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조트 외 1편
여산솔
오랫동안 눈이 녹지 않는 스키장을 걸었어 구부러진 섬광을 빨아들이며 고철의 흔들림을 들으며 기다란 입김을 마셨어 사람들은 왜 이곳을 잊은걸까 장화 신은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침착한 장소로 왔어 안개 낀 숲처럼 아르누보 타일만 남은 기이한 현장
유리창에 붙은 거미는 조용하고 아침이 오는 테라스
명상을 하면 마음이 가벼워져
어깨라는 복합체가 달그락거리거든
깨끗한 호흡을 모아 조용한 눈이 되고 있었지
몸 안쪽에 쌓이는 단정한 구름
부서지는 결정
거대한 현미경이 있다면 나는 그 아래 누울거야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얼어붙은 무릎을 주고
연결을 가르쳐주려고
떠내려가는 얼음 끝자락
빙하처럼
다각의 흰 입체를 보고싶겠지
여름이 와도 녹지 않는
끌어당김
꼬리를 물고 불어나는 상상력처럼
있잖아, 아름다운 차원을 짓기 위해 썩지 않는 뼈처럼
내게는 견고한 객실이 있단다
밑이 둥근 접시나 부드러운 호리병 같이
오래 견딘 성처럼
야외엔 반듯한 시계탑이 있다
어두운 찻잔 속으로 손가락을 담그고
물에 젖은 손을 들어 하늘에 모서리를 긋는거지
여기가 세계의 끝이라는 듯
마음이 시원해
건조된 조각 자몽
뜨거운 물을 따르는 것처럼
자몽이 잠기는 속도로 멀어지는 이웃들
차를 마시며 먼산 보기를 한다
설산 끄트머리에 어둠은 무엇을 품고 있지
무거운 잉크가 엎질러진 자리
산 정상에 엇갈리는 케이블카처럼
양가적인
나는 나를 평행하게 아끼고 있다
창문으로 둘러싸인 건물
호황이었던 오래전 겨울이
잠을 잔다
사랑하는 외국인처럼
먼
휴가 속에서
도시의 차양
여한솔
자전거가 고장나서 갑자기 걸었던 일.
샌달을 신고 걷는 동안 기분 나쁜 물을 밟았다.
좁고 익숙한 도시의 골목길은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외롭게 한다.
산책로에는 연이 날고 있다.
돌계단에 앉아 수박 먹는 사람들
지나간 여름을, 무더위를, 실수를 떠올리느라 잔해가 쌓인다.
다리 밑을 지날 땐 전철 소리를 들어야 한다. 괴물의 이빨처럼. 지긋지긋하고 까만 철도가 덜컹거린다. 진동과 굉음으로 나는 조금 부서지고 시멘트의 서늘한 그림자에 속고. 검게 얼룩진 기둥을 지나며 흐르는 머리를 묶는다.
제방의 자제가 썩는 까만 물속에서 나를 보았다.
물비린내 풍기는 마음에 돌 하나 얹어 올린다.
나무의 초록은 천천히 걷고 있다.
변하지 않는 차양.
변심하는 공터의 목표들.
물은 얼었다 녹는다.
다시 얼고.
물고기나 새나 사람이 죽어나가던 날이나
나무의 가지가 잘려나간 날에도.
전철의 소음은 건물 모양으로 돌아다닌다.
불규칙한 철로 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죽어, 죽어, 말해보았다
자전거의 페달이 혼자 빙빙 돌아갈 때
공중전화 부스 비어있을 때
홀로 문고리에 부딪혀 울 때
처마 끝의 빗물이 일정하게 떨어질 때
길게 걷는 골목과 넝마가 된 마음이
있었다.
숯처럼 까맣게 타들어 가는 나를 알까.
사라지자는 목적처럼 오래된 액자처럼 소망처럼 불에 타 희미해지고 있다. 다시 찬물, 정화하는 느낌으로 불사를 수 있는
다시 어둠. 수증기. 식어가는 열과 숯불 같은 이마.
오수 속의 물고기는 어린이가 되었다가 불어난 나무토막 되었다가
장마나 긴 긴 미래가 되었다.
개천의 얼음이 녹던 날엔 물이 반짝이기도 했다.
공원을 조성하다 멈춘 동네는 자연도 인공도 없다.
왜가리의 눈은 빨갛고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가 있다.
물 아래로 가라앉는 나는
더러운 물에 누워 불규칙한 천장을 본다.
일본이나 북아메리카에는 나무가 많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열차가 지나가는 마을이 있다.
영화에서 본 장면이라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다.
교토나 오타와
방해받지 않은 언덕을 궁금해 한다.
교토나 오타와
나에게는 없다.
교토나 오타와
나에겐 불규칙한 나무들 뿐 이다.
약력(저서명, 대학, 문학상 경력)
2021 매일신문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