라는 주제의 풀려라 편이다. 직장인을 백수가 부러워하고, 이 백수의 자유를 군대 이등병이 부러워하고, 직장인은 군 시절엔 그래도 제대하면 끝이라는 희망이 있었다며 부러워한다.
게임 사이렌의 미하마 나오코는 10대부터 인기 아이돌이었으니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을 느꼈겠지만, 20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점차 인기가 떨어지며 밀려나자 '영원한 젊음'에 집착하다 급기야 좀비가 되어서 영생을 얻는다. 좀비가 되어서도 계속 '영원한 젊음'을 중얼거리고 다닐 정도이니, 얼마나 간절하고 한이 맺혔는지 한탄의 심정이 느껴진다.
사이렌의 또다른 주인공인 미야타 시로우는 오히려 영생을 얻은 마을의 좀비들을 보고 죽음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비참한 몰골로 살아가는 좀비들을 본 후 "영원히 산다는 것은 영원히 고통받는 것과 같은 것인가"라며 "그 고통을 끝내주겠어"라고 한다.
잃을 게 없다는 배짱도 일단은 살아있으니 부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클리셰에 대한 반박으로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AOS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아트록스도 상대를 도발할 때 동일한 취지의 대사를 말한다. Warhammer 40,000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자기 목숨 정도는 바칠 수 있다." (Even a man who has nothing can still offer his life)는 인용구가 나온다. 사실 워해머 세계의 기술력으로는 죽은 자도 실컷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에[8] 목숨만 남은 것도 꽤나 많이 남은 축에 속한다.
그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모든것이 끝장나도 내겐 아직 죽을 힘이 남아있다"는 문구가 나온다.(If all else fail, myself have power to die.). 물론 목숨이 남아있다는 의미보단 그 목숨을 끊을 힘이 남아있다는 것이라 상기의 인용구와는 다른 의미긴 하지만 모든 것을 잃은 것 처럼 보이더라도 최소한 죽음에 대한 선택권이 있긴 하다는 것.
목숨까진 아니어도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라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손을 잃는 식의 다른 손실이 있을 수 있다. 왕의 남자에서 주인공이 연산군에게 잃을 게 없다고 하자 눈을 불로 지져서 시력을 빼앗아버린다. 잃을 것 없는 막장들만 모아놓은 교도소 내에서도 폭력을 통해 서열이 정리된다.
내 목숨 잃는 건 두려워하지 않아도, 주변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두려워할 수 있다. 연좌제는 이러한 공포를 이용한 제도이기도 하다. 물론 이쯤 되면 기존의 주변인들은 이미 모조리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복수 같은 것을 꾀하면서 새로운 주변인을 만들지 않았을 가능성은 아주 낮고, 악역들은 그걸 타깃으로 삼을 여지가 있다.
영화 초능력자에서도 강동원에게 붙잡힌 고수가 친구들은 상관없으니 풀어달라고 부탁하자 강동원은 이를 가볍게 무시하며 친구들을 죽인다.
드래곤볼의 셀도 손오반의 전투력을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친구들을 공격한다. 어서 분노하여 진정한 힘을 보이라며 손오반을 흠씬 두들겨 패는데 반응이 없자 너의 고통만으론 분노가 생기지 않을 것 같다며 네 친구들과 함께 방법을 상의해 보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흠칫하기 시작한다. 결국 셀의 작전은 성공하여 손오반의 분노가 폭발한다.
미스터 로봇에서도 다크아미의 협박과 포섭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던 도미니크(심지어 상관이던 부국장이 눈앞에서 살해당하고 본인도 처형당하기 직전이었다.)였으나 그들이 가족과 친지들의 신상명세를 줄줄 읊자 굴복하고 만다.
남은 게 목숨뿐인 사람도 고통스럽게 죽는 것은 피하고 싶어 한다.
영화 '쏘우'의 변태 살인마 '직쏘'는 자살을 생각하며 방탕하게 살던 사람을 납치하여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는 명분으로 '생존 게임'을 벌이는데, 인질들은 죽음보다는 고통을 더욱 두려워하여 복종한다. 실제로 고통이 너무 심하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호소할 수도 있다.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이 판을 쳤는데 왜냐하면 인민들이 굶어죽느니 봉기하리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어차피 죽는 건 마찬가지인데 설마 굶어죽겠냐고 했으나 놀랍게도 굶어죽는 것을 택했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라면 굳이 귀찮게 뭔가를 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어차피 덤벼들어봐야 수용소에 가서 고문당하는 등 더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을 것 같고 배고파서 기운도 없으니 그냥 조용히 굶어죽는 것을 택한 것이다. 마치 IS에게 붙잡힌 인질들이 어차피 반항해봐야 더 고통스럽게 죽을 뿐이니 반항이 무의미하다고 여겨 그냥 순응했던 것과 같다.
