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왔다. (쿠샨왕조가 아유타국을 멸망시킴으로서 도망왔다.)
2. 왜국(일본)에서 왔다. (일본과의 왕래가 잦았다.)
3. 중국에서 상인으로 왔다.
저는 일본에서 왔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가야와 일본은 왕래가 빈번하였고 가야의 문화도 많이 전파되었고, 그리고 가야과 일본이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한 적도 있고, 그리고 가야에서 철기가 고도로 발달하여 멀리까지 철을 수출였는데 섬나라인 일본의 해양기술과 선박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견해가 있던데 어떤게 사실인지 많은 답변 부탁합니다.
그러나 인도의 경우도 한반도까지 올 항해술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김수로왕 사후에도 계속해서 허황옥집안과 통혼이 되었다는데 그 이유는 허황옥 집안의 권력이 계속해서 유지됐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유티아의 경우 쿠샨왕조에게 멸망당하고 중국 사천성이나 태국으로 도망한후 가야에 들어왔다는 설을보면
인도, 중국, 태국에 이어 근래에는 낙랑 전래설까지 나오고 있던데요...여러가지 정황이 장유화상과 파사석탑, 쌍어문 등으로 아직까지는 인도 전래설이 유력한듯 합니다..특히 장유화상과 석탑의 경우는 불교의 남방 전래설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 흥미있는 부분일 듯합니다..
첫댓글 일본의 해양기술과 선박이 그때 당시 우리나라보다 뛰어났을까요? 일본은 그때 나라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를 무작정 받아들일 때였습니다. 저는 인도설을 지지합니다.
저두 인도설을 지지합니다. 근데말이죠.. 인도에서 우리나라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요?
그러나 인도의 경우도 한반도까지 올 항해술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김수로왕 사후에도 계속해서 허황옥집안과 통혼이 되었다는데 그 이유는 허황옥 집안의 권력이 계속해서 유지됐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유티아의 경우 쿠샨왕조에게 멸망당하고 중국 사천성이나 태국으로 도망한후 가야에 들어왔다는 설을보면
계속적인 통혼은 불가능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1번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추가--한반도 남부지방으로 이주한 예맥인들과 남부의 토착세력과 결혼동맹을 통해 나라를 세웠다는 설도 있습니다.. 도데체 어느나라 사람인지...^^
저는 한양대 김병모 교수의 의견을 지지합니다. 월간조선 2004년 ?월부터 10월까지? 연재? 즉, 중국을 통해서 왔다는 설인데 홍정호님의 첫 번째 의견인 듯싶습니다.
화학이 좋아님의 말씀은 인도 아유디아에서 중국 사천성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는 말씀이시군요...
인도, 중국, 태국에 이어 근래에는 낙랑 전래설까지 나오고 있던데요...여러가지 정황이 장유화상과 파사석탑, 쌍어문 등으로 아직까지는 인도 전래설이 유력한듯 합니다..특히 장유화상과 석탑의 경우는 불교의 남방 전래설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 흥미있는 부분일 듯합니다..
아유타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가야의 입김 쎈 우두머리집단이 아닐까 하는데요..;; 지속적으로 왕비가 그쪽에서 나온것도 그렇고.. 단순히 이민세력이나 건너온세력으로서 저정도 위치를 가진다는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그러고보니 아유타국과긴밀한 관계를 맺고있는 가야의 우두머리집단..에서도 오점이 난무하는군요..ㅡ.ㅡ;; 그냥 헛소리~정도로 생각해주시면;;;;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