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해 전 서울시 새마을회 회장이 지난 4월10일 경남 의령에서 열린 2013년 의령 남씨
대종회 정기총회에서 제 13대 대종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남상해 신임 의령남씨 대종회 회장은 "경남 의령을 본관으로 하고 있는 의령 남씨 문중에 조선의 개국공신인 충경공 남재, 강무공 남은을 비롯하여 현재까지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명족(名族)"이라고 밝혔다. 그러므로 우리 후손들은 "선조들의 얼을 이어받아 부끄럼이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하고 또 남보다 한발 앞서서 나아갈 수 있는 자질과 인격을 갖추어야 하며 그렇게 하여서 이 나라와 사회 및 우리 가정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씨성(南氏姓)은 신라 경덕왕 14년 시조(始祖) 영의공(英毅公) 민(敏)이 왕으로부터 남씨로 사성(賜姓) 받은 것이 시초이다. 1200년대 고려 후기에 이르러 남씨는 영양, 의령, 고성 삼관(三貫)으로 나누어졌다. 의령남씨의 관조(貫祖)는 고려 통헌대부(通憲大夫) 추밀원직부사(樞密院直副使) 남군보(南君甫)이다.
의령남씨는 고려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고려말에 자헌대부(資憲大夫) 참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를 지낸 곡은 을진(乙珍)은 나라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신념으로 감악산 암굴에 들어가 단식 순절한 절신(節臣)으로 후세의 추앙을 받고 있다.
조선조에는 충경공(忠景公) 재(在)와 강무공(剛武公) 은(誾) 형제가 조선 개국에 훈1등의 공을 세워 중앙 정계에 진출, 재(在)는 의정부 영의정이 되었고, 은(誾)은 증 좌의정이 되었다.
이후 대대로 숱한 현신(賢臣)과 학자들이 배출되어 씨족의 위세를 높여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서 의령남씨를 조선조 20대 명벌의 하나로 꼽고 있다.
정승 6명, 대제학 6명, 판서 22명, 문과급제자 140여명이 나왔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남덕우(南悳祐)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많은 인재가 정-재계 법조계 학계 등 여러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의령남씨는 지금 전국에 20여만명이 산재해 살고 있으며, 의령남씨의 본산(本山)인 의령군 의령읍 서동리 400번지에는 관조 의령군(宜寧君)의 묘소와 재실 비각 관리사가 있으며, 매년 춘추로 전국의 자손들이 모여서 시제(時祭)를 드리고 있다.
첫댓글 저 는 잘다녀 갓다 왓습니다,친 회 입니다
여기는 남씨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