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은 우리 엄마의 가장 찬란했던 어느 날을 노래해 주는 걸까.’
요즘 육, 칠십대의 부모를 둔 자녀들은 임영웅의
콘서트 일정이 뜨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티켓을 안겨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부모님의 부탁이 아니라, 생기를 되찾고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한 소녀의 덕질을 힘껏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수 임영웅을 덕질하는 엄마의 팬심은 언 듯 보면
어린 아이돌을 덕질하는 자녀의 팬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덕질에는 긴 삶의 애환 뒤에
되찾은 내 안의 어린 나를 투영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임영웅에게는 생계를 위해 합정역 7번 출구에서
군고구마를 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손발이 다 터질 정도로 추운 겨울에 옷도 얇게 입고,
나무를 장작 삼았다가 그 연기 때문에 일대가 야단이 났지만
장사를 위해 외모 꾸미는 것은 포기할 수 없었다는 그의 넉살과 붙임성 있는
성격은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자신의 젊은 날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을 텐데요.
물론 가족을 위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친자식보다 더 듬직하고 다정스러울지도 모르겠고요.
임영웅의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면 발라드 감성이 가득하고,
풍기는 느낌은 또 트로트의 정서를 아예 배제 시키지 않은 드라마 OST도
많이 불렀고,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야’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 도성의
‘배신자’ 등 부모님의 화양연화를 떠오르게 만드는 노래 또한 많이 불렀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는데요.
만약, 임영웅이 그동안의 많은 트로트가수처럼 정통트로트를 불렀다면
자녀는 부모의 팬심을 ‘덕질’로까지 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르는 노래의 다양함이 너무나 조화롭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도
자주 열리니 우울하고 답답했던 시간은 이제 활력으로 채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덕질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덕후전문교실’이 열린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공식카페를 가입하는 것부터 음원 스트리밍은 기본이고요.
콘서트에서 열심히 흔들 응원봉 사용법과 굿즈를 구매하는 것까지, 아주
세심하게 다 알려주는 이들만의 커뮤니티는 이제 문화로 자리 잡은 듯했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은 임영웅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읽고 싶어서 손녀에게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연이었습니다.
크게 프린터 된 가사에 더듬더듬 손을 짚어가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눈물이 난다 이 길을 걸으면
그 사람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난다
붙잡지 못하고 가슴만 떨었지
내 아름답던 사람아
사랑이란 게 참 쓰린 거더라
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더라
이별이란 게 참 쉬운 거더라
내 잊지 못할 사람아
사랑아 왜 도망가
수줍은 아이처럼
행여 놓아버릴까 봐
꼭 움켜쥐지만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잠시 쉬어가면 좋을 텐데
이내 눈가가 촉촉해진 어르신은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노랫말을
부르는 사람이라 임영웅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씀하셨지만
더 뭉클한 건 어르신의 그 아이 같은 모습이었답니다.
임영웅을 덕질하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조금 더 그들을 챙기기 시작했는데요.
콘서트장에 모셔다 드리고, 또 모셔 오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선물로
드리게 된 것이죠. 공항에서 손님을 기다리듯 콘서트장 바깥은
짧은 여행을 끝낸 부모님을 기다리는 자녀들로 붐비기 시작합니다.
기나긴 투병 중에, 살아야겠다는 어떤 계기가 되어주고,
수면제가 아니면 잠을 이루지 못하던 우울과 무기력으로 점철된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존재가 허상이 아니라 고운 목소리로
인생을 위로해 주는 현실의 사람. 그런 임영웅에게 빠진 엄마를 보는 일은
모든 자녀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삶을 열심히 즐기는 사람은 누가 보아도 행복한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