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2일 (토) 새벽같이 집을 나섰는데 매점에서 즉석 라면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였다. 얼마나 맛이 있던지.. 강화군 길상면 해안동로 58 (길상면 초지리 624) 에 있는 초지진이다. 초지진(사적 제225호)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 (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진에는 배 3척을 비롯하여 첨사 이하의 군관 11명, 사병 98명, 돈군 18명 등이 배속되고 초지돈, 장자평돈, 섬암돈의 세군데 돈대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병인,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등 근대 까지 줄기차게 싸운 격전지이다. 1871년 4월 23일 미국 로저스가 지휘하는 아세아 함대가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여 450명의 육전대(陸戰隊)가 초지진에 상륙전을 감행하였다. 이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1875년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개항시키기 위하여 파견한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13 년 (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뒤 허물어 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안내서 인용)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이곳은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성곽을 보수하고 조선군이 사용하던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성축과 홀로 남은 노송에는 당시의 포탄자국이 남아 있다. 초지진 내부 전경. 초지진에 전시되어 있는 대포 (초지진의 대포는 진품이다. 구경 100m/m, 길이 215, 중량 1,800) 초지진의 대포는 포구(砲口) 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 화포로 사정거리가 700m이다. 조선 영조때 부터 주조하여 사용 했다. 화약의 폭발 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 갔으나 포탄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은 약하다. 복제품이 아니고 진품인 초지진 대포의 포구, 구경이 100m/m 이다. (진품 대포) 초지진에서 본 김포 대명항과 초지대교. 1871년 미국의 로저스가 지휘한 아세아 함대의 침공시에 포탄을 맞았던 노송 (老松) 이 곳에 수록된 모든 사진들은 크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초지진의 해안 쪽 성벽. 흰 점선으로 표시한 부분이 포탄을 맞았던 흔적이다. 초지진에 모인 이유는 매년 했던 심도기행 특별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올해가 벌써 6회째인데 이번에는 특별히 학사재 방문과 함께 고재형 선생의 생가에서 강묵회 소속의 예술가인 한국화가 화도 이옥희 (좌측 첫번째) 선생과 서예가인 소람 안병미(좌측 두번째) 선생이 직접 제작한 손수건 그림전을 열어 주기로 했다. 덕진진에서 광덕선원장인 광덕스님과 주지인 해녕스님도 합류 했다. 덕진진 쪽에 있는 학사재 뒷 편 문을 통해 학사재로 들어 가는 길이다. 학사재 관리자와 인사를 나누고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핀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 갔다. 학사재 관리동을 지나고 해안가 절벽을 연상케 하는 바위가 있는 정원도 지나서 학사재 우측 출입 문을 통해 본관으로 들어 갔다. 학사재 본관 우측면의 모습. 합각 부분의 문양이 특이하다. 본관에서 사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장독대 "여기에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그리움과 사랑을" 이란 현판이 있는 사당은, 이 곳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되어 있는 건물이다. 사당에서 본 본채. 학사재의 정문, 안쪽의 모습이다. 정원에 있는 귀엽게 보이는 돌 부엉이. 정문 옆에 있는 누각, 안에서 보면 단층으로 보이지만 2층 누각이다. 본채의 전면 모습. 본채 앞의 누각. 학사재의 좌측 (학사재를 바라보며) 문을 나서면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금천인 셈이다. 실개천은 담을 따라 흐른다. 동산으로 오르는 길. 실개천 위에 있는 돌다리, 궁궐이나 사찰의 경우에 금천교인 셈이다. 좌측에서 본 본채. 정원에서 차밭(茶園)으로 나가는 문. 차밭에 차 꽃이 피었다. 열매도 달리고..... 학사재의 차 밭과 덕진진의 덕진돈대와는 줄 하나로 경계가 나뉘어져있다. 차밭에서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단풍이 아름다워 눈길이 갔던 감나무. 해녕스님도 즐거우신듯..... 계곡 옆 바위에 구절초가 만발했다. 인위적이지만 자연 그대로 같은 계곡 위엔 돌다리도 있고 돌다리 가운데엔 물로 들어오는 잡귀를 지키는 천록도 있다. 천록 모습. (천록을 조각해 놓은 곳은 드물어서 우리나라에선 경복궁 영재교에서나 볼 수 있다) 양탄자를 깔아 놓은듯한 바위의 이끼. 계곡 길따라 바위길을 내려 가면 사방에 용머리 조각이 있는 아름다운 석등이 있는 연못에 다다른다. 연못, 연못엔 지금도 수련과 어리연이 건재해 있었다. 연못 아랫쪽으로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다. 연못 위의 정자. 연못 안의 연못, 돌확이 작은 연못이다. 덕진진 남장포대가 있는 곳으로 나가는 문. 두 사람이 찍고 있는 대상은 문고리다. 밖에서 학사재의 문장인 벌개미취의 문양이 있는 팔각의 문고리를 돌리면, 잠금장치인 안의 거북이 머리가 들려져 문이 열리는 장치다. 학사재에선 덕진진의 남장포대도 잘 보인다. 저수지의 물은 담수가 아니고 바닷물이다. 바로 옆에 있는 저수지의 물은 담수다. 담수엔 많은 물풀들이 살고 있지만 바닷물엔 물풀들이 없다. 담수가 있는 곳으로 나가는 문 바닷물이 있는 저수지에서 담수가 있는 저수지로 나가려면 다시 연못으로 들어 왔다 나가야 한다. 나가는 길에 있는 대나무 숲. 대나무 숲을 지나 문을 나서면 만나는 작은 연못. 작은 연못 에서 학사재로 가는 길. 계곡 길에는 손으로 다듬은 조선시대에 만든 느낌이 드는 돌다리도 있다. 하늘 호수도 있고, 날 좋은 날이면 구름도 쉬었다 가는 작은 호수 ㅎㅎㅎ 산 중 같지만 이 곳은 학사재의 정원이다. 모든 사진들은 크릭하면 크게 보임. 학사재 관리동 내부, 관리동에서 본 입구. 실제로 통행하는 문은 아니다. 쑥부쟁이. 정원을 보고 있는 뚜벅이 (키 큰 남자) ㅋㅋㅋ 꽃과 꽃이 꽃길을 만들었다. 산국향을 맡으며 옛집으로 들어 가는 길. 이 곳도 꽃 길이다. 지금도 맑은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우물이 있는 집 문 앞에서 ......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 들었다. 툇마루에는 어머니를 닮은 할머니가 어머니와 함께 앉아 계셨지. 별 말씀들은 없으셨지만 손길에서, 눈길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사랑이였던것 같다.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에도 늘 그리움이 이는 것은 아마도 사랑이 고파서일게다. 먼 하늘을 바라봐도 광 문을 열어봐도 지금은 찾을 수 없는 사랑. 그 사랑이 생각났다. 대문간에 새겨놓은 문장처럼 마음에 깊이 새겨진 사랑이, 이젠 눈물 한 방울 되어 내 가슴을 적신다. (1편 끝) |
출처: 바위솔 원문보기 글쓴이: 바위솔
첫댓글 건물 사진은 제가 부담스러워 하는 피사체 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바위솔님 사진보고 많이 배워갑니다.
바쁘게 움직이셨습니다. *^
바위솔님 사진은
라면도
문고리도 화보네요..
눈 힐링 합니다...
사랑을 만나는 순간들입니다.
바위솔님 감사합니다.
와와 보시고 잘 드가셨어요?
늘 가슴은 길위에 계시니 샘을 뵈며
많이 배웁니다ᆞ 오늘새벽은 별이 장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