봉기란 것도 승산이 보여야 한번 배팅해보자는 의욕이 생기는 법이다. 2024년 지린성 북한 노동자 폭동 사건을 보면 외국인지라 감시가 약화된 틈을 타 세력 형성을 한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광활한 대륙인 중국에 나와 있어 이미 반은 탈북한 상태니까 여차하면 외국 대사관으로든 어디로든 튈 수 있다는 점(밑져야 본전=잃을 게 없다)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세력 형성이 될 수 없도록 노조나 결사의 자유를 철저히 틀어막고 감시하는데 딱히 봉기할 세력을 이루지 못했던 고난의 행군 당시 인민들은 무의미한 저항보다는 무력한 죽음을 택했다.
하루하루를 무가치하게 보내는 사람에게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가장 바라던 날이었다"라며 오늘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라고 말하곤 한다.
때문에 잃을 게 없는 이들도 목숨을 빼앗겠다,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 위협을 하면 굴복하는 경우가 많다. 목숨을 잃는 것도 개의치 않겠다고 말하는 경우에도 보통은 일시적인 폭주라서 흥분상태를 벗어나면 패기가 싹 사라지며, 단순히 자신은 사는게 더 괴롭고 죽음을 개의치 않는다고 착각할 뿐일 때가 많다. 그러나 이미 삶이 고통스럽거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거나, 스스로의 목숨까지도 가볍게 여기는 등등의 사유로 목숨을 빼앗겠다는 위협에도 개의치 않는 경우도 있다. 다만 그 정도의 상황에 몰리는 사람은 결코 흔하지 않으며, 자신이 진짜로 그런 상태인지는 대부분 죽기 직전이 되어 보아야 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주인공 이토 카이지는 자신이 잃을 것 하나 없는 인생이라 생각하며 저돌적으로 난관을 헤쳐나가기도 하지만, 인간 경마 본선에서 정말로 실패하면 목숨을 잃을 상황이 되자 "평생 빚만 갚으면서 사는 인생이라도 상관 없어, 그저 살고 싶어! 꼭 이런 상황까지 내몰려야만 이 사실을 깨닫는거냐? 나는!"이라며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기도 한다.
잃을 것이 없어져 세상에 대한 저항을 드러내는 사람은 대개 무기 또는 무력만큼은 남아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가 아저씨의 차태식.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도 있다. 스토리 구조상 '절망 속에서도 이루고 싶은 최후의 목표'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의지만큼은 남아있다. 의지마저도 잃은 폐인은 창작물 속에서 잘 다뤄지지 못한다. 정말 물질적으로 다 잃었어도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큰 차이가 난다.[9]
갓 오브 워 3에서 잃을 게 없는 '전쟁의 신' 크레토스가 자포자기할 무렵에, '판도라의 상자'로 유명한 판도라의 "희망은 우리를 강하게 해줘요. 희망 때문에 존재하니까. 모든 걸 잃어도 희망으로 싸우는 거죠."라는 말을 떠올리며 각성한다.
2019년 베스트 셀러 '희망 버리기 기술'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다. "물고기가 물이 필요하듯 인간의 정신은 생존하기 위해 희망이 필요하다. 희망은 정신이라는 엔진을 위한 연료다. 희망이 없다면 모든 정신기관이 멎어 버리거나 굶주릴 것이다. 현재보다 미래가 나아지리라는 희망, 즉 삶이 어떻게든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신적으로 죽어 버린다. 상황이 나아진다는 희망이 없다면 왜 살아가겠는가, 왜 뭔가를 하겠는가." 빠삐용, 쇼생크 탈출,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웨이 백 등 탈옥영화에서 탈옥이라는 희망이 없을 때와 생겼을 때가 전혀 다르다.
과유불급이라고 희망고문은 절망을 느끼게 하여 오히려 더욱 '잃을 게 없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 수 있는데, 실제 심리학 용어에 '스톡데일 역설' 이라는 게 있다. 베트남전 때 미군 장교 스톡데일은 8년 동안 포로수용소에 갇혀 관찰했더니 '곧 풀려난다'고 기대하다 좌절하기를 거듭하던 포로들이 먼저 죽었다며,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막연한 희망에 기대다 결국 파국을 맞는다는 얘기다. 희망이 생기면 모든 것을 다 가진 듯이 기뻐하다가 그 희망이 수포로 돌아가면 모든 것을 다 잃은 듯 극도의 절망을 느끼기에 체념이 필요할 때도 있다. 군대에서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체념하면 그럭저럭 버티나, 처음 군대에 갔을 때는 상실감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심정이 들 수 있고 이때가 위험하다.
