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7월이 지나갑니다.
어제는 예진이와 영선마루 책방에 들러 책을 읽고 왔습니다.
잠잠히 주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곳입니다.
그곳을 드나드는 많은 어린 영혼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오늘은 예진이랑 스파밸리 갑니다.
옛날에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다녔었는데, 할머니가 되어 손녀와 동행합니다.
문득, 손주들의 즐거움을 위해 체력과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고 늘 웃으며 동행했던 나의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마른 수건과 부채를 가지고 물놀이 하는 아이들이 쉬러 잠시 잠시 돌아오면 반기고 또 반기셨던 어머니였는데 이제 제가 그 할미가 되었습니다.
육신의 정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을 다 쏟아부을 때, 예수님이 풍성하게 전해지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34.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35. 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
36.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그를 예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37. 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며
38. 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고
39.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
40.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느니라
41. 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
(본문 주해)
34절 : ‘그들’이란 사마리아에 살게 된 이주민을 말한다.
남유다가 사마리아를 개처럼 취급하여 상종하지 않게 된 이유를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사마리아는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신도 섬기는 혼합종교의 근거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옛 관습을 따르고 있어서, 주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하신, 그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34절, 새번역)
이주민들이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할 수 있었겠는가?
여로보암의 죄를 따른 제사장이 그들에게 가르친 것은 여호와 경외의 본질을 가르친 것이 아니다. 즉 믿음이 아니라, 예법과 의식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고집하면서 거기에 여호와라는 신을 하나 추가하였을 뿐이었다.
35~40절 : 여호와 하나님께서 출애굽 후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상기하는 내용이다.
이 내용의 핵심은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는 것이다.
41절 : 34절과 비슷한 내용을 다시 한번 반복한다.
“그리하여 이주해 온 민족들은 한편으로는 주님을 경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을 또한 섬겼다. 그들의 자녀와 자손도 그들의 조상이 한 것을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41절, 새번역)
(나의 묵상)
한때 종교의 화합이라며, 서로 강단을 교류하고, 특별한 절기-성탄절이나 사월초파일-가 되면 서로 축하 메시지를 주고 받은 때가 있었다.(요새도 그런지 잘 모르겠다.)
수년 전에 내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자기 교회 앞에 절에서 만들어주는 성탄트리를 세울까 말까 고민하였고, 자기가 답례로 트리 세워 준 절에 가서 설교할까 말까를 진심으로 고민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전도 차원’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절에 가서 예수님을 선포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그의 성향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복음을 몰랐었는데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목사에 대해 진짜 목사가 맞는지 의심했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의 취지는 대개 그렇게 넓은 마음으로 타종교를 이해하자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뭘 이해한다는 말인가? 이해해서 어쩌려고?)
그러나 그것은 자기자랑과 자기의가 가득한 마음이라는 것은 너무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복음을 알지도 못했지만, ‘이것은 아니다’ 싶어 적극 반대하고 말렸다. 결국 불발로 끝나고, 그는 아쉬워했지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 적이 있었다.
종교의 화합(?)을 이뤄내지 못하는 기독교를 이기적인 종교라고 세상 사람들은 욕하고 외면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비판이 두려워 다른 종교와 ‘손에 손잡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만을 경외하라는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는 불신의 죄인 것이다.
이도 섬기고 저도 섬기는 혼합종교는 오직 자기사랑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요, 자신이 신이 되어 있다는 증거이니 우상을 섬기는 죄로 연결된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는 ‘손에 손 잡고’가 되는 땅이 되고 말았다.
34절과 41절의 ‘오늘까지’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오늘까지로 이어지고 있다.
교회를 다녀도 그 마음은 혼합되어 있는 자가 많다.
자기를 잘 되게 해 줄 것을 믿고 하나님을 믿었는데 아무 반응이 없으니, 이내 다른 곳을 흘낏거리며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다.
어느 목사님이 이런 혼합종교를 ‘모듬 초밥’에 비유한 글을 읽었다.
인간들의 공통 욕망인 ‘행복한 삶’이라는 밥이 있고, 그 위에 이런저런 종류의 재료가 얹혀짐으로 초밥의 이름이 정해지고(종교가 정해지고), 이 초밥들을 한 접시에 모아 모듬 초밥이라고 우리에게 차려서 쑥 내밀어 주는 자가 바로 사탄이라는 내용이었다.
초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비유가 좀 싫기도 하겠지만, 내게는 어필이 된다.
그러나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세상에서, 학교에서 쉽게 그렇게 분류되어 이해하지만,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진리이다.
그러니 타협할 수가 없고, 혼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할 뿐이다.
어떤 하나님이신가?
시시하게 내 소원이나 들어 주는 하나님이 아니다.
영원 전 내게 영생을 약속하신 하나님,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를 대속하셔서나로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내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십자가로 달려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다.
이 삼위 하나님을 내가 믿으니 어찌 다른 것을 섬기며 혼합될 수 있을까?
이는 나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이 진리의 길을 가는 동안, 내 영혼에 혼합된 사마리아가 세워지려 할 때마다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 분별력과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까지
제 안에 혼합된 사마리아가 세워지고 또 스러지고를 반복합니다.
휘청거리지만 아주 넘어지지 않도록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십자가로 더 힘 있게 달려갈 수 있도록 연약한 무릎을 세워 주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