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90년식 코란도 9인승에 각 종의 짐을 싣고
3년 전(`98.8.21-8.23)의 지리산 종주(노고단-삼도봉-벽소령-세석-장터목
-천왕봉-중산리)팀이 다시 시동을 걸었다.
우리 식구(고재원,김태식,유리-대1,승현-중1,예리-초5)와 십 수년간을
우리를 도와주시는 안경이모와 출발이다.
차는 북(北)으로 북(北)으로 강원도를 향한다.
수많은 해수욕장을 기웃거리며 쉬엄쉬엄 간다.
선홍빛 칸나, 빨간빛 사루비아,코스모스들이 우리 옆을 지나 간다.
올해는 부산 재야단체의 일원으로 낙남정맥(신어산-지리산)을 마쳤고
내년에는 남한의 백두대간을 마치기로 정했다.
경의선이 개통되면 육로(陸路)로 금강산 행,그리고 북쪽의 백두대간을
계획했다.
2년 전 가을에 부약신 산악회에서 설악산행(장수대-대승령-12선녀 계곡)을
이번산행은 백두대간의 한 구간인 설악구간(한계령-대청봉-공룡능선-마등
령-비선대)을 간다.
삼척 동해를 지나 강릉으로 향하는 차창앞에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대형 스크린으로 눈앞에 달려 든다.
그 황홀함을 오랫동안 느낀다.
양양을 거쳐 저녁무렵 오색약수터(인터넷 예매)의 한 호텔에 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도시락을 준비한다.
산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최종 점검하고 잠자리에 든다.
8월 13일*
새벽 5시20분에 일어난다.
새벽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려 암담한 생각이 든다.
비와 안개속을 헤치며 차는 한계령으로 간다.
커피와 어묵으로 긴장을 풀고 7시에 산행을 시작한다.
계단을 오르는데 이상한 색깔(진한 녹두색)의 작고 마른 개구리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뛰어 다닌다.아이들이 놀란다.
7시 10분경 매표소를 지나 산에 오른다.
첫 오르막을 오르니 백두대간 종주리본(홍성문,김성대/2001.7.28-김학수,
김대억,김원석,이귀봉/양지 영서대 등)을 보고 어떤 경외감을 느낀다.
오르막 길은 가파르고 돌,바위들은 미끄럽다.
손과 발의 여행(손으로 잡고 발로 기는 등산)이다.
길 옆에는 보라색의 여로(黎蘆)가 잘 피어있다.
산행을 할 때에는 묵상하며 기도하기가 좋다.
문규현 신부님과 통일의 꽃 임수경님이 휴전선을 넘어올때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를 올리듯이 묵주기도를 한다.
2시간 쯤 오르니 오르막이 덜 가파르다.
텐트를 두군데 세워놓고 있는 여러명의 남자들을 만난다.
밤에 비가내려 한계령으로 하산을 중지하고 머물렀다고 한다.
한 참을 더 가다가 어느 능선에 오르니 안개가 빠른 속도로
왼쪽 밑에서 오른쪽 위로 움직이면서 바로 눈 앞에 유럽의 성(城)처럼 너무 웅장한 산(山-귀때기봉)이 우뚝 나타난다.
한참이나 넋을 잃고 서 있다.
비가 와서 인지 만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어느 20대(代) 여자 한분을 만나 눈 인사와 말을 건넨다.
산 사람의 모습을 엿본다.
노란색의 바위채송화가 큰 바위에 가득피어있다.
서북주 능선은 제일 완만하고 절경이라고 했는데
비에 젖고 젖어서 쉬는 동안도 오래 쉬지 못한다.
산에서는 이기(利己)와 이타(利他)가 서로 통한다고 한다.
같은 식구라도 매우 힘이들어 짜증도 내고 돕기도 한다.
연보라빛의 예쁜 금강초롱을 만난다.
이 귀한 꽃은 보고 짐을 줄이려고 차에 카메라를 두고 온 것이 후회된다.
산행 시작5시간쯤 지나 길가에서 점심도시락을 꺼낸다.
선 채로 찬밥에 참치와 고추장을 비벼서 대충 넘긴다.
점심 후 산행은 더 춥고 몸이 무거워 진다.
몸이 무겁더라도 걸으면 추위는 잊어 진다.
주황색의 동자꽃이 보이고 하얀 사상자꽃은 산길을 따라 간다.
빗물에 젖었던 손이 핏기 없는 하얀 색으로 변해 참 불쌍해 보인다.
