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브리티시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의 활입니다.
올린상태의 길이가 약 107센티, 지금의 각궁보다 좀 작고 온통 심으로 보이는 끈으로 감겨있고, 검은 옻칠이 되어있습니다.
턱이진 양냥고자는 후기 평균 사이즈 군용활들의 전형적인 형태.
1910년 일본인을 통해 이 박물관으로 유입되었다합니다.
이렇게 심을 감고서 검은 옻칠을 한 형태의 활을 어디서 더 본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바로, 운양호사건 때 일본에 빼앗겨 야스꾸니 신사에 갇혀있는(?) 조선의 군용활.. 그리고 Grayson박사 콜렉션 중의 한 놈이 똑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야스꾸니 소재 조선군궁 뉴스 이미지펌
그레이슨박사 컬렉션 이미지 펌
통상, 각이 나가거나 심이 트면 그 부분을 보강하기는 하나, 이렇듯 전체를 심으로 감고서 흑칠을 입힌 활이 속속 확인된다는 것은 이 활이 조선의 활로서 하나의 카테고리를 형성한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그 정체가 바로 [간각칠궁] ? !
19세기초 만들어진 {융원필비}라는 책에 등장하는 조선활의 이름입니다.
연세대학교 박물관 제공 융원필비 부분 이미지
이 책은 순조임금(1813년) 때에 훈련도감에서 발행하였는데, 화기등의 설명과 함께 [간각칠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래의 활 몸체에) 대나무를 덧댄게 있고, (어린)간각이라는 쪼가리뿔을 덧댄게 있다는 설명과
씁쓸하긴 하지만, [무경(사학정종)]의 검은 옻칠을 한 칠궁을 모방하였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레이슨 박사 소장 뻐드렁 활은 대나무를 덧댄 것이고, 야스꾸니의 활은 간각을 덧댄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어쩃든, 조선활도 현이 얹혀진 상태로 백년을 견디는 내구성을 가졌다는게 대단하지 않나요?
첫댓글 중국의 선례가 있어 따라 만들었다 한들 씁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완전한 발명이란 정말 드문 것이고 좋은 제도가 있으면 서로 주고 받는 것이 바로 문화니까요. 활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무기였기에 기록에는 어떻게 하면 좋은 활을 값싸게 만들고 잘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기록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임금이 직접 실험을 하고 지시하는 예도 많이 발견되죠. 그런 측면에서 우리 활은 극진한 대접과 함께 나름 잘 발달해온 케이스라고 봅니다.
각궁의 취약점인 습기에 약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으로 감고 칠을 해서 방수성을 획득한 것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각각의 재료들이 숨을 쉬지 못해 활을 해친다하여 원래는 칠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글도 본 기억이 있는데, 이렇게 전체를 칠한 활은 악조건에서도 사용해야하는 전투용 활에 국한되어 있죠.
전투용 동궁(붉은 옻칠을 한 활)과 노궁(검은 옻칠을 한 활) 중에서 노궁이 일반적인 궁병들의 활이엿던 듯,,,
심으로 전체를 감고 옻칠을 하였다는 것인가요,아니면 각과 심을 붙이고 실로 감고 옻칠을 했다는 것인가요..?
이 실물 유물들은 공히 심이나 실로 활 전체를 감고 그 위에 칠을 올린 것입니다.
심만감고 옻칠을 한 것인지, 아니면 심을 대고 실로 감아서 옻칠을 한것인지, 사진자료를 확대해서 확실하게 보면 알 수있을 듯 한데 아쉽네요^^
@악돌이(장영민) 사진이 작긴 합니다만 유심히 살펴본 결과 심을 감고 칠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감아놓은 재료의 결 폭이 들쭉날죽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심을 감은 것 같습니다.
@김세랑72 제 눈에는 실로 감은듯 보이는데(제 바램 일런지^^) 김작가가 그렇다하니 심에다 옻칠을 한 것으로 이해 하겠읍니다..어찌보면 실로 감고 옻칠 하는것 보다 더 튼튼하겠다 싶네요^^ 작년 민족궁대회때 불가리아 선수의 활을 보면 심으로 감고 아무것도 덧칠이나 화피 같은것을 붙이지 않은 활을 보았지요,
우리는 습기가 많은 기후다 보니 심을 감고 옻칠을 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런데 책에는 전투용 활은 6재로써 실로 감고 옻칠을 한다고 했을까요?
@악돌이(장영민) ㅎㅎ 그냥 제 눈에는 심을 감은 것으로 보인다고요^^ 기존에 알려져 있기로는 명주실이나 심을 감는다고 되어 있죠. 실을 감으면 표면에 요철이 거의 없이 고른 표면이 될텐데 이건 표면이 다소 불규칙해보이고 사진상의 고자부분을 보면 심의 결이 불규칙하게 보여서(아교를 먹여 심을 펴발라가며 감은 것 처럼 보이는) 그렇게 판단한 것입니다.
@김세랑72 기존 각궁을 실로 감아서 옻칠을 하여 전투용 활(뻐드렁 활, 점화 없이 바로 얹어 사용)로 사용해본 바로는 실을 기계로 감는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일이 감는것이라 일정하게 나오질 않더군요, 제가 워낙 손재주가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정하게 감기가 정말 어렵더라구요^^ 하여 사진속 촘촘한 결같은 모양은 제 생각으로는 실로 감은 듯 보여서 말입니다.^^
왜냐하면 심으로 감았다고 한다면 심을 어교칠(민어부레풀)을 하여 바를때 심의 두께가 일정하게 나오질 않는다는것이지요, 일단 심의 길이가 짧다는것이 문제이고 이어 붙이다 보면 두께나 폭이 일정하지 않을것이라는 거지요..
@악돌이(장영민) 실 같아 보이는데 사진 설명에는 심이라고 적혀있네요. 당시에 실로도 했을 듯 합니다. 감기 편하니까요. 오금폭이 역시 38mm로 넓네요.
브리티시 박물관의 검은놈은 vegetable 식물성 끈으로 감은것으로 적고 있고(무지의 소치), 그레이슨 컬렉션의 검은 놈은 심(sinew)을 놓은 위에 더해 심으로 감은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브리티시 박물관 검은놈의 고자닢에 무력심을 감아놓은 이미지입니다.
@마루치(서태식) 음... 심이 보이네요. 잘 봤습니다.
@마루치(서태식) 옛날에는 저렇게 많이 감았는데 요즘은 왜 조금만 감는거여...
재료 아낄려고 그랬남.그렇다면 우리네 전투용 활은 심으로 감고 옻칠 한것으로 봐야 겠네^^
앞으로 재현 하려면 오리지날 심으로 감고 칠해야 겠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어 고마우이 친구^^
활 배웁니다...
만듦새를 떠나 활을 모양새를 유심히 보니 요즘 기준으로 몇파운드가 나올지 궁금해지네요. 활 자체의 장력에다가 심을 감아 보강했으니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강궁이었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날 스포츠개념의 파운드 보다는 강하게 사용햇을 듯...
전투용 활이었다는것을 전제로 추정한다면 습사용의 활보다는 최소 두배정도 강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