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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요대백과 원문보기 글쓴이: 청운클럽
<배 호 저 세상으로 떠나다>
- 월간 '가요생활' 72년 1월호 보도내용
정녕 인생은 허무한 것인가. 낙엽이 딩구는 11월 7일 그 화려한 인기를 저버리고 아까운 스물아홉의 젊은 청춘으로 유명을 달리한 가수 故 배호군의 영전에 추모사를 보낸다. 흐느끼듯 애절하게 불러주던 그 노래의 주인공은 영생을 향해 가셨지만 그 사람이 남긴 노래의 발자취는 영원히 남으리.....
'0시의 이별' 최근 히트 '마지막 잎새'를 남겨놓고.....
유명을 달리한 인기가수 故 배호군의 영전에 고개숙여 심심한 명복을 빌며 통곡의 마음을 보낸다.
20대 젊음을 대중들과 희노애락을 같이해온 우리 가요계의 총아로 지칭받는 6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배 호군은 이미 지난 11월 7일밤 9시에 젊은 나이로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너무나 오랜세월을 대중예술의 승화에 몸담아온 그는 아까운 29세의 청춘을 어둠속의 유령에게로 던져진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란 말이 있듯 내 따뜻한 보금자리를 둔채 유명을 달리한 배 호 !
한국 가요사 사상 단일곡 '돌아가는 삼각지'로 5개월 연속 방송 인기가요 1위라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신기원을 연 후 40여곡의 연타 히트를 날리면서 대중의 가슴속으로 그 혼과 영이 여지없이 파고 들었던 불세출의 가수, 배 호!
그는 6년동안의 가수활동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죽어도 노래하며 무대위에서 쓰러지겠다"며 팬들과 흐흡을 같이해 왔고, 마지막에는 부축상태에서 앉은채로 무대위에 나타났던 헌신의 '노래혼', 그리고 '마지막 잎새'를 부른후의 애절한 젊은 요절 !!!! 어찌 그와의 석별을 슬프고 통곡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인가!
데뷔초부터 지병인 '신장염으로 병고의 고통을 감수해온 그.... 흐느끼듯 애절하게 불러주던 배 호군의 노래는 대중들의 심금을 후벼파는 듯 짜릿하고 애뜻한 인생철학을 함수해 있었다.
누구나 들어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그 가수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노래의 주인공에게 선망의 눈빛을 보내기에 분망할 정도였다.
66년 중반까지 일반 나이트 클럽, 살롱무대에서 전문 연주활동(드럼)을 해오던 배호는 외삼촌인 작곡가 김광빈씨의 '두메산골'로 가수로서 데뷔한 후 이듬해인 67년 3월에 작곡가 배상태씨와 컴비를 맺고 저 유명한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안개낀 장충단 공원' '능금빛 순정' '누가울어' '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파도''안녕' '당신'등 발표하는 곡마다 공전의 히트를 하며 가요계의 기린아로 부상, 돌풍을 몰아오고 있었다.
주로 애절하고 애상적인 노래를 불러주어 팬들의 심금을 더없이 흔들어 놓았고 흐느끼는 듯 하며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매혹적인 저음의 호소력과 문자그대로 전의무봉의 가창력으로 많 은 사람을 뇌새시켰으며, 젊은 층 보다 중년층에게,특히 3,40대의 중년 여성팬들로 부터 절대적 인기를 한 몸에 얻어 '대중의 우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6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지병인 신장병으로 시달려온 그는 몇번이나 무대에서 졸도를 하여 팬들의 마음에 걱정을 보낸 일도 있지만, 대중들의 아낌없는 성원으로 극적으로 회복되곤 했다.
67년 중반 '돌아가는 삼각지'가 전국적으로 빅히트된후 너무나 바빠진 그는 과로한 가수활동으로 신장염이 심해져 2달가량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 진찰한 결과,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인생의 사형선고와 같은 진단을 받게되며 절대적인 안정과 휴식을 취해야 하며 집중적인 병원 치료를 받아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강경한 의료진의 충고를 받았다.
그러나 천우신조로 가수로 대성공, 바야흐르 인기가도를 달리게 된 그는 마음놓고 요양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목숨을 담보한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어리석고 덧없는 인기가수의 종말이라니..... 그당시 그가 처한 여러 상황에서는 어찌보면 '피할 수 없는 운명적 선택'이었던가!
대중들의 인기관리와 쇄도하는 각종 공연요청을 자의반 타의반 물리치지 못했으며, 실제로는 몸이 너무 아파 쉬고 싶어도 매니저와 공연 관련인들의 빗발치는 성화에 못이겨 말 그대로 소끌려가듯 자가용에 누운채로 공연장을 향하기도 했었다.
