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여행3 - 긴카쿠지(은각사) 를 구경하고는 나와 철학의 길을 걸은후 점심을 먹다!
2024년 9월 18일 부산 김해공항에서 에어 부산 항공기를 타고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해 렌터카를
인수해서는 휴대폰에 구글맵을 켜고는 1시간 반을 달려서 고조거리와 가와라마치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주차장에 차를 넣고는 교토 레시 스테이 브릭스 RESI STAY BRiX 에 체크인 후에 1박을 합니다.
다음날인 2024년 9월 19일 차를 몰고 북쪽으로 올라가 긴카쿠지(은각사) 인근 주차장에
차를 넣고 오르막길인 긴카쿠지통을 걸으며 기념품점과 음식점들을 구경하고는
긴카쿠지(은각사) 절로 들어가니, 성인은 500엔이고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300엔 입니다.
휴대폰으로 구글맵에서 검색을 하면 절 앞의 언덕길 도로가 銀閣寺通 으로 나오지만
정작 긴카쿠지(銀閣寺 은각사) 라는 명칭이 보이지 않아 조금 당황
하는데, 이는 절의 정식 명칭이 지쇼지(慈照寺, 자조사 じしょうじ) 이기 때문 입니다.
일본의 무사 정권인 무로마치(아시카가) 막부 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옛 조토지
(정토사) 자리에 별장을 지어 거처할 목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는데 은각으로
불리는 관음전은 할아버지 요시미츠가 세운 금각사의 금각을 흉내내어 지었다고 합니다.
긴카쿠지는 히가시야마(東山 동산) 문화를 받아들여 선종의 선(禪) 정신에 입각해서
세워진 건물이기 때문에 고요함과 간소함의 미를 가지고 있으며 무로마치
막부 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 사후 그의 유언에 따라 사찰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가마쿠라 막부에 이어 2번째 무사들의 막부인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むろまちばくふ ) 또는
아시카가 막부(足利幕府あしかがばくふ ) 는 1336년 부터 1573년 까지 일본을 통치한
막부로 3대 정이대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교토의 무로마치 통에 공관을 마련하여
'무로마치 막부' 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이 장군 공관을 "하나노고쇼(花の御所)" 라 했습니다.
1333년 고다이고왕(천황) 이 호조씨의 가마쿠라 막부 지배에 반발해서 전국의 무사들에게
궐기를 호소하자 구스노키 마사시게 와 닛타 요시사다 등이 궐기하니 가마쿠라 막부는
아시카가 다카우지 장군에게 저 쿠데타를 진압하라고 군대를 주어서 교토로 올려 보냅니다.
그런데 가마쿠라 막부의 무장인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막부를 배반해 오히려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켰으며 이후 권력을 두고 암투를 벌이다가 기어이 고다이고왕(천황) 까지
배신한 다카우지 장군은 1338년에 교토에 아시카가 막부를 개창하고 정이대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절을 나와 삼거리에서 개울을 따라 에이칸도 까지 이어지는 철학의 길(哲學の道)
을 걷는데...... 여긴 수로를 끼고 나무가 심어진 작은 길 을 말하니, 교토 대학
교수인 니시 기타로 가 이 길을 걸으며 사색하기를 즐겼으니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네이버 에서 “철학의 길” 을 검색하니 당연하다는 듯 “교토 철학의 길” 이 나와서 놀라는데
원래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 Philosophenweg 이니......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 철학자들이 산책하며 명상에 잠기고 영감 을 얻었다는 길이지요?
네카어강변 아름다운 길 을 걸어 산책하다 보면 철학에는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철학가못지않은 사색 에 잠긴
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전철이 다니는 테오도르 호이스 다리 쪽에서 시작해 카를 테오도르 다리가 있는
곳 까지 산 중턱길 이니 남의 것이라도 좋으면....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배우는 일본인들의 자세가 놀랍습니다.
여기 철학의 길은 매번 동행자가 다르다 보니 오늘이 3번째 방문인데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필 때 보다 질때가 더 좋다는 봄 벚꽃철에 방문했을
때이며.... 늦가을 단풀철이나 혹은 겨울에 눙이 내렸을 때 와도 아름답다고 합니다.
“‘벚꽃이 흩날린다 서러워 마라 / 흐드러진 열매 맺는 시대 키워....../
희망의 앞날을 기약하는 축복 일 뿐이니. 최범영의 ‘벚꽃이
흩날린다고 서러워마라’ 중, 그렇다. 벚꽃은 봄이며 희망이며 밝은 미래 다.”
인력거꾼을 무시하고 호젓한 길을 걷는데 양켠으로 단독 주택들도 예뻐 찾집도 많고, 맑은 개울물에
겨울에 왔을때는 청둥오리가 헤엄을 치다가 후두둑 날아오르는 줄 알았더니,
저공비행을 하여 개울 위를 스치듯 날아가 버리던게 기억이 나는데 오늘은 늦더위로 무지 덥습니다.