"잘 들어라, 애초에 기대를 하니까 배신을 당하는 거다."란 대사가 유명하며,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반대로 잃을 것이 있다고 해도 살아갈 의지, 즉 정신력을 잃었다면 사실상 잃을 게 없는 이들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잃든 말든 상관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잃을 것이 없다 보니 말 그대로 막무가내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려 들 수 있기 때문에 적으로 이런 사람을 만날 경우 도대체 어떻게 나올지 예측 불허이기 때문에 참으로 골치 아파진다.
우리가 사회 규범에 따르는 이유는 도덕심 이전에 그것을 어겼을 때의 사회적 비난, 재산 또는 신체적 자유를 잃게 되는 등 처벌을 내는 억제 장치 때문인데 그런 억제 장치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묻지마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한 사람들은 앞서한 것들로 인해 불이익을 받으나 마나가 크게 의미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불이익도, 심지어 자신의 목숨조차도 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자들은 위협이나 공포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상기되어 있듯이 창작물에서는 잃을 게 없는 인물이 특유의 저돌성과 뚝심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통쾌하게 타파하고 약자를 지키는 영웅적인 인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잃을 게 없는 자의 위험성이 정의로운 방향으로 표출되리란 보장은 전혀 없다. 오히려 무고한 행인이나 약자들을 향할 때가 더 많으며, 별 것 아닌 사소한 마찰로도 폭력을 휘두르는 양아치들, 남의 돈을 빌려서 안 갚아놓고는 가진 게 없는 것만 믿고 배째라며 적반하장을 부리는 채무자들[10], 조금만 타인에게 무시당해도 집으로 뛰어가 칼을 들고 오는 미치광이들의 모습이 실제로 우리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잃을 게 없는 이들의 모습이다.
오죽하면 악질 사채업자나 조직폭력배도 정말 빚을 갚을 의지가 전혀 없거나 모든 것에 자포자기하여 '안갚아, 배째'라고 하는 악질 채무자는 두들겨패고 협박한다고 돈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답이 없다고 한다.
모든 걸 잃은 이는 복수를 삶의 전부처럼 느낄 수도 있다.
일본에선 이렇게 잃을 게 없어서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무적의 인간(無敵の人)'이라고 부른다. 잃을 것이 없으니 무적이란 뜻으로, 비꼬는 의미가 강한 말이긴 하지만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의 위험성도 함께 내포하고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복수의 대상이었던 박사가 죽자 자살한다.
다크맨처럼 적에게 모든 걸 다 잃어 '복수의 화신'이 된 주인공은 '저놈을 죽이기 전까진 죽을 수 없다'며 집착한다.
지존파를 검거한 베테랑 경찰의 인터뷰에서는 고향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으면 범인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존파 일당은 모두 시골에서 너무 가난에 찌들어 살아와 고향은 '힐링'이 아닌 '탈출'해야만 하는 지옥이었다.[11]
영화 <펠론>(2008년작)을 보면 그 인세의 지옥이라는 미국 교도소에서 대한민국 조직폭력배 따윈 명함도 못 내밀 미국 갱들도 무서워서 안 건드리는 아웃사이더가 있다.[12] 그가 주인공과 2인실을 쓰게 되면서 자신의 얘기를 해 주는데, 이런 잃을 게 없는 자의 심리를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드러나는 살기가 얼마나 섬뜩한지도 느낄 수 있다.
영화 '초능력자'에서 강동원의 친엄마는 초인의 능력을 감당하기 어려워 목 졸라 죽이려고 하는데, 엄마마저 괴물 취급한 그에게 더이상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고 결국 친엄마를 역으로 살해하고 고독한 사이코패스가 되어 초능력으로 사람들을 사냥하는 게 취미가 되었다. 프랑켄슈타인도 처음부터 괴물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며 순박한 모습을 보였으나 오히려 사람들한테 배척당한 뒤 심한 상처를 받고 복수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비일비재했던 하층민들의 반란이 대표적인 사례로, 재산과 무장도 빈약한 이들이 강대한 국가 지도층들을 상대로 궐기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싸우다 죽는 것이 낫다는 선택을 할 정도로 실정이 만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화정 말기부터 제정 시대까지의 로마가 많은 재정적 부담을 짊어지고 시민들에게 '빵과 서커스'라고 불리는 부양책을 실시한 것도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에 가깝다.
배트맨이 범죄자들에게 물리적 위협을 하는 것도 이들 범죄자들은 잃을 게 없어 법에 대한 공포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양팔이 없는 노숙인이 있었는데 한 대학생 커플이 이 노숙인의 머리를 툭툭 치고 시비걸다가 노숙인이 발가락으로 잡은 가위에 찔렸다. 이 노숙인은 어차피 재산도 없고 몸도 불편해서 더 잃을 것도 없는 상태였는데 양팔이 없어 저항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커플이 시비를 걸자 폭발한 것이다.
