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 월요복생모임을 하였습니다.
복음과 생명으로 교제하는 작은 영생의 공동체,
이 귀한 모임을 이루어내신 성령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과 생명의 교제를 함으로 늘 깨어 있는 지체들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자격 없는 자,
아들의 이름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오니
영생의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한결같이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25. 그들이 처음으로 거기 거주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시매 몇 사람을 죽인지라
26.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주하게 하신 민족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매 그들을 죽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니라
27. 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 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하니
28. 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더라
29.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30.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31.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으며
32.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본문 주해)
24절 : 남 유다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같이 취급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낼 수 있다.
앗수르 왕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사로잡아 가서 흩어버린 것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 피가 섞여버린 사마리아가 되며 종교도 혼합되어 버린다. 피와 종교가 다 혼합되어 버린 것이다.
25~28절 : 그들이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면서 처음에는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사자들이 나타나서 그들을 물어 죽이는 사건이 일어난다.(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이주하여 온 이민족들은 자신들이 그 땅의 신의 법을 알지 못하였기에 사자가 나타나서 자기들을 죽였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앗수르 왕에게 보고를 한다. 앗수르 왕은 자기가 사로잡아온 자 중에 제사장을 찾아내어 한 사람을 보내어 그 땅의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고 한다. 그래서 제사장 중에 한 사람이 돌아와서 벧엘에 살며 그 거주민들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하는지를 가르쳤다.
돌아온 제사장이 사마리아가 아닌 벧엘에 거주한 것은, 벧엘 신전이 건재했다는 뜻이다. 곧 여로보암이 제정한 유사 신앙은 사마리아가 멸망한 후에도 힘을 떨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북이스라엘 제사장(여로보암이 세운 제사장)은 애초에 아론 계열의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었다. 이런 제사장이 와서 여호와 경외하기를 가르쳐 주었다는 것은, 제사 지내는 방법 정도를 알려주었을 것이다. 그들이 사마리아에 와서 여호와 경외하기를 가르친다고 했지만 절대로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는 것이다. 안 가르친 것이 아니라, 못 가르치는 것이다.
29~33절 : 이주민들은 자기들의 신을 섬기면서 여호와를 공경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 가운데서 산당 제사장을 뽑아 세워,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여호와도 경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잡혀 오기 전에 살던 그 지역의 관습을 따라, 그들 자신이 섬기던 신도 섬겼다.
그 결과, 혼합 신앙이 만연하게 되었다.
(나의 묵상)
북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미운 짓만 하다가 망해버렸다.
그런데 그 땅에 혼합주의 신앙이 번성하게 된다.
복음을 알기 전 나의 신앙이야말로 혼합 신앙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는 돈, 명예, 권력 등을 나도 사랑하였기에 그것을 더 많이 받기 위해 하나님을 불렀던 것이다.
내 마음에는 돈과 하나님이 공존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돈은 사랑했고, 하나님은 이용하였던 것이다.(이용당하시지도 않지만)
그런 내게 주님께서 복음을 듣게 하셨다.
30여 년의 혼합주의 종교생활에서 참된 신앙생활로 돌이키게 된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죽이 되든 밥이 되든(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말씀 묵상이란 것을 시작했다.
그전부터 해 오던 큐티는 말씀의 내용을 나의 상황과 감정으로 이해하고, 그 결과 새로운 결심과 결단으로 주먹을 불끈 쥔 것이라면, 말씀 묵상은 나의 상황이나 감정이 어떠하든지 간에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찾고 십자가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천지 아는 것이 없는 존재인지라 여러 주해를 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이끄심이었다.
때로는 오해하며, 때로는 자기중심으로 말씀을 보는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지만, 신실하신 성령님께서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한결같이 인도해 주시니 신구약 모든 말씀이 증거 하는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도 신나고 행복한 일이 된다.
나는 신나고 행복하다고 표현했지만, 그 시간은 성령께서 내 영혼을 소성시키는 시간이었다.
“그리스도인이 혼합신앙에서 오직 주를 섬기는 참된 신앙으로 옮겨지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오직 복음이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통해 생명을 알고 누릴 때 유사 신앙과 혼합신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복음을 통해 생명을 살고 누리는 요체는 생명의 교제이다. 생명의 교제를 통해 아버지 집에 거하는 참된 신앙은 시대가 주는 유사 신앙과 혼합신앙을 돌파하게 한다.”---서형섭 목사님 묵상 중에서
이제 올챙이 시절을 벗어난 개구리가 되어 올챙이 혼합신앙의 시절을 돌이켜본다.
그 시절 동안도 주님을 나를 지켜보아 주셨음을 느낀다.
지난 주 열렸던 여름 어린이 성경학교의 내용을 보면서(마지막 시간-어린이 부흥회-에만 참여하였다.) ‘아, 갈 길이 참 멀구나’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혼합신앙으로 배우고 있으니, 이것을 어찌할까?.....이 어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생명의 교제를, 그리고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에 대해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어린이뿐이랴, 중고등부와 청년회도 마찬가지이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가진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예진이가 이틀에 걸친 여름 성경학교를 통해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을 배우고, 기도한답시고 두 손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니 너무도 감사한 일인 것이다.
찬송가 부르는 것이 기쁘다고 하고, 목사님 이름을 외워서 그분이 좋다고(나는 좀 마땅치 않았지만) 하니 작은 빛을 보는 느낌이다.
30여 년 나의 혼합신앙의 시절이 있었지만 주님께서 내게 빛으로 찾아와 주셨다. 내가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게구리가 되어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며, 주님께서 그 은혜를 우리 어린 생명들에게도 부어주실 것을 기대한다.
그러고 보니 사자를 보내어 사람을 죽이게 하심으로 이방사람들로 하여금 혼합적으로나마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신 것도 잠잠이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말을 안 들었는데, 사마리아 지역으로 이주해 온 이방 사람들이 여호와 신앙을 배우면 얼마나 배울까?....그것도 정통 레위 계열의 제사장도 아닌,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금송아지를 섬겼던 제사장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말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의 땅에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신앙의 길로 가는 은혜를 차단하지 않으신 것이다.
나는 답답하고 조급증이 나지만,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창세전 약속을 이루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생각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 예수님을 생각한다.
내 힘으로 절대로 살 수 없는 십자가의 길을 따르게 하시는 성령님을 생각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지금 비록 혼합신앙에 빠져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때에 자기 백성을 구하여 주실 것을 믿는다.
내가 바로 그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직 주님께 연합되는 삶의 증인으로서 복음과 생명의 교제를 전한다.
(묵상 기도)
주님,
혼합신앙은 참으로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절망의 존재가 소망의 존재가 됩니다.
주님의 신실하신 일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참된 신앙의 길로 옮겨 주십니다.
제게 베푸신 그 은혜를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도 부어 주옵소서.
답답한 마음을 간절한 소망이 되게 하시어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