호넨인 法然院 까지 가니 무더위로 아이들이 걷기를 싫어하는지라 사위와 딸만 계속걸어서
난젠지(남선사)까지 다녀 오겠다는데..... 이 길을 따라 갈으면 안라쿠지 安樂寺 에
이어 신뇨도 眞如堂 가 나오고 더 걸으면 냐쿠오지진자 若王子神社 (수령 400년
된 나기나무는 수호신으로 신앙의 대상) 이고, 에이칸도 永觀堂 를 거쳐 난젠지에 이릅니다.
그러고는 우리 부부는 손주 3명을 데리고 찻집으로 들어가서는 음료수를 시켜 마시면서
이 지독한 늦더위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쉬며...... 딸과 사위가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이윽고 돌아온 사위와 딸을 만나서는 다시 되돌아 걸어서 은각사로 오르는 삼거리에서
이번에는 아래쪽으로 맛집을 찾아 가는데.... 딸이 휴대폰으로 검색한 곳은
마침 휴업이라 되돌아오다가 어느 우동집으로 들어가 우동과 소바에 텐동을 시킵니다.
우동과 소바등을 시키는데 일행중 한명이 덩치가 큰지라 다리가 통로쪽으로 나와 있으니 여주인이
지나가다가 다리를 넣으리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일행이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는데 저 여주인이 문을 밀어서 닫으며, 다른 손님이 식당에 들어
오면서 출입문을 완전히 닫지 않자 가서 문을 닫는게 여기 식당은 에어컨이 켜져 있기 때문이라....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의 차이를 생각하는데..... 일본에서는 엄마가
아이들이 어릴 때 부터 가르치는게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뜻인 "메이와쿠
오 가케나이" めい-わく (迷惑 미혹) を かけない (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 라!
해서 버스를 탈 때도 친구가 토큰 하나 내어주는 법이 없으며 셋이서 술을 마시고 10,000엔이
나오면 와리깡 이라고 각기 3,333엔씩 동전까지 세어 정확히 나누어 계산하며 도로나
골목에 차를 불법주차하지 않고 길거리에 쓰레기나 담배꽁초며 씹던 껌이나 침을 뱉지 않습니다.
또 에스컬레이트로 오를 때는 한쪽으로 바짝 붙어서서 바쁜 사람들이 옆으로 빨리 올라갈 수
있도록 배려하며, 기차나 버스를 탈 때도 정류소에서 1열로 줄을 서니.... 당연히
출입문이나 화장실문은 닫아야 하고 좁은 식당에서 다리를 통로에 내놓아 사람이
지나갈 때 부딪히는 일은 삼가지만 무신경한 우린 습관이 안됐으니 무례하게 보이나 봅니다?
지적을 받은 우리 일행들은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럼 일본인들은 무신경하게 행동하지 않고
이런 자잘한 일(?) 에도 항상 신경을 써서 남에게 눈총을 받는.... 폐를 끼치지 않도록 매사에 늘 조심
해야하니 어떻게 보면 “참 불편하게 세상을 사는 것 같다” 는 생각을 하며 렌터카에 올라 아라시야마로 갑니다.
정신건강 면에서 보면 남에게 피해준다는 생각 없이 무심하게 행동하며 대충 사는 한국 사람들은 마음이
편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적은 반면에.... 저런 자잘한(?) 일에도 항상 남의 눈치를 보며 매사 남들을
세심하게 배려해 담배꽁초나 침 하나도 제대로 못뱉는 일본인들은 정신건강에는 해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에서는 아이가 식당에서 뛰어다니거나 떠들면 바로 따끔하게 아이를 야단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 기죽인다" 고 그 자리에서 강하게 제지하지 못하는데.... 기내에서 뒷 좌석으로 발을 내민
아이를 타일렀다가 아이 부모로 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 는 말을 들었다는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24일 JTBC ‘사건반장’ 에 따르면 지난 14일 중국 선전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는 항공기
내에서 한국인 탑승객끼리 시비가 붙었으니.... "앞좌석에 한국인 부부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타고 있었는데, 줄곧 뒷자석으로 발을 내밀었다" 라며 " 위아래로 휘젓기도 했다" 고....
부모에게 말해도 반응이 없기에 직접 아이를 타일렀더니 부모가 욕한다고 화를 내며 고소 운운했다나요?
고풍스러운 집들을 보니... 교토는 천년 수도지만 헤이안 시대 말기 1180년,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타이라
키요모리(平清盛) 에 의해 현재의 고베 일대에 위치한 후쿠하라쿄 (福原京) 에 반년간 천도한
적이 있었고,... 요시노 등 남북조시대 당시는 남조가 수도를 나라현 남부 요시노로 옮긴 적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