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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진성이씨 불천위제사 (퍼온 글)
김영광 추천 0 조회 333 13.06.10 11:2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노송정 할뱀 불천위제사 참여기

 

프롤로그

 자녀들에게 우리의 좋은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서 17대 조인 노송정 할뱀의 불천위제사에 참여하고 전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장마철이고 또 휴일이 아니라 다음 날의 출근 때문에 다소 망설여졌지만 가기로 결정하였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감독을 마치니 오후 4시 10분 아직 퇴근 시간은 안 되었지만 몰래 퇴근을 서둘렀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5시 30분 출발. 날씨는 꾸무리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마석 휴게소에서 10분간 정차한 후 중앙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조금 가다가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서안동 톨게이트를 지나 안동에 도착하니 8시 30분. 원식이 할배에게 전화하니 전원이 꺼져있다. 버스는 끊긴 시간이다. 택시를 타고 온혜까지 가기로 했다. 택시비는 2만 3천원 미터기대로 받는다고 했다. 새벽에 나와야하기 때문에 명함을 달라고 하니 그 명함에는 모모 건설회사라고 적혀 있다 속칭 투잡인 모양이다. 안동의 경기가 죽을 지경이라고 엄살이다. 한참을 오면서 도청소재지가 옮겨온다는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벌써 집안끼리 돈 문제로 다툼이 벌어지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번에 도청이 들어오는 예천 호명면에 우리 백송파의 종중 임야가 30여 만평이 넘고 선몽대도 있고 하니 돈 문제로 무슨 일이 생길까 약간은 걱정도 앞선다. 하지만 설마 그런 일이야 생길라고...


●온혜에 도착하다

 온혜에 도착한 후 온혜초등학교 앞으로 해서 깜깜한 길을 걸었다.  9시 20분경 사위는 조용하고 우렁찬 개구리들의 합창소리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자연의 소리였고 비로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고향의 정겨운 반김이었다. 마을 앞을 지키는 큰  나무를 지나자, 노송 세 그루의 음영이 흐릿하게 보이고, 성림문 앞의 주차장에 높게 매단 외등은 10여 초 마다 점멸 하면서 외지에서 오는 후손을 반기는 듯 하였다.

노송정 대청마루 위에는 희원종손을 비롯하여 여러분들이 담소를 하고 계셨다. 종손어른께 큰 절을 올리니 먼 길 오느라 애 많이 썼다고 말씀하신다. 온고회 회장인 창교 씨와 부회장인 문교 할배도 보이고 백송에서 오신 한정 아재와 만교 할배가 반겨준다. 대종회에서는 사무국장님이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의성에서 와 계신다. 원시기 할배는 피곤한지 방에서 주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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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소하고 있는 제관들>


참여 인원은 유건과 도포를 입고 복장을 갖춘 분들이 20여분이고 기타 10여분 해서 모두 30여분이 참여하였다. 9시경부터 야화가 나오고 부엌에서는 종부님의 지휘 하에 제상 음식을 차리느라 분주했다. 창훈 형님과 종손 숙부께서도 바쁘게 움직이고, 유사를 맡은 한정아재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제상 위에 촛대를 비롯한 제구들을 놓고, 1차 진설 즉, 설 소과가 시작되었다. 온혜종가에서는 과일 줄의 진설을 흔히들 하는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로 하지 않는다.  어르신들의 말씀에 의하면, 시조할뱀과 송안군할뱀의 제사는 문중에서 주관한다고 한다. 아마 대종회에서 주관하는듯 하다.  두 제사는 조율이시이다. 그러나 온혜는 명백하게 다르다. 조동율서, 이동시서이다. 이러한 제사의 진설은 그대로 계승되어 온혜종, 상계종이나, 수졸당, 백송파 역시 마찬가지이다. 삼백당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상계종만 독특하게 권씨 할맴과 연관지어 중포를 쓰는 방법만 다를 뿐. 상계종의 지하인 하계는 중포가 아닌 변포- 좌포를 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펴낸 <종가의 제례와 음식>에서 많은 종가들의 진설을 보아왔지만 조동율서, 이동시서는 우리 온혜종 지하만의 독특한 진설법이다. 사계, 초려 등의 노론, 서계 등의 소론은 물론  점필제, 월성손씨 청주 한씨 등이나, 선생할뱀의 제자들인 학봉, 서애, 갈암의 종가에서 조차도 우리와는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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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정기를 쓰고 있는 경규씨>