자신의 중병을 치료하기위한 막대한 비용의 병원비와 약값을 스스로 마련해야만 했던 그는 몸이 성치 않은 상태로 창백하고 누렇게 뜬 얼굴과 온 몸이 심하게 부어올라 호흡마져 곤란한 지경에서 스스로 무대에서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어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노래를 마칠 수 있던 적도 많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당시의 그의 무리한 활동이 이어진 것이엇다.
본인의 노래에 대한 정열은 너무나 크고 지극해 "무대에서 노래 부르다 죽겠다"고 수시로 말할 정도였으며, 그 정열이 붉게 타오를수록 그의 몸은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항상 아픈 몸으로도 대중들을 위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줄곳 무대에 서온 그는 지난 10월23일 MBC의 '별이 빛나는 밤'에 출연후 비를 맞고 귀가한 후 감기증세가 심해지며 지병인 신방병이 재발 악화된 상태에서 신한의원에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의식을 잃고 위독해지자 10월 30일 세브란스 병원 528호실에 입원 8일간을 줄곳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11월7일 오후 7시에 자택으로 옮겨졌다. 2시간만인 밤9시에 교회신도들의 기도와 찬송가가 불려지는 가운데 배 호군은 일생의 끝을 맺게된 것이다.
참으로 너무나 비극적인 가수로서 더욱 완성될 수 있는, 그를 열렬히 아끼던 그 많은 팬들의 기대와 희망, 사랑을 뒤로한 채 그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우리의 곁을 떠나가고만 것이다.
유족으로는 모친 김금순여사(55세)와 여동생 배명신양(19세)둘 뿐.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외삼촌인 작곡가 김광빈씨와 배군의 컴비 작곡가인 배상태씨의 지극한 간호도 헛되고 야속하게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 그와 절친했던 가수 이상열군은 입원하는 날부터 장례식인 11일까지 자신의 일을 외면한 채 눈이 붙도록 통곡했다.
그의 어머니와 동생은 '운명의 신'을 저주하는 듯 소리쳐 울었고, 그의 갓 19살인 여동생 명신양은 '쓰러진 오빠. 오빠!!'를 절규하며 혼절하고, 앞을 가누지 못했다. '인생무상'은 이런 것인가.
인명은 재천이란 말이 있지만 아무리 '야속한 운명의 신'인들 어찌 오늘의 이 뼈를 깍는 아픈 이별의 슬픔을 예언하지 못하느뇨! 오늘의 이 아픔을 누구에게 원망해야 할까?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쳐도 이 가슴속에서 울려퍼지는 쓰라림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11월11일 가수장으로 예총회관앞 광장에서 영결식을 거행한 故 배 호군의 영전에는 유족인 모친과 여동생, 그리고 김광빈씨, 이상열군과 배상태씨의 숙연한 모습이 유달리 따뜻한 인정의 후예를 느끼게 했고 이날 12시 10분에 꽉매운 광장의 조객과 배군의 팬들과 함께 조곡이 울려 퍼지고 장례위원장인 현인씨의 장례사에 이어 영결식이 시작되었다.
배상태씨의 고인의 약력소개, 여가수 리타김의 울먹이는 추도사 낭독, 조객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베들레헴 교회 신자들의 조곡(찬송가)의 숙연한 분위기속에 평소 배군을 열렬히 성원하던 소복을 한 여성팬드리 지켜보고 동료가수들의 조의에 한동안 분위기는 울음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오누이처럼 가까웠던 정훈희양의 슬퍼하는 눈물은 동료가수이자 연배인 배군의 명복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서려있었고, 남진, 이현, 펄시스터자매와 최동길, 한동일,송대관, 장미리, 하춘화, 강정화양등과 선배가수 김정구씨, 신카나리아, 연예협회 이사장인 작곡가 박시춘씨와 그외 코메디언 이순주, 서영수, 김용만, 박일호씨등 가수분과 임원들과 전 가수들이 모인 가운데 영결식 끝났다. 장지인 장홍 신세계 공원묘지로 떠나는 영구차에는 배군의 친지 동료들의 슬픔에 찬 표정으로 차 있었다.
영원한 저 세상으로 떠나는 배군의 영구차뒤에서 차를 잡고 통곡하는 수많은 소복의 소녀군상들의 처연한 모습과 많은 동료들의 굳은 표정은 모두가 깊은 슬픔, 그 자체였다. 방송국 인사들과 작곡가, 매스컴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표정은 가요계의 새로운 인재를 잃게된 허무함에 가득차 있는 듯 눈언저리에는 하얀이슬이 맺혀있었다.