'잃을 게 없다'는 대개 모든 걸 잃었지만 한 가지 목표에는 충실한 것이다. 그저 잃을 게 없을 뿐이라면 폐인이나 노숙자처럼 모든 사회 활동에 의욕을 잃고 현실에 안주한 채 무기력하게 대충 살아갈 수 있으며 사회에 대한 복수라든지 뭔가 목표가 생겨야 무서워진다.
영화 '아저씨'의 차태식은 처자식을 잃고 폐인이 되어 외부와 단절된 채 세상과 담을 쌓고 자신만의 성에서 홀로 조용히 은둔 생활을 하며 '공수래공수거'처럼 살고 있었다. 이웃집 소녀와 엮이지 않았다면 폭주할 일도 없이 계속 그렇게 죽은듯 지냈을 텐데, 유일하게 마음을 연 이웃집 소녀를 잃고 폭주했다. 차태식의 명대사가 "나는 오늘만 산다"인데, 폐인 시절에는 굳이 자기 입으로 이런 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즉, "잃을 게 없다"고 강조하는 오늘만 사는 사람의 대사에는 "난 리미터 해제된 놈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 것이다"라는 뉘앙스가 담긴 것이다.
무소유는 스스로 가진 것을 놓아주거나 소속된 곳에서 발을 빼, 무언가를 잃는 것에 대한 불안과 집착에서 해방된 달관의 느낌인지라 오히려 홀가분하게 자유로워진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에 가깝다. 가진 게 없어야(무소유) 잃을 게 없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무소유는 이미 하나를 가졌다면 하나 더 가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위에 내용과 같은 점인데 '가지지 않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무소유의 원래 뜻을 오해한다. 무소유의 본 뜻은 과유불급에 가깝다.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더 고민이 생기고, 욕심이 생기고, 채우지 못하는 욕망의 항아리에 스스로를 내몰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원래 취지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잘 다듬고 귀하게 보살피어 쓰자는 뜻이다. 누구나 목숨은 하나인데 이미 가진 목숨을 잘 보살피자는 것이지 위에 뜻대로 하면 목숨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거에 의미가 악용될 수 있다.
웹툰 작가 주호민은 삭발한 것에 대해 "불이 나기 전에 불을 질러버렸다"는 명언을 남겼다. 원래 사람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에서 상실감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탈모인들도 예외는 아니기에 각종 탈모 관리 용품들이 불티나게 팔리는데, 시원하게 머리를 밀어버린 주호민은 적어도 머리카락을 잃을 걱정에서 해방되었으니 나름의 '무소유'를 실천한 셈이다. 스님 헤어스타일이라서 '스님'이란 별명도 있다.
무규칙에 가까웠던 초창기 종합격투기 UFC에서 별로 붙잡힐 만한 머리카락이 없던 호이스 그레이시가, 꽁지머리를 하고 나온 키모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전세를 역전시키며 승리한 적이 있다. 키모는 붙잡힌 꽁지머리에 신경쓰다가 잘 풀어나가던 경기를 그르쳤다. 무규칙 격투기에서는 머리카락이 상대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어 격투기 선수가 삭발을 하는 것도 나름의 청야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군대에서도 두발검사와 손톱검사를 통해 바싹 깎아버려 훈련시 행동에 제약이 있을 만한 요소들을 제거하여 훈련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장발은 앞머리가 눈을 찌르거나 시야를 가릴 수 있고 손톱이 길면 걸리거나 부러져서 신경이 쓰여 훈련에 방해를 줄 수 있으니 훈련에 걸리적거리는 요소를 제거하는 셈이다. 특히 네일아트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은 평소에도 '손 조심'을 하는데 손톱을 바싹 자르면 비로소 '손의 자유'를 얻게 되어 훈련받을 때 손톱에 신경을 안쓰고 마음껏 행동할 수 있게 된다.(리미터 해제)
'밑져야 본전'은 '져도 잃을 게 없다'는 뜻으로 리스크가 없다는 뜻이다. 가진 게 없는 사람도 뚜렷한 목표가 생겨야만 필사적으로 변하듯이, 리스크가 없는 사람도 본전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하려는 목표가 간절해야만 필사적으로 달려들 수 있다.
