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역사11월4일
▶1989년 민정당 '정호용의원', 의원직 사퇴표명
민정당 '정호용의원', '5공청산의 완전종결'
전제로 의원직 사퇴표명.
야당, 논의가치 없다고 일축.
육군본부 ‘작전상황일지’ 단독 입수
5월21일 ‘특전사령관 외 2명’ 기록
전두환 동행 여부 등 진상규명 필요
정호용 “광주서 보안사령관 만난 일 없다”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오른쪽)이 1980년 5월27일 시민군이 진압된 뒤
전남도청을 방문하자 장형태 당시 전남지사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광주 전남도청 앞
금남로 일대에서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있던 5월21일 정호용(88) 당시
특전사령관이 헬기를 타고 광주를 찾은 사실이 군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는 ‘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을 때 서울에 있었다’고
한 정씨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광주에 파견된 3·7·11공수부대의 수장이었던 정씨가 5월21일
광주에 있었다는 군 기록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의역사11월4일 🌺
🍂09년 일진회, 한ㆍ일합방을 제창(대한협회-이를 성토)
🍂20년 조선체육회, 서울 배재 운동장서 제1회 전국야구대회 개최
🍂26년 조선어 연구회에서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념하는
'가갸날(음력 9월 29일)'을 정하고 기념함.
🍂33년 남궁억, 비밀 결사 십자당 사건으로 검거됨 (1935년 병보석으로 석방됨).
🍂33년 조선어학회, 한글반포 487회 기념식 갖고 ‘한글맞춤법통일안’ 발표.
🍂48년 상공부 신설(대통령령 제 28호)
🍂48년 내무부장관 산하에 치안국 설치 (경무, 보안, 경제, 사찰,
수사지도, 감식, 통신, 소방, 여자경찰관)
🍂50년 중국, 한국 전쟁 참전
🍂66년 제1회 전국기능올림픽대회 열림
🍂72년 '남북조절위 구성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 서명코 11일 0시를기해
대남ㆍ대북 비방 방송중지 합의
🍂82년 현대미포조선소, 제2공장 준공되어 세계 제1의 대단위
수리 조선소로 등장
🍂83년 버마 정부,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과 관련하여 북한 과 단교.
북한 승인을 취소
🍂85년 7개대생 14명,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를 점거코 수입 개방요구
전면 철회 주장하며 농성
🍂86년 김종철 국민당 고문 사망(8일 국회장)
🍂86년 서울형사지법, 문익환 목사 집시법·소요죄 적용, 징역3년 선고
🍂87년 한주의통일한국당 창당(총재ㆍ대통령후보에 신정일)
🍂88년 국회 5공 청문회 시작-일해재단 광주민주화 언론문제 등
🍂88년 대검중앙수사부, 지하철 비리 관련 김재명 전 지하철사장 구속
🍂89년 건설부, 아파트를 한번 분양 받으면 다음 부터는 2순위만
적용하는 주택공급규칙 시행
🍂89년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창립
🍂90년 김종필 민자당 최고위원, 당내분ㆍ파행 정국에 대한
책임을 물어 '3金퇴진'을 제기
🍂91년 여 야는 정치관계법 협상 6인 실무회의를 열고
정치자금법 개정 협상을 시작.
🍂91년 외무부,관광객 500만명 유치- 관광수입 100억달러 확보를 목표
관광진흥 5개년 계획을 추진.
🍂92년 국회, 대통령선거법, 정치자금법, 선거관리 위원회법 등 3개
선거관련 법등 10개 법안 통과.
🍂92년 상공부, 공업발전기금 지원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220억원이 늘어난 1337억원으로 확정.
🍂93년 한국·러시아·일 본 3국 회담을 모스크바에서 열고 동해
핵오염 실태를 3국이 공동조사 하기로 합의.
🍂93년 현대정공, 러시아 야크社와 현대51% 야크 49% 지분으로
민수용 항공기 합작회사를 설립키로 합의.
🍂93년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겸 해인사 총림방장인 성철스님이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82세로 입적.
🍂94년 중국, 미국ㆍ북한 만의 평화협정에는 반대 하고 남북한을
포함하는 관련국이 참여해야 한다고 밝혀
🍂95년 작곡가 윤이상, 독일에서 사망.
