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바닷가에 있는 교회, 아동부 성경공부 시간에 시편 23편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푸른 초장’이란 단어를 읽어 내려갈 때 한 아이의 눈이 반짝거리더니 바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샘요?” “와?”
“초장 색깔은 본래 뻘~건 색인데 여는 와 푸른색이라 카능교?”
그때 교사는 잠시 당황해 하며 설명할 방법을 찾고 있는데 바로 옆에 있는 친구가 태연하게 대신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얌마! 그거는 와사비 아이가!”
개정판 성경에는 푸른 초장을 ‘푸른 풀밭’으로 번역했다. 훨씬 전달이 편하고 바로 이해가 되는 번역이었다. 양은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푸른 초장이 와사비라는 유머에 담긴 뜻을 생각하다가 언뜻 와사비를 너무 많이 찍어 먹다 눈물이 났던 때가 떠올랐다. 조금만 먹으면 환상적인 맛인데, 많이 먹으면 왈칵 눈물이 난다. 와사비 역시 지금 당장 고추냉이로 고쳐야 하나!
때론 푸른 풀밭이 축복의 자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푸른 풀밭에만 머물러 있으면 탈이 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감사를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 상황이 자기의 능력 때문이라고 짐작하고는 짐짓 교만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성경에 이런 상황이 나온다.
“그때 사무엘이 돌을 들어 미스바와 센 사이에 두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고 말하며 그곳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사무엘상 7장 12절)
초장이든, 와사비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이 고백은 신앙인의 가장 위대한 고백 중 하나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는 없다. 일분일초라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가 아니었다면 진짜 푸른 초장이 독한 와사비의 구덩이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왜 그러셨을까?
“당신의 이름을 위해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시편 23편 3절)
참 고귀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직 ‘당신의 이름’을 위해 의로운 길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또 다른 뜻으로 이렇게 고백했다. ‘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 말의 궁극적인 뜻은 하나님과 당신이 함께 윈윈(winwin) 하시기 위한 위대한 계획 때문이다. 나의 성공이 하나님의 성공이라는 말이다. 정말 감사하지 않은가!
욕심의 와사비를 먹고 찔끔 눈물 흘리지 말고 푸른 풀밭을 바라보며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하리라.
당신은 성령의 보금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