2012 런던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 김지연은 무명의 신예였던 당시 세계 랭킹 1위 디펜딩 챔피언인 '매리얼 자구니스'(미국)[13]와 붙은 준결승에서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었으나 주눅들지 않고 대담한 패기로 완전히 들이대듯 덤벼들며 몰아붙인 끝에 대역전극을 펼쳤다. 그녀는 경험이 부족한 신예가 베테랑들을 위축시켰던 비결에 대해 "막무가내로 했다. 이기면 좋은 거고, 지면 어차피 본전이니까 난 손해 볼 게 없었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즉, 김지연은 세계 최초로 올림픽에서 자구니스를 이긴 선수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이다.[14]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민란: 반역으로 죽든, 폭정이나 굶어 죽든 죽는 건 매한가지니 차라리 같이 죽자고 국가에 덤벼들었다.
세계 각지의 독립운동가: 이미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지배국에 덤벼들었다.
검일: 김품석이 검일의 아내를 빼앗아 자신의 첩으로 삼자 빡쳐서 대야성의 군량고를 전소시키고 백제군에 투항했다.
견훤: 큰아들에게 권위를 찬탈당해 모든 것을 잃자 빡쳐서 왕건에게 붙어 자기가 세운 후백제를 자기 손으로 멸망시켰다.[16]
계백: 황산벌 전투에서 승산이 거의 없음을 직감하고 가족을 전부 죽인 뒤 전쟁터로 향했다. 어차피 죽을 싸움이라고 생각한 것이다.[17]
한 헌제 유협: 조조의 협천자이령제후 정책으로 사실상 실권을 잃고 바지사장으로 전락하자 더 이상 잃을 권력이 없던 그는 버틸 수가 없다!를 외치며 외척 동승과 함께 조조를 숙청 하려 하지만 오히려 역으로 탈탈털려 황자를 임신한 동귀비마저 숙청 당하고 나중엔 그의 아들인 조비에게 선양하게 된다.
진승, 오광: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窮鼠齧猫)"는 말이 이들을 지칭하면서 나온 것이다.
이릉: 패전해 포로가 되었음에도 그나마 한나라에 대한 충성이 있었지만 한무제가 세간의 소문만 믿고 자기 일족을 모조리 멸문시키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문의 발단인 이서를 죽인 뒤 흉노에 귀순하였다.
배수진: 명장 한신의 유명한 전술이지만 해당 문서에도 기술되어 있듯 극한의 공포 앞에서는 답이 없다. 이 고사성어보다는 '파부침주'[19]가 좀 더 어울리는 말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러시아인: 도시가 아니라 낙후된 지역에서 사는 러시아인들의 삶의 질이 애초에 매우 나빴기 때문에 전쟁으로 경제제재를 받아도 타격이 없고, 오히려 전쟁 참가로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었기 때문에 전쟁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자카르파타주, 체르니우치주: 1인당 GDP가 2000달러 미만인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덕에 러시아가 얻어갈 게 전무했기에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이한 지역이 되었다.
6급 공무원: 5급 공무원마저 포기한 주사다.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동기들과 후배들에게 막 나가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선배들에게까지도 막 나간다. 더 큰 문제는 이쪽은 다른 의미로도 잃을 게 없는 철밥통이라는 것이다.[20]
장포대: 해당 문서로. 장성 (진급) 포기한 대령이다.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동기들과 후배들에게 막 나가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선배들에게까지도 막 나간다. 하위 호환으로는 대포중이 있다. 다만 대령이 의욕이 없고 만사 귀찮아진 상태라면 오히려 부하들은 편할 수도 있다. 상위 호환으로는 더 강력한 의미의 대포중 (대장 포기한 중장)이 있는데 이쯤되면 모든 군인들에게 막 나간다. 동기가 참모총장이니 거리낄 게 없기 때문일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막나가는 경우는 진짜배기 또라이가 아닌 이상 거의 없다. 당장 중장까지 진급했다면 스스로 남들에게 군생활 나름 잘했다고 말해도 될 정도이기 때문이다.
경포총, 총포경: 장포대의 경찰관 버전. 각각 '경무관 진급 포기한 총경', '총경 진급 포기한 경정'을 일컫는데 경정부터는 계급 정년이 적용돼서 경정을 단지 14년 이내에 총경 달지 못하면 퇴직해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경정 달기를 꺼리는 경감도 있으며, 순경으로 경정이 된 케이스는 된다 하더라도 계급 정년이고 뭐고 퇴직이 얼마 안 남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21]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막 나가서 경찰서 분위기 흐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총경 숫자에 비해 경무관 진급 숫자가 살인적으로 적고, 지역 행사 때 총경이 말이 대령 대응이지 실제론 사단장(소장)과 여단장(준장) 사이에 앉는 걸 보면 사실상 장성급으로 취급받는지라 총경은 그럭저럭 만족을 하고, 경포총은 생각보다 적은 편이다.
