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4월 초하루 봄날 오후, 지루한 방콕생활에서 벗어나 마스크를 하고 오랜만에 대전천의 목척교를 찾았다. 목척교는 평소 많은 교통량과 사람들이 오가는 대전의 대표적 원도심 지역이다. 하지만 오늘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쓸쓸한 거리를 바라보는 마음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1904년 대전역이 생기고 기차가 달리기 시작할 때, 대전천에는 다리 하나 없고 그저 징검다리가 여기저기 있었다. 대전에 일본인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콘크리트 교각이 아니고 하중을 버티기 위해 목재를 촘촘히 받쳤는데 그 모양이 척(尺) 자 같다고 해서 목척교라 했다.
대전천은 한밭 넓은 벌판을 둘로 나눈 역할을 한다. 서쪽 은행동 지역에 주택이 늘어나자 1912년 나무로 된 다리지만 제대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목척교가 탄생했다.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한 1932년에는 대전역과 도청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와 함께 목척교도 나무에서 콘크리트 교량으로 탈바꿈했다.
6·25 때는 피란민들로 전쟁 속에 헤어진 혈육을 만나기 위해 목척교에서 무한정 기다리기도 했던 곳이다. 피란민들의 ‘만남의 광장’ 역할로 목척교는 평생 잊지 못할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안타깝게도 1974년 목척교 상·하 대전천을 시멘트로 복개를 해 그 위에다 고층 상가,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를 세웠다. 자연환경을 거역하는 두 건물은 많은 잡음을 일으키며 흉물스럽게 서 있다 다행히 2008년에 모두 철거해 목척교는 다시 다리로서의 모습을 되찾았다.
35년의 긴 세월, 그렇게 목척교는 모습을 잃고 있었으나 지금은 옛 목척교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는데 '다리의 맛'을 잃은 이미지라는 비판도 받았다.
세느강의 미라보 다리는 아름다운 강과 다리로 파리의 중요한 자산이다. 그런데 우리 대전천은 값진 관광자원으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상도로라는 교통의 편의성 때문에 하천변 4분의 3이 콘크리트로 덮여있다.
하지만 목척교는 우리 대전의 상징이고 문화관광 자원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안다성의 ‘가로등 희미한 목척교~, 못잊을 대전의 밤’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구항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