진분홍색 둥근 이질플이 보이고 투구꽃(草烏-흰색,보라색)이 많다.
첫날 부터 힘이 들어도 여름꽃과의 동행은 다른 맛이 있다.
이윽고 끝청봉에 오른다.
멀리는 안개에 가려 안 보이지만 시야가 트이고 성취감이 생긴다.
산 당귀(山 當歸),강활,지리 강활(독초-부산대 박종희교수 장터목 산장
안내 표지판)들이 비행접시 모양으로 하얗게 피어 있다.
꽃들은 따뜻한 산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며 피는데
산 구절초와 투구꽃은 위에서 부터 피는 것 같다.
원추리 꽃은 벌써 지고 씨방만 남아 있다.
오후1시쯤 중청 산장에 우리 식구들이 다 모였다.
산장에서 보충설명을 듣고 비옷을 몇개 더 구한다.
따뜻한 컵라면과 캔 커피로 몸을 녹이고 쉰다.
충분히 쉰 다음 대청봉을 오르려니 춥고 참 어설프다.
다시 중청 산장으로 들어 간다.
이젠 하산 하기로 하고 휘운각 대피소(1시간 30분),소청 대피소(30분)의
선택을 의논한다.(휘운각 대피소는 공룡능선으로 가는 길이고,소청
대피소는 천불동 또는 수렴동 계곡으로 가는길이다.)
젖은 옷이 추워서 가까운 거리의 소청 대피소로 내려 간다.
내려가는 길에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키가 작은 분비나무가 바람이 부는 쪽은 죽어가고 있고
산 오이풀은 길게 피어 있다.
오후 3시 쯤 대피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다.
가족의 방을 배정 받고 어설픈 환경이라도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나니
아주 홀가분 하고 기분이 좋다.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 한다.
샘물까지 250보(步)라고 표지판에 적혀있는데 약 500보는 됨직하다.
뻐근한 다리와 한쪽이 질퍽한 신발을 끌고 샘물을 들고 와서
버너에 불을 붙인다.
저녁을 일찍 먹고 와상(臥床)으로 나온다.
여기의 산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사람들 주위에 비박새,작은 다람쥐들이 먹이를 얻으려고 모여든다.
가을열매 까지는 배가 몹시 고프다고 한다.
목표인 공룡능선의 미련을 두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으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휘운각 대피소로 이동하라고 한다.
미련을 접어두고 다음 기회로 미룬다.
마가목으로 빚은 술 한병을 구해서 한잔씩 돌린다.
발전기로 움직이는 전기이므로 오후 6시-오후 9시까지 제한을 둔다.
9시에 불을끄고 하루산행을 마감한다.
8월 14일*
꿈 같은 소청의 밤을 지내고 새벽 4시에 눈을 뜬다.
2층 방에서 살금살금 밖에 나와 본다.
여명(黎明)속에 먼저 일어난 세 사람이 말없이 서있고 앉아있다.
아~! 신비한 모습의 장관이 나타난다.
왼쪽으로 서북주 능선 오른쪽엔 공룡능선(신선봉,1275봉,나한봉 등)이
있고 바로 눈 아래에는 용아장성능이 있다.
용아장성 앞에는 봉정암의 독경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능선들을 솜털 같은 하얀 안개가 바탕을 이루어 감싸고 있다.
하얀 포말의 바다위에 까아만 섬(島)으로 떠 있다.
(문득 장사익이 부른 "섬"이 떠오른다.)
한 시간을 내려다 보느라니 아주 서서히 공룡능선 오른쪽이 밝아지면서
먹구름이 위 아래로 움직인다.
앞서 나온 세 사람 중 두 분(60대의 40십년 이상 프로 경력을 가진 사진
작가들-광고 사진,칼렌더,특수분야 등)이 소청봉으로 가서 일출(日出)을
찍으려고 관망하고 있는중이다.
닷 새를 여기서 자면서 그저께 일몰(日沒)을 건졌다고 아주 만족해 한다.
이 자연이 변화하는 신비한 모습을 일년에 서너번 정도 보일거라고 한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겠다."라고 털보 작가는 탄성하며 여러번 되
뇌인다.
8시 쯤 아침을 먹고 소청봉으로 다시 오른다.
새벽의 짙은 안개속에 다람쥐 한 마리가 애완견 처럼 앞장서서 가고 있다.
길 오른 쪽엔 산 박하(山 薄荷)꽃이 많이 피어 있다.
