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그린 화가들>
김환기 ‘피난열차’·‘부산항’·‘판잣집’
참혹한 전장보다 따뜻한 인간애에 주목한 시선
6·25전쟁 때 해군종군화가단에 몸담은 김환기
절박한 상황 속 긍정적 삶의 모습을 보려는 노력
국내 최초 추상그룹 ‘신사실파’ 경향 잘 드러나
피난열차, 1951, 캔버스에 유채, 3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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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 1952, 종이에 수채,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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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호국보훈의 달 6월입니다. ‘전쟁을 그린 화가들’도 벌써 스무 번째 이야기를 맞았네요.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서양 화가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그린 전쟁화를 살펴봤습니다. 아무래도 전쟁화의 개념이 정립된 결정적인 계기가 1·2차 세계대전인 만큼 그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게 됐죠. 하지만 이번 달은 특별히 6·25 전쟁을 주제로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유럽의 많은 예술가가 1·2차 대전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우리 화가들에게도 6·25 전쟁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태평양전쟁도 있었지만 6·25 전쟁만큼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죠. 6·25전쟁이 발발하면서는 당장 가족·친구들과 생이별을 맞게 됐으니까요. 영화 ‘국제시장’ 속 수많은 이산가족들처럼 말이죠. 저는 국제시장을 보면서 전쟁을 겪은 세대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할아버지 세대의 고집스러움과 억척스러움의 배경을 알 수 있었죠. 그리고 전쟁을 그린 작품들을 다시 보면서 새로운 것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시대의 아픔을 찾을 수 있었죠.
한국작가 작품 중 최고경매가 1·2·3위
오늘 소개해드릴 작가는 ‘가장 비싼 국내 화가’란 타이틀이 붙은 김환기(1913∼1974)입니다. 김환기의 1971년 작품 ‘무제 3-V-71 #203’은 지난달 29일 홍콩 경매에서 3000만 홍콩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45억6000만 원에 낙찰되며 주목받았죠. 이 작품뿐만 아니라 김환기의 다른 작품 ‘무제’, ‘무제 19-Ⅶ-71 #209’는 각각 48억6000만 원, 47억2000만 원에 낙찰돼 현재 한국 작가 역대 최고 경매가 1·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김환기가 종군화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김환기는 6·25 전쟁 당시 남관·강신석·이종은·양달석·백영수·임완규 등과 함께 해군종군화가단에 몸담았습니다. 그러나 해군 함정에 일반인인 화가들이 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죠. 또 뱃멀미 때문에 활동이 어렵기도 했고요. 이런 이유에서인지 김환기는 살벌한 전투현장의 사실적이고 현실감 넘치는 장면을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시 그가 집중한 추상의 경향과 특유의 조형의식이 엿보이는 작품을 남겼죠.
판잣집, 1951, 캔버스에 유채, 72.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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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나 아픔을 부각시키지 않다
1951년 그린 ‘피난열차’를 볼까요? 언뜻 보기엔 전쟁의 상처나 아픔이 확 와닿지는 않습니다. 분명 아비규환과 같은 상황일 텐데 김환기 특유의 조형성 때문인지 오히려 고요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그려진 1951년, 그리고 김환기의 부산 피난이라는 개인사를 알고 나면 그림이 달라 보입니다. 콩나물시루 같이 비좁은 기차와 눈·코·입조차 그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 작가 눈에 비친 전쟁의 단면입니다. 그러나 김환기는 그 특유의 낙천적이고 온유한 기질 때문인지 전쟁의 비참함이나 잔혹함보다는 절박한 상황의 인간을 따뜻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했죠.
1952년 그린 ‘부산항’은 ‘피난열차’보다 조금 더 생생한 느낌을 줍니다. 그림 왼쪽으로는 피난민을 가득 실은 배가 오고 있습니다. 배 위에는 피난민들이 빽빽하게 타고 있죠. 김환기는 피난민들의 아픔과 참담함을 부각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부산항 풍경의 일부로 만들어버렸죠. 오히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과 청아한 파란 바다의 모습이 더 눈에 잘 들어옵니다.
이런 성향은 같은 해 제작된 ‘판잣집’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목만 들어보면 피난생활의 고단함이 담겨 있을 것 같은데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과 노란 벽, 파란 하늘 등은 햇살 좋은 날의 풍경처럼 보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들죠.
‘신사실’로 그려낸 전쟁 풍경
김환기는 한국에 추상 개념을 도입한 작가입니다. 하지만 당시 작품들은 무얼 그린 것인지 모를 정도로 추상화되지는 않았죠. 그의 작품은 자연주의적 사실에 근거를 둔 구상적인 화면으로 대부분 자연 대상의 형태를 단순화하거나 변형시켜 재구성한 반추상 형식입니다.
김환기는 1947년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그룹인 ‘신사실파’를 창립했습니다. 그들이 추구했던 ‘신사실(新寫實)’은 ‘추상을 표현의 양식적 수단과 목적으로 하더라도 그 바탕이 되는 내용은 사실 즉, 자연의 모습이나 현실, 또는 진실의 반영’이란 조형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연형태를 거부하지 않은 채 새롭고 포괄적인 시각으로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재구성하려고 했던 것이죠. 김환기 역시 ‘신사실’로 전쟁 풍경을 그렸습니다. 혹시 전쟁터의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아 실망하셨나요? 사실 당시 많은 작가들은 전쟁의 참혹함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김환기처럼 따듯한 인간애에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의 현실을 외면한 것은 아니죠.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더라도 인간·가족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삶을 보려는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김환기의 작품들은 그런 당시 작가들의 노력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김윤애 문화역서울 284 주임연구원>
<클래식> 그 날 그 시간이 그리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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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명화감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