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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범주착오와 광고효과
범주착오(category mistake)란 말은
길버트 라일(G. Ryle)의 비유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비유를 조금 살펴보자.
서울의 어느 대학에 다니는 손자가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에게
대학 구경을 시켜준다고 가정해 보자.
손자는
“할머니 제가 다니는 대학 구경시켜 드릴게요”라며
할머니를 모시고 대학 캠퍼스로 간다.
그리고 강의실을 보여주며
“할머니, 여기는 강의실이고요”
또, 도서관을 보여주면서
“여기는 책이 많이 있는 도서관이에요”라고 열심히 설명한다.
이와 같이 운동장과 기숙사, 식당, 실험실, 교수연구실 등을 차례로 보여준다.
그리고 난 후 손자가 묻는다.
“할머니, 구경 잘 하셨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얘야, 다리가 많이 아프다만 구경은 참 잘 했구나.
그런데 네가 다닌다는 대학은 도대체 언제 구경시켜 줄 참이냐?”라고 말한다.
할머니의 이 물음에 손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길버트 라일은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범주착오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하나의 예로 범주착오의 의미를 확실히 전달하고 있다.
누군가가 어린아이에게 군대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데리고 가서 행진하고 있는 군인들을 가리키며
“얘야, 저건 병사들이다” 또,
뒤 따라오는 탱크와 포병, 미사일 부대를 향해
“저건 탱크부대다, 저건 포병대대다, 저건 미사일 부대다”라고 설명해 준다.
그런데 아이가 “그런데 군대는 어디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의 언어능력에는
기본적으로 어떤 대상과 관련된 것들을 범주화하는 기능이 있어서
웬만해서는 실제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극히 적다.
만약 주변에서 이러한 일이 생겨서 할머니와 아이처럼 질문하면
상대방은 “웬 생뚱맞은 개그?”라며 받아치기 십상이다.
길버트 라일은
일상생활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이러한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
그리고 라일은 그것을 개념의 범주화로 보고
‘범주착오’라고 이름 붙였다.
길버트 라일의 범주착오는
일상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만
반대로 그것을 뒤집어 보면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이 된다.
나는 그것을 ‘역범주착오(inverse category mistake)’라 정의하겠다.
대학은
어느 한 곳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강의실, 도서관, 운동장, 기숙사, 실험실, 식당, 교수연구실 등을 모두 합한 개념이다.
군대 또한 마찬가지다.
병사들, 총, 탱크, 포대, 미사일 등 군에 필요한 모든 것이 합해져서 군대가 된다.
즉, 조그만 카테고리들이 모여
새롭고 큰 카테고리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인지착오를 일으키면
강의실을 대학의 전부로 착각할 수 있다.
이는 범주착오가 아니라 역범주착오이다.
즉, 강의실만 있으면 대학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탱크부대만 있으면 군대를 모두 가진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범주착오란 구성요소 중 영향 인자가 가장 큰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갖춰졌다고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범주착오에 항상 노출되어 있으며, 쉽게 빠져든다.
또한 자신의 오류를 쉽게 깨닫거나 바꾸지 못한다.
그 이유는
역범주착오가 내면의 욕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망과 관련된 중대한 인지착오의 상당부분은
역범주착오에서 비롯된다.
반면, 흔히 착시나 환청, 감각적으로
잠시 잘못 인지한 것들은 쉽게 깨닫고 정정한다.
요즘은 역범주착오를 광고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브랜드 광고는 엄밀히 말하면
소비자로 하여금 역범주착오를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브랜드 광고뿐만 아니라 모든 광고가
역범주착오를 일으키도록 만들어지고 있다.
제품이 갖고 있는 모든 요소를 일일이 설명하고 자랑할 수 없으므로,
그중에서 가장 내세울만한 것을 선택해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괜찮은 편에 속한다.
제품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 광고는 역범주착오 비율이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산자는 그렇게 광고하면
물건이 안 팔린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역범주착오 비율을 최대한 크게 하려고 하며,
이는 곧 판매와 직결된다고 본다.
브랜드명이 세탁기고, TV이고, 자동차 자체다.
제품은 기능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으므로,
구매해서 사용해 보면 제품에 대한 평가를 금세 내릴 수 있다.
착오율이 일정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착오율이 터무니없이 크면 과대광고로 고발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원어민 교사와 역범주착오
교육에서는 광고처럼 역범주착오를 일으키면 안 된다.
물론 일으키도록 유도해서도 안 된다.
교육설계자와 교육수혜자 모두 역범주착오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좋다.
영어교육에 있어서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큰 역범주착오는
원어민 교사를 활용하는 교육이다.