소청봉에 올라 우리가족 전체를 일회용 카메라에 담고
같이온 다람쥐에게 아이들이 젤리사탕을 준다.
지금부터는 천불동계곡으로 하산(下山)이다.
다행이 비는 오지 않아 산행하기에는 참 좋은 날씨이다.
밟히는 흙이 거의 없는 돌 투성이 길이어서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이 만만치 않다.
아이들에게 천천히 가고 조심하라고 여러번 얘기 한다.
바쁜 걸음으로 힘있게 올라오는 20대의 두 명의 남자와 인사를 한다.
(부산에서 밤 기차로 온 것이라며 연산8동에 살고 있단다.)
가시가 있는 음(엄)나무가 하늘로 뻗어 있다.
휘운각 대피소에 도착한다.
야외 나무탁자에서 충분한 휴식과 가볍게 배를 채운다.
많은 다람쥐들이 어린이 대 공원(초읍)의 비둘기가 모이를
먹으려 모여들듯이 쵸코파이,비스켓을 손 바닥에 올려 놓아도
쪼르르 달려온다.
무너미 고개에 오르니 앞에 공룡능선의 첫째 봉인 신선봉이 우뚝 서 있다.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 기회에 공룡능선 산행을 다짐한다.
고개 아래로 급경사를 내려올때 많은 사람들과 동행한다.
계곡 아래에 커다란 관중(貫衆-면마)이 음지를 찾아 드문 드문 보인다.
절경과 협곡에 흐르는 물 소리가 이어지고
설악의 그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5시간 정도 지나 양폭 산장에 도착해 시원한 캔 맥주를 마신다.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옆 개울가에 앉아 흘러가는 물을 본다.
오대산 보다 철교가 무척많다.
'낙석주의'의 푯말이 있는 곳에 철 계단이 망가져 있다.
계단 옆 사이로 싸리나무가 고개를 내민다.
귀면암을 지나 큰바위 벽에 돌 단풍(설악 바위 단풍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벌써 몇 잎은 단풍이 빨갛게 물들어 햇빛에 아름 답다.
비선대에 오니 구름다리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앞 하늘쪽을 보고 있다.
하늘에 닿을듯 한 비선대 아주 높은 바위 위에 일곱명 정도가
Rock Climbing 을 하고 있다. 그 들에게 힘을 보낸다.
신흥사를 거쳐 설악산 입구에 오후 5시 쯤 도착 한다.
택시로 지름길을 택해 한계령으로 향한다.
마을 앞에는 해바라기가 피어 있다.
한계령에서 냄새나고 젖은 옷을 정리 하고 양양읍으로 간다.
목욕을 마치고 이 곳 냇가에서 잡힌다는 뚜거리(머리는 크고 몸통은 모래
무치만한 고기)탕과 은어 튀김을 맛있게 먹는다.
남쪽으로 야간 여행을 시작한다.
잠이 올때 까지 달려 온 것이 울진 덕구 근방의 멋진 모텔이다.
새벽 2시쯤 깊은 잠에 들어 간다.
8월 15일*
아침 늦게 일어나 근처의 병곡 해수욕장으로 간다.
약간 철 늦은 바닷가엔 해당화가 가득 피어 있고
몇몇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울진 북면 성당에서 8월15일 대축일 미사(Missa)를 드린다.
생활 성가를 배우고 신자들과 커피,쥬스등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봉평해수욕장의 식당(전주 식당)에서 맛이 일품인 추어탕을 먹고
아이들은 근처 레스토랑에서 돈까스를 먹는다.
배가 부르고 피곤해서 인지 잠이 쏟아 진다.
어느 이름모를 바닷가 옆에 차를 세우고 백사장에 내려가 한숨을 잔다.
영덕쯤 오다가 햇 복숭아를 맛있게 깍아 먹는다.
칸나(빨간,노란-300그루)를 스무 장 가량 사진기에 담는다.
첫댓글 이 졸작은 2001년에 쓴 글입니다.
매우 부러운 글이군요. 몸이 부실하여 구룡폭포의 산행도 만물상의 산행도 이루지 못한 얼간이로써는 매우 부러운 글이고 샘나는 글입니다. 재미있고 샘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여행하면서 일기를 쓰면... 몇년 지나고 읽을때 감동적 일것 같습니다...바바리님 덕분에 예전 설악산에 갔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설악산도 금강산 못지 않은 명산이며 오히려 금강산보다 더 좋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