승포소: 장포대의 소방관 버전. 각각 '소방준감 포기한 소방정', '소방정 포기한 소방령'을 일컫는데 사실 소방사로 시작해서 소방령 바로 밑 계급인 소방경으로 퇴직하는 것은 소방관 생활을 잘한 케이스로 손꼽힌다. 9급 공무원이 5급 공무원으로 퇴직한 것에 상당한 수준으로 비춰진다. 소방령부터는 계급 정년이 적용돼서 소방령을 단 지 일정 연수 이내에 소방정 계급을 달지 못하면 퇴직해야 한다. 다만 소방관의 경우 경찰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이런 장포대 꼰대짓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편이며 소방관의 경우 경찰관보다 단합이 매우 잘 되는 편[22]에 속하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이런 미친 꼰대짓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이 경우엔 말 그대로 잃을 게 없는 터라 가장 무섭다. 사회적인 비난이나 교도소 생활은 물론 사살 및 사형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저지르기 때문에 아무리 치안을 좋게 하거나 엄한 법적 처벌을 해도 소용이 없다.
김대한: 자신의 신변을 비관한 나머지 영업운행 중인 전동차에 방화를 하여 200명 가까이 살해한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 이전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학살자다.[23]
아오바 신지: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의 범인. 막장 부모로 인하여 제대로 사회화가 되어 있지 않아 사회에서 고립된 상태에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게 되자 무고한 애니메이터들을 묻지마 살인으로 살해했다. 결국 사건을 일으킨 지 5년이 지난 2024년 1월 25일에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수많은 총기난사 사건들: 인류가 휴대할 수 있는 무기중 가장 빠르게 많이 죽일수 있으므로 이 사건을 주도한 범인에게는 최소 무기징역 또는 사형에 가까운 형벌을 내린다. 보통의 범죄자들도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보통은 총기를 최후의 방어수단 혹은 레저로만 이용하는 게 대다수지만 자신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내몰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 마지막 이벤트로 이런 사건을 일으키곤 한다.
우범곤: 현역 경찰관이 애인과 심한 갈등 후 더 이상 삶의 미련이 없어졌는지 마을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후 본인도 자살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나 미국에서 2017년 6백 명에 육박하는 사상자를 낸 부유한 재력가나 둘 다 목표 달성 후 극단적인 선택으로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났다. #[24]
신창원: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언제 출소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자 탈옥이라는 희망을 품고 치밀하게 준비하여 탈옥에 성공했다.
오티스 존슨: 미국에서 25살[25]이었던 1970년에 경찰관 폭행 및 살해 미수 혐의로 44년간 복역하고 69살인 2014년에 출소한 오티스 존슨은 자신이 디스토피아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귀에 무언가를 꽂은 채 비밀 요원들처럼 행동하여 이어폰을 꽂은 시민들을 CIA 요원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더 이상 공중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가족들과는 1998년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고 출소하면서 갖고 있던 것은 신분증과 자신의 전과가 적힌 문서, 40달러의 현금, 버스 티켓 2장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모든 걸 잃고 69살에 제로베이스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절망에 빠질 수도 있으나 그가 밝힌 소감은 이렇다.
교도소 내 사형수, 무기수, 장기수: 20~30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은 사람 또는 출소할 때까지 살아있기 힘든 사람, 무기징역 혹은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들은 사고를 치던 말던 어차피 살아서 나가지 못하거나 형량 몇 년 늘어나건 말건 거기서 거기인 양반들이라 조폭, 재벌, 정치인들도 먼저 공격받지 않는 이상 절대 건드리지 않고[26] 매우 조심히 다룬다.[27] 잘못 건드리면 자기 형량 늘어날 수도 있는데다,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자기 안위를 신경 끄고 같이 죽자고 덤벼드는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엘프리스마을: 어택이라는 전파 방해로 PC방의 기기를 고장낸 데다 엘소드 영웅대전 14 사태를 망친 원흉으로 악명을 떨쳤다. 시간이 지나 연합뉴스에서 "실력 과시하려"…게임사 서버 공격 고교생 3명 입건이라는 기사가 나자 당시 일을 기억하는 네티즌들은 저 사건이 틀림없을 것이니 정의구현을 당해야 한다고 평하였다.
정남규: 시사저널에서는 기사 마지막 줄에 정남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 ‘살인’이었다고 분석했다. 찢어진 가난에 주변에서 따돌림을 당한 그는 살인할 때의 쾌감을 맛보고 여기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야마가미 데쓰야: 어머니가 통일교에 전 재산을 헌금하는 바람에 집안이 망해 버렸고 본인도 자신이 갖고 있던 돈이 모두 떨어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죽기 전에 복수를 결심하고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저격해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보내버렸다.[28]
스텔라: 과도한 섹시 컨셉으로 돌변한 이유가 이전의 앨범들이 모두 망하자 소속사 사장이 빌릴 수 있는 돈을 최대한 빌려서 마지막으로 시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성진: 처음 낸 걸그룹 GLAM이 다희의 이병헌 협박으로 해체되자 빌릴 수 있는 돈을 최대한 빌려서 여자친구를 데뷔시켰고 초대박이 났다.
