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MB 정부가 들어선지 만으로 1년이 되었습니다. 아직 1년 밖에 안 지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난 1년이 심리적으로는 굉장히 길게 느껴졌습니다. 민주주의의 후퇴, 경제 위기, 남북관계 경색 등 MB 정권은 거듭되는 정책의 실패, 그리고 독선과 오만으로 인해서 대한민국을 총체적인 위기와 난국으로 가게 하고 있습니다. MB 정부 만 1년을 맞아, 지난 1년간의 그의 행적을 돌아보고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진보 진영 내부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한 마음 먹고 쓴소리 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전 한나라당 지지자나 국정홍보 관련 알바생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싶어서요... 어제 한겨레 신문에서 손석춘씨가 쓴 진보진영에 대한 칼럼 <진보세력엔 대안이 없다?>를 읽었습니다. 그 칼럼의 내용은 진보 진영의 단결과 화합이, 그리고 뺄셈이나 나눗셈의 논리가 아니라 덧셈의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진보 진영이 참으로 새겨들어야 할 내용임에 틀림없습니다.
"수구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다소 자조섞인 명언이 있습니다. 어제 아고라 자유토론방에서 대학생촛불연합에 있다는 어느 사람이 일반 시민과 운동권을 분리하자는 주장을 했습니다. 촛불집회 때 운동권 관계자의 활동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으며, 또한 작년 광우병 관련 촛불집회 때 주최측(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대충 광우병 반대 대책회의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이 집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으며, 회계관리를 투명하게 하고 있지 못하다는 내용을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물론 어떤 단체를 비판하는 것은 개인의 판단이며, 자유입니디만 이는 전형적인 뺄셈의 논리이며, 달리 말해 자신의 의견과 다른 타자(他者: 제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해서 습관적으로 이런 용어를 쓰고 있음에 우선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the others로 이해하시면 빠를듯)를 배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보세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제가 봤을 때, 이념이나 유토피아를 찾다보니 저마다 지향하는 세계가 각자 다르고, 또한 설사 목표가 같다고 하더라도 - 지난 광우병 촛불집회 때 시민들 사이에서 격한 논쟁이 일어났듯이 -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이나 수단이 달라서, 세력을 통합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러한 통합이란 것이 하나의 독재적인 기구나 단체를 결성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체들이 조금씩 성격이나 방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일치 단결하여 서로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조금 어렵게 표현하면 다원적인 공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나아가 진보진영은 자신과 다른 단체 혹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포용하고 연합하기 보다는 비판하고 배제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때때로, 자주 말입니다. 이는 매우 안타까운 현상이며, MB의 무능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진보 진영의 지지율이 아직 제자리를 맴돌고, 대다수 국민들에게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의 역할이 잊혀지거나 외면을 받게되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진보 세력이 솔직히 말해서 지리멸렬하게 흩어져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도 그와 같습니다. 진보 세력은 그것이 어떤 단체이든지 혹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일단 독선과 아집, 그리고 도덕적 우월감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보 세력 내부의 조직적인 면에서도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발생했던 민주노총의 조합원 성폭력 사건은 진보 진영 스스로의, 그리고 내부의 모순과 문제점이 곪아 터져서 급기야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한심스럽게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건이 이슈화되면, 조중동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쉬쉬하면서 사건을 덮으려고 애썼다는 사실은 정치적 이념노선을 떠나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것 자체가 옳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조중동 눈치를 볼 필요없이 조기에 깨끗이 수습하였으면 별 다른 문제가 없었던 일을 그들은 하나의 이념논리에 파묻혀서 기본적인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스스로 표류하는 길을 자처했습니다. 진보 세력은 수구세력에 비해서 엄격한 도덕성과 명분을 갖추어야, 그러한 수구-보수세력의 잘못된 점을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한 진보 세력의 도덕적 부패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스스로의 존립기반이나 정체성,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허물어뜨리게 됨이 틀림없습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 세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서 뼈아픈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성경 말씀에도 있듯이 제 눈의 들보도 제거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찌 남의 티끌을 탓하고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따져보면 한 줌도 못되는 진보 세력이 각자의 이념에 사로잡혀서, 상호 이해나 공존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수구 보수 세력이나 2MB 정권과 대항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즉, 미처 대결의 대오를 갖추기도 전에, 진보세력은 힘 한번 못써보고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진보 세력은 서로의 정체성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단체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 그렇다고 수구세력인 뉴라이트 같은 단체까지 인정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진보 진영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내부의 단결을 말합니다 -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열린 자세가 시급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온라인 등에서 자신과 조금만 생각이 달라도 타인의 견해에 대해서 알바니 프락치니 하는 딱지를 붙여서 매도하거나 비방하는 자세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진보 진영이 아무리 좋은 가치관이나 이념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편협한 사고방식이나 도량만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만들 수 있는 세계는 마치 프랑스 혁명 직후의 공포정치처럼 매우 끔찍한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진보를 가장한 파시즘이 될 수 있습니다. 