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다방기(樂浪茶房記)-이효석
분야: 어문 > 수필 > 경수필/수필
저작자: 이효석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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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부족이 될까를 경계해서 학교에서 나가는 시간을 이용해 다방까지 걸어가고 다방에서 다시 집까지 걸어가는 이 코스를 작정하고도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여행(勵行)의 날이 차차 줄어져 간다.
집에서 학교까지 10분, 학교에서 다방까지 20분, 다방에서 집까지 30분 가량의 거리─이만큼만 걸으면 하루의 운동으로 족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동경서 온 소설 쓰는 이에게서 1일 2시간 산보설을 듣고 착상한 계획이었으나 그의 반인 한 시간 산보도 여의치 못한 것이다. 다방에를 간다고 해도 오후 네 시 전후 시각에는 먹을 것도 만만치 않다. 반지빠른 때라서 이 시각에 배를 채우면 저녁이 맛없어진다. 커피에다 핫케이크나 먹고 나면 저녁 구미는 아주 똑 떨어져 버린다. 공복에 커피는 위험한 것이나 홍차를 마시자니 향기 없는 뜨물이 속에 차지고 레몬스카치를 마시자면 날마다의 음료로는 지나쳐 사치하다.
대체 요새의 다방이라는 것이 커피의 미각에는 섬세한 주의를 베풀면서도 홍차는 아주 등한시해 버린다. 홍차의 진의라는 것은 립톤의 새 통을 사다가 집에서 우려내는 근근 수삼일 동안에 있는 것이지 아무리 저장에 주의해도 그 시기를 지나면 풍미는 완전히 달아나 버린다. 호텔에서 먹는 것이나 다방에서 청한 것이나 집에서 우린 것이나 다 같이 들큼한 뜨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평양에 다방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요 수년간의 일이다. <히노도리>와 <마즈르카>만 있을 때에는 적막의 감이 없지 않더니 별안간 올해를 잡아들면서 <야마도> <세르팡> <브라질>의 세 집이 우후의 죽순같이 솟아나 다객의 목을 적시어 주게 되었으나 아직도 그 어느 곳이나 설비 의장 등 부족한 점이 많다. 들으니 연내로 또 두 집이 생긴다는 소식이다. 그렇게 되면 합 일곱 곳의 다방이 앉는 셈으로 일 년 동안에 이렇게 수다스럽게 늘어가는 장사는 외에 볼 수 없는 것이나 당업자끼리는 피차에 눈의 적일는지 몰라도 다객의 편으로 볼 때에는 다방의 격식도 점점 나아질터이니 이런 반가울 데는 없다.
일곱 곳 아니라 7의 7배가 는다 하더라도 좋은 것이 각각 특색을 나타내고 풍격을 갖추어 간다면 다객의 유별도 저절로 나누어지고 각각 갈 곳이 스스로 작정될 것이다.
사실 지금 같아서는 꼭 가고 싶은 한 곳이라는 곳이 아직 없다. 그만큼 모든 범절이 설피다. 음악에 자신 있는 다방은 방안이 횅뎅그레해서 기분이 침착해지지 못하고 안온한 집이라도 찾아가면 음악이 설피고 레지(茶娘) 있는 곳을 들어가면 언제나 속배(俗輩)가 운집해 있고 ─도무지 마땅한 곳이 없다.
그러나 역시 음악을 안목에 두고 <세르팡>을 찾는 것이 가장 유익한 듯하다. 네 시 전후면 다객의 그림자가 삐일 뿐 아니라 때로는 혼자 앉게 되는 적도 있다. 차 한잔을 분부하고 3,40분 동안 앉아 있노라면 웬만한 교향악 한 편쯤은 완전히 들을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파세틱」도 좋고 베토벤의 트리오 「대공(大公)」 같은 것도 알맞은 시간에 끝난다. 대곡(大曲)이 너무 세찰 때에는 하와이안 멜로디도 좋은 것이며 재즈 음악도 반드시 경멸할 것은 못 된다.
어떻든 이 산보의 시각 전후가 다방을 찾기에는 가장 고요하고 적당한 때이지 밤에는 아예 갈 곳이 못 되는 것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데다 까닥하다가는 문하(門下)의 학생들을 만나기가 일쑤다. 개중에는 한 탁자에 청해 와도 좋은 사람도 있기는 하나 거기는 저쪽도 거북스럽고 이쪽도 편편치 못하다.
서울서는 학생들의 다방 출입을 금한다는 소문이나 평양에는 아직 그런 엄격한 율도는 서지 않았고, 사각모 패라야 단 두 교뿐이니 관대하게 취급은 하나 그만큼 그들의 자태는 더 눈에 띠이게 되고 한 다방에서 마주칠 때에는 피차에 편안치 못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차라리 밤에는 다방 출입을 삼가게 된다.
다방 행에도 이 정도의 조그만 수난은 있는 것이다. 세상에 편편한 일 한 가지나 있으리, 속히 이곳에도 서울만치 다방이 자꾸자꾸 늘어서 좋은 음악 많이 들리고 좋은 차 많이 먹이게 하고 웬만한 구석목 다방에 들어가서 쯤은 학생의 그림자 눈에 안 띠이게 될 날을 기다린다.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