늘 명절이나, 제사가 돌아오면 일가들이 모여앉아 진설법이 이게 맞느니, 저게 맞느니, 말이 많다. 오죽하면 “남의 제사에 밤 놔라 대추 놔라” 라는 속담이 생겼겠는가? 나 자신부터 정확하게 아는바 없으니 참으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이제 자녀들이 성장하여 결혼하면 남의 집에 가거나 우리 집에  며느리, 사위가 새로 들어 올 텐데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조상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느니, 형식보다는 정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알고 응용해야 할 것 아닌가? 자녀들에게 제대로 가르쳐 줄 의무감에 캠코드와 디카를 준비하고 아예 작심을 하고 출발한 불천위 제사였던 것이다.


그동안 궁금했던 사항 역시 몇 가지 모았다가 이번에 어르신들께 자세히 물어볼 요량이었다. 진설법을 물으면 흔히들 가가례라고만 이야기하고, 화수회에서 만난 몇 분에게 문의해 보았으나 제대로 답변을 듣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늘 같은 불천위 제사에는 옛 법도에 밝은 분들이 많이 오시니 그야말로 그 동안 쌓인 궁금증을 풀어줄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아아~ 어찌 이번의 어려운 발걸음이 헛되랴!

행소리의 한정 아재와 몇 가지 의문점을 이야기 하던 중 


“내가 작년에 선몽대에서 제사를 주관하는데

하도 여러 사람이 이런 말 저런 말이 많아서

시조할뱀 홀기, 송안군 할뱀 홀기, 그리고 온혜 홀기,

선몽대 홀기를 참고해서 <선몽대 회전 홀기>를 만들었네.

참고로 진설도하고 축문 등 을 포함해서“


야호! 이제 걱정은 한 시름 덜었다.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듯한 시원함을 느꼈다. 다음번에 시간을 내서 내려와 베껴 갈 예정이다. 이런 걸 두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나 보다.


제청의 준비

자정이 다가오면서 노송정의 대청마루에 제구를 설치한다. 정면 북벽에 대보잠이 적혀있는 12폭 병풍을 치고 중앙에 신위를 모실 교의를 놓고 그 앞에 제상을 설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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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진설인 ‘설소과’>


저녁에 모든 제관들이 종손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시도록을 보면서 적임자를 선정한다. 이날 시도록에 등재된 인원은 30여명이다. 아헌관은 대종회장을 지낸바 있는 일호씨가 맡고, 종헌관은 온고회 회장인 창교씨가 담당하게 되었다. 초헌관은 당연히 종손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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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정기>


축관과 홀(집례)는 예에 밝으신 분으로 한학에 밝으신 창경씨와 경규씨가 각각 선임되었다. 다른 기제사 때는 홀기 없이 지내는데 불천위 대제 때는 참사자 수도 많고, 의례의 격식을 엄숙하게 갖추기 위하여 홀기를 창홀하면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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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를 적은 시도록 - 원시기 할배와 필자의 이름이 보인다>


입제일 밤 자정이 지나면 진설을 시작한다. 진설은 제기와 제수를 갖추어 제상에 차리는 것을 말한다. 제관들은 모두 의관을 갖추고 제청에 도열해 선다. 항렬과 연세가 높고 도포차림에 유건으로 정장한 노장들은 대청마루에 올라서고 젊은 사람들과 평상복을 입은 제관은 제청의 뜨락과 마당에 늘어선다.

1차 진설로 ‘설소과’를 시작한다.