파시즘엔 우익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세상을 바꾸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진보 세력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논리, 청사진 - 민주주의, 인권, 자유 등 - 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특정한 이념에만 사로잡혀서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자기 폐쇄적인 고립은 매우 위험하며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모순된다고 봅니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절대시되거나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독단이나 근본주의로 흐를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마치 러시아에서 맑시즘이 잘못 수용되어, 스탈린의 일당 독재체제로 변질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어쩌면 지난 이명박 정권 1년의 정치-경제-대북관계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진보 계열의 신문 - 경향, 한겨레 - 혹은 인터넷 대안언론-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민중의 소리 등 - 이 매일 기사와 논평을 통해서 MB 정권을 비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비판이 필요없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침몰해가는 대한민국을 ㅤㅂㅘㅅ을 때 이러한 비판과 지적은 오히려 매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저 또한 이명박 정권의 공안통치, 문민독재에 분노했고 그것에 대해서 치를 떨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각종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 많은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 현안이나 이슈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미디어산업법, 미네르바 구속, 4대강 사업, 용산참사 등에 대해서 국민들은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며 MB 정권이 잘못하고 있다는 반응이 그렇지 않은 반응보다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진보 세력에게는 활동을 펼칠 수 있는 희소식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진보 정당이나 세력이 아직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요? 적어도 국민의 지지율 혹은 시민단체 회원 숫자로 본다면 말입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진보 진영제대로 된 대안을 모색하지 못햇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런지요. 진보 세력이 몇 가지 구호나 원론적인 담론 혹은 정책대안, 그리고 신자유주의 비판 등의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한 태도로는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대안이나 공감을 제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MB 정권이 총체적으로 국정 운영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저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맞서는 진보 세력의 담론 수준마저 총체적이거나 추상적인 원론 수준이라면 이는 매우 곤란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용산 철거민 참사의 경우에 시민단체나 여당은 공권력 남용과 정부를 비판하며, <살인정권 물러가라>는 식의 다소 감정적인 구호나 정치적인 공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철거 과정에서 세입자 대책의 전반적인 과정 상의 문제점과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 국회 입법 과정에 그것이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는 사태를 접근하는 한층 더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진보진영의 좀 더 근본적인 고민과 생각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집회나 시위 등에서 단결과 일치를 위해서 부르기 쉬운 구호나 정부규탄 문구, 그리고 피켓이 필요하지만, 일반 시민보다 이슈를 심층적으로 접근해야 할 야당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그것을 넘어서 진지한 정책적 논의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아야 합니다. 진보를 비판하는 세력들이 진보의 이러한 모습을 가리켜 반대를 위한 반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다면,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최소한의 성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진보 진영 내부 시스템이나 구조의 해결도 필요할 것 입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시절 운동권식의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구성원들간의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의견수렴 과정과 문제해결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성추행 사건 역시 그러한 권위주의적인 의사결정 구조에서 비롯된 산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집회나 가투시 주최측은 틀에 박히고 정형화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서 시민의 창의성과 참여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시민단체나 주최측이 시민들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든지, 혹은 주최측이나 운영진의 이념이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 한다거나 계몽을 하려고 하는 등의 자세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집회를 주도하는 시민단체들은 시민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요구하는지에 대해서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고, 민주적인 태도로 그것을 수렴해야 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집회의 자리를 제공하고 때로는 행사를 진행했다는 이유 만으로 경찰에 연행되거나 구속되는 시민단체 분들의 노고와 헌신에 대해서는 일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높이 평가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보 세력이 나름대로 그동안 한국 사회의 민주화, 그리고 정책형성과 의제설정에 기여한 바는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 진보진영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비판 역시 MB 정권 1주년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진보 세력이 충분히 활동할 수 잇는 여건과 마당이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은 커녕 오히려 정체되거나 퇴보하고 있지는 않는가 매우 염려되고 걱정됩니다. 이러한 저의 진보세력에 대한 비판과 쓴소리가 단순히 진보 진영을 질타하거나 위축되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보세력과 정당, 시민단체, 촛불 그리고 각종 NGO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으며,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혹시 주제넘은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널리 이해하고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길고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MB 정부의 지난 1년간의 실정(失政)을 비판하는 일이 분명히 필요한 건 맞습니다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진보세력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뒤따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모순이고 위선입니다. 지금의 지리멸렬한 상태로는 진보세력이 아무 것도 성사할 수 없습니다. 진보 세력이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