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남승룡마라톤대회가 2001년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기억하는데 그때 하프 부문에 참가했었으니 이 대회와 함께 마라톤경력이 이어져 왔다.
올해로 16회라는 이 대회를 올 가을 메인대회로 잡고 참가하게 되었다.
07:00, 안선생님과 두철을 만나 내 차로 순천으로 내려가는데 중간중간에 운무가 가득 낀 곳도 있고 기온도 들쭉날쭉, 이거 뭐가 좋지않은데...
시기적으로는 딱 좋은데 당일 날씨는 계절에 비해 기온도 습도도 높아서 일단 불리한 조건 하나를 안고 시작한다.
(14~18℃, 습도 90% 내외)
팔마공설운동장은 트랙을 걷어내버려 뭔가 허전한 모양새인데 납성분이 검출되어 그렇게 됐다는 얘기고 그 덕인지 트랙을 돌지 않고 가장 짧은 구간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코스가 만들어졌다.
당초 보다 10분 가량 늦은 09:40 무렵 풀코스가 출발, 그간 몇차례 뛰어봤던 익숙한 외곽도로로 주자들이 쏟아져 나간다.
이번에 싱글 정도를 기록하게 되면 내년 동아대회땐 서브3를 노려볼수가 있겠기에 4분30초를 기준페이스로 잡아 초반과 중반까지 안정적으로 잘 풀어간다.
일반적인 컨디션은 무난한 것 같은데 오른쪽 무릎이 꿈먹꿈먹 이상반응이 나타나는 바람에 십수차례나 움찔거리게 되는데... 이건 경험해보지도 못했고 예상치도 않았던 일인데...왼발 족저근막염이 발목을 잡을까봐 가슴을 졸였는데 오히려...
첫번째 반환점을 돌 무렵에 하프 선두가 지나가고 순천만정원으로 연결되는 동천을 지나는 동안 스카이큐브와 함께 하프 선두권주자들이 연이어 지나친다.
하프코스 2차 반환점을 지난 뒤에는 순전히 풀코스 주자만 남게 됐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휑~해지며 순천만입구를 지나 시골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 무렵엔 현대자동차 유니폼을 입고 달리는 자그만 체구의 주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주고받으며 나름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균형은 풀코스 2차반환점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확 깨지고 만다.
5Km 22:31
10Km 22:31 [45:02]
15Km 22:36 [1:07:38]
20Km 22:19 [1:29:57]
반환점이 23Km무렵에 있기 때문에 거리와 시간에 대한 안배도 잘 되지 않고 더군다나 반환점 자체가 오르막의 가장 높은 정점에 있다보니 올라가고 내려가는 동안에 그간의 움직임이 확연히 달라진다.
중앙대회가 언발란스 반환점이다보니 늘 맘에 안들더니 여기도 마찬가지, 에휴 앞으로는 온전한 반환코스나 순환코스를 달려야지...
다시 평지에 들어서고 순천만으로 향하는 시골 동네길로 들어서기 전 즈음에 어떤 아저씨가 순위를 불러주는데 28위라고?
내가 "58위요?"라고 다시 물어봤더니 정확히 '28'이라고 확인까지 해준다.
이상한 일이네? 앞서가는 사람들을 제법 잡았다지만 아직은 28위까지 올라가진 않았을텐데...
아무튼 그 이야기를 진실로 믿기로 하고 희망을 가지며 떨어졌던 페이스를 다시 되살린다.
앞으로 8명만 잡으면 기념품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아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순천만입구를 지나고 하프반환점을 지나고 페이스는 전반과 같지 않지만 적어도 상대적인 흐름으로는 아주 좋다.
동천 뚝방길을 달리던 중엔 말리가 문득문득 다리 아래에서 함께 달리고 있다는 착각도 든다.
발 밑을 조심하기도 하고 아랫쪽을 내려다보기도 하면서 흥얼흥얼 '말리쏭'을 부르기도 하고 평소때 운동하며 녀석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어느새 녀석하고는 달리기로 이어진 끈끈한 동료가 되어 있다.
진짜로 이 즈음에서 녀석과 함께 달리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때까지는 희망을 꿈꾸며 좋았던 시절.
35Km지점 급수대를 지나고 얼마되지 않은 동천 뚝방길에서 달갑지않은 손님이 끝내 찾아온다.
스카이큐브만 가끔씩 지나가는 휑~한 곳에서 오른쪽 햄스트링에 쥐가~으~!
앞으로 가는 것은 곧바로 경련을 불러오기 때문에 뒤로 걷는 것으로 위기를 탈출하려고 애를 쓴다.
이왕에 이렇게 된것 뛰어보면 어떨까?
뒤로 뛰기 시작해 걷는것보다 한결 수월하게 거리를 줄여나가기를 수백미터쯤 했을까? 이젠 좀 가라앉았겠지 하고 돌아섰다가 다시 금새 뒤돌아서고 만다.
다리를 만져서 풀릴 것도 아니고 뒤로 움직이는 게 최고의 방법인데... 근데 언제까지 이렇게...
그러던 중에 아까 잡아놨던 주자들은 저멀리 뚝방길에서 하나둘씩 나타나 사드락사드락 내 곁을 지나쳐 나아간다.
그중엔 마주친 얼굴을 보며 지난 순창에서의 만남, 역전마라톤대회 때를 이야기 하고 자신은 남원에서 왔노라고...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이라냐?!
몸에 에너지도 충분하고 모든건 다 괜찮은데 그런데도 이렇게 발이 붙들려 있으니...
그렇게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스카이큐브가 지나는 경로가 다 지날무렵, 그러니까 정원역이라는 곳을 지난 즈음에야 다리가 회복이 된 것 같다.
이제서야 앞을 보고 달릴수 있게 되었고 조심조심 대열을 따라잡기 시작해본다.
풀코스 3차반환점을 앞두고 놀랍게도 두철과 마주친다.
서브3페이스에 맞춰서 잘 가고 있던 두철도 어느덧 나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늘어져 있었던 것.
당초 싱글에서 그 다음엔 3시간12분대, 15분대, 20분 안쪽... 다 지나갔지만 그저 앞으로 달릴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좋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의미속에 이런 어렵고 무모한 행동이 담아질 것 같지도 않다.
그저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릴 수 있으면 그것 자체가 최고의 행복일게다.
경기장에 들어서며 이제까지 가져왔던 모든 생각들이 자연스래 리셋이 됐으니 그게바로 해탈이 아닐런지!
그렇게 59번째 풀코스의 결승점을 지난다.
25Km 23:48 [1:53:46]
30Km 23:53 [2:17:40]
35Km 24:16 [2:41:56]
40Km 30:24 [3:12:20]
Finish 10:28 [3:2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