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종묘상회
권현형
봄날의 종묘상회, 씨앗으로 묘목으로
꽃을 바라볼 때마다 흐느낌으로
어쩌면 신은 텅 비어 있거나 가득할 것이다
드로잉을 잘 할 수 있다면
나도 루이스 부르주아처럼
앞 건물이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즐겁게 나무를 거꾸로 그릴 것이다
강 건너 사제관을 지켜보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때의 나는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
4B 연필로 가느다랗게 감정의 떨림을 그리면서
무의식의 고랑에 상처투성이 배추처럼 들어앉아
건너편 산들의 거처를 그늘에서
볕을 바라보듯 편안하게 바라볼 것이다
깊이 빠져들지는 않고
바람이 거센 날에도 죄의식에 시달리지는 않고
신들의 맨발이 아름답게 움직일 때마다
약간 고통스러워하면서 설레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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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부르주아 : 화가.
—《시인세계》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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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형 / 1966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9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강릉대 영문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수료. 시집 『중독성 슬픔』『밥이나 먹자, 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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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종묘상회 / 권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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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0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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