먼저, 과실을 맨 앞줄에 놓는다. 기본 4과 대추, 밤, 배, 감(곶감)을 조동율서, 이동시서의 배열로 양쪽에 벌려 놓는다. 그 사이에 왼쪽부터 참외, 수박, 사과를 놓는다.

그 뒷줄 왼쪽 끝에 포를 머리를 동쪽으로 하여 좌포로 놓는다. 그 다음 무나물, 콩나물, 시금치 등의 숙채를 차례로 진설한다. 그 다음 줄 왼쪽부터  머리를 동쪽으로 하여 조기를 놓고, 5탕을 진설한다. 그 다음 줄 제상의 중앙에 도적을 놓고 시접은 제상의 왼쪽 끝에, 잔반은 뒤쪽 가운데에 놓고 좌우에 메와 갱을 올린다. 오른쪽 끝에는 편틀을 놓는다.


본절차

○출주出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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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주를 모셔오는 종손 어른>


진설이 끝나면 조상을 모시기 위해 사당으로 가서 신주를 모셔오는 것을 출주라고 한다. 집사가 앞에서 촛불을 밝히고 종손과 축관 및 집사들이 사당으로 간다. 집사들은 감실의 문을 열고 주독에서 고위의 신주를 모셔내어 따로 준비되어 있는 공독에 넣어 모시고 중문으로 나와 제청의 교의 위에 모신다.  제청의 모든 참제자들은 두 손을 앞에 모아 읍을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신위를 맞이한다.

 기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의 기일에 지내는 제사이기 때문에『가례』를 비롯한 예서에서는 기일에 해당하는 신위만을 제사지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인정상 배위도 함께 모시고 합설로 지내는 것이 관례로 되어왔다. 퇴계할뱀 생존 시에도 큰집에서 합설로 제사를 지냈는데, “이는 바른 예가 아니므로 내가 죽으면 단설로 지내라.”고 유언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확인한 바에 의하면 온혜는 단설로 지낸다.


참신參神

신주를 교의에 모시고 나서 후손들이 조상을 맞이하는 의식으로 참사자 모두 함께 두 번 절한다. 신주에는 조상의 신이 깃들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참신 재배함으로써 선조의 기일에 조상신과 자손간의 해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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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신 재배하는 제관들>


강신降神

강신은 신을 강림케 하는 의식이다.

종손은 신위전에 나아가 분향하고 좌우 집사로부터 강신술을 받아 모사에 붓고 두 번 절한다.


진찬進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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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진설인 진찬을 하는 집사들>


강신례가 끝나면 진찬을 한다. 조상신이 강림하였으므로 더운 음식을 올리는 2차 진설 절차이다. 도적을 제상의 중앙3열에 올리고 그 옆으로 탕을 올린다. 맨 뒷줄 잔반의 좌우에 메와 국을 놓고, 오른쪽 가장자리에 편틀을 놓고 피봉을 벗긴다.


초헌初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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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헌관의 헌작에 이어 독축을 하는 축관>


초헌은 신에게 첫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으로 헌작, 독축, 재배의 순서로 진행된다. 초헌관은 잔을 향로 위로 들어 올렸다가 좌집사에게 주어 신위전에 올린다. 집사들은 메와 면그릇의 뚜껑을 연다. 이어서 축관은 향안 위에 있는 축판을 들고 초헌관의 왼쪽에서 동향하여 꿇어앉아 축문을 낭독한다. 이때 참사자들은 모두 부복한다.

축문 낭독이 끝나면 모두 일어나고, 초헌관은 신위께 재배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집사들은 신위전의 잔을 내려 퇴주기에 비우고 다시 제자리에 올려놓는다.