🍂96년 김동진 국방장관, 러시아 방문 중 이고르 로디오노프
국방장관과의 회담- 군사협력 양해각서 서명
🍂96년 삼성전자, 1GD램 세계 첫 개발
🍂97년 국무회의,부모 양계 혈통주의로 전환하는 것을 주요골자로
한 국적법 개정안 의결
🍂97년 뉴코아그룹 화의신청
🍂97년 국민신당 창당, 15대대선 이인제후보 선출
🍂97년 박태준 의원 자민련 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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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조계종 종정·해인사 총림 방장 성철 입적
대한민국의 승려로 한국 현대 불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고승 중 한명이다.
생전 돈오돈수를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며,
일평생 높은 학구열과 함께 철저한 수행의 삶을 살았다.
본인은 강하게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종정으로 추대하여 6·7대 종정을 역임하기도 했다.
1912년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아버지 이상언(李尙彦)과 어머니 진주 강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이영주(李英柱)이며 산청 단성초등학교와
진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후 진학하지 않고
17세의 나이에 불가(佛家)에 입도(入道)하여 경
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해인사에 들어가
대종사(大宗師) 아래에서 득도(得道)하였고,
이어서 법명인 '성철(性徹)'을 얻었다.
조계종 종정으로 취임할 당시에 남긴 법어가
그 유명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이다.
다만 이 말은 성철의 창작이 아니고,
중국 송나라 때 발간된 불교서 <오등회원>에 나오는
중국 승려 청원유신 선사가 남긴 말이 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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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너는 모습
1950년 11월 4일 오늘.
50년 중국, 한국 전쟁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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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
▶2008년세종증권 매각 비리, 노건평씨 구속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66)씨가 지난 2006년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 개입하고 금품을 받은 혐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수재)로
2008년 12월 4일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노씨는 지난 2006년 2월 세종증권 대주주인
세종캐피탈의 홍기옥(59·구속) 사장으로부터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를 성사시켜 준 대가로 정화삼(61·구속)씨 형제를 통해
29억6300만원이 예치된 통장과 도장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지난 1일 검찰 조사를 받고 귀가하면서 “돈 받은 적이 없다”
고 당당하게 밝혔던 노씨는 이날 서울구치소로 이송되기에 앞서
“혐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지만 전부 인정하지는 못하겠다” 며
“국민들에게 죄송하다” 고 말했다.
검찰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비리에 대한 공개 수사에
착수한 지 보름 만에 전직 대통령의 형을 구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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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11월4일 김재규 등 8명 첫 공개재판
1979년 10월 유신체제 말기 정치세력간의 갈등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김재규가 직속부하인 박선호,
박홍주 등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는 사건(10.26사태)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1979년 12월 4일 계엄보통군법회의 첫 공개재판을 받았다.
이후 12월 18일 결심공판이 오전10시 육군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재판장 김영선 중장, 법무사 황종태 대령 심리로 열렸다.
재판 결과, 육군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김재규,
김계원, 박홍주, 박선호에게 사형이 선고됐으며,
김계원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에게 사형이 집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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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4일 남산 제2호터널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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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위정척사파의 상소와 유배
1906년 6월 4일, 전북 태인에서 한 노선비가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호조참판 출신 면암 최익현(崔益鉉, 1835~1907,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입니다.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빼앗긴 조선에서,
그는 7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총칼을 들고 일어선 ‘선비 의병장’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최익현은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조선 후기 위정척사파의 대표적 인물이었습니다.
당백전 발행, 서원 철폐, 강화도조약에 반대하며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고,
그 때문에 광주, 제주 등지로 유배를 거듭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관료가 아니라,
나라의 정론을 바로잡는 청백리의 자세를 지켰습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11월, 최익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데 선비가 가만히 있으면 부끄럽다”는 신념 아래
그는 태인으로 내려가 제자들과 의병을 모읍니다.
그의 외침은 전국에 퍼졌고, 수많은 선비와 농민들이 호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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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은 정조의 후궁이자 문효세자의 어머니인
의빈 성씨(성덕임)의 기일입니다.
정조 10년 1786 5월, 문효세자가 홍역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의빈 성씨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자식을 연달아 잃은 슬픔을 너무 컸을까요.
같은 해 9월(음력), 의빈 성씨는 만삭의 몸으로 정조가
문효세자를 위해 지은 중희당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이때 의빈 성씨는 34세, 정조는 35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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