아임뚜렛: 투렛 증후군 연기 의혹이 불거져 BJ로서 추락한 이후 더 이상 잃을 인기조차 없게 되자 시청자들을 대놓고 조롱한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조별예선 3차전의 차범근호: 벨기에를 10점 차 이상으로 두들겨 패도 이미 멕시코전과 네덜란드전 패배로 인해 경우의 수를 따질 필요도 없이 16강 진출은 물 건너가버린 상태에서[29] 최종전인 벨기에전을 치르게 됐는데, 벨기에는 대한민국을 3점 차 이상으로 이겨놓고 네덜란드와 멕시코가 승부를 내야 하는 상황까지 봐야 했다. 그러나 벨기에가 선제 득점을 해 놓고도 유상철의 동점골로 인해 대한민국과 같이 탈락하고 말았다.[30]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8강전 가나 vs 우루과이의 수아레스: 연장 후반 막판에 헤더로 실점할 위기를 공을 손으로 쳐내서 최후의 불씨를 살렸다.[31]
신태용호/2018 FIFA 월드컵 러시아/독일전(카잔의 기적): 스웨덴과 멕시코에 패해 조에서 2패를 한 한국이 마지막에 떨어질 각오를 하고 독일을 격침시킨 경기.[32] 스웨덴이 멕시코에 앞서기 시작할 때부터 한국은 더 이상은 잃을 것도 없었다. 반면 독일은 사실상 탈락이 확정된 최약체라고 얕보았다가 같이 죽자고 덤벼든 한국에게 말려 같이 짐을 싸게 되었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조별리그 H조 5경기-2 가나 vs 우루과이: 운명인지 12년 뒤 재대결하게 되었다. 같은 시각 다른 경기장에서 진행되고 있던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 결과에 따라 H조의 마지막 하나 남은 토너먼트 진출국이 한국이냐 우루과이냐가 갈리는 상황[33]에서 대한민국의 앞서가는 역전골 소식이 가장 먼저 터졌고, 이 소식이 전해졌는지 가나는 우루과이에게 2실점을 내주면서 탈락이 확정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걸 기회삼아 그들이 절대로 16강에 진출하지 못하게 전력을 다해 물고 늘어지며[34] 한국이 이긴다면 3골이 필요했을 우루과이에게 마지막 한 골조차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가나는 12년 전 최악으로 만난 원수 수아레스[35]와 우루과이를 잡아끌고 같이 조별리그에 탈락해 마침내 설움을 씻고 통쾌하게 복수에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이 가나의 복수와 희생 덕분에 16강으로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36]
2023 FIFA 여자 월드컵 호주·뉴질랜드 5경기-1: 이 당시 대한민국 여자 축구 대표팀은 콜롬비아와 모로코에게 1골도 넣지 못한 채 2패를 누적하여 이미 탈락 확정이었지만, 최종전인 독일전에서 끝내 1:1의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이때 골 득실차에 의해 독일 여자 축구대표팀은 강력한 우승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전술한 5년 전 남자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멕시코를 살려냈듯 이번에는 모로코를 살려냈던 것.
북한이탈주민 강화도 경유 월북 사건: 탈북하여 가족도 없고 코로나로 직장도 잃고 범죄에 연루되어 경찰에서 조사를 받는 등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자 새벽에 목숨걸고 한강에 입수하여 헤엄쳐 한국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 "일본 대사에 돌던져 처벌받은 김기종 ‘독도지킴이’ 대장"(한겨레) 김기종은 명문 법대 출신이었으나 운동권에 빠져 딱히 법조계로 가지도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변변한 직업도 없이 '독도지킴이' 대표라는 시민단체 간판으로 후원을 받으며 근근히 살아오다가 이 모든 게 다 미국 탓이라는 분노에 빠져 결국 일탈을 저질렀다. 북한 "김기종은 안중근 의사…의로운 행동"
한강 의대생 실종 사건: 아버지가 "아이 잃은 아빠는 더는 잃을 게 없다.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해주겠다고 아들한테 맹세했다"며 "잃을 게 없는 사람과 지키려는 사람은 승부가 안됩니다."라는 말을 했다.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 유괴 직후 범인에게 전화가 왔을 때는 아버지가 범인에게 아들을 살려달라고 읍소하며 범인의 일방적인 요구에 끌려다녔다.[37] 결국 아들이 살해당한 것을 알게 되자 분노하여 수십년간 범인을 찾겠다고 쫓아다니는 아버지의 분투가 이어졌다. 이에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여러차례 다루는 등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영화로도 제작됐다.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는 이슬람에 대한 풍자를 자주 하던 언론이었기에, 평소에도 테러에 대한 우려를 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샤를리 엡도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는 "나는 보복이 두렵지 않다. 나는 아이도, 아내도, 차도, 신용도 없다. 약간의 허세를 보태자면, 나는 무릎꿇고 사느니 선 채로 죽겠다."는 인터뷰를 2012년에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2015년에 현실이 되었다.