아헌亞獻·종헌終獻

초헌에 이어 아헌과 종헌을 차례로 올린다. 헌관은 향안 앞에 나아가 집사의 도움을 받아 신위전에 헌작하고 재배한다. 독축이 없는 것이 초헌 때와 다르다. 종헌 때에는 헌관이 집사가 따라주는 술을 신위전에 헌작하기 전에 퇴주기에 조금 제하고 올린다. 홀기에는 종헌 때에 ‘삼제우모상三祭于茅上’이라 되어있어 모사에 세 번에 나누어 붓는 것으로 되어 있다.(유식례 때에 첨작을 위한 것이다)


유식·합문·계문·진다

유식은 신에게 음식을 드시도록 권하는 절차로 첨작添酌, 삽시정저揷匙正箸를 한다. 첨작은 종헌 시에 올린 잔에 술을 가득 채우는 것을 말하고 삽시정저는 숟가락을 메에 꽂고 젓가락을 시접위에 가지런히 놓는 것을 말한다.

 초헌관이 향안전에 나아가 꿇어앉으면 좌집사가 신위전의 메뚜껑을 내려 주인에게 주고 우집사는 술을 따른다. 좌집사는 잔을 받아 신위전의 술잔에 첨작한다. 주인은 일어나 재배하고 자리에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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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하시도록 문을 닫은 합문>


 다음은 신이 조용히 식사하도록 문을 닫고 밖에 나가는 합문 순서이다. 대청마루에서 지내기 때문에 병풍을 제상 앞으로 둘러치고 부복하는 것으로 합문에 갈음한다. 구식경이라 하여 밥을 아홉 숟갈 뜨는 동안 경건한 마음으로 엎드려 조상을 추모한다. 잠시 후 축관이 일어나 세 번 기침을 하면 모두 일어나 다시 제상 앞의 병풍을 걷어 계문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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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마치신 후 계문>


진다進茶는 식사가 끝났으므로 차를 올리는 순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차가 귀하였기 때문에 차 대신에 숭늉을 올리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왔다. 국그릇을 내리고 물을 올린 후 참사자들은 모두 국궁한다. 숭늉을 드시는 동안 허리를 굽혀 조용히 묵념한다. 잠시 후 평신, 몸을 바로 한다.

 

다음은 축관이 주인에게 이성利成을 고한다. 주인은 동쪽에서 서향하여 서고, 축관은 서쪽에서 동향하여 읍揖을 하고 마주서서 축관이 ‘이성’이라고 고한다. 예서에서 ‘이利는 봉양함이요, 성成은 마침이니, 조상신을 봉양하고 예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예가 끝났으므로 메 뚜껑을 닫고 수저를 내려 시접위에 정돈한다.


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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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를 모두 마친 후 일동 재배>


모든 예가 끝났으므로 신을 보내드리는 의식이다. 초헌관 이하 모두 두 번 절한다. 제례가 끝난 후에 홀기를 읽은 집례가 신위전에 나와 배례한다.

 축관은 축문을 태우고(분축) 신주는 주독을 닫아 사당에 봉환한다. 납주納主는 출주의 역순으로 신주에 도자를 씌우고 폐독하여 사당으로 들어가 감실에 봉안한다.

 집사들은 제상의 제수를 철상하여 안채로 날라 음복상을 준비한다.


●제사를 지낸 후 나눈 이야기들

제사 후 노송정의 오른쪽. 새롭게 단장한 요산정으로 나가는 옆문 근처에 있는 노송老松으로 화제를 옮겼다. 종손의 말씀에 의하면 20여년 전에 심은 것이라 한다. 옛날 노송정 할뱀의 부친이신 선산 할뱀이 영변에서 분재 형태로 가져온 노송을 큰 아드님이신 두루 종가에 한그루, 사위이신 박근손家에 한그루, 막내 아드님이신 온혜종가에 한그루씩 주었다. 두루 종가에는 600여년을 잘 자라 천년기념물이 되어 웅장한 수세를 자랑하고 있으나, 선산 박근손가의 노송은 어느 해인가 죽고, 온혜는 164년 전인 임인년 폭설에 가지가 부러져 고사했다고 한다.

선산 박근손家의 노송은 나무 그늘에서 50여명이 시화를 하며 풍류를 즐겼다고 하고, 온혜의 노송은 그 가지가 노송정 마루까지 뻗어 무성했다고 한다. 지금 저 노송도 한 200여년 지나면 그렇게 되지 않겠냐고 종손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사항을 여쭤 보았다.