한국은 지금 가르치는 측도 배우는 측도
원어민 교사의 역범주착오에 완전히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즉, ‘원어민 교사 교육 = 영어교육 완성’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영어교육의 완성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조건들이 결합되어야 할까?
영어교육의 카테고리는
크게 학생 카테고리,
프로그램 카테고리,
환경 카테고리,
교사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배우는 그룹과
가르치는 그룹
양쪽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그룹과
그들이 작동하는 환경 그룹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각 카테고리는 여러 가지의 경우를 가질 수 있다.
학생 카테고리는 혼자인가 여러 명인가,
또는 학교에서처럼 20~30명인가 등의 학생수부터
수준, 연령대 등으로 구분된다.
프로그램 카테고리와 환경 카테고리, 교사 카테고리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다양한 구조를 가진 카테고리들이 서로 결합되었을 때,
영어교육에서 발생되는 경우의 수는 너무나 많다.
원어민 교사는
교사 카테고리의 여러 경우 중 한 경우에 속한다.
‘원어민 교사가 가르친다면’의 조건은
‘몇 명의, 어떤 수준의, 몇 살 정도의, 얼마만큼 노력하는’ 등의
학생 카테고리와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등의 프로그램 카테고리와
‘어떤 환경에서, 하루에 몇 시간을, 몇 명의 원어민 교사가’ 등의 환경 카테고리와
결합되어야 무언가 희미한 답을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어민 교사의 영어교육=영어교육 완성’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명백히 역범주착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위의 경우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살펴보자.
원어민 교사 1명이 3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교재를 이용해
학교교실에서 하루에 1시간씩 일주일에 5번 수업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자.
이것을 제외한 다른 조건들은 지금과 같다.
사실 이 조건은 실현이 불가능하지만 매우 좋은 조건임에는 틀림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모두 원어민 교사가 배치된다면
학교의 영어교육 프로그램은 분명 다시 체계적으로 짜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이 교재로 다시 만들어졌다고 가정하고
역범주착오적 문제를 살펴보자.
실현불가능한 최상의 조건을 설정했는데 그것이 허상으로 밝혀졌을 때,
그보다 조건이 나쁜 나머지는 어떤 경우에도 허상이 되는 증명 방법을 따르고자 한다.
교재와 학생 수와 환경이 똑같고,
달라진 조건은 1시간 동안 영어로만 수업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5명의 그룹을 하나의 개체 단위로 가정하면 30명은 6개의 개체가 된다.
분산효과를 고려하면 개체당 제공되는 원어민 교사와의 접촉시간은
하루에 10분에 불과하다.
학생이 원어민과 하루에 10분간 접촉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5일이면 일주일에 1시간이 된다.
원어민 교사와의 일주일 1시간의 수업으로
과연 영어가 해결될까?
모든 것은 학생이 얼마만큼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다.
하루에 10분, 일주일에 1시간뿐인 원어민 교사와의 접촉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하루 1시간 이상 스스로 철저히 예습과 복습을 해야 그 효과가 나타난다.
이대로만 하면 분명히 효과가 있다.
원어민 교사와 공부하는 것을 운동으로 비유해보면,
달리기를 배울 때, 트레이너와 호흡을 맞춘 10분간의 훈련을 위해
매일 1시간 이상 운동장이 아닌 집에서 몸을 움직이며 연습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운동장에 나가면 트레이너와 10분 동안 열심히 뛰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하면 운동효과가 곧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운동은 반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한다’에서 ‘매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는 인간의 생물학적 주기가 하루 단위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어민 교사와 공부하면 다음 두 가지가 충족될 수 있다.
하나는 원어민과 수업할 때,
자신도 모르게 학습을 운동으로 받아들인다.
즉, 영어공부가 사고학습이 아닌 운동학습으로 바뀌는 것이다.
또 하나는 원어민과의 학교 수업을 위해 매일 1시간 이상
스스로 영어 학습을 하면 운동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만약 위의 두 가지가 충족되면 원어민 교사의 교육효과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
매몰비용효과 발생
그런데 정말 모든 학생들이 이렇게 열심히 운동 훈련을 할까?
그렇지 않다. 그러면 현실에서는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먼저 다른 교과목 수업에서 현재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즉, 열심히 따라가는 집단과 중간 집단, 그리고 따라가지 않는 집단이 생기게 된다.
수학, 과학, 국어 등 모든 교과목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과 같다.
상위그룹, 중간그룹, 하위그룹.
그러면 열심히 따라가는 집단만 운동의 두 가지 효과를 충족하게 되고,
나머지 집단은 체육복만 입고 하루 10분씩 운동장에 나갔다들어오는 게 전부다.
집에서 연습할리도 없다.
따라서 운동 훈련이 이루어질 턱이 없다.