인생이 이렇게 허무한 것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무대에서 대중들의 감정과 한을 채워주기위해 '영혼의 노래'를 열창하던 배 호! 그는 이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영의 세계로 먼 길을 떠났다.
우리는 어젯날 우리와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해온 배 호군의 영전에 영원한 안식의 명복을 빌면서, '0시의 이별''마지막 잎새'란 백조의 노래를 남기고 저세상 멀리 멀리 떠나버린 '인간의 가수' 배호를 더욱 지극히 추모하지 않을 수 없다. 아! 배 호! 잘 가라. 그대의 노래 '안녕' 처럼........................
안 녕 전 우 작사(경기고. 서울대 철학과 졸)/나규호 곡(서울 음대졸.종교음악전공) /배 호 노래
" 후회하지 않 아요 울지도 않아요 당신이 먼져 가버린뒤 나혼자 외로워 지면
그때 빗속에 젖어 서글픈 가로등 밑을 돌아서서 남몰래 흐느껴 울 안녕.
후회하지 말아요 울지도 말아요 세월이 흘러 가버린뒤 못잊어 생각이 나면
그때 빗속에 젖어 서글픈 가로등 밑을 찾아와서 다시 또 흐느껴울 안녕."
<배 호 처럼 기억될 가수는>
... 1997.6.12 조선일보 권혁종 기자수첩 보도
세상을 떠난 요절가수 배 호가 있다.
적어도 30대 중반은 넘어야 흑백TV에서 노래하던 모습과 목소리를 떠올릴 가수다. 하지만 그 아래 세대라도 노래는 들어봤음직 하다. '돌아가는 삼각지''안개낀 장충단 공원''누가울어''안녕''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등등......
하다못해 노래방 노래 목록에서라도 보는 제목들이다.
배 호는 71년 11월7일 '마지막 잎새'를 백조의 노래로 남기고 요절했다.(호적나이로 만 29세. 실 나이 33세로) 지병인 신장병(만성 신부전증)에 의한 합병증이었다.
64년 '두메산골'로 데뷔해 67년초 '돌아가는 삼각지'의 폭발적 인기로 한 시절을 풍미한 지 겨우 5년에 지나지 않는 한 인기가수의 비운이 요절이었다. 수많은 팬들이 눈물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것도 당연하다.
미혼으로 죽은 배 호는 홀어머니와 15살 아래인 여동생 하나를 유족으로 남겼으며, 어머니는 95년 추석 전날 아들을 먼저 보낸 지난 24년의 한 맺힌 고통과 가난의 질곡의 삷을 78세로 마감하고 아들 배 호곁에 뭍혔다.
여동생은 현재 45세로, 배 호가 죽은 뒤 심한 정신 질환을 앓은 뒤 현재 어느 정도 의식과 거동은 하나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며, 현재 월계동 10평정도의 임대아파트에 살며 동사무소의 극빈자 생활비 보조금으로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며, 몸도 성치않은 외롭게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어 그 내막을 아는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배 호는 경기도 일영군 장흥에 있는 '신세계 공원묘지' 꼭대기에 묻혀있다. 오래 되어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돌아가는 삼각지' 가사가 쓰인 작고 초라한 노래비가 있는 무덤에는 꽃이 놓여있다.
지금도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팬들의 발길이 간간히 이어지고 있다한다. 사후 26년이 되는 현재에도......
흔히 '가수는 가도 노래는 남는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가요계에서 이런 소리 했다가는 쉰세대 취급받는다. 반짝 인기라도 히트내기 바쁜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는 식이다. 노래는 단물 씹고 뱉는 껌처럼,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되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반복이라는 고도의 상업적 구조의 특성이 지배하고 있다. '갈수록 곱씹혀지고, 진한 순수의 감성으로 오래토록 기억되는 대중가요 문화 시대' 는 이제 상업주의 일변도의 탁류에 밀려 그 빛을 더욱 바래가고 있다.
우리의 풍족한 의식주생활의 제품 싸이클이 너무나 짧아 진것과 맥을 같이한다. 80년대까지의 기존 가수 및 기존의 대중가요 개념과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다. 이것은 분명히 21세기를 앞둔 한국 대중음악의 냉정한 현실이다. 새로 나온 노래가 몇 달 못가 언제 그런 곡이 있었나 싶게 잊혀진다.
TV를 보면 한 주가 멀다하고 새로운 10대 스타가 탄생하고 히트곡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 수많은 신세대 가수군 중에 26년의 세월이 흐른 뒤 '배 호'처럼 기억될 가수와 노래는 과연 몇이날 될 지.......... ..........
첫댓글 올려주신자료너무나잘보았어요 김선중가수님 다시한번.배호가수님.글을읽고 마음뭉쿨했어요
추억의중요한자료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