산체스&마이크로닷 부모 사기 사건: 마이크로닷이 처음에 해당 논란이 아예 허위라며 강경 대응을 선언하자 피해자들이 자기들은 잃을 게 없다고 받아치며 사건이 커지기 시작했다.
주호민 특수교사 고소 사건: "특수교사 선처하겠다"던 주호민 돌연 '유죄 의견서' 제출…"일과 일상 잃어" 사건 초기에 주호민은 유튜브 커뮤니티에 구구절절 하소연하는 장문의 글을 올리고 특수교사를 선처하겠다며 여론의 눈치를 살폈으나 여론이 돌아서자 "특수교사로 인해 일과 일상을 모두 잃게 됐다. 정서적 아동학대 사실이 명백하니 유죄를 선고해주시길 바란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언론에서 논란이 된 직후에도 유튜브 커뮤니티에 해명글이 올라오지도 않아 어차피 이젠 잃을 게 없으니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막 나가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자수성가형 인물들 중 가난했던 이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해서 성공했다. 이 문서에 서술된 사례 중에서 그나마 몇 안 되는 긍정적인 사례다.[38] 상술된 소성진도 (GLAM 해체 직후 시기 한정으로) 어느 정도 일치한다.
프리터(알바족): 갑질도 잃을 게 있는 사람을 상대로나 가능한데 프리터는 여차하면 그만둬 버리므로 오히려 주인이 비위를 맞춰주는 일도 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라이더의 몸값이 높아지고 구인난에 허덕이게 되어 오히려 라이더가 배짱을 부리며 갑질을 시전하여 고용주가 비위를 맞춰주는 일까지 생겼다. 심지어 라이더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상황도 펼쳐지는데, 라이더가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주인에게는 언제 그만두겠다고 미리 매너 있게 말해줘서 사람 구하여 대비할 시간을 주나, 미운 주인에게는 참고 있다가 디데이 날에 대판 싸우고 그만둬 버리거나, 가장 바쁠 때 잠수 타버리기도 한다.
히키코모리: 극단적으로 사회와 단절된 형태이다. 사회와의 접촉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인간관계는 물론 사회적 지위 등 잃을 게 없다.
니트족: 아닌 경우도 다수 있지만, 이들이 취업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이유는 주변에 부양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 족쇄가 될 수 있는 잃을 만한 게 없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서 직장인이 자신의 상사에게 꾸지람을 당한 후 사표를 쓰려다가 자신의 아이 사진을 보거나, 미혼인 경우 여자친구 사진, 친구들과 함께 찍은 우정 사진 등을 꺼내 보고 사표 제출을 결국 포기하는 클리셰가 많다. 잃을 게 있다!
왕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른 회원들과 친분 관계를 많이 쌓은 회원은 다른 회원들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운영진에 순응하지만 어차피 왕따라서 강제퇴장 & 영구차단을 당해도 상관없는 회원은 괜한 자신감을 가지고 운영진을 만만히 대하거나 대판 싸우고 탈퇴해 버리기도 한다.
소말리아/해적: 해적이지만, 생계형인 경우가 많다.
수능 끝난 고3: 음주, 흡연, 학교폭력 등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는 이상 학교에서 뭔 짓을 하든 자유가 보장된다. 다만 후배들의 수업을 방해하지 않도록 지나친 민폐 행위는 자제시킨다. 몇몇 학생들이 노트북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 교내 PC방을 영업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말년병장: 수능 끝난 고3의 군대 버전. 본인이 전역 전 휴가까지 마친 병장이라면 상급자에 대한 하극상 등등 명백히 선을 넘는 행동만 하지 않고 최소한의 훈련만 받고[39] 후임들이나 간부들도 어느 정도 민간인처럼 대해준다. 대장 위에 병장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 다만 후임들에게 주특기 전수, 군사훈련 참가 등을 위해 스스로 전역을 늦추는 전역예정자도 있다.
말년간부: 말년병장의 간부 버전으로 퇴직을 앞두고 있어서 막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전역을 앞두고 있어도 주특기 전수와 군사훈련 참가 등을 위해 전역을 연기하는 간부도 있다. 이 속성이 상술한 대장 포기한 중장과 겹치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7.1.8. 전쟁과 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