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0일 묵상 본문 : 열왕기하 17장 24절 - 33절 - 복음의 진리를 따라 자기부인과 죽음으로 생명의 자리로 나아가는 참 믿음의 백성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이어지는 무더위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루의 삶도 주의 은혜로 붙드시고 생명을 누리는 자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주님 앞에 서기를 힘쓰지만 많은 시간을 주님이 아닌 땅을 보며 살아갑니다.
세상을 향한 마음이 주를 향한 마음으로 변하게 하시고 주와 교제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은혜로 붙드시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25 그들이 처음으로 거기 거주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시매 몇 사람을 죽인지라
26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께서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옮겨 거주하게 하신 민족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신이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매 그들을 죽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니라
27 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하니
28 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더라
29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30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
31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으며
32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
3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 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본문 해설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각 이방 지역으로 끌고 간 후에 사마리아 지역에는 바벨론과 구다, 아와, 하맛,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이 거주하도록 이주시킨다.
이러한 정책은 민족의 정체성을 없애고 힘을 결집할 수 있는 구심점을 분산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디글랏 빌레셀 왕이 처음 시작했으며 본문의 사건은 에살핫돈 왕이 주도한 일이었다.
여러 민족들이 그곳에 거주하자 사람들은 각자의 신들을 섬기면서 사마리아가 우상의 전시장처럼 되어 버렸고 이에 하나님은 사자(lion)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하게 하신다.
이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임을 알리시기 위함이었으며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신앙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이에 어떤 사람이 앗수르 왕에게 사마리아 성읍에 거주하는 민족들이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여 그들의 신이 사자를 보내 사람들을 죽였다고 보고하게 된다.
이는 고대 근동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있다고 해도 다른 지역에 이주하면 그 지역을 관할하는 신도 섬겨야 재앙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지역신 개념).
이에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에서 잡아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곳에 데려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가르치도록 명령하였고 이에 한 제사장이 벧엘에 살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가르치게 된다.
벧엘에 거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가르친 제사장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긴 것이 아니라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와 우상숭배에 관련된 제사를 집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각 민족은 자기 신상들을 만들어 사라미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에 두게 만들었고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으며 굿 사람들은 네르갈,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다.
또한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 스발와임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을 불살라 그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고 또 자기 사람들 중에 제사장을 택하여 산당에서 제사하게 했다.
숙곳브놋은 암탉을, 네르갈은 사자, 아시마는 폭풍을 상징하는 우상물을 의미하며 각 지역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상을 만들어 섬겼고 자기들이 세운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함으로써 사마리아가 종교 혼합주의의 산실이 되어버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사마리아는 여호와도 경외하고 민족의 신들도 섬기는 모습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나의 묵상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자 앗수르의 엣살핫돈 왕은 이주민 정책을 실행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은 각 이방지역의 포로로 잡아가게 하고 사마리아에는 이방 민족이 살게 만든다.
식민지의 나라가 다시 힘을 모아 독립하려고 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구심점을 없애 버리는 정책을 실행한 것이었으며 이에 사마리아에는 각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와 살게 된다.
하나님에 대해 전혀 무지한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와서 살았기에 그들은 각자가 섬기는 신의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모습이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물어 죽게 만들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도 섬기는 모습을 가지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진정한 신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기도 하셨지만 인생의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알기보다 자기들의 신을 섬기는 일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사마리아에서 잡아온 제사장 한 명을 사마리아로 보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르치게 했다.
그러나 그 제사장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제사장이 아니라 여로보암이 만든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으로써 이방의 민족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그 결과는 사마리아가 온통 우상들로 채워진 도시가 되었으며 종교 쇼핑몰이 된 것처럼 각 민족의 우상들이 판을 치고 타락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의 길을 가게 된 북이스라엘의 모습, 사마리아 사람들의 모습은 철저하게 무너지고 하나님마저 잃어버리는 결과를 얻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전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게 된 때가 있었는데 그때 예루살렘 성전에는 이슬람, 그리스정교회, 유대교 등 예루살렘을 성전으로 삼는 각 종교에서 향을 피우며 집례하는 모습을 보았었다.
과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던 예루살렘 성전은 각종 종교의 집합지가 되어 자기들의 방식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본문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 것이다.
보이는 하나님, 성전을 중요시 여기는 모든 세상 종교의 가치관은 결국 분쟁과 분열, 갈등과 전쟁으로 인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멸망으로 향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생의 어리석음은 죄악을 반복하는 것에 있으며 본문의 상황도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보여주며 오늘날 예루살렘의 실정도 하나님의 심판에 불과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알려고 하지 않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땅의 것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땅의 것으로 만족을 삼고 행하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도록 변질되고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무너뜨리시는 분으로 등장하게 만든다.
그 모습이 재림 때의 모습이 되며 세상의 모든 것은 무너지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을 가진 자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서게 됨을 보여준다.
오늘날 땅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바로 재물일 것이다.
사람들의 모든 종교적 행위도 결국 물질의 풍부함을 위한 것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땅의 것과 하늘의 것을 동시에 섬길 수 없음을 말씀하시면서 참 성도는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 하나님만 바라보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셨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
땅의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늘의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은 오직 주와 교제하여 하늘의 기쁨을 맛보고 참 된 것에 대해 눈을 뜬 자가 가지는 태도이다.
오늘도 주의 말씀은 땅의 것에 마음을 두고 사는 자의 결말을 선명하게 보여주신다.
특별히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벧엘과 단에 우상을 만들고 또한 각자의 성읍에 산당을 만들어 하나님을 섬기려던 모습은 이방우상의 근거지가 됨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심판은 자기가 세운 기준과 자기의 욕심을 통해 나타나게 됨을 보여주며 자기 욕심의 근원이 죄와 허물을 쌓고 심판에 이르게 만드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부인과 십자가에 연합되는 죽음의 과정이 없이는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4~27)
오늘도 복음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는 자리, 그리고 생명을 얻고 누리는 자리에 서는 자가 되길 소망하며 복음의 은혜를 베푸시는 주의 사랑에 감사하는 자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말씀 앞에 인생의 어리석음과 자기만족을 위한 결말이 우상숭배임을 발견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였다고 할지라도 자기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모든 믿음의 행위가 우상숭배로 이어짐을 고백합니다.
저의 모습도 이러한 어리석음의 과정을 거쳤음을 고백하며 주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어리석은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주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이스라엘의 산당이 우상숭배의 근거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결과임을 봅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복음을 통해 주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사람의 생각과 가르침이 아닌 복음을 통해 생명의 길에 서게 하시고 그 길에 서기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연합되어 죽음에 이르게 하시며 다시 살리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이 복음의 능력을 더 깊이 알아가고 주와 함께 사는 기쁨을 누리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주의 지체들도 이 은혜를 날마다 누리게 하시고 복음의 능력을 선포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