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2.04 11:19
<1> 10㎝가 바꾼 인생
중학교 2학년 때인 1968년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 갔지만 경북고는 꼭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몸이 작다는 이유 하나였다. 160㎝도 채 안되는 키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서울에서 선린상고 배문고교도 두들겨봤지만 역시 퇴짜를 맞았다. 신생팀 대광고도 억지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눈초리는 별로였다. ‘쟤가 야구나 할 수 있을까’였다.
고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졸업할 때까지 키가 163㎝에 불과했다. 힘도 없었고 발도 팀에서 제일 느렸다. 야구센스가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작은 체격이 너무나 큰 장벽이었다. 대학 역시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동국대 중앙대 테스트에 응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때 대구 영남대가 창단됐다. 홀로 짐을 싸들고 대구행 기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기차 안에서 다짐했다. ‘반드시 나를 버린 팀들을 울리겠다.’
대학에 입학한 첫해(73년)가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당시 우리 팀에는 감독도 없었다. 팀이 창단됐지만 선수들 12명만 있을 뿐이었다. 6월이 돼서야 배성서 감독이 오셨다. 1학년 때는 운동만 했다. 육상부에 끼어서 죽도록 달렸다. 또 웨이트트레이닝을 정말 열심히 했다. 1학년 마칠 무렵 키가 10㎝나 자라 있었다. 힘도 세졌다. 순발력은 물론 어깨도 강해져 난생처음 유격수를 맡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이때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이 되니까 야구도 됐다. 대학 2학년 때 본격적으로 대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도루도 하고 생전 처음으로 홈런도 쳤다. 추계리그에서 타격상(타율 .379)까지 받자 모두 ‘김재박’이란 선수를 주목했다. 이해 대학선발로 한·일친선경기에도 나갔고 75년에는 아시아선수권에 국가대표로 뽑히기까지 했다. 내 야구인생은 이때부터 꽃피었다.
첫댓글 제가 젤 좋아한 선수였는데....
재사마(--);;