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11]김대중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모처럼 김대중 선생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저로선 ‘전 대통령’이란 지칭보다 ‘선생님’이 훨 씬 더 편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개정신판 1쇄 2024년 1월 4일 김영사 발행, 364쪽, 18800원)가 그것입니다. 1판 1쇄를 펴낸 게 1993년 12월이더군요. 그동안 1판 70쇄에 개정판 23쇄를 발행했더군요. 마침 올해가 선생님 탄생 100주년이 되는군요. 하여, 연초에 <길 위의 김대중>이라는 영화도 나온 것이지요. 제가 갖고 있는 책은 94년에 나온 46쇄더군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머리말에 나옵니다. 세 번의 대선 도전에 실패한 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할 때 출판사에서 에세이 형식으로 당신의 생각을 쓰시라고 집요하게 꼬드겼답니다. 개정판 서문은 1998년 썼지만, 개정신판의 머리말은 영영 쓸 수가 없게 됐지요(2009년 별세).
아무튼, 글자 하나 빼놓지 않고 이틀간 정독하며 느낀 것은 “역시 선생님이시구나”였습니다. 선생님만이 가진 정치적인 식견, 민족화합을 위한 혜안, 불굴의 집념과 열정, 국민 사랑에 새삼 놀랐습니다. 언제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연설 첫마디는 명약관화한 진실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 개정신판에는 부록으로 세 편의 명연설이 실렸습니다(1969년 7월 삼선개헌 반대 시국대강연회 연설, 1998년 2월 15일 제15대 대통령 취임사, 2099년 6월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 특별연설). 찬찬히, 음미를 하며, 그분만의 독특한 억양과 뉘앙스를 생각하며 읽는데,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그 어떤 편견도 모두 제쳐두고, 최소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선생님께 진 ‘마음의 빚’을 생각해서라도 소리내어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정치가이기 이전에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공부하는 학자였습니다. 아니 사상가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저술도 많이 남겼습니다. 라오따오쉬에(老到學), 죽을 때까지 학생이라는 신념으로 끊임없이 독서와 사색을 했습니다. 마음은 한없이 여리고 겁이 많은 분이, 오직 하나 나라를 사랑한 ‘죄’로 1957년 정치를 시작한 이래 수많은 역경과 시련, 오해와 편견 속에서 연금과 투옥은 말할 것도 없고 사형수에 두 번의 망명을 한 ‘정치 9단’의 민주투사로, 마침내 네 번의 도전 끝에 ‘대권’을 거머줘 ‘오뚜기 대통령’이 되었지요.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였던 IMF를 조기에 졸업시킨 ‘엄청 많이 준비됐던’ 대통령으로 통일의 청사진도 설계했습니다. 오죽하면 모스크바대학교에서 종신교수의 직함을 줬을까요?
사형선고를 받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던 1981년 1월, 중앙정보부 조사를 받던 중 최모 수사관에게 4분 25초간 인터넷시대에 대해 강의하던 모습의 미공개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https://youtu.be/SZ55eqYaC4k?si=VciXBkqrNZla1ul7 이 동영상은 어찌된 연유인지 영화 <길 위의 김대중>에는 나오지 않더군요. 감옥에서 정보통신시대의 이모저모를 꿰뚫어보는 그분의 선견지명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사랑하는 젊은이와 존경하는 국민들에게 바치는 이야기>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현세대와 다음 세대에 애정을 듬뿍 가진 해 들려주는 선생님의 진솔한 고백은 결단코 ‘원로 꼰대’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알부남(알고보면 부드러운 남자)’의 ‘세상을 사는 지혜’를 들어보시기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최고의 인생조언, 정치는 예술 그 자체라고 불굴의 정치인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유한하지만 그래도‘끝이 없는 길’을 가야 하는지, 바로 옆에서 도란도란 자상하게 얘기해주는 듯합니다. 어느 대목에선 환청이 들리는 듯도 합니다. 우리가 왜 선생님의 말과 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과제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야말로 오늘의 거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우리가 힘을 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