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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하나님을 만나는가?
□ 본문 : 창세기 28장 10-15절
야곱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얍복강에서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사건입니다. 야곱의 인생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없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중학교 3학년 때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모태신앙인 저는 그 전에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제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제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은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말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고 삶이 변했지만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이고, 천국 가는 그날까지 계속 변해갈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내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함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간절함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런 간절함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거의 대부분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교회에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병이 낫는다더라,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의 문제가 해결된다더라, 예수님을 믿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더라,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 진다더라 … 등등의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기대도 없이 교회에 나온 분들, 아내가 남편이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가자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나온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하나님께서 보통 사랑하시는 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으면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배의 자리로 부르신 것은 여러분 한 사람을 한 사람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주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구원받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문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과 감격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가장 맞는 방법으로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가운데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찬양가운데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말씀을 읽다가 설교를 듣다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울처럼 전혀 생각지 못한 시간에 전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어도 예수님을 부인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고, 죄의 유혹에 넘어져 비참해질 때도 있지만, 예수님의 존재자체를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 믿음이 좋은 청년이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이 예수님을 믿는 이 청년을 조롱합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면서 불쌍하게 봅니다. 정신 차리라고 충고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위대한 성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리로 설득하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이 청년이 말합니다. ‘너희들이 하는 말은 다 알겠는데, 그런데 나는 예수님을 만났어. 그분은 정말 살아계셔. 내가, 내 인생이 그 증거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겠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청년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이 청년처럼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신앙생활의 완성은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의 시작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분이 있다면, 오늘 예배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났지만 어느새 마음이 차가워지고 감격과 기쁨을 잃어버리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오늘 예배를 통해 예수님을 향한 간절함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사모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장남이 아니라 둘째인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에게는 큰 괴로움이었습니다. 몇 년 터울로 태어났다면 덜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쌍둥이입니다. 그래서 더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먼저 나가는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습니다.
야곱은 날마다 장남으로 태어나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으로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샀던 것입니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야곱이 계획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항상 장자의 명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거래를 제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가면서까지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의 사명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망령된 에서와는 다릅니다. 에서가 장자의 축복을 원했던 것은 사명 때문이 아닙니다. 에서가 원했던 것은 영의 축복이 아닙니다. 아버지 이삭의 재물과 권세였습니다. 에서는 철저하게 육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직까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야곱과 함께 있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함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왜 야곱은 자신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꾀로 자신의 방법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나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어떤 분들은 왜 하나님이 자신은 만난 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가 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만나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만나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나를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내 감정과 내 고집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상황으로, 특별한 장소로, 특별한 시간으로 인도하십니다. 야곱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1. 떠날 때 하나님을 만난다.
10절 말씀입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야곱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형 에서 때문에 브엘세바를 떠납니다.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떠납니다. 하나님처럼 의지했던 어머니 리브가를 떠납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났을 때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이 원해서 브엘세바를 떠난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떠났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났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브엘세바를 떠나게 하십니다. 편안하고 안정된 브엘세바를 떠나게 하십니다. 내가 의지했던 사람들이 있는 브엘세바를 떠나게 하십니다. 스스로 브엘세바를 떠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편안하고 안정된 브엘세바를 떠나고 싶겠습니까? 누가 하나님 같이 의지하는 리브가를 떠나고 싶겠습니까? 누가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인간관계에서 떠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브엘세바를 떠나게 하십니까?
야곱처럼 실재로 브엘세바를 떠나게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신앙인들이 경험하는 브엘세바를 떠나는 것은 고난입니다. 환난입니다. 고난을 만나면 환난을 만나면 우리가 있는 곳은 더 이상 브엘세바가 아닙니다.
10가지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런 고난을 당한 사람은 욥 정도일 것입니다. 욥은 재산도, 자녀도, 건강도 잃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욥을 조롱했습니다. 그렇게 친하던 친구들도 욥을 정죄했습니다. 욥의 아내마저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정말 욥은 철저하게 브엘세바를 떠난 사람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고난은 대부분 한두 가지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있는 곳은 브엘세바가 아닙니다. 건강을 잃으면 더 이상 브엘세바가 아닙니다. 힘들게 하는 사람이 생기면 더 이상 브엘세바가 아닙니다. 재물도 있고 건강도 있고 명예도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고 세상적으로 아무리 잘 나가도, 자식문제가 생기면 더 이상 브엘세바가 아닙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브엘세바를 떠나게 하십니까? 우리를 만나주시기 위함입니다.
브엘세바를 떠난 분들이 있습니까? 고난을 만나고 환난을 당한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날 시간입니다. 죄로 인하여 만난 고난도 있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아버지를 속였기 때문입니다. 형 에서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때에,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자기 방법으로 자기 꾀로 살았기에 브엘세바를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브에셀바를 떠나게 된 것이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한 것이든, 아니면 우리의 죄로 인한 것이든, 브엘세바를 떠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브엘세바를 떠났습니까? 야곱처럼 광야에 있습니까? 고난을 당했습니까? 환난을 만났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날 시간입니다.
고난으로 인하여 불평하지 마십시오. 원망하지 마십시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내가 이런 환난을 당해야 하느냐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에서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내가 브엘세바를 떠났다고 미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기도하십시오. 브엘세바를 떠나 광야에 있는 이 시간은 기도의 시간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시32:6)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셔서 이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셔서 이런 환난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제발 기도 좀 하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면 이런 고난을 만나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도의 감동을 주셔도 우리의 고집이 얼마나 센지 좀처럼 기도의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그래서 브엘세바를 떠나게 하시는 것 아닙니까?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환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염려하지 마시고, 낙심하지 마시고 기도하십시오. 불평과 원망과 미움에 더 이상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고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2. 해가 질 때 하나님을 만난다.