환경 조건을 지금처럼 유지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두 번째는
대학입시가 사고학습 테스트로 여전히 남아있는 경우다.
원어민 교사는 이러한 상황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즉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므로 운동학습은 시켜도 사고학습은 시키지 못한다.
모든 학생들이 문법과 문장 독해,
지금과 같은 사고 테스트를 위하여
학교 밖에서 별도의 공부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학교에서 10분 동안의 운동학습을 하고,
학교 밖에서 매일 몇 시간의 사고 훈련을 하면
뇌의 신경뉴런은 어느 쪽으로 발달하게 될까?
당연히 신경뉴런은 사고 훈련 쪽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매몰비용효과(sunk cost effect)가 발생한다.
돈이나 시간, 노력 등을 투입하면
그것을 지속하려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것을 매몰비용효과라고 한다.
하루 몇 시간씩 들이는 사고 훈련과
그것의 최종 목표인 사고 훈련 결과 테스트를 위해
하루 10분정도의 운동 훈련은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사고 훈련에 돈이나 시간, 노력을 계속 쏟아부을 가능성이 커진다.
학생들은 그것이 진짜 영어공부와 멀어진다는 것을 알아도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매몰비용효과라는 것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런 간단한 시뮬레이션으로도
‘원어민 교사 영어교육 = 영어교육 완성’이 분명한 역범주착오임을 알 수 있다.
‘원어민 교사 1명-학생 수 30명-학교교실에서
주 5일 연속 하루 1시간 수업’라는 최상의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
몇 명의 원어민 교사가 필요할까?
어림잡아 몇만 명, 적어도 만 명은 넘을 것이다.
그런데 만 명이나 되는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모든 것을 떠나 최상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 내부에 그 요인이 있다.
현재 각 학교마다 있는 영어 교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역범주착오를 일으키고 있는 원어민 교사를 통한 교육이
최상의 조건으로써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다.
그러면 조건을 바꾸어 보자.
원어민 교사 수를 줄이기 위해 주 5일을 주 1일 정도로 바꾼다.
시뮬레이션대로라면 매일 함께 공부해도 매몰비용효과가 발생하는데,
주 1일은 접촉효과 제로라고 봐야 한다. 이
거야말로 완벽한 역범주착오로,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속여서
그 착시현상에 잠시 동안 위로받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원어민 교사와 평화봉사단
1960~1970년대 우리나라에는 평화봉사단이라고 해서
중ㆍ고등학교에 미국인 선생님이 실제로 있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시간씩 수업을 했다.
현재 주한 미국 대사인 캐슬린 스티븐스도
당시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왔었다.
그녀는 1975년도에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나 또한 중학교 다닐 때 평화봉사단이었던 영어 선생님 이름을 기억한다.
히긴스 선생님으로,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영어를 배웠다.
나를 포함해서 친구 모두는 히긴스 선생님의 주 1회 영어수업으로
영어 실력이 그다지 나아지진 않았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 접촉효과 때문이었다.
정부의 영어교육설계자가 역범주착오를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들이 위에서 언급한 상황들을 예측하면서도
원어민 교사 교육 카드를 흔든다면
그들은 역범주착오를 이용해 엄청나게 심각한 과대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그들이 그러한 상황을 정확하게 모르고
원어민 교사를 통한 교육이
영어교육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역범주착오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들이 원하던 만큼의 설계 값이 나오지 않을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록 교육설계를 담당했던 자들이 은퇴하거나 교육 현장을 떠난 후에야
그 사실이 밝혀져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겠지만 말이다.
많은 비용과 시간을 낭비한 뒤에야 후회할지도 모른다.
나는 과학적 사실이 인간의 감성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과학적 사실과는 무관하게
인간은 그들의 감성과 속성을 강물이 흘러가는 대로 실려 보낸다.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낸 인지착오의 강물이 이미 흘러가고 있다면
그 물줄기를 쉽게 바꾸기는 어렵다.
따라서 누군가 인간이 지닌 감성과 속성의 흐름을 이용해
인지착오 없는 방향으로 물줄기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인지착오다, 역범주착오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행동을 바꾸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사실을 알았다고 바로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
오직 그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꼈을 때에야 행동을 바꾼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교육설계자와 교육자들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역범주착오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학부모와 학생들 또한 역범주착오를 일으키지 않도록 스스로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이미 역범주착오의 큰 강물이 만들어졌다면,
벌써 유ㆍ무형의 손실을 안고 가는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현대의 IT 기술과 인터넷 인프라만 있으면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한국말을 하듯
영어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
오직 6년의 중ㆍ고등학교 교육만으로도 그것은 충분하다.
또한 우리나라는 수천 명의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는 비용의 수천 분의 일만으로
그러한 교육 프로그램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으며,
과학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최종근, '북스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