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듣기 싫은 성난 말을 하지 말라. 남도 그렇게 너에게 대답할 것이다. 악이 가면 화가 돌아오니 욕설이 가고 주먹이 오간다.
- 공자 -
공자
공자의 조상은 상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의 둘째 형인 미중(微仲) 연(衍)이다.
공자는 미중 연의 15세손(=14대손)이다.
《공자가어》에 따르면, 주나라 무왕이 폭군 주왕을 정벌하고 나서 그의 아들 무경(武庚)에게 상나라의 제사를 모시게 했다. 그런데 무왕이 죽자 관숙(管叔), 채숙(蔡叔), 곽숙(霍叔) 등이 무경을 옹립하여 난을 일으켰고, 주공(周公)이 이들을 물리쳤다. 주공은 주왕의 의붓형 미자(微子) 계(啓) 에게 영지를 하사하여 송(宋)나라를 만들고, 여기에 상나라 유민들인 상족(商族)들을 모여 살게 하였다. 미자 계의 동생인 미중 연은 아들 송공(宋公) 계(稽)를 낳았는데, 이때부터 공(公)의 작위로 불리게 된다.
이후, 송공(宋公) 계(稽) → 정공(丁公) 신(申) → 민공(湣公) 공(共) → 불보하(弗父何) → 송보주(宋父周) → 세자승(世子勝) → 정고보(正考父) → 공보가(孔父嘉)를 낳았다.
불보하(弗父何)는 송여공의 형인데, 여공은 숙부 양공을 죽이고 형 불보하를 옹립하려 했으나 불보하가 사양하여 자신이 공(公)으로 올랐다.
여공은 불보하에게 상경(上卿) 벼슬을 주었고, 그 자손들도 대대로 상경 벼슬을 지냈다.
공보가의 이름은 그냥 가(嘉)이고 공보(孔父)는 그의 자인데, 그가 살았을 때 나라에서 준 호칭으로서 훗날 자손들이 이것을 자신들의 씨(氏)로 삼은 것이다. 공보가는 원래 송나라의 대부였으나 가문이 화를 입어 공보가는 죽고 그 후손이 노나라로 도망쳤다. 이후 공보가 → 목금보(木金父) → 기보(祁父) → 방숙(防叔) → 백하(伯夏) → 숙량흘 → 공자 순. 숙량흘에 이르러 모든 작위는 사라지고 일개 군인의 신분이 된다.
결론은, 알고 보니 공자는 상나라 자성 왕실의 후예라는 것이다. 또한 공자의 조상들이 살았던 송(宋)나라는 상나라 건국 집단인 상족(商族)들이 국가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상나라의 제사 방식을 예절로 삼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공자가 죽음을 앞두고 "하나라 사람은 동쪽 계단에 장사지내고, 주나라 사람은 서쪽 계단에 지내고, 은나라(상나라) 사람은 양 기둥 사이에 지낸다. 어젯밤 나는 두 기둥 사이에 놓여져 사람들의 제사를 받는 꿈을 꾸었다. 나는 일찍이 은나라(상나라)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자가 상나라 왕실의 후예라는 것과 주나라는 상나라의 예악 법통을 이었다는 정통성에 관련된 것은 공자의 유학사상이 세상이 널리 퍼지자 그것을 신성시하고 높히려는 유학자들에 의해 과장되거나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마태오의 복음서의 예수의 족보가 다윗에 기원하는 것 같은 포지션이라 할 수 있다.[ 출처:나무위키]
첫댓글 좋은 말만 하자는 공자님 말씀~ㅎ
고맙습니다
공자님 말씀을 익힙니다^^
잘 보았습니다~
공자의 말씀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