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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과 죄를 사하는 권세
https://youtu.be/M8r6PxrYPDI?si=5vX8UnMFcRbFMc6U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과 죄를 사하는 권세
말 씀: 누가복음 5:17~26 (막2:1~12, 마9:1~6)
부 르 심:갈라디아서 2:20
찬 송:144(144),266(200),288(204),421(210)
기 도:
1)합력하는 믿음의 병고침 기도가 되게 하소서
2)예수님의 죄 사함과 병고침이 되게 하소서
3) 오늘날 우리가 기인한 일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게 하소서
4)예수 한국, 복음통일, 주사파척결, 죄 사함과 병고침, 200석
예수께서 수일 후에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병을 고치는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습니다.
무리 때문에 들어갈 길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네 명의 사람들은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리었습니다.
예수께서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누가복음5:20)”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의논하여 예수님을 비판하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눅5:21)”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셨습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누가복음5:23)”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눅5:24)
중풍병자가 예수님의 명령에 곧 일어나 그 누웠던 침상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rh
오늘날 우리가 이 기이한 일을 볼 수 있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중풍병자와 네 명의 친구들
한 중풍병자의 병이 심하여 스스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중풍병자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네 명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네 친구들은 어떻게 하든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네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들여놓고자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1>포기할 수 없는 중풍병자의 친구들
네 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네 명의 친구들은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내리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남을 위한 헌신과 수고가 없습니다.
자기 일이 아니면 도무지 나서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 준다는게 귀찮게 생각합니다.
심하게 병든 모습의 딱한 사정을 보고도 못본척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수님에게 향한 사람은 “예수님의 병고침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병원에 가도 병을 고칠 수 없고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고
재활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는 자라도 예수님만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에게 데려가고자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 지혜를 얻읍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는 자가 되어 적극적인 전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적극적인 전도는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만성고질병도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돕고자 하는 마음이 되어야겠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 빌립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께서 빌립에게“나를 좇으라”하시니 빌립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말하였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요1:45)”
그러나 나다나엘은 빌립의 전도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요한복음1:46)”
빌립은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시시하게 보더라도
일단은 그를 데리고 예수님에게 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계신 예수님 앞에 데려가면 생명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전도를 받아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에게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
내가 돕고자 하는 자를 볼 때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도
예수께서 보게 하심으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병들고 형편 없어 보여도 예수님에게 데려가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되어 처음 거듭난 것보다
더 큰 일을 보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1:51)”
포기하지 않은 전도와 기도와 수고는 그 열매를 반드시 거두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않음으로 예수 앞에 나아가고 나아가게 하는 믿음으로
선을 좇아 행하는 일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6:9)”
2>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라(로마서8:28)”
사랑하는 여러분, 한 사람이 믿음으로 수고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믿음의 수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말씀에 한 중풍병자가 예수님에게 병고침을 받기 위하여 힘쓴 네 사람이 있습니다.
대게 사람의 병이 심하면 스스로 기도할 힘도 없고
스스로 일어날 힘도 없고 말할 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 사람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성령의 감동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감동하게 한 것은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어
지붕을 뜯고 병자를 예수님 앞에 내린 네 명의 사람들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룸으로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지체가 되어 모이기를 힘쓰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돕는 성령의 감동하심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로마서8:26~27)”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합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육체의 강건함을 주심을 믿습니다.
합력하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주님께 나아가는 믿음을 보게 하십시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와서 지붕을 뜯어서라도
기어이 예수님 앞에 메어 내리는 저희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한 사람의 믿음도 보시지만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품는 여러 사람의 믿음도 보고계십니다.
오늘 모인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선한 일을 행하여
예수님의 죄사함과 병고침이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예수님의 죄사함과 병고침
믿지 않은 자들이 병들면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습니다.
육체의 병고침이 일어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나아오는 믿음은 영혼의 죄사함과 육체의 병고침의
전인적인 구원이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믿지 않은 자들은 병이 나아도 영혼의 죄와 육체의 썩을 몸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되는 병고침으로 영혼이 구원받는
죄사함과 육체의 건강함을 얻기를 바랍니다.
1>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질문하는 어리석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누가복음5: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아무리 오래동안 의논하여도
그들은 항상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참람한 말로 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심은 모든 권세와 권능입니다.
죄를 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를 사하여 주실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땅에서 죄를 사하실 권세가 있음을 믿읍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나타내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1:18)”
사람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이 공중재림하심으로
공중에서 우리에게 보이심을 믿습니다.
2> 죄 사함과 병고침
사랑하는 여러분, 믿지 않은 자들은 영혼의 죄사함이 없습니다.
영혼의 죄사함은 영원히 병들지 않은 신령한 몸의 영원한 건강함이 될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죄사함과 병고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와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누가복음5:23)”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두 가지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은
다신교와 이단종교에는 죄사함도 어렵고 믿음으로 병고침도 어렵습니다.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과 병고침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으로 믿음을 보시고 죄사함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도 쉽고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말도 쉽습니다.
예수님은 네 명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누가복음5:20)”
예수님은 또한 땅의 권세를 가지고 얼마든지 “일어나 걸어가라”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누가복음5:24~25)”
중풍병자가 자기 집에 나올 때에는 침상에 메어 나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죄 사함을 받고
병고침으로 일어나 걸어서 집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으로
죄 사함도 받고 병고침으로 일어나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누가복음5:26)”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는 살아있는 체험의 종교라 말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는 죽은 종교입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는 죽어 무덤이 있습니다.
무덤에서 살아나지 못함으로 죽은 종교입니다.
유교는 공자가 죽음으로 살아나지 못함으로 죽은 종교입니다.
이슬람교의 마호메트는 죽음으로 살아나지 못한 죽은 종교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는
살아있는 기적의 체험을 가진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 가운데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과 병고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의 죄와
저주와 질병을 다 십자가에 못밖게 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53:5)”
내가 그리스도와 함게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믿읍시다.
그리하면 죄 사함이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도 내 몸에 있음을 믿읍시다.
그리하면 내 썩어질 몸이 예수님의 공중재림 때 주의 음성을 들어
신령한 몸으로 부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내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4:10)”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지금 있는 일의 교회시대에 믿음으로
예수님에게 나아감으로 “우리가 죄 사함과 병고침의 기이한 일을 보았다”고 하는
증거하는 체험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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