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본토에 있는 무기 창고를 겨냥한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이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모스크바 북서쪽 트베르주(州)에 있는 무기 창고를 겨냥한 우크라이나 자폭 드론들은 지난 18일 토로페츠(Торопец)를, 21일에는 토로페츠에서 멀지 않은 옥차브리스키 마을(посёлка Октябрьский)을 향해 날아들었다.
21일에는 또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주 티호레츠크(Тихорецк) 무기고에도 우크라이나 드론이 날아왔다. 우크라이나군 참모본부는 이날 “이 시설은 침략자들(러시아)의 가장 큰 탄약 저장 기지 3곳 중 하나"라며 "방공 레이더 '포들요트'를 뚫고 북한산 탄약 등 최소 2,000톤의 탄약을 보관중인 무기고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또 옥차브리스키 무기고 공격은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특수 부대가 담당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트베르주 토로페츠 탄약고 폭발 장면/사진출처:현지 매체 영상 캡처
최근 일련의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이 주목을 받는 것은 그 시점과 타격 목표, 무기고 적재물 때문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오는 26일 미 백악관에서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승리 플랜'(구상)을 설명할 예정이다. 이 구상에는 장거리 미사일의 추가 제공및 러시아 본토 사용 허가 요청이 들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장거리 미사일의 러시아 본토 공격 허용을 미국이 극히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가 천명한 '레드 라인'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장거리 마시일이 러시아 본토에 있는 공군기지나 무기고 등 군사시설을 직접 타격할 경우, 러시아의 거센 반발과 보복 조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젤렌스키로서는 러시아 본토를 미국 미사일이 직접 때리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SBU가 핵무기가 저장된 곳으로 알려진 옥차브리스크 탄약고 공격에 직접 나선 이유로 추정된다. 러시아 측의 대응을 시험해보는 의도다.
젤렌스키 '승리 구상'에는 또 러시아 사회에 전쟁 공포를 확산시켜 반전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전략도 들어 있다. 민간인 시설을 직접 때리지는 못하지만, 인근 무기고를 타격하고 폭발시킴으로써 주민들이 화재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급히 대피하는 등 생활의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수법이다. 실제로 탄약고 인근 주민들은 적어도 몇시간 이상 급히 기존의 생활권에서 벗어나야 했다.
트베르주에 대한 드론 공격이후, 주 당국은 새벽부터 M-9 발틱 고속도로의 통행을 5시간 가까이 차단했다. M-9는 모스크바 외곽순환도로(мкад, 엠카드 혹은 음카드)에서 모스크바주(수도권), 트베리 및 프스코프주를 거쳐 (발트해의) 라트비아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다. 드론 공격으로 트베르주 일부 구간의 통행이 차단되자 수많은 차량들은 인근 지역을 우회하는 등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공격 대상 군수 창고의 적재물도 관심이다. 러시아 반정부 매체는 옥차브리스크 무기고에는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타나'(공식 명칭은 R-36M)가 보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 이 정보를 확인하지 않았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크라스노다르주의 티호레츠키 탄약고는 북한산 미사일과 탄약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 2월 주장한 곳이다. CSIS는 러시아가 지난 6월 북한과 군사협력을 강화(포괄적전략동반자관계 협정 체결)한 뒤 이 탄약고를 확장했다고 강조했다. 북한산 무기는 또 북오세티아(자치공화국)의 모즈독(Моздок) 탄약고와 로스토프주 '예고를리크스카야 공군기지'(в районе авиабазы Егорлыкская)로 보내지고 있다고 CSIS는 주장한 바 있다.
북한산 미사일 포탄이 보관된 것으로 알려진 티호레츠크 탄약고에 관한 미 CSIS 보고서 자료/캡처
스트라나.ua는 "핵미사일 보유 시설이 실제로 공격을 받았는지 여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면서 "그러나 이 정보는 우크라이나가 바이든 미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 본토에 장거리 미사일을 공격할 수 있는 허가를 얻기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가 핵 시설을 공격했는데도, 러시아의 대응이 없으니, 모스크바의 '레드 라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메시지다.
이에 앞서 우크라이나 드론은 지난 18일 트베르주 토로페츠 탄약고를 공격했다. 2018년 건설된 이 무기고에는 이스칸데르와 토츠카-U 미사일, 에어폭탄(KAB, 활공폭탄), 포탄 등이 보관돼 있다고 한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이 무기고가 그동안 러시아 국방부에 의해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알려진 곳이라는 점이다. 아비아 프로 등 러시아 매체에 따르면 지난 18일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받은 토로페츠 무기고는 평범한 드론 공격에도 취약함을 드러내 건설을 담당한 드미트리 불가코프 전 국방차관의 장담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건설을 담당한 불가코프 차관은 이 시설을 공습과 미사일 공격을 견딜 수 있는 '슈퍼 저장 시설'이라고 불렀다. 그는 쇼이구 전국방장관이 국가안보회의 서기(안보실장 격)로 물러난 뒤인 지난 7월 각종 횡령혐의로 체포된 바 있다. 앞에서는 최고로 튼튼한 무기고를 짓든다고 해놓고는 뒤로는 건설비를 빼먹고 부실하게 지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또 하나, 토로페츠 탄약고의 파괴 정도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언론은 지진이 발생한 것과 같은 거대한 폭발이 이뤄졌다고 주장했지만, 스트라나.ua는 "실제 파괴 규모와 폭발물의 정체는 아직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트베르주 당국이 이날 정오께 대피한 지역 주민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으로 촉구했다"며 "서방 언론의 보도대로 라면 조기 수습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스트라나.ua는 지난 2017년 우크라이나 비니차주(州) 칼리노프카의 탄약고 폭발 당시에는 인근 주민들의 대피가 며칠 동안 지속된 바 있다고 비교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로켓(미사일) 드론 팔라니차/사진출처:topwar.ru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은 토로페츠 탄약고가 우크라이나의 로켓 드론(ракеты-дрон, 드론과 미사일을 결합한 우크라이나의 최신 드론)인 '팔랴니차'(Паляныця)의 공격을 받았다고 썼다. 드론의 비행 당시, 기존 드론의 오토바이 소리가 아닌, 제트기나 로켓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측은 팔랴니차의 사용을 확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