“두루종가의 노송은 천년기념물 「뚝향나무」라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노송」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이름이 무엇인가요?“

 “향나무인가요? 아니면 소나무인가요? ”

“소나무는 옆으로 그렇게 넓게 퍼질 수가 없지. 향나무가 맞지.”

“그런데 뚝 향나무라는 건 아마 학명이 그렇단 거고 우리는 노송이라고 부르지.”


“노송정老松亭이란 당호堂號는 저 건너 보이는 큰 소나무 때문에 지어진 건가요? ”

“삼 백당 종가의 당호가 종가 주위에 잣나무 세 그루를 가리켜 삼 백당이라 했듯이. ”

“아니지. 저 소나무는 일 이백년 밖에 안 되었으니 그 당시에는 없었지. 노송정이란 당호는 선산 할뱀이 옮겨오신 노송을 가리키는 거지.”

“그런데 저 소나무도 범상치는 않아.”

“자세히 보면 가지가 버드나무처럼 늘어져 있거든. ”


종손의 말씀대로 가지가 늘어져 버드나무 같은 지는 훗날 날이 밝을 때 확인해 볼 일이다.

그리고 그 당시 이웃해 있던 할뱀의 둘째 아드님이신 송재 할뱀 댁에는, 노송은 아니지만  만년송이라는 나무가 특이하게 잘 자랐다는 기록이 있다고도 했다.


●에필로그

제사가 끝나고 음식을 나르고 잔심부름을 한 후 음복을 하니 두 시경이 되었다. 이제 출근할 일이 걱정이 된다. 출근 지는 육 백리 멀리 떨어진 서울이다. 첫 차인 5시 30분 버스를 예매해 놓았으니  3시간의 여유가 있다.  원시기 할배는 졸리는 기운을 떨치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운전대를 잡는다.

 현재 대종회의  기금 사용은 불천위 제사 때, 10만원. 또 화수회가 열릴 때 얼마간의 금일봉을 주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오늘도 사무국장이 낸 부조금10만원만 대종회 기금으로 사용한 것이지 의성에서 온혜까지 오는 차량의 기름 값 한 푼, 공금으로 사용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회장님이나 사무국장, 총무 모두 전국의 화수회와, 각종 제사며, 문중의 경조사에 참여하면서 개인적으로 사비를 써서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 분들의 사심 없는 문중 사랑과 조상에 대한 향념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할배는 한 참을 달려 찜질방 앞에 내려주고 들어가신다. 안동에 올 때마다 늘 신세만 지니, 고맙고 죄스러울 따름이다. 찜질방에서 샤워를 하고 눈을 조금이라도 붙일까 하다가 단념한다. 까딱하면 골아 떨어져 차편을 놓일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5시 30분 첫 차를 타고 안동을 떠났다. 이번 불천위 제사 참관 여행도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제사의 순서, 형식과 진설에 관하여 한정아재가 통일된 안을 완성시켰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귀경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40대 후반이나 오십대 초반이 되면 고민을 하는 족친들이 많이 생겨난다. 이제 아이들 다 길러놓고 조상과 뿌리에 관하여  생각을 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깊은 성찰에 잠길만한 나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 까페가 이런 분들에게 약간의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는 조그마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가끔씩은 불천위 제사에 참여하여 의문 나는 점들을 시원하게 해결하는 그런 청량감을 맛보지 않으시겠는가? 평일에도 한번씩  밤새워 제사에 참여하고 출근시간에 애 타 하면서  새벽의 첫 차를 타는 스릴을 맛보지 않으시겠는가?

금호 할배 말씀처럼 선생은 학생을, 직장인은 부하사원들을 내 팽개치고 자기 조상을 찾아 밤새워 차를 달려보지 않으시겠는가? 아이들이나 부하사원들이 알면 제 조상만 위한다고 혹시 촛불 시위를 할지라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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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3.06.10 11:53

    첫댓글 진성이씨 노송정 종택~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604번지(퇴계태실)

  • 13.06.11 16:59

    조상을 모시는 마음이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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