11절 말씀입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해 갑니다. 그러다가 해가 집니다. 더 이상 길을 갈 수 없기에 야곱은 돌을 베개로 삼아 잠을 잡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 인생의 해가 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을 만난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교활한 야곱의 꾀가 바닥났습니다. 집요한 야곱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경쟁심 강한 야곱이 완전히 KO패를 당했습니다. 자신은 도망가고 에서는 집안에서 대장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해가 진 인생입니다.
※ ‘주라, 그리하면 채우리라’는 책이 있습니다. 88서울올림픽 탁구여자복식에서 금메달을 딴 양영자 선수의 간증책입니다. 한국의 50대 이상은 양영자 선수와 현정화 선수가 금메달을 딴 장면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책에서 양영자 선수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읽어드리겠습니다.
1964년 전북 익산에서 출생하여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탁구를 시작했고, 이일여중 2학년 때 전국 탁구대회 중등부 1위, 중고종합 1위로 2관왕을 차지하며 한국 탁구의 샛별로 떠올랐다.
1980년 이일여고 1학년 때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기흥 선수촌에 입촌한 후, 1983년 일본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단식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탁구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중국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 해에 체육훈장 거상장을 수상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 1위를 포함하여 4개의 메달과 1987년 뉴델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복식 1위를 포함해서 4개의 메달을 수확하며 명실상부한 한국 탁구의 대들보 역할을 감당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에서 올림픽 탁구 최초로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며, 체육훈장 최고의 상인 청룡장을 수상하였으며, 올림픽을 마친 후 1989년 은퇴함으로 한국 탁구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양영자 선수는 유치원 때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운동을 하면서 점점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테니스 엘보’(손목 관절에 무리한 힘이 가해져 근육이 찢어지는 현상)로 고생하기 시작합니다. 온갖 치료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의사는 탁구를 그만두어야 팔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국가대표의 영광을 누리고 싶었던 양영자 선수는 진통 주사를 맞아가며 시합에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철야기도와 새벽기도는 물론 학교 수업을 마친 후에도 교회에 들러 기도할 정도로 갈급한 심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배 어머니의 권유로 기도원에 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자신의 병을 고쳐줄 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도원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6년 동안이나 고통을 겪었던 테니스 엘보가 완치되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이 경험을 통해 탁구라는 재능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세계 대회에서 준우승한 것도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탁구를 하는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그전까지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운동했는데 이날 이후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운동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88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도 야곱처럼, 양영자 선수처럼 인생의 해가 지는 상황,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을 만난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하늘과 땅은 이어질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사람은 이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닥다리가 필요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언제든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천국의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13절, 14절 말씀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13절 14절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복을 야곱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구원의 사명을 야곱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인생의 목적이 바뀌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사는 인생, 세상을 위해 사는 헛된 인생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아름답고 존귀하고 영원한 인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 양영자 선수는 그 인생에 해가 졌을 때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그녀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탄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은퇴 후입니다. 책의 후반부를 읽어드립니다.
그 후 모든 영광을 뒤로 한 채, 1997년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낮은 자의 삶으로 돌아갔으며, 몽골에서도 오지인 고비 사막 생샨드의 작은 마을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남편이 몽골 성경 작업을 완역할 때까지 15년간의 선교활동을 마무리하고 2012년 귀국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SBS 탁구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했고, 2013년 이후 청소년 탁구 드림팀 감독과 꿈나무 유소년 감독을 맡아서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2018년 하남 탁구교실, 동탄 양영자 탁구클럽을 오픈하여 탁구를 복음의 그릇에 담아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양영자 선수가 복된 것은 금메달이라는 명예를 얻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인생, 복음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아름답고 존귀한 인생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브엘세바를 떠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안개와 같은 허무한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인생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생의 해를 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나주시려고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에서를 피해 도망가는 야곱,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밖에 없는 야곱입니다.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야곱에서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꿈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야곱이 처한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야곱은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800km 가까운 먼 길입니다. 과연 이 길을 무사히 가서 외삼촌 라반을 만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외삼촌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도 그렇지만 정말 자신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더 걱정입니다. 에서의 분노가 언제 풀릴지 누구 알겠습니까? 무사히 갔다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하나님은 가나안 땅과 모든 족속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이 정말 꿈과 같습니다. 지팡이 하나밖에 없는 내 자신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①하나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②그리고 또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야곱이 교활해도 아무리 야곱이 집요해도 야곱은 절대로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야곱이 교활하면 할수록, 야곱이 집요하면 할수록 오히려 이 사명에서 점점 더 멀어질 뿐입니다. 야곱에게는 어차피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③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떠나다’의 원어 ‘아자브’에는 ‘버리다’ ‘포기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너를 포기하지 아니하리라’는 뜻으로 읽으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교활하고 집요하고 경쟁심 강한 야곱이, 하루아침에 진실하고 온유하고 희생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까? 물론 점진적으로 그렇게 변화되어가겠지만, 여전히 죄와 허물이 많은 야곱입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이 참으로 좋습니다.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부족하고 죄와 허물 많은 제가 오늘도 이렇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세 가지 약속을 붙잡고 하란으로 갑니다. 상황은 똑같습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변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진정한 사명자로 거듭났습니다. 야곱이 할 일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세 가지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있고, 야곱에게 말씀하신 것을 다 이루실 것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야곱을 포기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브엘세바를 떠났습니까? 아무도 없는 광야에 있습니까?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해가 졌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까?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까?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환난을 만났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꿈같은 사명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죄와 허물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주께 영광!
치바에서 김성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