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군은 열대 바다 얕은 바다와 육지가 둘러싸인 석호를 의미한다.
때로는 환초에 둘러 싸인 얕은 바다를 뜻하기 한다.
비행기에서 보면 깊은 바다와 구별이 된다.
그곳의 물색깔은 거의 하얀 색이다.
큰 배가 없는 원주민들의 어업을 하는 곳이다.
그들은 무동력선이나 작은 마력의 배를 이용하여 산호초에서 사는 작은 고기들을 주로 잡는다.
홀로 고기를 잡거나, 많아야 서너 명이 작업을 해서, 하루 한국 돈으로 만 원에서 이 만원 사이의 수입을 올린다.
작업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하루 반 나절 정도 일해서 작은 돈으로 소박하게 살아간다.
원주민들의 삶은 단순하다.
고기를 잡아서 마을 판매장에서 팔기도 하고, 스스로 소비하기도 한다.
내가 필리핀에서 스쿠바 리조트를 할 때, 근방의 아포섬에서 자주 다이빙을 갔었는데, 그곳의 어업은 더욱 초라했다.
어업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한심한 일이라고나 할까.
아포섬에 나와 친한 소년이 있는데, 그의 가족은 어머니와 어린 동생 두 명이었다.
아버지는 멀리 인도네시아로 일하러 가서 소식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관광객을 상대로 원주민들의 수공예품을 팔고, 집안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소년이었다.
그는 하루 종일 야자나무 사이에 매달려 있는 흔들 침대에서 낮잠을 자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나무로 만든 물안경과 작살 하나를 들고 자신의 아주 작은 방카 보트를 타고 집 앞으로 나가서 고기를 잡았다.
고기를 잡는 방식은 간단했다.
물 속이 훤히 보이기에 물 안경을 쓰고 머리를 물 속으로 처박고 작살로 고기를 잡는 것이다.
물 속 시야가 워낙 좋아서 가능한 일이다.
고기를 잡아서 일부는 말리고, 나머지는 야자 나무 숯을 펴서 구워서 동생들과 나누어 먹었다.
뼈다귀는 자신들이 사는 집(우리나라 원두막과 비슷함) 아래에 같이 살고 있는 가축들(닭, 돼지, 개)과 같이 먹기도 한다.
먹고 남은 고기는 말렸다가 장에 가서 같이 키우던 닭과 계란을 팔아서 쌀을 사왔다.
필리핀 육지 사람들은 고기를 사고 쌀을 팔았다.
어느 날, 소년의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대단히 놀라운 고기 잡는 방식을 목격했다.
‘아델’ 이라는 방식이었다.
커다랗고 긴 그물을, 시작할 때는 한쪽을 육지에서 마을 사람들이 잡고 있고, 다른 한 쪽을 배가 끌고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끌고 들어오는 방식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양쪽 끝을 마을 사람 전부가 같이 끌어들여서 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마을 앞바다의 고기를 전부 잡을 듯이 노래를 부르면서 소리를 지른다.
고기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그 고기들을 골고루 나누어서 집으로 가져 간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열대 바다 라군에서나 볼 수 있는 톡특한 어업 방식이다.
어느 날, 아포섬에서 소년을 볼 수 없었다.
동생에게 물어보니 마닐라로 돈 벌러 갔다는 것이다.
나는 몹시 소년이 보고 싶었다.
한 편으로는 그의 삶을 부러워 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놀다가 잠시 바다에서 취미 삼아 고기를 잡아서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불가능할 삶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세상 보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년의 삶이 그렇게 유지되기를 원했다.
그것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몹시도 아쉬워했다.
한국에 갔다가, 두마게티로 오기 위해서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야 해서 마비니 거리의 호텔에서 하루 묵어야 했다.
두마게티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언뜻 택시를 탄 외국인에게 구걸하는 소년을 보았다.
나는 황급하게 택시 기사에게 세우라고 했지만, 소년은 간 곳이 없었다.
라군은 소박한 사람들의 행복한 공간이다.
삶이란 단순해야 행복한 것이다.
가난하고 모자란 듯한 삶이 행복한 곳이다.
그곳이 라군이다.
라군에는 소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